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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11화)
5화 믿음은 허공 곁으로(2)


현재 레시온과 레이스트는 부딪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도달하고 있었다. 류현상이라는 말 한마디로 기세를 사로잡은 레시온은 두려움에 다리를 떨고 있는 레이스트를 바라보며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6명의 유저들도 레시온의 정체를 듣고는 얼어붙어 버렸다. 감옥에 들어가서 게임을 한다고 들었던 류현상이 지금 자신 앞에 있다는 그 엄청난 위압감을 레이스트와 마찬가지로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하하, 웃기는 놈들이로군. 내가 류현상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충격적인가? 걱정하지 말라고. 어차피 너희들을 죽일 수 없으니깐 말이야. 감옥에서 탈옥을 하면 되지만 너희들을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거든.”
“다, 당신이 정말로 류현상이란 말인가?”
“귓구멍을 닫고 사나? 내가 바로 메스컴에서 씨부리는 희대의 살인마, 류현상이다. 감옥에 수감되어 경찰들이 말하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 이런 식으로 말이야.”
“거짓말 치지 마! 내가 그런다고 겁먹을 줄 알아? 이…… 하압!”
결국 주체를 하지 못한 레이스트가 레시온을 향하여 달려들기 시작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레이스트의 얼굴은 레시온의 정체가 류현상이 아니라고 믿기 위하여 용을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레시온의 정체가 류현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냥 인정을 하며 받아들이는 것밖엔.
레이스트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 들기 시작하자 레시온도 수리검을 꺼내 든 다음 레이스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채쟁!
대각선으로 날아오는 레이스트의 검을 수리검으로 막아 낸 레시온은 왼발로 레이스트의 종아리를 가격했다. 그다음 왼손으로 표창을 꺼내더니 이내 레이스트의 몸에 찔러 넣었다.
푸욱!
왼손으로 찌른 터라 아쉽게도 심장을 찌르지 못한 레시온은 갑자기 강해지는 레이스트의 힘으로 인하여 양손으로 수리검을 부여잡았다.
그런 다음 오른발로 레이스트의 복부를 걷어차기 위해 발을 뻗었다.
그러나 마음이 통해서일까. 레이스트도 레시온의 복부를 향해 발을 뻗은 상태였다. 그 결과 그들의 발은 서로 강하게 충돌했고 반동으로 인하여 그들은 1m가량을 물러났다.
“제법 하는군, 애송이.”
“몸놀림을 보니 류현상이 맞긴 맞나 보구나, 하하!”
“정신 똑바로 차려라. ‘맞긴 맞나 보구나.’가 아니라 진짜 류현상이다!”
뒤로 물러난 레시온이 다시 레이스트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레이스트는 오른 다리를 약간 뒤로 뺀 다음 다가오는 레시온의 수리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댕강!
철이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며 레시온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수리검이 두 동강이 나 버리다니. 레시온은 깨끗하게 잘려 나간 수리검을 바라보며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수리검을 절단한 레이스트의 검이 레시온의 오른쪽 팔 부근까지 가르며 체력을 줄어들게 만들었다.
꽤 긴 자국이 레시온의 오른팔 부근에 생겨났다. 레시온은 상처가 난 부위를 만지며 뒤로 물러났다.
“하하하! 이제야 보았느냐? 검기의 위력을 말이다.”
“검기? 스킬로 이겼다고 좋아하는 꼬라지가 참 보기 좋군.”
“스킬로 이겼다? 웃기는군. 검기라는 스킬은 언젠간 너도 사용할 스킬이다. 네놈의 꼬락서니가 꼭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르지 않군.”
레시온에게 데미지를 입혔다고 좋아하던 레이스트는 검기가 발산되는 검을 레시온에게 겨누며 말했다. 무기가 사라진 레시온은 이제 표창 말고는 쓸 무기가 전무한 상태, 그런 상태에서 과연 레이스트의 검을 어떻게 받아 낼이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표창은 단순한 견제용이다. 비록 초보자 사냥터에서는 주 무기 이상의 역할을 해 왔지만 레이스트와의 레벨 차가 엄청난 이상, 그러한 기대는 힘들었다.
일단 방법으로 꼽히는 건 이리저리 이동을 하면서 표창으로 천천히 체력을 줄여 놓는 것밖엔 없었다.
옆구리에 있는 표창 하나를 오른손에 쥔 레시온은 업그레이드 워크를 시전한 다음 자벨린 스트라이크를 이용하여 레이스트에게 강력한 표창을 날렸다.
