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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혜검 1권 (23화)


‘중단전의 무공이라면 송하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단전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무학들과는 다르게 중단전을 사용하는 무학들은 완전히 그 궤가 다르니 말이야. 그렇다면 태극심법이 바로 중단전의 무학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몽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학을 알려 준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묵유자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송방과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진송하에게 물었다.
“송하야, 잠시 무엇 좀 물어보자구나. 네가 중단전에 기운들을 담아 두고 있는 것은 태극심법의 구결을 따른 것이냐?”
사실 예, 아니오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진송하는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사고로 인해 우연찮게 손에 넣은 힘이었기에 자신도 어찌 된 건지 정확히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으음, 예. 아마 태극심법이 송방이 말한 중단전의 무학이 맞는 거 같아요. 그 몽계에서 흙벽을 지날 때, 이동 경로를 떠올리며 태극심법을 운기하니까 중단전으로 기운들이 몰렸거든요. 하지만 기운들이 중단전 안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도 중단전이라고 생각되는 곳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거든요.”
“중단전에 담아 두지 않고, 그 주위를 돌고 있다라……. 뭐, 애초에 하단전이 아니니 담아 두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허어, 그렇다면 태극심법이 정말 중단전을 이용하는 무학이라는 말이구나.”
묵유자가 그렇게 인정하자 송방은 더욱 흥분하여 진송하에게 이것저것 알려 주기 시작했다.
진 노인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는 두 아이를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봤지만, 묵유자는 아직까지 머릿속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에 다시금 깊은 생각에 잠겨야 했다.
‘태극의 무학이 중단전의 무학이라면, 지금까지 무당에서 태극권과 태극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는구나. 중단전을 활용해야 할 무학을 하단전을 기반으로 쓰려 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선대의 실수로구나. 태극의 무학 중에서도 가장 쓰잘머리가 없어 버려진 태극심법이 바로 다른 두 무공의 기초가 될 정도로 중요한 무공이었다니……. 어허!’
묵유자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후회스러운 마음이 일어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혀 오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 기대도 되었다.
‘이제는 지금까지 숨겨 왔던 사실을 사부님께 알려도 되지 않을까?’
애초에 진송하가 태극을 제대로 익힌 후라면 유극 진인도 오해하지 않을 거라고 묵유자는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묵유자는 지금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도 크나큰 변화를 가져온 상황이라면 계속 비밀에 부쳐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진송하가 이전과 다르게 내력을, 그것도 또래 아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해 보이는 내력을 손에 넣었으니, 더더욱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 중으로 사부님을 찾아뵙고 사실을 말씀드려야겠구나. 송하도 이미 태극심법을 자신의 손에 넣었으니 다른 자에게 빼앗기거나 할 일은 없겠지.’
물론 도덕경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진송하에게서 도덕경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문제 말이다.
하지만 묵유자는 이미 그에 관해서는 잘못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사실 묵유자는 어제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각에 몰래 충허암을 나서 다시 진선각에 갔었다.
혹시나 진송하가 아닌 다른 사람도 몽계로 가는 것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는데, 이를 위해 얼마 전부터 태극심법을 공부해 온 묵유자였다. 그리고 비로소 어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진선각에 보관되어 있는 도덕경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태극심법을 구결대로 운기한 결과,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곧 진송하만이 몽계를 드나들 수 있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오히려 묵유자는 이번 일을 통해 진송하의 가치를 모두가 인정해 줄 거라 생각하여 아예 사부님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김에 진송하를 무당의 정식 제자로 입문시킬 생각마저 했다.
‘후후. 그래도 결과는 나와 봐야 아는 것이니, 일단은 비밀로 해야겠지. 뭐, 틀림없이 잘될 테지만 말이야.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려무나, 송하야.’
묵유자가 자신을 위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진송하는 송방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무림에 대한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八章. 숨겨진 무당객잔에 가다



무당파는 크게 천주봉을 중심으로 동쪽의 내원과 서쪽의 외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내원(內院)은 장문인을 비롯해 무당파의 진산제자들이 기거하며 수련하는 곳으로, 강호에서 말하는 무당파란 바로 이 내원을 의미했다.
반면, 외원(外院)은 그 쓰임새가 내원과 크게 달랐다.
규모 면에서는 내원의 세 배가 넘었고, 머무는 사람들도 훨씬 많았으나, 내원에서 생활하는 무당파의 제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외원이 내원과는 다르게 무림의 문파라기보다는 도가의 사원으로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원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도가의 사원.
무림에서 말하는 무당파가 내원이라면,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말하는 무당파가 바로 이 외원이었다.
외원은 소수의 제자들과 함께 외원주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내원의 주인이 장문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외원주라는 직함이 가지는 무게는 무당파 내에서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죽하면 장문인의 위명에 누를 끼칠지 모른다는 점을 염려하여 외원주는 장문인보다 한 항렬 아래의 제자가 맡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까지 존재하겠는가?
그렇기에 현 무당파의 외원주는 장문인인 유극 진인보다 한 항렬 아래인 묵진자(默眞子)가 맡고 있었다. 묵진자는 무에 재능이 없어 무림에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묵 자 항렬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이십여 년 전 유극 진인이 장문인이 될 때, 동시에 외원주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일반 민중들 사이에선 장문인인 유극 진인보다도 더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했다.
외원주와 소수의 제자들이 기거하며 업무를 보는 곳이 바로 무당파 내에서 장문인이 기거하는 조천궁(朝天宮) 다음으로 규모가 큰 오룡궁(五龍宮)이었다.
