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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6화)
3화 지울 수 없는 본능(2)
중간중간에 쉬기는 했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곧바로 다시 일어나서 사냥을 시작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쌓인 피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견디기 힘든 한계에 봉착한 것 같았다.
레시온도 살인마라는 걸 제외한다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당연히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굴복을 하고 만 레시온은 근처 안전지대로 가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다음 인벤토리 창을 열어 현재 들고 있는 금액의 액수를 점검해 보았다.
현재 레시온이 사냥을 하면서 벌어들인 돈의 액수는 2실버 30여 실링. 기본적으로 100실링이 1실버였고 100실버가 1골드였다. 그리고 1실링당 10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시그널 온라인이기 때문에 그러한 가치 상승은 당연한 결과였다.
비록 외국인들은 다른 서버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었지만 현물 거래라든가 아이템 거래와 같은 것들은 전 세계 사람들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1실링당 10원이라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모아도 레시온은 현금으로 교환할 길이 없었다. 설령 교환을 한다고 하더라도 쓸 일은 더더욱 없었다. 감옥에서만 사는데 돈을 주고 살 것들이 있겠는가.
그냥 열심히 사냥만 해서 좋은 아이템이나 사는 것이 레시온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후우, 그러면 다시 시작해야겠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숨이 일정해지자, 레시온은 다시 일어났다. 단검을 집어 들며 남아 있는 경험치의 양을 바라본 레시온은 한 번만 더 몹 몰이를 하면 레벨 업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는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한 고블린은 빠른 속도로 달려든 레시온이 자신을 치고 지나가자 열을 받은 듯 레시온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자신을 쫓아오게 만든 고블린의 숫자가 4마리가 되자 전과 다름없이 몸을 돌린 레시온은 표창을 여러 번 날리며 최대한 체력을 줄여 놓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동안 표창 1개 정도는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표창이 고블린의 몸을 맞히며 체력을 깎아 놓았다. 그리고 양념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레시온은 고블린들을 죽여 나가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단숨에 그들의 양팔을 가른 레시온은 일단 저들의 공격을 하나 맞아 준 다음 한 고블린의 심장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일명 피를 내주고 살을 취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표창을 집어 든 레시온은 달려오는 고블린에게 표창을 찔러 넣었다. 남아 있는 한 고블린이 레시온에게 다가왔지만 3합을 견뎌 내지 못하고 허벅지가 잘려 나갔다.
레시온은 왼손으로 고블린의 머리에 박아 넣은 표창을 빼내면서 수미터 앞에서 달려오는 고블린에게 그 표창을 던졌다.
휘리리리릭!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수미터를 날아간 표창은 이내 고블린의 머리에 완벽하게 꽂혔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진 그 고블린은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해 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텟을 분배하시기 바랍니다.
―레벨 10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근처 전직소 앞으로 이동됩니다.
―37실링을 얻으셨습니다.
스팟!
섬광이 잠깐 번뜩이며 레시온의 시야를 흰빛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이내 그 빛은 사라졌다. 그리고 레시온의 앞에 나타난 건물은 전직소. 혹시 레벨 10이 되었으나 전직소를 찾지 못하는 유저들을 위하여 마련된 시스템인 것 같았다.
어떻게 되었건 간에 레시온에게는 좋은 것이었다. 게임에서 필수적인 요소인 레벨에 대한 개념도 모르는 레시온에게 전직소를 찾으라고 하면 하루 내내 마을을 돌아다닐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전직소 앞에 도착한 레시온은 전직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직소에는 레시온을 포함하여 수많은 유저들이 전직을 하기 위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된 4개의 방에서 나오는 유저들은 전직을 했다는 기쁨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직이란 그만큼 RPG게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 레시온은 수많은 인파들 뒤에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동안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었지만 강해질 수 있다는 집념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레벨과 전직. 이것이 바로 레시온이 이곳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줄을 선 지 30여 분이 지나가자, 줄의 행렬이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그렇게 계속 줄어든 줄은 마침내 레시온에게 차례를 물려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유저님. 무슨 직업으로 전직을 하시겠습니까?”
“종류가 있는가?”
“기본적으로 전직을 할 수 있는 직업은 전사와 마법사, 궁수, 그리고 도적입니다.”
도적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레시온은 곧바로 도적으로 하겠노라고 입을 열었다.
“도적으로 하겠다.”
“도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저기 오른쪽 맨 끝 방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NPC가 가리키는 오른쪽 맨 끝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 레시온은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그러나 레시온은 그런 작은 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방 안에 있는 한 사내를 응시했다.
가만히 앉아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그 사내도 레시온의 등장에 레시온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도적으로 전직하려고 왔는가?”
“그렇다. 도적으로 전직하고 싶다.”
“도적으로 전직하는 방법은 간단하네. 간단한 수련의 증거를 나에게 보이면 전직을 시켜 주지.”
[도적으로의 전직 ― 전직 퀘스트]
·설명 : 레벨 1부터 시작한 그대여. 이제 레벨 10이 되어 그대의 길을 결정할 때가 왔도다. 그대가 원하는 직업은 도적. 도적 전직 교관에게 자신이 쌓아 온 수련의 일부를 보여 주어라.
·성공 조건 : 고블린 10마리 잡기
·발동 조건 : 레벨 10 달성 시
·보상 : 도적으로 전직!
·난이도 : D
“좋다. 너의 말에 따르지.”
―띠링!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자마자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온 레시온은 아까 전까지 사냥했던 사냥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사냥터로 갈 때마다 만나는 사냥터 NPC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레시온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네, 이제 전직을 하기 일보 직전이로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군.”
“참고로 전직을 하면 이곳에 못 온다는 건 알고 있겠지?”
