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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14화)
6화 사무치는 한을 품으며(2)


일단 사내가 보고를 하는 동안 현상은 몸을 움직이며 거동이 가능한 신체 부위를 확보하는 데 나섰다. 일단 전기 권총에 맞았을 때 오는 마비 상태를 풀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물론 몸은 말을 잘 안 들었지만 최대한 노력을 한다면 가만히 있었던 사람에 비해 움직일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기 때문에 신빙성도 있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현상은 몸을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수분이 지나자 다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사내가 다가온 것은 바로 이때였다.
“이거나 먹어라, 짜바리!”
지이이잉!
다가오는 사내의 안면을 향하여 총을 발사한 현상은 얼굴을 감싸며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굴에 적중했기 때문에 아마 마비가 풀리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일단 사내를 제압하는 데 성공한 현상. 그러나 시민들은 현상의 모습을 보고 이내 현상이 나쁜 사람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112에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고 엎어져 있는 현상을 잡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때, 건너편에서 특수 기동팀이 달려오며 시민들에게 소리쳤다.
“시민 여러분. 훈련이니 동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전에 류현상 사건 이후로 이런 훈련을 하고 있으니 동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수 기동대 대장이 현상의 탈옥을 누설하지 않기 위하여 거짓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경찰들의 말을 불신한 채로 현상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며 고심 중이던 현상은 뜻밖의 전개로 흘러가자 곧바로 결심을 굳혔다. 분위기가 어수선한 이때, 최선을 다해 도망을 치기로 했다.
“크윽!”
“이이익!”
엎어진 상태에서 현상이 그들의 얼굴을 향해 발사한 전기 권총이 두 사내의 얼굴을 강타했다. 전신 마비가 도래하면서 그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머지 팀원들이 현상을 향하여 총을 발사하자 현상은 손을 이용하며 쓰레기통 옆으로 신형을 날리며 총을 피했다.
이때, 어느 정도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쪼그려 앉은 현상은 추가적으로 몇 발을 그들에게 발사했다. 한 사내가 이번 사격에 맞은 것을 확인한 그는 계속해서 견제 사격을 하며 한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마침 공사 중인 건물이라 사람들은 없었다. 일단 쫓아오는 저들을 최대한 제압한 후에 이동하기로 다짐한 현상은 재빨리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움직일 수 있는 특수 기동팀의 팀원들이 현상의 뒤를 이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기 권총보다 한 단계 더 발달한 전기 소총을 든 그들은 마치 전쟁에 나온 것처럼 주변을 수색했다.
만약 여기서 현상을 놓친다면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날아올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표정에는 촉박함이 묻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기다란 철봉이 날아들었다.
“이, 이건 또 뭐…… 크윽!”
다른 곳을 수색하던 그들은 계단에서 날아든 철봉에 맞으며 대열을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지금을 놓치지 않은 현상이 계단으로 모습을 드러낸 다음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잉! 지잉! 지잉!
3초당 한 발 꼴로 쏟아지는 공격 속에 특수 기동팀의 팀원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격을 계속하며 그들에게 다가간 현상은 그들이 들고 있는 전기 소총을 탈취한 다음 한 팀원의 허리춤에 있던 연막탄을 꺼내어 터트렸다.
뭉게뭉게.
그리고 연막탄이 터지는 동시에 뒤로 몸을 돌려 무작정 달려 나간 현상은 연막탄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길로 2층으로 올라가며 탈취한 전기 소총을 특수 기동팀을 향하여 한 차례 난사한 현상은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감추었다.
한편 현상의 공격에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연막이 사라지자 살아남은 인원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기존 70명이던 숫자는 이곳에서만 반수 정도가 제압을 당한 상태. 현재 이동이 가능한 인원수는 20명 정도밖에 없었다. 한 명에게 당한 피해치고는 수치스러울 정도의 숫자였다.
