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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9화)
4화 시작된 악연(2)
탁 트인 멜타 마을 외곽 지대는 오크들과 유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전직을 하자마자 사냥을 시작하는 이곳, 이곳은 바로 대륙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유저들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었다.
오크들을 홀로 잡는 유저들도 있었지만 파티를 맺어 사냥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레시온에게 그러한 일을 바라는 건 지구를 비추던 태양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일 것이다.
문을 막 나선 레시온은 인적이 뜸하면서 사냥감이 많은 곳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마을 주변 지역 중에서는 그런 지역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마을과 꽤 떨어진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새로 산 수리검을 이리저리 돌리며 걸어가던 레시온은 걸은 지 10여 분 만에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크들의 숫자도 적당했고 근방 수십 미터에 사람들이 없는 곳, 이곳이 바로 레시온이 원하는 장소였다.
오크들이 득실거리는 정가운데에 선 레시온은 주변에 걸어가고 있던 한 오크를 타깃으로 삼은 다음 그를 향해 표창을 날렸다.
일전에 감정 스킬을 사용했던 것처럼 스킬 이름을 외치며 표창 하나를 날리자 기존에 그냥 날아가던 표창에서 무언가 빛이 일렁이더니 더 빠른 속도로 오크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파바박!
오크의 가죽을 뚫고 속살까지 파고든 표창의 위력은 엄청났다. 이것이 바로 스킬의 힘. 기존에 자신이 날리는 것보다 더욱더 파괴력이 상승된 것을 본 레시온은 이 엄청난 위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표창에 맞은 오크가 레시온을 바라보고는 커다란 도끼를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때만을 기다린 레시온은 수리검을 손에 쥔 다음 오크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수리검의 날을 오크의 심장 부근을 향하게 한 레시온은 반드시 박살을 내 주겠다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서로를 향해 달리던 오크와 레시온은 이내 지척에 다다르자 서로를 향하여 일격을 내질렀다.
채쟁!
거대한 도끼로 찍어 버린 오크의 공격을 양손으로 막아 낸 레시온. 그러나 오크의 막강한 힘에 의하여 섀도우 스텝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제자리로 돌아온 레시온은 포기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오크의 목을 향해 수리검을 휘둘렀다.
정면으로 반격을 할 거라 생각한 오크는 이와 같은 레시온의 변칙 공격에 손을 쓰지 못하고 맞을 수밖에 없었다.
좌아악!
오크의 왼쪽 목에 얕지 않은 혈선이 그어졌다. 그러나 오크는 아픔을 참으면서 왼쪽을 향하여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레시온의 수리검에 적중한 오크의 도끼는 이내 레시온의 수리검을 저 멀리 튕겨 냈다.
털석.
풀숲으로 떨어진 레시온의 수리검. 레시온은 텅 빈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무기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오크와 최대한 거리를 벌리면서 표창을 날리기 시작했다.
“자벨린 스트라이크!”
일전에 효과를 톡톡히 보았던 자벨린 스트라이크로 쫓아오는 오크를 저지하기 시작했다. 강하게 날아온 표창을 오크는 양손으로 도끼를 쥐면서 힘겹게 튕겨 냈다.
그러나 그동안 약간 더 도망친 레시온이 표창 두 개를 연속으로 날려 오기 시작했다. 전부 다 스킬로 말이다.
하나를 튕겨 낸 오크는 다시 표창 방어에 들어갔지만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 2개의 표창을 다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다행히 하나는 튕겨 낼 수 있었지만 순차적으로 날아오는 마지막 표창을 막아 내지 못한 오크는 왼쪽 가슴에 표창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취익! 인간이 감히.”
꽤 깊숙하게 박힌 표창 2개를 뽑아서 버린 오크의 미간이 거의 함몰 수준으로 찡그려졌다. 꽤 많은 체력을 갉아먹은 2개의 표창이 선사하는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였다.
그때쯤 레시온은 오크가 날려 버린 수리검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표창을 든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레시온은 자신을 기준으로 서쪽 풀숲에 떨어진 수리검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과 오크 사이의 딱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수리검만 줍는다면 이길 승산이 있어 보였다.
지금처럼 수리검의 존재가 절박한 적은 없었다. 살인을 할 때에는 그냥 찌르면 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시그널 온라인을 시작하면서 전혀 뜻밖의 상황을 경험한 것이다. 토끼나 고블린을 잡을 때와는 다른 무언가를 오크의 사냥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오크가 유사 인종이라서 그런지 레시온의 희열감과 쾌감은 살인을 할 때의 수준까지 올라 있었다.
“수리검까지의 거리는 대략 10여 미터.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 있다.”
손가락으로 수리검의 한 면을 꼬집듯이 쥔 레시온이 속으로 셋을 센 다음 수리검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통에 괴로워하던 오크는 이러한 레시온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레시온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레시온이 잡느냐 오크가 죽이느냐. 긴장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전력질주를 하며 오른쪽을 힐끔 바라본 레시온은 예상대로 오크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오른손에 들고 있는 표창을 오크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달리고 있는 상황이라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레시온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파워로 오크를 향해 표창을 날렸다.
휘리리릭!
오크의 이동 속도를 저지하기 위하여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표창. 그러나 그 표창은 오크가 가볍게 튕겨 내면서 구석으로 날아가 버렸다.
일반적으로 던진 표창이라 간단하게 튕겨 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오크의 행동은 레시온에게 약간 의외로 다가왔다. 그래도 1초가량은 지연시킬 줄 알았던 회심의 표창이 저렇게 어이없이 튕겨 나갈 줄 몰랐던 것이다.