휘이이잉!
빛이 일렁이기 시작한 표창은 엄청난 속도로 레이스트를 향해 날아갔다. 야구로 치면 마치 150km 직구 같아 보이는 엄청난 빠르기였다.
물론 진짜 빠르기는 시속 150km가 아니지만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표창을 바라보는 레이스트에게 그러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실감이 갈 것이다.
그러나 레이스트에겐 검기를 입힌 검이 있었다. 피하면 그만이지만 이 참에 확실히 레시온을 뭉개 버리려는 수작인 레이스트는, 검기를 입힌 자신의 검을 표창이 날아올 법한 곳으로 갔다 댔다. 그러자 챙 하는 소리가 들리며 팔이 엄청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 놈의 표창이…….”
날아드는 표창의 궤도를 수정하려던 레이스트는 이내 표창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하고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약 7도 정도 방향을 트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7도 정도로 사정권에서 벗어났다고도 할 수 없었다. 레이스트의 검에 튕겨 나간 표창이 순식간에 레이스트의 목 표면을 가르며 반대편으로 흘러나갔다.
오만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은 레시온은 잘린 수리검을 들고 레이스트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구도가 0에 가까웠지만 일단 버리기로 작정한 거, 최대한 써 봐야 되지 않겠는가.
수리검 하나 버리고 원수 같은 사람의 목숨을 취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러겠다고 다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레시온의 모습이었다.
이 결투도 마지막에 임박했다. 잘린 수리검을 들고 달려드는 레시온, 목에 상처를 입으며 반격을 당한 레이스트. 이제 슬슬 결판을 낼 때가 온 것 같았다.
표창이 베고 지나간 목이 따끔거렸지만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레시온의 시선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정말로 죽일 것같이 달려드는 레시온의 잘린 수리검에 죽는 굴욕을 당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이이잉!
시전 시간이 다 되어 사라진 검기를 다시 시전할 수 있게 되자 레이스트는 다시 검에 검기를 입혔다. 푸른색의 오러가 검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네놈의 발악이란 발악 요소는 전부 다 틀어막은 다음 천천히 죽여 주도록 하마.”
“웃기는군. 부러진 수리검으로도 충분히 네 녀석 정도는 죽일 수 있으니 기다려라!”
깡!
부러진 수리검과 검기를 입힌 검이 공중에서 불꽃을 튀기며 충돌했다. 그리고 양손에 힘을 주며 서로에게 칼을 겨누기 위하여 용을 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다지 오래갈 것 같지가 않았다. 반밖에 날이 남지 않은 레시온의 수리검에 점점 흠이 생기며 잘려 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아예 수리검에 박혀 버린 레이스트의 검은 힘 자랑을 하며, 이미 반 토막이 난 수리검을 또 반 토막 내 버릴 것 같았다.
어느새 절반이나 잘려 나간 수리검을 발견한 레시온은 수리검이 다 잘려 나가기 전에 무슨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필사적인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것은 물론, 저런 애송이에게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레시온이 레이스트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레시온이 받을 정신적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아압!”
혼신의 힘을 다하여 레이스트의 양팔을 위로 젖혀 올린 레시온이 고개를 수그린 채로 한 바퀴를 돌며 레이스트의 복부를 베어 나갔다. 그런 다음 계속해서 비어 있는 심장을 향하여 팔을 뻗기 시작했다.
만약 이번 공격이 성공을 거둔다면 레시온의 승리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복부를 가른 일격으로 많은 체력을 줄어들게 했기 때문에 치명타를 먹인다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레시온에게 미소를 지어 주지 않았다.
―띠링! 장비하고 계신 흑철 수리검의 내구도가 0이 되어 자동으로 파손됩니다.


2초, 아니, 1초만 더 견디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검기의 힘과 레시온의 무리한 사용을 이기지 못한 수리검이 파손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어느새 손잡이만 남은 수리검은 정확하게 레이스트의 심장 부근을 향하고 있었지만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충격적인 모습으로 정지해 있는 레시온은 마지막을 견디지 못한 수리검에게 원한의 눈빛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한탄과 아쉬움이 동시에 묻어나는 레시온의 한숨.
그러나 죽을 고비를 넘긴 레이스트에겐 천우신조와도 같은 것이었다. 절망적인 자세로 서 있는 레시온을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본 레이스트는 이내 대소를 터트리며 레시온에게 입을 열었다.
“하하하하, 잘 보았는가? 이것이 바로 검기의 위력이다.”
“…….”