거기에다가 총까지 탈취당했으니 이러한 수치는 아마 경찰 역사에 전례가 드물 것이다.
“일단 목표물을 추격한다. 적은 하나다. 우리가 물량 공세로 밀어붙인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일단 꼭대기로 가면 끝난다. 꼭대기까지 5명 정도만 간다면 목표물 생포에 성공할 수 있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비록 엄청난 숫자가 제압을 당했지만 국가의 중대사와도 같은 일이기에 그들은 방심을 할 수 없었다. 무조건 현상을 붙잡아야 했다.
타다다다.
신속하게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그들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현상을 열심히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2층에 가면 현상은 3층으로 갔고 아무튼 그러한 형식으로 그들의 위치는 즉각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밑에서 올라가는 특수 기동팀은 전력으로 뛰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전기 권총을 막아 주는 복장을 벗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현상이 기습이라도 한다면 그대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땀이 비 오는 듯 쏟아지는 가운데 그들은 다시 30여 분을 내달렸다. 그리고 공사가 되고 있는 이 건물의 옥상에 다다를 수 있었다.
뚝. 뚝. 뚝.
얼굴 전체를 덮은 땀이 아래로 흘러 콘크리트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문 앞에 도달한 그들은 일단 체력 보충을 위하여 잠시 쉬었다가 작전을 개시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탈출 루트가 없는 이상, 옥상 어딘가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문 앞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는 그들이었다.
다시 10여 분이 흘러갔다. 그동안 현상은 특수 기동팀이 들어올 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이곳에 통이나 시멘트 포대 같은 숨을 장소가 많았기 때문에 쉽사리 제압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비록 혼자지만 장소를 옮겨 가며 게릴라전을 전개한다면 20명만 남은 특수 기동팀 전원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10초 후에 돌파한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특수 기동팀원들의 낮은 대답 소리가 들린 직후, 10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팀원들이 취약 부분인 얼굴을 가리기 위해 최대한 모자를 눌러쓰고 낮은 자세로 일관하며 돌파 준비를 모두 마쳤다.
마치 실제 전투 상황을 방문케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긴장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10초 후.
“돌격 앞으로!”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팀원들이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간 팀원들은 나머지 동료들이 마저 들어오는 동안 무차별로 전기 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덜컥 소리가 들리자 문을 향해 총을 쏘려고 했던 현상은 첫 놈부터 무조건 발사를 하고 들어오자 고개를 수그린 채로 옆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포대 옆으로 이동한 현상은 좋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견제 사격을 할 심산으로 엎드린 상태에서 저들을 향하여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현상이 들고 있는 소총에서 튀어 나간 전자탄이 그들의 주변에 박히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현상의 반격에 한 팀원이 전자탄이 날아온 방향을 향하여 연막탄을 투척했다.
“이런 젠장맞을.”
추가 사격을 하려던 현상은 날아오는 연막탄을 발견하고는 이내 시멘트 포대 뒤로 숨어들었다. 잠시 후 연막탄이 터지면서 연막이 피어오르자 약간 고개를 내민 현상은 기존에 있던 자리에서 저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몇 명이나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명은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현상이었다.
한 20여 발을 사격한 현상은 연막탄이 미치지 않는 곳인 철제 통 뒤를 향하여 포복 자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척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전자탄을 난사하기 시작한 기동팀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혀 들기 시작했다.
“신속하게! 목표물이 10m 전방에 있다.”
“연막탄 투척입니다.”
한 팀원이 반대편을 향하여 연막탄을 날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연막탄은 옥상 구석에 정확하게 떨어지며 곧바로 연막을 만들어 냈다.
마침 그곳으로 가려던 현상은 연막탄이 터지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전방을 향해 발사하기 시작했다.
“크으윽!”
정확하게 조준한 2발 중 1발이 한 팀원의 얼굴에 적중했다. 그러나 기뻐할 사이도 없이 곧바로 날아드는 무한 전자탄. 현상은 다시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연막탄 두어 발이 추가로 날아들며 현상은 사면초가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상태.
