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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플레이어 1권(13화)
Chapter 4. 팬텀(Phantom)(3)


환영술사 팬텀. 적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의 환영술은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한다고 한다.
“정말 어려운 적을 만나게 됐네요. 민혁 씨.”
“휴우. 그러게요.”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설린 씨가 활짝 웃으며 위로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를 물리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게 뭡니까?”
“환영술은 상대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사용할 수 없어요. 그자가 보지 못하는 곳에 숨어서 공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죠.”
승산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기운이 번쩍 나서 말했다.
“그렇다면 저격 라이플 같은 것으로 쏘면 되겠군요.”
“아뇨. 아마 그 정도 수준의 환영술 능력자라면 자신을 보호할 마법 도구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본인도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간단한 물리 공격을 막아 내는 마법 아이템 정도는 가지고 있겠죠.”
이야기는 다시 원점.
내 능력은 강화계라 상대에게 바짝 접근하지 않으면 공격할 수가 없다.
음? 그런데 원거리 공격 능력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가 바로 내 옆에 있잖아?
“설린 씨! 절 도와주실 수는 없나요?”
“…….”
설린 씨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긴 우리가 그렇게 친밀한 사이도 아닌데, 위험부담이 큰 그런 일을 해 달라고 했으니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하지만 달리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고…….
“도와줄게요, 민혁 씨. 대신 조건이 있어요.”
도와준다는 설린 씨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지만 조건이란 말에 다시 멈칫했다.
“무슨 조건입니까?”
“내 작전을 무조건 믿고 따라줘야 해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던 나에겐 조금 맥 빠지는 조건이었다.
“그야 물론, 설린 씨 계획을 따라야죠.”
“제 작전은 몇 군데 구멍이 뚫린 듯 엉성한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불안해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믿어 달라는 뜻이에요.”
엉성한 부분이 있으면 고쳐야 할 텐데 그냥 내버려 두라니 어딘지 좀 이상한 조건이다.
그러나 그녀가 아니면 달리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마음이 다급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현실로 다시 돌아온 나는 초초하게 팬텀의 연락을 기다렸다.
띠리리∼ 띠라∼
핸드폰이 울리자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형님! 접니다.”
아쉽게도 오창규의 목소리였다.
“젠장.”
“네?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냐. 용건이 뭔데?”
“형님! 물건이 불티나게 잘 팔립니다. 특히 스테미너 드러그인지 뭔지 하는 정력제가 제일 잘 팔리고 있고요. 다이어트 드러그도 사모님들에게 꽤 잘 팔립니다.”
“어? 그래.”
잘 팔리고 있다는 말에도 난 무덤덤했다. 머릿속이 온통 납치된 여동생 걱정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물건 좀 더 대 주십시오. 형님! 특히 스테미너……. 그거 물량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 꼬리는 안 붙었냐?”
경찰이 냄새를 맡기 시작하진 않았냐는 뜻이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속 뜨기 전에 연락이 다 옵니다. 그런데 형님!”
녀석이 갑자기 목소리를 깔았다.
“왜?”
“사실은 큰형님이 민혁 형님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골치가 지끈 아파 오며 열기가 훅 치밀었다.
“너 이 X자식!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니까. 결국 나불댔구나!”
창규와 계약할 때 조건은 출처에 대해 묻지 않을 것, 그리고 나에 대해선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런데, 그게……. 큰형님께서 계속 물으셔서…….”
“…….”
나는 천천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이런 일이 생길 거란 것쯤은 계산하고 있었다.
“물건은 더 이상 없다.”
“형님!”
“너와 좋은 관계도 여기까지구나.”
나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런 일을 대비해 창규가 속한 조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조사를 해 두었다. 흥신소에 부탁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어차피 조직원이 얼마 안 되는 작은 조직에 불과했기에 난 창규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이다.
일이 틀어지면 부숴 버리면 그뿐이니까.
