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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플레이어 1권(9화)
Chapter 3. 신들의 저주(3)
이플렌시아의 원주민인 이상 내겐 인간의 모습을 한 몬스터일 뿐이다. 머릿속엔 하나의 생각만 떠올랐다.
원주민들도 구슬을 줄까?
빠악!
힘껏 휘두른 주먹에 원주민 하나의 해골이 박살났다.
“ouhnja!”
원주민이 뭔가 비명 같은 걸 뱉어 내며 풀 위에 털썩 쓰러진다.
데구르르―
파랑색 구슬 하나가 바닥을 구르며 반짝였다.
나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원주민들을 죽이면 구슬(돈)을 준다. 그러므로 난 그들을 죽인다.
난 원주민을 바라보고 웃으며 주먹을 꺾었다.
우드득―
원주민들은 내 무서운 힘에 놀랐는지 순간 움찔하며 한 걸음씩 물러났다. 하지만 한 녀석도 놓아줄 생각은 없다.
“타앗!”
기합을 내지르며 나는 양 떼를 만난 한 마리 사자처럼 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으……. 너무 많이 설쳐 댔어.
원주민들을 모조리 해치우고 구슬을 챙긴 나는 그제야 조금 후회스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원주민들의 인권이나 생명의 존엄성 등, 이따위 생각은 아니고 소란을 피운 만큼 다른 플레이어에게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재빨리 그곳에서 벗어난 나는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렇게 20분 정도 이동하자 내 눈앞에 이상한 생명체들이 보였다.
“끼릭. 끼릭.”
난쟁이 똥자루만 한 작은 키, 민머리에 크고 뾰족한 입, 입을 가득 채운 채 삐져나온 날카로운 이빨.
인간하고 흡사하게 생긴데다 직립보행을 하긴 했지만, 초록색 피부가 결정적으로 그들이 원주민이 아니란 걸 증명했다.
혹시 고블린?
가끔씩 베타테스터 게임을 할 때 봤던 고블린과 모습이 흡사했다.
디테일은 조금 다르지만 어차피 고블린은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몬스터. 저걸 고블린이라 불러도 아무 문제는 없으리라.
이러다가 트롤이나 미노타우로스 같은 것도 나오는 거 아냐?
녀석들의 숫자는 총 37마리.
수가 좀 많긴 했지만 체격이 매우 작고 무기도 조잡한 단검이나 몽둥이 같은 것밖에 없어서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어느 정도 노출될 위험이 있어도 그들을 사냥해야 했다. 애초에 난 녀석들의 구슬이 필요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플렌시아에 진입한 거니까.
움찔―
그러나 고블린을 공격하려고 맘먹었던 나는 수풀에 웅크린 상태로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다른 플레이어다!
내가 숨어 있는 수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군복을 입은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사내는 마치 군 복무 중인 군인처럼, 완전군장을 한 채로 K―1 소총을 들고 있었다.
부대 마크가 못 보던 건데? 계급은 일병이네.
“끼릭. 끼릭.”
고블린 무리는 군인을 금방 발견했다.
딱히 기척을 숨기는 기색 없이 수풀을 헤치며 당당히 다가왔기에 고블린들이 단체로 실명하지 않은 이상 못 보려야 못 볼 수 없었다.
“허억. 허억.”
군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더위라도 먹은 듯 눈빛이 몽롱하게 풀린 것도 이상했다. 녀석은 고블린을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알에 맞아 머리가 터져 나간 고블린이 수풀에 털썩 쓰러졌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고블린들이 눈에 불을 뿜을 듯 분노하며 그를 향해 일제히 덤벼들었다.
미친놈이군!
녀석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총성으로 인해 녀석의 위치는 단번에 노출되었으니까.
“크아아! 김 상병. 죽여 버리겠어! X발 놈아!”
콰앙―
녀석은 안전핀을 제거하고 전방에 수류탄을 투척했다.
“퀘엑!”
폭발에 휘말린 고블린들은 고기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날렸다. 똘기 충만한 그 군인도 폭발에서 무사하진 못했다. 거리도 가까웠지만 엎드리지 않아서 수류탄 파편에 맞은 것이다.
