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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플레이어 1권(12화)
Chapter 4. 팬텀(Phantom)(2)


엔진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울린다.
부아아아아앙―
은진이가 자랑스럽게 김태완의 뒷자리에 앉고 오토바이가 출발했다.
이러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뒤늦게 출발하려는 한 녀석의 목을 콱 잡았다.
“컥! 왜……. 왜 이래요. 아저씨.”
“내려!”
녀석을 바닥에 패대기친 나는 재빨리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바아아아아앙―
엔진이 비명을 내질렀다. 참고로 운전면허는 있지만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것은 처음이다.
빗길을 미끄러지듯 나아가며 난 예민한 청각으로 은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앗! 오빠! 거기 만지지 마.”
저 자식을 그냥!
분노가 확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죽여 버리겠어! X새끼!”
엑셀을 힘껏 밟았다.
부아아앙앙―
순식간에 주위가 눈앞에서 멀어진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따갑게 얼굴을 때린다.
이 미칠 듯한 속도감이란!
그러나 엔진이 딸리는 듯 태완이 녀석의 오토바이와 자꾸만 멀어진다.
기껏해야 125cc 정도 될까? 하긴 고등학생의 주머니 사정이야 뻔하지, 뭐.
저 녀석은 최소한 250cc 이상 될 것 같다.

오토바이가 다리 위를 질주하는 순간, 도로 한가운데 갑자기 트럭이 나타났다.
“어? 어?”
“뭐야? X발!”
끼이이익― 끼이이익―
겁을 먹은 아이들이 곳곳에서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미끄러운 빗길에서 잔뜩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건 결과는 참혹했다.
“으아악!”
“아악!”
오토바이들은 뒷바퀴가 허공으로 뜨며 공중으로 붕 날았다. 그렇게 붕붕 날아간 오토바이들은 길가에 세워진 트럭에 부딪혀 폭발했다.
콰앙― 파앙―
불꽃과 함께 파편이 튄다. 파편에 맞은 오토바이 운전자들도 결국 같은 운명을 맞는다.
“크아아악!”
콰앙―
인세의 지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은진이는! 은진아!
은진이가 탄 오토바이는 아직 무사했다. 태완이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트럭과 난간 사이의 틈을 절묘하게 비집고 나아갔다.
다행이다!
“어엇?”
안심하는 순간, 두 사람이 탄 오토바이가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갑자기 허공에 떠올랐다. 두 사람의 눈엔 황당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대로 오토바이는 강물을 향해 처박혔다.
“안 돼!”
끼이익―
나는 망설임 없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갑작스런 제동에 뒷바퀴가 들리며 오토바이가 허공에 떴다.
그 상태로 난 강물로 뛰어내렸다.
콰앙!
트럭에 부딪힌 오토바이가 폭발했으나 난 이미 난간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느려진 내 시야로 재수 없는 수컷이 은진이를 안고 강가에 올라서는 것이 보였다. 은진이는 떨어지는 충격으로 의식을 잃었는지 그 녀석 품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손 떼지 못해! 어딜 만지는 거냐! 망할 녀석아!
슈아아아―
그때 강물이 갑자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물기둥이 쫘악 하늘로 치솟기 시작하더니 근육질의 거인과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거의 5미터는 될 것 같은 물의 거인.
주위에 능력자가 있다!
첨벙!
물속에 빠진 나는 그제야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으앗! 난 맥주병이란 말이야!
어푸! 어푸!
힘겹게 강물 위로 떠올라 눈을 뜨자 태완이 녀석이 강물로 만들어진 거인과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거인이 녀석을 향해 큼직한 주먹을 내리찍었다.
콰앙!
아스팔트가 쩍쩍 갈라진다.
가까스로 물 거인의 공격을 피해 낸 태완의 손으로 얼음이 뭉친다.
빗방울만으로는 수분이 부족하자 강물까지 끌어들여 덩치를 불렸다.
쏴아아아아악―
녀석은 지름 1미터는 될 듯한 얼음덩어리를 거인을 향해 쏘아 보냈다.
거인은 주먹을 휘둘러 얼음덩어리를 쳐 냈다. 튕겨 나온 얼음덩어리는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파악―
이거, 완전히 상대가 안 되네?
물의 거인이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위기를 느낀 태완은 괴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쩌적― 쩌저적―
물 괴물의 표면이 얼어붙기 시작하며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통째로 얼려 버리려는 건가? 그러기엔 부피가 너무 큰 것 같은데?
“크으윽! 으윽!”
내 예상이 맞는지 힘겨운 듯 신음을 흘리던 녀석의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주루룩―
녀석에게 다가간 물의 거인은 두 팔을 휘둘러 녀석을 내려찍었다.
“으아아악!”
콰앙!
충격을 받은 태완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촤아아악―
쓰러진 녀석의 몸 위로 거인의 형체가 흩어지며 물이 쏟아진다. 녀석의 몸을 뒤덮은 물은 흩어지지 않고 젤리처럼 뭉쳐 그를 압박했다.
숨 쉬기가 곤란한 듯 녀석은 투명한 물 안에서 몸부림쳤다.
“제길!”
아무리 미운 녀석이라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다.
간신히 강가로 빠져나온 나는 녀석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나 한발 늦은 듯.
빠지직― 퍼억―
비정상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녀석의 눈알이 터져 나가고 뼈가 부러진다.
입, 코, 귀, 눈, 항문 등.
구멍으로 비집고 들어간 물이 녀석의 내부를 완전히 헤집어 터뜨려 버렸다. 붉은 피가 번지며 끔찍한 광경을 뒤덮어 버렸다.
오싹―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오톨도톨 소름이 돋았다.
뚜벅. 뚜벅.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린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얼마 전에 현실에서 싸운 모자를 쓴 사내였다.
전에는 불꽃을 쓰더니 이번엔 염동력에 물의 거인까지. 도대체 능력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야?
“당신이 한 짓인가요?”
“그렇다.”
사내는 감출 것이 전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어째서 죽인 거죠? 도대체 왜?”
“흥분할 것 없네. 현실에서 분별없이 날뛰는 멍청한 능력자를 해치운 것뿐이지. 망나니 같은 녀석들 때문에 우리의 정체가 일반인들에게까지 노출되고 있지 않은가?”
“능력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당신은 죄 없는 일반인들까지 죽였습니다.”
폭주족들이 많이 죽었다.
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체 능력자들의 대결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게 뭐 문제가 되나?”
사내는 어둠 속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게 되면 피곤해지지. 행동에 제약도 생길 수 있고. 내 동료가 되려면 좀 더 냉정한 마인드를 키우는 게 좋을 거다.”
“누가 당신의 동료가 된다는 겁니까!”
슈아아아악―
순간 강가에서 솟아난 물줄기가 내 몸을 휩쓸었다. 젤리처럼 끈끈해진 물줄기가 나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런 것쯤!
찌이잉―
강화계 능력을 끌어낸 나는 온몸에 힘을 주며 팔을 휘둘렀다.
파앙―
물줄기가 찢겨 나가며 사방으로 물방울을 튀겼다.
“역시 힘 하난 좋구나. 하지만 네 여동생부터 챙기는 게 좋을 거다.”
은진이는 이미 끈적이는 물 안에 갇혀 있었다.
이 XX 같은 자식! 처음부터 은진이를 인질로 잡을 속셈이었어!
“은진이를 당장 놓아주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어!”
“흥분하지 말게. 능력자 애송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벌써 잊진 않았겠지?”
처참한 광경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린 나는 잠시 굳어 버렸다.
울컥 울화가 치밀었지만 여동생을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냉정히 현실을 직시해. 마음만 먹으면 여동생뿐만 아니라 네 가족과 친구들을 인질로 잡는 건 간단하지. 반면에 넌 나에 대해서 뭘 알지?”
분하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여동생을 인질로 삼은 녀석의 얼굴을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흥분해서 날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뭘 하면 됩니까?”
“이제 말이 좀 통하는군. 간단해. 자넨 날 위해 한 가지 일을 해 주고, 그럼 나는 자네에게 여동생을 돌려주지.”
나는 냉정을 되찾으려 애를 쓰며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인질범에게 끌려다니기 시작하면 한없이 휘둘리게 된다는 건 상식이었다.
“믿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여동생이 죽게 되겠지.”
“…….”
싸늘한 사내의 태도에 나는 일단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일단은 사내가 구체적으로 뭘 원하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힘겨운 상황이지만 사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어 그것을 틀어쥘 수 있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준비가 덜 되었네. 때가 되면 핸드폰으로 지시를 내리지.”
눈앞에서 사내와 여동생의 형체가 신기루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털썩―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골몰히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여동생을 구할 수 있지? 녀석은 너무 강력해! 능력이 도대체 몇 개나 되는 거야?
불꽃. 염동력. 물. 거기다 공간이동까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상대. 잠깐! 굳이 혼자서 상대할 필요는 없잖아?
순간, 나는 플레이어 윤설린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설린 씨는 나보다 능력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녀가 가진 번개 능력 또한 상당히 강력한 것이다.
그녀와 손을 잡자. 혼자서 안 된다면 둘이서 녀석을 해치우는 거다!
나는 도로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가 주세요.”

