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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7화)
3화 지울 수 없는 본능(3)
“내가 그런 쪽은 좀 많이 알거든. 일을 발생시킨 다음 억지로 주장하고 그다음 배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배상에 요구하지 않을 시 끝까지 따라다니며 괴롭히지. 어이가 없군. 이런 곳에도 그런 허접한 방법을 쓰는 놈들이 있다니.”
“도둑 눈에는 도둑만 보인다더니 당신이야말로 의심스럽군요.”
“지금 도둑 같은 짓거리를 하는 게 누군데 생사람을 잡지? 원래 그렇게 생트집만 잡고 살아왔나?”
“다, 닥쳐! 거참 불쌍하군. 네가 교육받은 꼴을 보니 너희 어머니의 성격도 알만하군.”
드디어 막장에 도달한 그들. 이제 이상한 트집까지 잡으며 레시온을 공격하는 그들이었다. 놀아나는 수준을 보니 아무리 봐도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학생이라고 해도, 그들은 레시온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일전에 이와 같은 발언을 하여 죽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레시온이 30번째로 살인했던 취객이었다. 이 취객도 레시온의 어머니를 욕하다가 레시온이 찌른 단검에 심장 부근을 맞아 그대로 즉사했다. 그 결과 자신이 이곳에 있게 되었지만.
아무튼 지금의 상황도 그때의 상황과 거의 똑같았다. 쓸데없는 걸로 시비를 걸어 놓고는 어머니가 어쩌니 하는 식으로 욕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순식간에 레시온의 표정이 굳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죽었던 그 취객의 영혼이 이 유저에게 실린 것처럼, 이 유저는 승기를 잡았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왜? 나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냐? 하지만 어쩌나. 죽이면 너는 PK범이 되어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되는데 말이야.”
“후후, 내가 고작 그런 대가를 두려워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하지! 네 녀석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상으로는 패널티를 엄청 무서워하는 게 다 보인다, 이 말씀!”
“패널티라, 패널티가 뭔가?”
“뭐? 패널티도 몰라? 역시 어머니가 머리가 안 좋아서 교육도 제대로 못 시켰구나. 패널티란 바로…… 크억!”
패널티에 대한 설명을 하려던 그 유저는 레시온이 찔러 버린 단검에 맞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심장 부근을 정확하게 찌른 레시온의 단검이 점점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심장을 찔린 그 유저는 경악의 눈으로 레시온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으윽, 이 자식이 정말 해보자는 거냐? 후환이 두렵지 않는가 보지?”
“말했지 않나? 나는 사람을 죽이면 나에게 어떠한 해가 되는지 모른다고. 그냥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은 죽으면 그만인 거야.”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어딘가에 다 쓸모가 있다고 하지. 천재부터 바보까지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살아서는 안 될 존재들이 있지. 첫째로 너와 같은 비열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저마다 나의 부모님들을 욕하더군.”
심장 부근에 칼이 들어감에 따라 체력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주변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유저들은 이 PK 장면을 바라보며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초보자 사냥터에서 PK라니.
도대체 이런 짓을 시작한 정신 나간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시온과 그 유저의 몸이 딱 붙어 있었기 때문에 구별할 수가 없었다.
한편, 떨어지는 자신의 체력 게이지를 보며 미소를 지은 그 유저는 레시온에게 입을 열었다.
“기억해 둬라. 내 이름은 블라덱. 반드시 이 수모를 갚아 주도록 하지. 사망 패널티와 이 수모를 전부…… 크억!”
“죽으려면 잔소리 말고 빨리 죽어라.”
“크윽…….”
신음 소리를 흘리던 블라덱이라는 유저는 이내 레시온의 품속에서 로그아웃되었다. 그리고 난 다음 레시온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허가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저를 죽이셨습니다.
―모든 NPC들과의 친화도가 보통에서 경계로 하향되었습니다.
―상점 물품 구매 시 기존의 물건 값에서 5%를 더 주어야만 물건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저, 저 사람. 유저를 죽였어.”
“어머. 초보자 사냥터에서 유저를 왜 죽였대?”
