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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플레이어 1권(20화)
Chapter 6. 미궁 속을 헤매다Ⅱ(3)


오래 매달기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성인 여자도 10분을 견디기 힘들다.
게다가 철봉처럼 단단히 쥘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바닥을 편 채로 간신히 매달린 상황. 하물며 그녀는 어른도 아닌 평범한 어린아이다.
슈아아악―
난 망설임 없이 아이의 정수리를 향해 칼을 내리 베었다.
여자아이는 그대로 손을 놓아 버리며 내 공격을 피해 냈다. 아래로 떨어지던 몸이 갑자기 허공에서 정지했다.
비행 능력인가?
“X바! 뭐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다 있어?!”
아이의 입에서 걸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말투에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경계했다.
이쯤 해서 튀어나올 때가 됐는데?
쉐에에엑― 쉐에에엑―
뭔가 가벼운 물체가 내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왔다.
예상대로 동료가 있었군!
강화계 능력을 사용하면 감각이 예민해지는데 청각도 마찬가지다.
난 소리만 듣고 칼을 휘둘러 그것을 쳐 냈다.
팅! 팅!
무게감이 단검 정도인 것 같았다.
그 순간, 허공에 떠 있는 꼬마가 나를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화르륵―
오! 비행 능력에 불꽃 능력까지.
허공에 푸른색 불꽃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불꽃 덩어리를 가볍게 피한 나는 발소리를 듣고 뒤쪽에서 다가오는 녀석을 향해 칼을 힘껏 휘둘렀다.
슈아아악―
“으악!”
생각보다 얕아서 뼈를 자르진 못했다.
그러나 뱃가죽이 베이고 내장이 살짝 흘러나온 것만으로도 녀석은 패닉에 빠졌다.
“젠장! X신 같이 당하긴!”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걸쭉한 것으로 보아 아마 왜소증 같은 성장 장애에 걸린 것 같았다.
“나중에 두고 보자! 이 XX 같은 새끼야!”
이길 수 없는 걸 알았는지 아이. 아니, 어린아이 몸을 한 여자가 욕설을 퍼부으며 허공에서 스르륵 물러났다.
석실 바닥이 무너졌기 때문에 허공을 날아다니는 여자를 뒤쫓을 수 없었다.
대신 나는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들고 여자를 향해 힘껏 던졌다.
쉐에에엑―
“으헛!”
단검이 여자를 스치며 옷깃을 찢었다.
상처에서 피가 흐르긴 했지만 깊이 베이지는 않아서 여자는 더욱 빨리 도망쳐 버렸다.
이런! 아깝게 놓쳐 버렸군!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동네 야구라도 좀 해 둘 걸 그랬나?
어쨌건 놓친 사냥감에 미련을 두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미련을 버린 나는 자리에서 빙글 돌아서며 바닥에 쓰러진 사내를 베어 버렸다.
파악!
가이드 포인터에 알림음이 울리며 다음과 같은 문자가 떴다.

― 상대 플레이어를 살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라이프 1포인트를 얻었습니다.
― 상대 플레이어를 죽여 모든 속성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조금 늘었습니다.
― 축하합니다! 기적적인 확률을 뚫고 상대의 능력을 흡수하였습니다.