파아앗―
이플렌시아의 세계에 도착하자마자 기억의 반지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반지의 힘이 나를 그녀의 아지트로 이끌었다.
눈이 멀 것 같은 환한 빛이 사라지자 내 눈앞에 설린 씨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보게 되니 반갑네요. 강민혁 씨.”
“반갑습니다! 저, 상의할 것이 좀 있어요.”
“무슨 일이죠?”
난 그동안의 일을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특히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닌, 기분 나쁜 플레이어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설린 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많은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없어요.”
“네?”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를 죽여도, 상대의 능력을 흡수할 확률은 고작 1퍼센트밖에 안 되거든요. 게다가 플레이어는 3개 이상의 능력을 가질 수 없어요.”
3개? 내가 본 그의 능력은 4개. 확실히 이상하군.
“그는 아마 환영을 쓸 수 있는 정신계 능력자일 거예요. 플레이어 중에 정신계 능력자는 드문데, 그중에서도 강력한 환영술을 갖고 있는 것 같네요.”
설린 씨의 설명에 의하면 정신계 환영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말 그대로 환상을 만드는 단계.
환상을 통해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과 직면하게 만들거나 또는 환상으로 만들어 낸 장소를 실제처럼 느끼게 한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특수 능력을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단계.
이렇게 환상으로 흉내 낸 능력은 처음엔 미약하지만 훈련을 통해 성장시킬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환영 능력 수준이 강할수록 상대가 환영이 거짓이라는 것을 눈치채도 쉽게 깨어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환영 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자는 흔치 않아요. 게다가 현실에서 활약하는 환영술사의 숫자는 더 적으니, 아마도…….”
“그자가 누군지 압니까?”
“이름은 저도 몰라요. 다만 플레이어들은 그자를 팬텀(Phantom)이라고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