곧바로 레시온이 블라덱을 죽인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플레이를 구경하던 KBT 팀들도 레시온이 살인을 저지르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레시온의 플레이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팀장님, 류현상이 게임에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죽였다고요? 무슨 일이길래.”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던 KBT 팀장 동욱은 모니터 앞에서 레시온의 플레이를 관찰하고 있던 서현의 말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모니터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니터 앞의 빈자리에 앉은 동욱은 모니터에 보이는 현상의 살인 행각을 바라보면서 입술과 입술 사이를 뗀 채 멍한 눈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게임을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된 판국에 이러한 일이 터진 것이다.
현상의 살인 모습을 리플레이로 지켜본 동욱은 옆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현수에게 입을 열었다.
“현수 씨, 청장님이 직접 정하신 페널티는 적용시켰습니까?”
“시스템으로 입력했기 때문에 아마 자동적으로 페널티가 적용될 겁니다.”
“후후, 이제부터가 시작이로군요. 이번에는 가격 5% 인상과 친밀도 하락이지만 계속해서 살인을 하면 그게 어떤 식으로 불어날지. 입사 1년 만에 꽤 흥미로운 일거리를 얻은 것 같습니다.”
“팀장님, 그런데 계속해서 이상 행동을 보이면 어떻게 합니까?”
역시 모니터를 보고 있던 미정의 질문이었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을 하던 동욱은 곧바로 미정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미정 씨가 직접 보시고 약간 그렇다고 생각하면 강제로 로그아웃시키세요.”
“아,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미정이 다시 현상의 플레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뭘 그리 놀라나? 사람 하나 죽인 거 가지고 말이야.”
레시온이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레시온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PK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 게임 접었다.’라는 표현과 똑같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시그널 온라인이 상용화가 된 지 1달밖에 되지 않은 시기에서 이러한 행동이 나왔다는 건 유저들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한편 옆에서 느긋하게 레시온과 블라덱의 말싸움을 지켜보던 블라덱의 친구들은 이내 레시온이 블라덱을 죽여 버리자 극도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들의 레벨은 16 정도.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초보자 사냥터 울타리 밖에서 레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진짜로 죽여 버릴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황해하는 것도 잠시, 그들 중 한 명이 뒤쪽으로 가서 누군가와 귓속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혀, 형.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야?]
[블라덱 녀석이 죽었어요.]
[뭐? 블라덱이? 어떤 몬스터야, 엉?]
[몬스터가 아니고 유저가 블라덱을 죽였어요.]
[유저가 블라덱을 죽였다고? 야, 임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마을 한복판에서 유저를 죽이는 놈이 어디 있다고 그래?]
[못 믿으시면 당장 멜타 마을 초보자 사냥터로 와 보세요.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흠흠, 알았다. 일단 내가 가기 전까지 그곳에 있도록.]
이 말을 끝으로 귓속말을 마친 그는 이내 자신의 동료인 또 다른 유저에게도 귓속말을 보내기 시작했다.
[형한테 연락했어?]
[어. 이제 저놈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 감히 우리 데스사이트를 건드리다니. 간이 부어도 유분수지.]
[일단 우리들의 정체는 알려지면 곤란해. 저번에도 잘못했다가 큰일 날 뻔했잖아.]
[알고 있어. 그럼 일단은 형이나 기다려 보자고.]
귓속말을 마친 그들은 동시에 레시온을 바라보더니 이내 비웃음과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들을 바라본 레시온은 이들이 무언가 수를 썼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윗줄의 놈을 부른 모양이군.”
“너는 이제 죽은 거야. 형이 얼마나 강한데. 너는 이제 끝이야.”
“호오, 너희들이 아는 형이라는 놈도 패널티를 두려워하지 않는 놈이로군.”
“당연하지. 형은 바로 데…….”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어 나가려던 그 유저의 입이 뒤쪽에서 등장한 한 손에 의해 막혔다. 그들이 부른 형의 등장이었다.
싸늘한 눈으로 레시온에게 말을 하고 있던 유저를 바라본 그들의 형, 레이스트는 그의 입술을 막은 손에 힘을 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말했지. 삼가라고.”
[형, 잘못했어요. 용서하세요.]