“말이 안 나오는가? 이제 내가 그 입을 틀어막아 주도록 하지. 하압!”
검기가 서린 검으로 레시온의 몸을 벤 레이스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쓰러진 레시온의 목에 칼을 겨누면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하여 손짓을 하자 주변에 있던 6명의 유저들이 레이스트의 주변으로 몰려들며 고개를 수그렸다.
곧바로 레이스트가 한 번의 지시를 더 하자 2명의 유저가 레시온이 차고 있는 표창을 압수하여 레이스트에게 가져다주었다.
한편, 그들이 다 모이자 레이스트는 그들 중 한 유저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입을 열었다.
“블라덱, 마지막은 네가 끝내라.”
어둠 속에서 블라덱의 얼굴이 드러났다. 초보자 사냥터에서 레시온에게 PK를 당하며 엄청난 수모를 겪은 블라덱이 드디어 복수의 칼날을 잡은 것이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자신의 칼을 붙잡은 블라덱은 레시온의 앞에 선 다음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보았나? 이것이 바로 나를 죽인 것에 대한 처절한 대가다. 아, 참고로 네가 끼고 있는 것들을 회수할 희망 따윈 품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나를 포함하여 3명의 유저를 죽였기 때문에 사망 시 떨어지는 아이템의 수가 대폭 증가하니깐 말이야.”
“……후후, 호랑이를 등에 업고 나대는 꼴이란.”
“닥쳐!”
퍼억!
블라덱이 레시온의 얼굴을 발로 가격하며 소리쳤다. 정통으로 맞은 레시온은 근처 풀숲에 쓰러지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당장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블라덱을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 레시온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블라덱도 순순히 레시온을 죽일 것 같지가 않았다. 한이 쌓이면 그 여파도 큰 법. 블라덱은 발차기를 시작으로 레시온의 전신을 발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퍽! 퍽! 퍼버벅!
이렇게 구타를 당하는 레시온. 당연히 레시온은 반격을 하기 위해 레이스트에게 몸을 날리는 것을 수어 번 시도했다.
그러나 레이스트의 부하들은 달려들기 위하여 일어난 레시온을 넘어트렸고 그 순간을 보며 희열을 느낀 블라덱은 더욱더 강하게 레시온을 짓밟아 주었다.
거기에다가 역시 한이 만만치 않은 레이스트까지 가세하자 레시온이 느끼는 아픔은 전에 비해 두 배나 더 늘어났다. 그러나 레시온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을 맞기만 해 줄 뿐이었다.
대한민국 희대의 살인마 류현상. 법원 재판만 열네 번에 살해한 사람의 수 30명. 대한민국 건국 사에 경이로운 살인 기록을 남긴 그가 자신보다 어린 두 유저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일방적으로 말이다.
‘크윽! 내가, 이 내가, 이 천하의 류현상이!’
엄청난 구타에 차마 이 말을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던 레시온은 이빨을 빠드득 갈며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만약 수리검이 파괴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처지는 어떻게 변했을지 아쉬워하고 또 아쉬워했다. 그러나 아쉬워한다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수리검이 부러졌기에, 현실에서는 희대의 살인마 류현상이지만 게임에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유저에게 구타를 당하는 무능력한 피해자로 남게 된 것이다.
한편, 수분간 레시온을 구타한 레이스트와 블라덱은 슬슬 끝을 봐야 될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 구타는 실컷 했으니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어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구타를 정지한 블라덱은 자신의 검을 뽑아 든 다음 레시온의 목에 겨누었다.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머릿속은 희열감과 통쾌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죽음으로 인해 레벨이 추락한 그 고통을 레시온에게도 확실하게 보여 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잘 가거라.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라. 우리의 목표는 네놈이 게임을 접는 거니깐. 하하하하!”
“웃기지 말고 빨리 죽여라.”
좌아아악!
레시온의 말에 블라덱은 대답도 하지 않고 단번에 레시온의 목을 시원하게 갈랐다. 잘려 나간 레시온의 목 부근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주변의 대지를 적셨다.
그리고 블라덱의 일격으로 체력이 0이 되어 버린 레시온은 떠오르는 단 한 개의 메시지와 조우할 수 있었다.
―띠링! 체력이 0이 되셨습니다.
―당신은 죽으셨습니다. 앞으로 24시간 후에 접속하시기 바랍니다.
위우웅.
체력이 0이 되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이내 무언가 다운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나서 눈을 떠 보니 이곳은 바로 현실. 바로 2층에 있는 캡슐 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