“내친김에 지금 하는 게 좋겠지?”
어차피 지금 난 그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할 일도 없었다.
마음이 매우 초초하고 상당히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 날카로울 때로 날카로워진 신경을 창규가 건드린 것이다.
사무실이 XX 빌딩이라고 했지?
“택시!”
XX 빌딩 앞에 도착한 나는 일단 창규에게 전화했다.
“창규야.”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흥분하지 마시고…….”
“큰형님, 지금 너희 사무실에 계시냐?”
창규는 내가 마음을 바꾼 줄 알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네! 지금 사무실에 계십…….”
통화를 종료한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 앞으로 가자 몸집을 불린 덩치들이 나를 반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의외로 덩치들이 반말을 하진 않았다. 당당하게 다가오는 내 모습에 혹시 볼일이 있어 찾아온 게 아닌가 착각한 모양이다.
“사장 나오라 그래!”
찌잉―
난 아무 말이나 막 던지며 강화계 능력을 발현했다.
머리가 울리며 몸속에서 샘솟는 활력에 기분이 좋아진다.
퍼억―
주먹이 녀석의 살집 있는 가슴에 꽂히자 단단한 갈비뼈가 부서지는 감촉이 전해졌다.
“커억!”
덩치 녀석이 피를 쏟으며 나가떨어졌다.
와장창!
녀석이 쓰러지며 유리로 된 출입문이 부서지자 안쪽에서 반응이 왔다.
“뭐야?!”
“어느 놈이 겁도 없이!”
“조져!”
출입문으로 덩치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인다.
다들 덩치들이 꺼 출입구가 비좁아 보였다. 급기야 서로 몸이 끼는 웃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X가리 나쁜 새끼들!
나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녀석들을 향해 힘껏 발차기를 날렸다.
빠악―
팔뼈가 부러진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간다. 좁은 문에 밀집해 있던 덩치들이 도미노처럼 우당탕 쓰러졌다.
스르륵―
눈에 핏발이 선 덩치들이 칼을 빼어 들었다. 칼날이 형광등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흰 빛을 번뜩였다.
칼날을 보자 나도 눈이 살짝 돌아갔다.
슈아아악―
휘둘러 온 칼날을 피하며 칼 손잡이를 쥔 녀석의 손등을 가볍게 때렸다.
파악―
살점이 폭죽처럼 떨어져 나가며 피가 쏟아져 나온다.
당연히 손등의 뼈가 산산조각 나며 움푹 파여 들어갔다.
“끄아아아악!”
녀석이 심장을 토해 내듯 비명을 지른다. 귀청이 따가워서 녀석의 뒷덜미를 가볍게 내리쳤다.
슈아아― 슈아아악―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덩치들이 한꺼번에 휘두른 칼이 화려한 꽃처럼 피어나 나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파앗―
나는 땅을 박차고 그들의 공격을 한꺼번에 피해 냈다.
천장이 보이자 가볍게 몸을 회전해 발로 천장을 힘껏 내려 찼다.
반발력을 살려 한 덩치를 향해 내리꽂히자 전신의 뼈가 모조리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녀석들을 정리하자 몇 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
무거운 정적을 견디지 못한 듯 두목으로 보이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제네, 누군가? 어디서 보냈나?”
짐짓 태연하려 애쓰지만 사내의 목소리가 떨린다.
“혀…… 형님!”
그때 나를 알아본 창규가 부들부들 떨며 나를 불렀다.
그의 친숙한 목소리를 듣자 그제야 난 조금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너무 흥분했구나.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좀 많았어야 말이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스트레스는 사람을 빡 돌게 만든다.
내가 좀 심했나? 아냐. 죽이지만 않으면 되지, 뭐. 어차피 암적인 존재들인데.
새삼스레 사방에서 물씬 풍겨 오는 냄새가 확 코를 찔렀다.
“당신이 두목? 날 보자고 했다면서?”
