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대검의 암살자 1권(16화)
7화 변화의 바람(2)


째깍째깍.
12시에 거의 근접한 시간, 조금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 현상은 12시에 접속을 할 생각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습관이 되어 버린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며 몸을 푼 현상은 다이나믹사에서 준비한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과연 어떤 식으로 자신의 자립을 돕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신뢰가 가는 현상이었다.
댕∼ 댕∼ 댕∼
종이 울리고 12시 정각이 되자 현상은 곧바로 캡슐 안으로 들어가 게임에 접속했다.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륙의 운명 속에서 싸우는 화려한 대서사시, 시그널 온라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스팟!
두 번째로 맛보는 섬광이 지나가고 멜타 마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데 멜타 마을이 뭔가 이상했다.
자정이라 엄청나게 북적거려야 될 이곳에 유저가 한 명도 없었다. 지금 현상의 위치는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인다는 광장. 그러나 광장에는 NPC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 레시온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유저들이 없다는 사실에 레시온은 대만족을 했다.
대인기피증 때문이었다. 평소 유저들 틈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레시온은 이번 기회에 마음껏 즐겨 보자는 심산으로 오크들이 있는 마을 외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위이이잉!
레시온의 앞에 빛 무리가 발생하며 무언가 물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하나의 빛이 모여들며 밑에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고 잠시 후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프리스트 유저처럼 새하얀 백의를 입고 있는 사내였다. 그러나 유저는 아니었다. 유저가 아니면서 접속을 하는 자들. 그들은 바로 게임의 중재자인 GM이었다.
시그널 온라인에는 수많은 GM들이 있지만 이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GM은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동욱이었다.
“반갑습니다, 레시온 님.”
“네놈은 누구지?”
“아, 간수에게 듣지 못하셨습니까? 저는 레시온 님의 자립을 돕기 위하여 온 GM입니다. 일명 게임의 중재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동욱의 말에 레시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속으로 한숨을 내쉰 동욱이 각본대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일단 저희들이 레시온 님의 자립에 대한 방법을 스토리 퀘스트 식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보기 전에. 왜 유저들이 없는 거지? 원래라면 광장이 터져 나가는데 말이야.”
“아, 이것은 바로 저희들의 첫 번째 선물입니다.”
동욱이 비어 있는 광장을 한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점점 감이 오기 시작한 레시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
“레시온 님이 대인기피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 건데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니다. 아주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나는 과도한 아부는 싫어한다.”
“그럴 리가요. 저희들도 엄연히 자존심이란 게 있습니다.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그럼 너희들이 짜 놓은 스토리 퀘스트라는 것을 좀 보지.”
“알겠습니다.”

[다시 일어설 그날을 위하여 ― 스토리 퀘스트]

·설명 : 전력을 다한 전투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은 그대. 그러나 눈앞에 재기의 발판이 놓여 있다. 퀘스트에 제시되어 있는 설명대로 충실하게 이행한다면 그대는 반드시 재기에 성공하며 잃은 것들을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발동 조건 : 없음
·성공 조건 : 아래의 4단계 모두 클리어
―1단계 : 북문 마을 경비병에게 물어 마을 주변에 있다고 전해지는 ‘마나의 안식처’를 찾아라.
―2단계 : ‘마나의 안식처’ 주변에 있는 지하 동굴로 들어가 고블린 킹을 쓰러트린다.
―3단계 : 지하 동굴 안쪽에 있는 노인의 테스트를 통과하라.
―4단계 : 노인이 주는 퀘스트를 클리어하라.
·보상 : 경험치
·난이도 : 무(특수 퀘스트라 난이도가 없습니다)

총 4단계로 이루어진 스토리 퀘스트였다. 일반적으로 스토리 퀘스트는 이렇게 짧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퀘스트 10여 개 정도가 묶여 있는 것이 바로 스토리 퀘스트였다.
게다가 스토리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게임 내부의 판도가 뒤바뀔 정도로 그 파장이 컸다.
그러나 이 스토리 퀘스트는 철저하게 레시온을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KBT 팀원들의 노력과 땀이 들어간 퀘스트였다.
대략적으로 퀘스트를 이해한 레시온은 그럭저럭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고블린 킹을 처리하는 것이 약간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고블린 킹을 죽인다면 탄탄대로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모르고 있었다. 4단계가 바로 팀원들의 역작이라는 사실을.
“수락하도록 하겠다.”
―띠링!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정말 이대로만 한다면 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설마 저희 다이나믹사를 못 믿으시는 건 아니겠지요?”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믿지 않는다.”