“끄으으윽! 다가오면 죽여 버리겠습니다―아.”
수류탄에 맞은 녀석의 모습은 처참했다. 아직 살아 있긴 하지만 저 정도 부상이라면 곧 숨이 끊길 것이다.
좋아. 기회군. 재빨리 라이프 포인트를 빼앗자.
라이프 포인트를 모아 어디에 쓰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것이 희망의 유일한 끈.
다만 다른 플레이어들이 수류탄 폭발음을 듣고 몰려오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으― 억! 꺼어―억!”
빠직― 우드득―
녀석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군인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움찔한 나는 다시 수풀에 숨은 채 관찰했다.
띠링―
가이드 포인터에서 알림음이 울리며 글자가 떠올랐다.
― 헤매는 자(Ghost)가 일그러진 자(Monster)로 변태하기 시작합니다.
― 일그러진 자(Monster)를 해치우면 라이프 포인트 ‘30’이 주어집니다.
살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상처가 제멋대로 봉합 되고 알 수 없는 힘에 뼈가 으스러졌다.
그렇게 으스러지며 군인은 점점 인간의 형체를 벗어났다. 그렇게 공처럼 뭉쳐진 살덩어리는 밀가루 반죽이 발효되는 것처럼 잔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뭉그러진 살덩어리에서 뼈가 다시 돋아나 뭔가 다른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더럽게 징그럽네.
여덟 개의 팔. 여덟 개의 다리. 머리통 앞뒤로 각각 3개의 눈.
젤리처럼 투명해진 피부 위에는 물고기의 비늘 같은 것이 뒤덮였고 머리와 어깨에는 날카로운 뿔이 돋아났다.
손톱은 길게 돋아나고 자라난 꼬리에도 날카로운 뿔이 여섯 개나 돋아났다.
괴물.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형상이 되고도 녀석의 입에선 인간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흑흑. 죽여 버리겠어― 이 X발 놈! 날 건드리지 마! 머리통을 아작아작 씹어 삼키겠어―어.”
아직 완전한 형체를 이루지 못한 듯 녀석의 피부가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투명하던 피부가 조금씩 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군인 녀석의 파격적인 변신에 기겁해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괴물이 갑자기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킁! 킁! 냄새가 나아―아. 뭔가 맛있는…….”
오싹―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녀석의 눈이 갑자기 내가 숨어 있는 수풀을 향해 고정됐다.
들켰다!
괴물은 육중한 거구를 이끌고 나를 향해 돌진했다.
찢어진 듯한 큰 입이 쩌억 벌어지며 톱날 같은 이빨과 채찍처럼 긴 혀가 뻗어져 나왔다.
찌잉―
능력을 발동했지만 괴물의 움직임은 조금밖에 느려지지 않았다. 큼직한 몸집에 안 어울리게 빠르다는 증거였다.
쉬이익―
괴물의 긴 혀가 채찍처럼 내 몸을 감아 왔다. 난 허리춤에 꽂아 둔 단검을 뽑아 녀석의 혀를 베어 냈다.
서걱―
“크―아아악!”
귀청 떨어지겠다. 이 자식아!
괴물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여덟 개의 팔을 휘둘렀다. 움직임이 너무 빠른데다 팔의 숫자가 너무 많다.
공격을 모두 피하지 못했다.
빠악―
“으아악!”
오른쪽 어깨뼈가 단번에 으스러진다.
조금만 타격이 더 컸으면 오른팔 전체가 잘려 나갈 수도 있었던 충격.
절로 입이 쩍 벌어지며 비명을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공격에 맞는 순간 충격을 살려 허리를 비튼 뒤, 그 탄력을 그대로 발차기에 실었다.
뻐―어억!
다행히 공격은 성공했다.
발차기에 맞은 녀석의 가슴이 움푹 꺼졌다. 충격파가 깊숙이 들어가 녀석의 뼈를 부수고 심장까지 충격이 전해지는 것이 발끝을 통해 느껴졌다.
“크―아아악!”
여전히 시끄럽군. 이 녀석!