입이 막혀 귓속말로 대답한 그는 이내 레이스트가 막은 손을 풀자 숨을 쉬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레이스트는 주변에 있는 유저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경악의 표정으로 레시온만을 바라보고 있는 유저들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레시온이 블라덱을 죽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일단 죽였다고 단정을 지어 버린 레이스트는 레시온의 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게 보이는 유저인데, 무언가 알 수 없는 위압갑을 느낄 수 있었다. 레시온을 바라본 레이스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하군. 레벨은 분명히 나보다 밑인데,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로군.’
레시온에 대한 생각을 그렇게 정의한 레이스트는 곧바로 레시온에게 입을 열었다.
“유저 분께서 제 동생 한 명을 죽였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그러면 너는 누구지? 저들의 상관인가?”
“뭐 상관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크나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실수라. 그쪽의 동생이 실수를 한 건 생각도 안 한다는 말인가?”
“실수를 했건 말았건 그게 유저를 죽인 죄보다 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레이스트의 말에 헛웃음을 지은 레시온은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역시 레시온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시작한 레이스트는 레시온의 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위압감에 다시 한 번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저 엄청난 눈빛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여태껏 수많은 유저들을 죽인 자신이 압도당할 정도의 눈빛은.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정체가 희대의 살인마, 류현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유저를 죽이는 것이 최고의 죄다. 네놈의 말은 그런 건가?”
“그렇습니다. 이곳 시그널 온라인에서는 유저들을 죽인 죄보다 큰 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네놈도 어지간히 고생을 하겠군.”
“무슨 소리죠?”
무언가를 안다는 듯한 표정을 한 레시온은 레이스트를 바라보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너의 눈. 마치 수많은 살인을 해 본 것 같은 눈이군.”
‘와…… 저 사람, 형의 정체를 한 번에 간파했어.’
레이스트의 옆에 있던 두 유저 중 한 유저가 핵심을 찌른 레시온의 발언에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초면인 상태에서 말 몇 마디만 주고받았을 뿐인데 단숨에 레이스트의 정체를 간파하다니 말이다.
레시온의 말처럼, 레이스트는 PK 전문 단체인 데스사이트의 간부였다. 데스사이트에 들어간 유저의 정체는 철저하게 친구 추가로만 알 수 있는 정보로, 그들의 행동은 철저하기 비밀에 부쳐졌다.
그만큼 은밀하면서도 신속한 단체가 바로 데스사이트인 것이다.
한편, 레이스트도 속으로 엄청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 인물도 감탄을 주저하지 않는 판국에 당사자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하지만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기에 그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신의 그 오만한 행동을 저에게까지 뒤집어씌우려는 수작입니까?”
“뭘 뒤집어씌운다는 거지? 나는 단지 사실만을 말했을 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빛만 보아도 성격과 마음가짐을 알 수 있지. 다음으로 할 말이 무엇인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등등. 네놈은 모르는 그런 것이 있지.”
“후훗, 그런 어이없는 말을 내뱉다니. 꼭 동생들이 하는 말 같군요. 보아하니 나이도 꽤 있으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미성년자들이 하는 말이라고? 그러면 중재자로 나선 주제에 본질부터 파악하지 않고 설교하려고 드는 네놈은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군.”
“뭐, 뭐라고요!”
“PK를 당했으면 왜 당했는가를 먼저 물어야 될 판국에 무조건 실수를 했다고 지껄이는 것이 옳은 절차라고 생각하는가? 네놈은 식당에 가서 주문은 안 하고 계산부터 하나?”
“이…….”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이었지만 레이스트는 레시온의 말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표창으로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을 잡은 레시온은 이내 레이스트에게 뼈 있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동생들을 도와주러 온 네놈의 의리는 가상하다만 의리라는 것이 때론 자신을 멍청이로 만들 수도 있는 법이지. 지금의 너와 같이 말이야. 그럼.”
고개를 돌린 레시온은 주변에 득실거리고 있는 고블린들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로써 엄청난 굴욕을 당한 레이스트는 이를 뿌드득 갈며 레시온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많은 유저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PK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였기에 분하기는 하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레시온과 데스사이트 사이의 악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