거침이 없는 레시온의 한마디에 살짝 화가 치밀어 오른 동욱. 그러나 화를 내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일단 이대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레시온 님은 저를 안 믿으실지 몰라도 저희들은 이번 퀘스트에 사활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레시온 님이 사용하실 무기는 지금쯤 인벤토리 안에 있을 것이니 열어 보시기 바랍니다.”
“알겠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좋은 플레이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무기가 없던 레시온에게는 기쁜 소식이었다. 무기 하나가 아쉬운 판국에 이러한 동욱의 행동은 레시온에게 엄청나게 호재로 작용될 수 있었다.
한편 레시온 앞에 가루처럼 나타났던 동욱은 다시 가루처럼 사라졌다. 사방의 빛들이 다시 흩어지는 듯한 형상이 되며 동욱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그들 사이의 모든 볼일이 끝나자 레시온은 1단계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마을 경비병이 있는 북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마침 광장의 북쪽으로 가려던 레시온이라 북문까지는 금방 도달할 수 있었고 문 너머에서 홀로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봐. 그대가 북문 경비병인가?”
“그렇다만 살인마가 나에게 무슨 볼일이지?”
“마나의 안식처를 찾으라고 하는데 네놈에게 가 보라고 하더군.”
“후후, 그런 건가? 설마 내가 맨입으로 가르쳐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역시 NPC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지라 레시온을 대하는 경비병의 태도는 싸늘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 그리고 싸늘함이라면 레시온을 따라갈 자가 없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네놈이 말하는 걸 되도록이면 들어 주도록 하겠다. 말하라.”
“나와 싸워서 이겨라. 그러면 내가 가르쳐 주도록 하겠다.”
“후후, 나보고 네놈이랑 쌈박질을 하란 말이냐? 의외로 간단하군.”
여유로운 말투로 대답한 레시온은 인벤토리에 있는 무기들을 꺼내어 장착하기 시작했다. 레시온의 주 무기인 수리검과 표창이었다.
GM이 준 거라서 그런지 표창과 수리검의 예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레시온은 최소 매직 이상의 아이템으로 보이는 수리검과 표창에 대만족을 느끼며, 자신에게 이런 혜택을 준 동욱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무튼 레시온이 무기를 꺼내 들며 싸울 의사를 밝히자 경비병도 허리춤에 있던 롱소드를 꺼내 든 다음 레시온에게 겨누었다.
그런 다음 서로를 향한 필승의 의지를 다지며 그들은 상대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멜타 마을 외곽의 드넓은 들판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든 두 사람. 레시온과 경비병은 중간 지점에서 첫 합을 맞대었다.
챙!
경비병이 날리는 롱소드를 간단하게 막아 낸 레시온은 중심을 무너트리기 위해 경비병의 발목을 향하여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레시온의 움직임을 간파한 경비병이 레시온의 발을 향하여 자신의 발을 날리며 응수했다.
그 여파로 인하여 한 바퀴를 돌게 된 그들은 또다시 서로를 향해 공격을 내질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서로에게 막히고 마는 공격.
“떠돌이 놈인 줄 알았는데 한 실력 하는군.”
“말단 졸개인 줄 알았는데 한 실력 하는군.”
경비병의 발언과 똑같이 제대로 맞받아친 레시온이 양손으로 수리검을 잡은 다음 위로 힘차게 들어 올렸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고개를 숙인 레시온은 한 바퀴를 돌아 나오며 경비병의 복부에 혈선을 그었다.
좌아아악!
경비병이 입고 있던 갑옷이 갈라지며 그곳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간 베이다 만 상처인 듯 피가 그렇게 많이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아픔으로 표현하자면 살짝 쓰린 정도?
아무튼 레시온에게 일격을 당한 경비병이 오기를 품으며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약간 오른쪽으로 달려가다가 다시 왼쪽으로 급선회하여 롱소드를 날려 오는 공격 루트를 택한 경비병.
레시온은 그러한 패턴을 알고 있었다는 듯 왼손으로 수리검을 거꾸로 쥔 다음 경비병의 공격을 막아섰다. 그런 다음 자유로운 오른손을 이용하여 경비병의 면상에 어퍼컷을 작렬시켰다.
“크윽!”
레시온의 일침으로 본의 아니게 뒤로 물러난 경비병은 머리가 얼얼했는지 이내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괴로워했다. 간단하게 제압에 성공한 레시온은 마무리를 짓기 위하여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레시온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경비병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과 다름없이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앉아 있기만 하는 경비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벌떡 일어난 경비병이 레시온의 복부를 향하여 검을 밀어 넣었다.
푸욱!
순간 방심했던 레시온이 그 공격에 걸려들고 말았다. 경비병의 이와 같은 행동은 전부 다 위장술인 것이다.