심장이 부서지는 충격에 움직임이 멈춘 괴물을 향해 힘껏 올려치기를 먹였다.
콰지직―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 녀석의 턱뼈가 산산이 부서진다.
발차기의 충격은 입천장을 뚫고 녀석의 뇌로 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크―어어억!”
괴물이 아직도 비명을 내지른다.
아직 뇌가 멈추지 않은 건가?
뇌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은 타격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녀석의 두개골은 단단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난 강화계 능력을 집중해 녀석의 뇌를 향해 돌려차기를 먹었다.
아주 박살을 내 주마!
“조심해요!”
그때 갑자기 어떤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하는 순간, 괴물의 피부를 뚫고 날카로운 것이 솟아나 복부에 틀어박혔다.
“크억!”
피부를 뚫고 뼈가 돋아나다니 상상도 못할 공격.
치명적인 공격에 무력화된 나를 향해 괴물이 여덟 개의 팔을 뻗었다. 틀려먹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콰광!
순간 마른하늘이 번쩍하며 난데없이 낙뢰가 괴물을 향해 내리쳤다.
“크아―아아아악!”
온몸을 타고 흐르는 엄청난 전류에 고통을 느낀 괴물이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다만 문제는 나 역시 괴물의 뼈에 닭꼬치처럼 꽂힌 채 괴물과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같이 죽으라는 거냐?! 이 언니야!
어쨌거나 번개 때문에 괴물의 움직임은 멈췄다. 그 고통으로 몸부림쳤기 때문인지 나는 괴물의 뼈에서 튕겨 나와 수풀에 떨어졌다.
“다―아. 죽여 버리겠습니다―아.”
그런 말은 존댓말로 하지 말란 말이야. 네가 아직 군바리인 줄 아냐! 몬스터 나부랭이야!
번쩍! 콰광!
갑자기 나타난 플레이어가 괴물을 향해 다시 뇌전을 날렸다.
괴물도 번개보다 빨리 움직일 수는 없는지 고스란히 번개를 맞았다.
파지지직!
스파크가 튀며 괴물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공격하세요! 아저씨.”
어따 대고 아저씨라는 거지? 스무 살 넘으면 다 아저씨란 몹쓸 편견은 버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재빨리 녀석의 머리를 향해 힘껏 발차기를 날렸다.
콰지직―
두개골에 금이 가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부수고 들어가진 못했다.
“크아―아아아!”
괴물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듯 비명을 내질렀다.
번쩍!
여성 플레이어가 재빨리 녀석의 머리를 향해 뇌전을 내리쳤다.
“괴물의 머릿속에 핵이 있어요! 계속 공격하세요.”
핵이 있다고? 안 보이는데?
뭘 알고 하는 소리겠지 싶어서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뇌전과 발차기를 번갈아 먹이는 단조로운 연합 공격.
그러나 녀석의 두개골은 좀처럼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두개골이 부서지지 않더라도 충격파가 충분히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을 텐데도 괴물은 멀쩡했다.
두뇌 구성 성분까지 인간과는 다른 성분으로 바뀌었나 보다.
“물러나요!”
갑자기 여성 플레이어가 딱딱하게 굳은 어조로 외치며 도망쳤다. 위기감을 느낀 나는 따져 묻는 대신 괴물과 멀어지기 위해 힘차게 달렸다.
“크아―아―롸롸롸―”
괴물의 비명 소리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소리로 바뀌었다.
쫘악― 파아아―
괴물의 전신에서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운 뼈가 돋아났다.
뼈가 자라나는 속도는 그야말로 순식간.
“아아!”
뒤처진 여성 플레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창날 같은 괴물의 뼈가 그녀의 온몸에 박힐 것 같은 순간, 나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타악―
바닥을 박차고 도약한 나는 그녀와의 거리를 한순간에 좁힌 뒤, 그녀를 안은 채 바닥을 뒹굴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내 밑에 깔리다시피 한 그녀가 신음을 흘렀다.
“으읏!”
“괜찮아요?”
“…….”
사람의 몸에서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릴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기라도 하듯 그녀의 가슴은 온통 피로 흥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