“올 때마다 그 소리를 하니. 이제 귀에 딱지가 않을 지경이다.”
“후후, 내가 그랬던가? 아무튼, 무사히 전직을 하기 바라네.”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사냥터 NPC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 레시온은 사냥터 안으로 들어갔다. 목표는 고블린 10마리 잡기.
사냥터로 모습을 드러낸 레시온은 고블린들이 서식하고 있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블린 10마리. 몹 몰이 두세 번이면 채울 수 있는 숫자였다.
최대한 빠르게 끝낸 다음 전직을 하고, 그다음 오크들이 서식하고 있는 마을 외곽으로 사냥을 떠난다는 것이 바로 레시온이 계획하고 있는 앞으로의 진로였다.
부웅부웅.
양팔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한 레시온은 천천히 걸어가며 인적이 뜸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2분간의 두리번거림 끝에 인적이 뜸한 장소를 하나 발견한 레시온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는 고블린들을 응시했다.
현재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고블린의 숫자는 3마리. 레시온은 이들에게 시비를 걸기 위하여 전과 다르지 않게 한 마리씩 일일이 돌아다니며 그들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가볍게 때린 것이라 체력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치는 사람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곧바로 고블린들은 자신을 친 레시온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인간을 죽이자!”
“죽이자!”
단결된 힘을 보여 주며 레시온에게 달려들기 시작하는 고블린들. 그러나 레시온이 날리는 표창에 반수 이상이 죽어 갈 운명이었다.
팔 운동을 마친 레시온이 표창을 집어 든 다음 달려오는 고블린들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단거리 공격만을 하는 고블린들에게 표창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토끼나 여우들은 이동력이 빨라 어느 정도 피할 수는 있었지만 고블린들은 그 짧은 다리로 얼마나 더 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피해도 스치는 표창인데.
휘리리릭! 팍!
레시온이 날린 표창들이 고블린의 몸에 박혀 들기 시작했다. 레벨이 한 계단 상승해서 그런지 전보다 더 많은 체력을 줄여 놓을 수 있었다.
그만큼 표창은 고블린들에게 절대적인 위력을 뿜고 있었다.
고블린들도 아예 피하기를 포기했는지 육탄 방어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표창이 박혀 든 가슴팍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인상만 살짝 찡그릴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스릉.
표창을 다 날린 레시온은 곧바로 단검을 꺼내 들며 고블린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간단한 패턴으로 고블린들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적절한 찌르기로 고블린들을 체력을 줄여 놓았다.
레시온을 포위하며 공격하는 고블린들은 혼전을 거듭하며 아까운 체력을 헌납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다른 곳에서 공격이 날아들며 고블린들을 죽여 나갔다. 곧바로 두 마리의 고블린을 죽인 그 공격은 이내 남아 있는 한 마리에게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시온의 대응이 한발 더 빨랐다.
챙!
휘둘러지는 검을 향해 날아간 레시온의 표창은 이내 그 검을 바깥으로 튕겨 냈다. 그다음 곧바로 표창을 날린 레시온은 남아 있던 마지막 고블린을 잡을 수 있었다.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사냥감을 공격한 한 유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유저는 자신을 노려보며 다가오는 레시온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세로 일관하다가 갑자기 화를 내며 레시온에게 입을 열었다.
“이보세요. 내 사냥감을 잡으면 어쩝니까?”
“네놈의 사냥감이라. 전부터 내가 잡고 있었는데 웃기는 놈이로군.”
“이보세요. 그렇게 한꺼번에 잡으면 누가 누구 건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 전에 당신이 잡은 그 고블린은 내 사냥감입니다.”
그 유저의 억지 주장에 레시온이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훗, 웃기는 놈이로군. 주장도 소신껏 해야지 그렇게 억지 주장을 하다니. 보아하니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 놈 같은데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협박인가요? 그리고 처음 보는 유저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된다는 사실도 모르시나요?”
“나는 존대를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쓴다. 네놈같이 억지 주장을 펴는 놈에게는 존댓말을 쓸 가치조차 없는 것이지.”
“지금 말 다 하신 겁니까? 초면에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것 아닙니까!”
결국 그 유저도 참지 못한 화를 폭발시키며 레시온을 죽일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엄청나게 화가 난 상태인지라, 이 싸움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레시온과 말싸움을 벌이던 유저의 친구로 보이는 유저 2명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언성을 높이고 그래?”
“아니, 이 사람이 내 걸 스틸하잖아.”
“스틸을 했다고? 사실입니까?”
“웃기는군. 저놈이 내 걸 빼앗았는데 구차하게 할 변명조차 없는지 억지 주장을 펴더군.”
레시온의 말에 레시온과 대치 중이던 유저가 레시온이 보지 못하게 어떠한 사인을 그들에게 보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이내 레시온에게 입을 열었다.
“아까 봤는데 님이 스틸을 한 것 같은데요?”
“웃기는 놈들이로군. 친구라고 옹호하는 거냐? 레벨도 높아 보이는데 웃기는 작자들이군.”
“작자? 이보세요. 초면에 작자라는 표현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까?”
“작자든 뭐든 네놈들이 상관할 사안은 아닌 것 같은데?”
레시온의 말에 레시온의 사냥감을 스틸했던 유저가 아예 본론으로 끌고 가며 입을 열었다.
“보상해요, 경험치.”
“보상을 하라? 웃기는 놈이로군. 보아하니 3인조로 활동하는 단체인 것 같은데 그 속셈이 훤하게 보이는군.”
“뭐, 뭐라고?”
정곡을 찌른 레시온의 말에 순간 당황한 그 유저가 말을 더듬었다. 그의 표정을 간파한 레시온은 곧바로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