현상은 돌격을 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선택의 폭은 많지 않았다. 돌격 아니면 결전.
그러나 양손에 들고 있는 전기 소총을 굳게 잡은 현상은 잠깐 동안의 고민 끝에 돌격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대로 있으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잡힐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포위망은 점점 좁혀 들 것이고 결국에는 다시 감옥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최대한 몸을 낮춘 현상은 속으로 3초를 세기 시작했다. 천금과도 같은 3초의 시간, 그러나 3초는 천금과도 같으면서 동시에 짧은 시간이었다. 속으로 다짐한 3초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돌격만이 있을 뿐.
“죽어라, 이 XXX들아!”
욕을 내뱉으며 난사를 시작한 현상이 정면으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연막탄 때문에 특수 기동팀도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태라 들려오는 현상의 소리에 동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잡아야 했기 때문에 아군의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전자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건 현상의 음성이 아닌 아군의 음성이었다.
“크아악!”
“총 쏘지…… 으윽!”
의욕만 앞선 꼴이 되고 말았다. 류현상이라는 거물을 잡기 위해 아군까지 맞혀야만 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비굴해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현상을 잡을 수 있었다. 고통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듯이 아군의 피해도 감수를 해야 류현상이라는 거물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잉! 지잉! 지잉!
사방에서 날아오는 전자탄에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난사를 하는 팀원들은 아군을 맞히는 일이 허다했고 자신들의 목표인 현상은 아직까지 한 대도 맞지 않은 채 연막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몸을 최대한 낮게 한 상태에서 이동했기 때문에 현상은 위를 중점적으로 발사하는 특수 기동팀의 전자탄을 맞지 않을 수 있었다.
간혹가다가 마주치는 팀원들에게는 얼굴에 직접 전자탄을 먹여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연막 지대를 벗어나 문 앞에 당도한 현상은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자신이 연막 속에 있는 줄로 알고 있을 특수 기동팀은 적어도 수분 후에야 자신을 뒤쫓아 올 거라고 생각하는 현상.
게다가 자신은 훈련용 경찰이라는 사실이 시민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후드만 눌러쓰고 남쪽으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강은 그리 멀지 않았다. 뛰어간다면 3분 정도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 횡단보도도 없었다. 그냥 가면 되는 거다.
타당당. 타당당.
철제 계단을 밟으며 어느새 2층까지 내려온 현상은 그 스피드를 점점 높이기 시작했다. 전방에 나타날 적을 견제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1층에 도착해 탈출하는 일만 남았다.
탁.
아까 자신이 들어온 문 바로 앞에 도착한 현상은 우선적으로 왼쪽을 확보한 다음 반대편 벽으로 붙으며 오른쪽도 확보했다.
이제 자신을 방해할 만한 세력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여의도를 빠져나가는 길목에만 경찰들이 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라 생각한 현상은 문을 나와 왼쪽을 향해 무조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방을 주시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한 대라도 맞으면 자신은 바로 끝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나가는 시민들은 현상을 경계했지만 범죄자 취급까지는 하지 않았다. 대신 경찰 안 오냐는 듯 전방을 둘러보긴 했다.
그러나 현상에게는 이러한 분위기가 더 좋았다. 일전에 범죄자로 쫓기며 신고의 그물망에서 탈출을 해야 했던 상황보다는 지금의 상황이 몇 배나 더 나은 것이다.
남쪽으로 달려간 현상은 예상한 3분이 지나자, 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자신의 자유를 찾아 줄 땅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강이로군.”
용솟음치는 감정을 주체하려 애쓰며 현상은 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지평선 너머로부터 점점 강의 모습이 시야 전체로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도착 1분 전, 현상의 발걸음이 더욱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아무것도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정면에 있는 강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승리의 여신은 현상의 시선을 외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