플레이어 능력을 흡수했다!
그런데 이 녀석 플레이어 능력이 뭐지?
워낙 빨리 해치워 버리는 바람에 난 상대의 능력이 뭔지 확인하지 못했다.
조금 답답했지만 대단한 능력은 아닌 것 같아 신경을 끄기로 했다.
차차 알게 되겠지, 뭐.
난 여느 때처럼 플레이어가 남긴 가방을 뒤져 봤다.
녀석의 가방엔 단검이 꽤 많았다. 단검 수집이라도 하나? 어? 이건?
미궁 지도.
플레이어의 가방에는 미궁의 지도가 있었다.
추측대로 미궁의 지도는 여러 장 존재했다. 그러니까 미궁에 난입한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많은 거겠지.
중요한 건 지도에 출구의 위치가 나와 있다는 것이다.
흥분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했다.
“이제 나갈 수 있어!”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미궁의 지도로군!”
흠칫!
어느 틈에 다가온 걸까?
3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그리 낯설지 않은 얼굴의 플레이어가 서 있었다.
“너……. 너는!”
그 녀석이다. 내게 패배감을 안겨 준 그 남자.
플레이어는 나를 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지도를 넘겨주면 내 이름을 걸고 살려 주지.”
이 자식이! 날 얕보고 있어! 게다가 반말!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나도 반말로 그에게 말했다.
“널 어떻게 믿고?”
“난 약속한 건 되도록 지키는 편인데. 뭐, 못 믿겠다면 할 수 없고.”
사내는 강철 창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녀석은 내 실력이 예전 그대로인 줄 알고 약간 방심하는 것 같았다. 하긴, 예전이라고 해 봐야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치매 노인네의 칼을 피하며 감각을 키우고 노인네의 에너지를 통째로 흡수했으며, 뱀프 블레이드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었다.
방심하고 있는 동안, 단숨에 승부를 내 주지!
스르릉―
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서서히 칼집에서 칼을 빼냈다.
너를 쓰러뜨리고, 자양분 삼아 성장해 주마!
찌이잉―
강화계 능력을 끌어 올리자 온몸의 혈관이 동시에 폭발할 듯 힘이 끓어넘친다.
선수필승!
녀석에게 접근하며 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벴다.
슈아아악―
전보다 두 배는 빨라진 속도!
대기를 자르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도 두 토막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녀석은 재빨리 강철 창으로 내 공격을 막았다.
콰앙!
무기가 부딪히자 밀리는 것은 상대의 창. 엄청난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문뜩 녀석의 두 눈에 놀라는 듯한 빛이 어린다.
“이런 무식한 힘이라니!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사내는 내가 아이템 같은 걸로 뭔가 술수를 부린 것이라 착각한 모양.
그런 녀석의 반응에 난 통쾌함을 느꼈다.
슈아아악―
대답 대신 계속해서 그를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내 공격을 녀석은 훌륭하게 막아 냈다.
이 정도 속도면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반응 감각이 엄청나구나!
그러나 훌륭히 막아 냈다고는 해도 계속 손해 보는 쪽은 내가 아니라 상대였다.
콰앙!
“크윽!”
무기가 부딪힐 때마다 뱀프 블레이드가 조금씩 상대의 기운을 갉아먹었다. 빼앗은 기운은 내게 흡수되기 때문에 난 처음 싸울 때처럼 활력이 넘쳤다.
게다가 파괴력과 스피드 모두 내가 우위!
“허억. 허억.”
그러나 녀석의 방어는 쉽게 뚫리지 않았다.
어디선가 제대로 창술을 배운 듯 철두철미한 방어의 그물을 뚫고 칼날을 찔러 넣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젠장! 사실상 나의 패배로군.
비록 적이지만 기술과 감각을 모두 갖춘 상대에게 약간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화르륵― 파앙!
그때 등 뒤에서 갑자기 화염이 터졌다.
엇? 이 녀석에게 동료가 있었나?
강화계 능력이 자동적으로 몸을 보호했기 때문일까? 충격은 별로 크지 않았지만 기습을 받은 나는 조금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슈우우웅―
그 기회를 틈 타 녀석이 반격을 개시했다. 어찌나 힘차게 휘둘렀는지 창대가 C 자 형으로 휘어지는 듯한 시각의 착각이 일어났다.
피해 내기엔 공격이 너무 빨라서 칼날을 마주 휘둘렀다.
파앙!
충돌하는 순간, 충격을 이기지 못한 칼날이 순간적으로 휘어졌다.
무거운 병기인 강철 창과 부딪힌데다 뱀프 블레이드의 칼날이 종잇장처럼 얇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뱀프 블레이드는 휘어지기는 해도 부러지지는 않았다.
내구력이 높아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더니 엄청난 탄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난 몸을 틀며 녀석의 공격을 비껴 냈다.
그와 동시에 칼날의 탄력을 이용, 휘어진 칼날을 그대로 그의 얼굴에 채찍처럼 후려쳤다.
촤악―
뱀의 혀처럼 튀어나간 칼날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의 왼쪽 눈에 명중했다.
눈알이 파악 터져 나가자 녀석도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악!”
이겼다!
그러나 난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틈이 없었다.
등 뒤쪽을 노리고 또다시 건방진 불꽃이 혀를 날름거렸기 때문이다.
화르륵―
소리로 기척을 감지한 나는 허리를 틀며 정확히 불꽃 덩어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파악―
불꽃이 쫘악 두 조각으로 갈라지며 튕겨나갔다.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여자아이였다.
누군가 했더니 너로구나! 몸만 어린이인 괴물!
“이크!”
시선을 마주친 여자는 놀라며 두둥실 뒤로 물러섰다.
나는 별 위협이 안 되는 여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돌아섰다.
“크아아아!”
애꾸가 된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미친 듯이 강철 창을 휘둘렀다.
부우우웅―
힘이 더 실리긴 했지만 흥분한 만큼 사내의 공격은 단순해졌다.
파앙!
공격을 막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흥분한 사내가 나를 향해 창을 집어 던졌다.
슈아아앙!
갑자기 무기를 집어 던질 줄은 몰랐기에 잠시 당황했다.
통째로 강철로 된 중병기인데다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난 괜히 받아 내 충격을 받는 것보다는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어?”
그런데 다음 순간, 사내는 뒤도 돌아보자 않고 통로를 따라 도주해 버렸다.
다다다다다―
뭐야? 흥분한 척하고 무기를 집어 던진 건, 도망갈 시간을 벌려고 그런 거였어?
“하하!”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화르륵―
그런 나를 향해 여자가 계속해서 불꽃을 던졌다.
파앙!
강화계 능력이 내 몸을 보호하고 있어서 맞아 봤자 따끔한 정도였다.
이 여자가 매를 버는구나!
난 허리춤에 꽂아 둔 단검을 뽑아 여자를 향해 던졌다.
쉐에엑―
그러나 여자 플레이어는 어렵지 않게 내 공격을 피해 내며 불꽃을 소환했다.
“맞춰 봐! 이 X신아!”
울컥!
혀를 내밀며 놀리는 여자의 모습에 나는 발끈해 여러 자루의 단검을 던졌다.
쉐에엑―
“호호! X신! 어딜 보고 던지는 거냐?”
제발! 맞아라!
간절한 기도가 통했음일까?
파악!
“으아악!”
눈먼 단검 하나가 그녀의 가슴에 박혔다.
고통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여자는 비행 기술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끼야아아아!”
띠링!
가이드 포인터에 알림음이 울리며 액정에 문자가 나타났다.

― 상대 플레이어를 살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라이프 1포인트를 얻었습니다.
― 상대 플레이어를 죽여 모든 속성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조금 늘었습니다.
― 상대의 능력을 흡수하는 데 실패합니다. 특수 능력의 일부분이 순수한 에너지로 변환 되어 흡수됩니다.

현재 라이프는 37포인트.
라이프를 얻어서 좋기는 한데 어떻게 그게 명중한 거지?
분명 내가 던진 단검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별안간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목표에 빨려 들어가듯 날아가 꽂혔다.
설마 이게? 플레이어 특수 능력?
조금 전에 난 플레이어를 해치우고 특수 능력 하나를 흡수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