당했다는 느낌을 팍팍 받은 레시온이 눈을 크게 뜬 상태에서 경비병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레시온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경비병의 목을 향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을 수그려 레시온의 공격을 피해 낸 경비병은 곧바로 그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이에 이번에는 레시온이 뒤로 물러나며 복부에서 피를 쏟아 냈다. 검이 꽤 깊숙이 박혔는지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피였다.
“이런 망할 놈의 자식.”
“나에게 상처를 입힌 건 대단하지만 그 정도로는 나를 이기지 못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나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 상태로 어떻게 나를 이길지가 궁금하군. 아무튼, 덤벼 봐.”
레시온은 경비병의 도발을 지켜보며, 경비병을 공략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공격 속도는 경비병보다 자신이 빨랐다. 경비병의 복부에 낸 상처가 증명해 주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비병에게 조금은 밀리는 것 같았다. 방심해서 그렇다고 변명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진다는 건 어쨌거나 전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레시온은 날카롭게 자신을 돌아보며 경비병을 공략할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레시온은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는 듯 경비병을 향하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다 졌다고 실성을 한 거냐?”
“웃기지 마라. 네놈의 공략법이 보여서 이러는 거다.”
“공략법이라. 그런 헛소리를 하는걸 보니 네놈이 실성을 한 게 분명하군.”
“내가 실성을 한 건지 네놈이 실성을 한 건지는 앞으로 5분 후에 알려 주도록 하겠다.”
수리검을 고쳐 잡은 레시온이 우렁찬 기합을 불어넣은 다음 경비병을 향하여 일격을 내질렀다.
일단 첫 번째 일격은 순조롭게 경비병의 방어에 막히며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진짜는 다음부터였다.
표창을 꺼내 든 레시온이 상처를 입힌 부위에 표창을 찔러 넣으며 색다른 전법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해답은 바로 신속성이었다.
레시온은 경비병을 어떻게 공략할까 생각을 하다가 스킬들이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일반 공격보다 강한 스킬의 힘을 신속성과 더불어 사용한다면 경비병 하나 쓰러트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섀도우 스텝으로 뒤로 물러난 레시온은 곧바로 다시 경비병에게 접근하며 나이프 스트라이크를 시전했다. 순간 레시온의 수리검에서 빛이 발생하며 빠른 속도로 경비병에게 쏘아졌다.
채재쟁!
경비병이 레시온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이전과는 다른 공격에 약간 겁을 먹은 경비병의 손에 미묘한 떨림이 전해지고 있었다. 공격이 그만큼 강했다는 증거였다.
이 기세를 놓치지 않은 레시온은 나이프 스트라이크를 연속으로 사용하여 경비병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부딪치는 순간마다 캉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때마다 자신만만하던 경비병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거의 승세를 잡았던 경비병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미처 대응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공격이 어떻게 수초 만에 달라질 수 있는지 그는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스킬 때문이라고 하면은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였지만 NPC라는 자들이 스킬의 정체를 알 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말하면 아마 유저들을 미친놈 취급할 것이다.
수우우웅!
연격을 날리던 레시온은 북서쪽으로 섀도우 스텝을 시전하며 경비병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다시 스킬을 사용하여 등 쪽으로 돌아온 레시온은 마지막 최후의 일격을 경비병의 목에 날렸다.
스킬로 인해 만들어진 엄청난 기세에 경비병이 최후의 발악을 했다. 그가 본능적으로 날린 칼이 레시온을 찌르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레시온의 수리검이 경비병의 목에 닿는 것이 먼저였다. 순간 목에서 따끔거림을 느낀 경비병은 힘을 더 쓰지 못하고 그대로 정지해 버렸다.
그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되며 바람이 이따금 불어와 그들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언가 생각을 한 듯 보이는 경비병은 잠시 후 검을 떨어트리며 레시온에게 입을 열었다.
“내가 졌다. 그러니 검을 거두어라.”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사람을 잘 못 믿어. 그냥 이 상태에서 답을 가르쳐 주시지.”
“크흠, 알았다.”
―띠링! 마나의 안식처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되었습니다.
메시지가 올라오고 지도에 마나의 안식처로 보이는 붉은색 빛이 보이는 것을 발견하자 레시온은 경비병의 목에 겨누었던 칼을 거두었다. 이렇게 뒤처리까지 확실하게 한 레시온은 곧바로 길을 떠났다.
그런데 갑자기 경비병이 레시온에게 할 말이 있다는 듯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이봐. 어떻게 단시간 만에 강해진 거지?”
“스킬이다.”
“스킬? 그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일반적인 NPC는 스킬에 대한 것을 몰랐기 때문에 경비병의 반응도 이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레시온은 가던 길을 멈춘 다음 초조해하는 경비병을 바라보며 인상적인 멘트를 남겼다.
“스킬은…… 전직을 하면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