오룡궁은 가히 북경 고관의 장원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는데, 지금 그곳에서 아름다운 금박 무늬가 그려진 화려한 옥빛 도복을 입은 노도사가 걸어 나왔다.
저벅저벅.
배꼽 근처까지 기른 수염이 인상적인 인자한 인상의 이 노도사가 바로 외원과 오룡궁의 주인인 묵진자였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틈이 날 때마다 지금처럼 외원을 돌아다녔다. 개인적으로 하루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보자마자 모두들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을 향해 무량수불을 한 번 외워 주면, 그들은 마치 원시천존께 직접 축복이라도 받은 것마냥 감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닌 말로 도호 한 번에 사람들에게 커다란 행복을 주는 행위였으니, 그가 질리지 않고 이 일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할 만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현 세상에서 도호를 가장 많이 외운 인물을 꼽아 보자면 바로 이 묵진자가 수위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와아, 사람 정말 많다!”
“으이구, 쪽팔려. 야 임마! 그만 좀 둘러봐!”
“그치만 나 외원은 처음이란 말야.”
“하긴, 백운촌 사람들은 허락을 받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 무당파는 유독 백운촌 사람들에게 잔인한 거 같아.”
“그러엄. 그중 송방, 네가 나한테 가장 잔인했지.”
“허? 야야,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으음……. 한 보름 전?”
“……미, 미안하다. 대신에 이렇게 내가 한턱 쏘겠다는 거 아냐.”
“헤헤. 응, 고마워.”
갑자기 한 켠에서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대화에 묵진자의 얼굴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더구나 그중 한 아이의 목소리는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아이의 것이었다. 그의 사손인 송암과 어릴 때부터 어울려 오룡궁으로 자주 놀러 오던 송방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쪽에서도 묵진자를 발견했는지, 송방이 재빨리 그의 앞으로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외원주님.”
“오오, 그래. 오랜만이구나.”
다른 아이도 송방의 뒤를 따라 다가와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이 아이는?”
묵진자는 이미 그들의 대화를 통해 눈앞의 귀여운 아이가 백운촌의 잡일꾼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예의상 그리 물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이 실로 의외였다.
“예, 현은 사숙의 아들입니다.”
“응? 뭐라고?”
도사에게 아들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농담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내 십여 년 전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아, 그때의 그 아이구나. 당시 현은이 내원, 외원 할 것 없이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자식 자랑을 늘어놓았었지. 허허, 그 아이가 이리도 컸구나.”
“헤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최근 뜸한 것 같은데, 나중에 꼭 송암과 함께 오룡궁으로 놀러 오거라.”
“예!”
북쪽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을 훈훈한 미소로 바라보던 묵진자는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가려다가 멀어지는 아이들의 대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분이 외원주면 이곳의 주인이시라는 거야?”
“응. 외원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분이시지.”
“와아! 아, 그럼 무당파에서는?”
“으음, 글쎄? 아무리 외원주이시고, 묵 자 항렬 중 가장 큰 어른이라지만 내원의 유 자 항렬 어르신들보다는 아래일걸? 그리고 묵유 사숙조님도 장문인의 제자이시고, 곧 장문인의 자리에 오른다고 하시니 결코 낮지 않으시겠지.”
마지막 송방의 말을 들었는지 묵진자의 발걸음이 순간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이전까지의 인자했던 인상을 단번에 날릴 정도로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외원을 한 바퀴 다 돌고 난 후, 다시 오룡궁으로 돌아온 묵진자는 자신의 집무실을 방문한 중년인 도사를 일견하고는 그를 지나쳐 휘황찬란한 장식으로 꾸며진 의자에 앉았다.
중년 도사는 묵진자의 제자인 현수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사부가 현재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젠장, 때를 잘못 맞췄군.’
현수가 아는 묵진자의 성격은 외원의 다른 자들이 아는 바와 전혀 달랐다.
평소 대중에 나설 때는 언제나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고 공정하기 이를 데 없는 언행을 보였지만, 제자로서 오랫동안 지켜본 묵진자의 진정한 성격은 상당히 편협하고 이기적이었다. 그래서 현수는 대체 무엇이 사부의 심기를 어지럽혔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묵유자의 입이 열렸다.
“묵경 사제에 대한 소식은?”
“아, 예, 예! 그것이 알아보고는 있사오나…….”
현수가 말끝을 흐리자 묵진자는 안 들어 봐도 알겠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것이냐? 그러다 당장 오늘에라도 그 녀석이 이곳에 오면 어쩌려고!”
묵진자의 짜증 섞인 말에 현수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급히 답했다.
“그, 그럴 리는 없사옵니다. 묵경 사숙께서 북경을 벗어나셨다면, 당연히 소식을 접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번 사태는 무림맹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인데, 그쪽을 통해서도 별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아직 북경을 떠나지 않고 계신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놈아! 그럼 북경에 들어가서라도 어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아내야지!”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직 변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금 무림인이 북경으로 들어가는 건 요원한 일이라…….”
“쯧쯧. 하긴 무능한 네 녀석에게 이 일을 맡긴 게 잘못이다.”
“죄, 죄송합니다, 사부님!”
현재 묵유자가 장문인이 되는 것을 가장 원치 않는 존재가 바로 묵진자였다. 아닌 말로 그가 장문인의 자리에 오르면 같은 항렬인 자신은 암묵적으로 내려오던 규칙에 의해 외원주직에서 물러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내원으로 돌아가 장로직에 머물며 생을 마칠 때까지 지루한 일생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외원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그는 결코 그리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장문인의 직계 제자인 묵유자를 밀어내고 자신이 장문인의 자리를 차지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서 고심하고 있던 차에 묵경자가 황궁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