결국 레시온이 믿을 거라고는 다리밖에 없었다. 표창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레시온은 재시도를 접고 필사적으로 수리검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했다.
점점 오크와 레시온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크가 먼저냐 레시온이 먼저냐!
팍!
이라는 소리가 들려오며 먼지바람이 피어올랐다. 왠지 충돌음 같은 소리였다. 과연 레시온은 바라던 수리검을 잡은 것인가.
먼지바람이 피어오른 다음 곧바로 다른 바람이 불어 오며 그 광경을 드러냈다. 오크의 몸과 레시온의 몸이 8시 55분과 같은 형상으로 눕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이 이루는 각의 꼭지점에는 레시온이 바라던 수리검이 놓여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다행히 레시온이 오크보다 먼저 수리검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오크가 도끼를 휘두르자 급히 당황한 레시온은 최대한 앞으로 점프하며 수리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격을 피하며 수리검을 잡는다는 레시온의 구상에서 하나는 성공했다. 오크가 휘두른 도끼가 다행히 허공을 갈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도끼가 뒤로 젖혀지며 앞으로 달려가는 것에 탄력을 받아 버린 오크는 그대로 내달렸고, 그때 공중에 있던 레시온의 발에 걸려서 그대로 엎어졌다.
그리고 수리검을 잡으려고 하던 레시온은 오크와의 충돌로 인하여 몸이 90도 정도 돌아 버리며 10시 방향으로 날아가서 떨어진 것이 지금의 모습이었다.
바닥에 정통으로 얼굴을 박은 레시온은 세상이 도는 것 같은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코뼈가 부러졌는지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얼굴 전체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 속에 그토록 잡고 싶어 하던 수리검이 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기도 했지만, 수초간의 두리번거림 끝에 드디어 레시온은 수리검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일어난 레시온은 비틀거리는 자세로 역시 일어나려고 하는 오크를 흐릿한 초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표창을 몇 개 날려 주면 끝날 것 같았지만 지금 레시온의 시야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그러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눈을 감고 목표물을 향해 정확하게 무언가를 던지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일단 오크가 있는 곳의 위치는 파악이 되었기에 레시온은 흐릿한 시야를 믿으며, 일어나려는 오크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때, 레시온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바닥에 박은 오크도 얼굴을 좌우로 흔들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레시온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귀로 무언가 달려오는 것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오크는 흐릿한 초점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 뒤에서 어떤 물체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 오크는 도끼를 잡기 위해 손을 더듬기 시작했다.
도끼는 오크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더듬거리며 찾기에는 그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수리검을 들고 달려오는 레시온과의 거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결국 도끼를 찾지 못한 오크는 자신의 심장 부근을 찌르는 레시온의 단검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푸욱!
묵직한 소리가 들려오며 수리검이 오크의 심장 부근을 찌르기 시작했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황에서 심장 부근이 엄청나게 아파 오자 오크는 엄청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도끼도 없는 상황에 치명적인 일격까지 당한 지금, 붕어눈을 하던 오크는 점점 이판사판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오크는 엄청난 힘으로 레시온의 등을 두드리며 최후의 발악을 했다. 등을 통해 엄청난 충격을 전해 받은 레시온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이러한 오크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심장 부근에 찌른 수리검을 더욱더 깊숙하게 박아 넣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힘을 주며 최대한 수리검을 밀어 넣자 등을 두드리던 오크의 두드림이 더욱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드림을 참지 못한 레시온이 수리검을 회수하면서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마치 1톤 트럭이 올라갔다 내려간 것처럼, 레시온은 등에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인간보다 힘이 몇 배나 강한 오크가 발악을 하며 내리치는 힘은 엄청났다. 표정으로 봐서 다행히 뼈는 나가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엄청난 통증이었다.
비록 오크를 완벽하게 죽일 수는 없었지만 아까 전의 일격으로 꽤 높은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쯤 시야가 돌아온 레시온은 오크를 끝장내기 위하여 표창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스킬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오크를 향해 정조준한 표창은 이내 굉음과 함께 날아가기 시작했다.
오크와 별로 떨어지지 않은 거리라 정확하게 오크의 머리를 향하여 날아갈 수 있었다. 창공을 가르며 비행을 시작한 표창은 곧바로 오크의 머리에 박혀 들었다.
팍!
마치 두개골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 깨지지는 않았지만, 레시온의 표창은 두꺼운 오크의 가죽을 뚫고 두개골에 살짝 박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결정타였다.
“쿠웨에!”
오크는 머리에서 쏟아지는 피를 바라보며 미친 것처럼 마지막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그 소리가 멎어 들며 그 오크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띠링!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16실링을 얻으셨습니다.
드디어 한 마리를 잡는 데 성공한 레시온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강해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자신을 압박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지 레시온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너무나도 지친 레시온은 아예 바닥 위로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니 거의 바닥난 체력이 조금이나마 빨리 회복되는 것 같았다. 레쉬온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청명하면서도 높은 하늘. 아마 당분간은 보지 못할 풍경이었다. 시원한 바람과 들판에 피어 있는 꽃들은 감옥을 나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느낄 수도, 볼 수도 없을 것들이었다.
적어도 이때 동안은 만물의 모든 것을 느끼고 싶은 레시온이었다. 비록 희대의 살인마지만 현상 역시 자연과 동화하며 살아갔던 한민족의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일까. 그냥 이 모든 것이 좋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레시온의 적은 오크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