내 말을 들은 두목이 고개를 돌려 창규를 쳐다본다.
“이……. 이분이 민혁 형님입니다. 큰 형님.”
나는 두목이란 자가 머리를 굴릴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곧바로 말했다.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니지? 나가 있는 동생들 모두 불러.”
두목은 반쯤 넋 빠진 얼굴로 말했다.
“불러서 뭘 하려고…….”
“뭐하긴. 불러다가 날 없애라고 해야지.”
여기 있는 인원이 조직원의 70퍼센트 정도 될 것이다. 작은 조직이니까.
하지만 작은 조직이라도 나 같은 일반인……. 아니, 일반인은 아닌가? 플레이어니까.
어쨌거나 조직원 몇 명이라도 남으면 우리 가족을 해칠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
최후의 한 명까지 병신으로 만들어 줘야지, 뭐.
“진정하시게, 젊은 양반.”
두목은 그래도 머리를 좀 굴릴 줄 아는지 조직원들을 부르지 않았다.
“원하는 게 뭔가? 요구 조건을 말해 보게.”
나는 잠시 갈등했다.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두목에게 날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아, 날 간섭하지 말아 줘요. 제발!
그러나 간섭하지 말라고 하면 더 간섭하게 되는 게 사람 심리다.
내 초인적인 능력에 깜짝 놀라서 지금은 ‘무엇이든 들어줄게요.’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두목도 정신이 들면 쪽팔릴 테고, 쪽팔림을 만회하기 위해 날 다시 공격할 것 같다.
나머지 하나는 그냥 다 병신 만들어 주는 거지, 뭐.
뼈를 부수고 내장을 으깨서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공포와 고통을 온몸에 각인시키는 거다. 사람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 해도 그렇게 몸으로 각인된 공포는 쉽사리 떨쳐 내지 못한다.
“아니! 그러면 안 되네!”
두목이란 자는 눈치가 아주 빨랐다.
내 표정의 미세한 변화만으로 생각을 알아낸 모양이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다! 절대 보복 같은 건 없을 거다. 자네 사업상 비밀도 절대로 궁금해 하지 않겠네.”
두목은 너무 말이 많았다. 턱뼈를 산산조각 내 주면 좀 조용해지려나?
“동생들 부르기 싫으면 부르지 마. 좀 귀찮지만 하나씩 찾아가서 해치우지, 뭐.”
빠악―
올려치기가 두목의 턱에 정확히 맞았다. 턱이 부서지며 치아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두목의 몸이 천장을 향해 부웅 뜬다.
머리를 부딪치면 즉사할 것 같아서 난 두목의 넥타이를 잡아끌었다.
“쿨럭! 케엑!”
숨이 막히는지 두목이 켁켁거리며 넥타이를 풀었다.
나는 녀석의 어깨와 다리를 한 번씩 밟아 주었다.
우드득―
“크아아악!”
두목이 실례를 했는지 바지 앞부분이 축축이 젖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나는 고개를 돌려 창규를 바라보았다.
마음속 어딘가 망설임이 남았는지 난 그 녀석을 마지막까지 공격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형님! 전 그저…….”
“죽이진 않아.”
애초에 살인할 생각은 없었다. 그 증거로 이 고깃덩어리들이 이렇게 멀쩡히(?) 숨을 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죽이지 않는다는 말에 창규는 오줌을 찍찍 지렸다.
더럽게. 뭐야? 혹시 미친 척하면 안 때릴 줄 알고 쇼하는 건가?
뚜벅. 뚜벅.
녀석을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리∼ 띠라∼
“여보세요?”
“지금 즉시 XX 빌딩 앞으로 와.”
그 녀석이다! 은진이를 납치한 놈!
“알겠습니다.”
난 되도록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전화를 끊자마자 윤설린이 알려 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강민혁입니다.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준비해서 바로 나갈게요. 어디로 가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