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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17화)
7화 변화의 바람(3)
NPC에게 스킬은 전직을 하면 얻을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멘트를 남기고 길을 떠난 레시온은 어찌 되었건 가볍게 경비병을 제압할 수 있었다.
레시온의 플레이에서 알 수 있듯이 멜타 마을과 같은 큰 규모의 도시에 근무하는 경비병 NPC들은 기본 검술로는 당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전문적인 검술 실력을 갖춘 상태로 설정되기 때문에 유저들은 거의 스킬을 사용해야지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애시당초 순수한 검술 실력만으로 경비병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스킬의 힘으로 승리를 거둔 레시온은 어느덧 마나의 안식처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도상에서 반짝거리는 빛이 있는 곳이 레시온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수분 동안만 돌아다닌다면 첫 번째 퀘스트는 완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도를 참고하여 좌표 점검을 꼼꼼히 한 레시온은 5분 후에 마나의 안식처라 불리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띠링! 1단계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지하 동굴로 들어가셔서 고블린 킹을 처지하시기 바랍니다.”
마나의 안식처. 그 의미는 간단했다. 대기 중에 떠돌고 있는 마나들이 일시적으로 모여드는 장소를 가리켜 마나의 안식처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지형은 대륙 내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멜타 마을 주변에 있는 마나의 안식처는, 그 모여드는 마나의 양이 꽤 많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결과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 다른 곳에서 수련을 하는 것에 비하여 그 성취가 높다고도 기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NPC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 유저들에게 득이 되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한편 메시지의 지시에 따라 레시온은 주변에 있다는 지하 동굴을 찾기 위해 동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도상에서 빛나는 지점이 레시온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5분 정도 동쪽으로 걷다 보니 지하로 통하는 동굴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작은 구멍이었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개구멍 같은 동굴. 게다가 이러한 구조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만약 수백 미터나 이어져 있다면 가는 도중에 죽는다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시온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데스사이트에게 죽든지 동굴에서 죽든지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입술을 굳게 깨물며 동굴 안으로 들어간 레시온은 비좁은 개구멍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무조건 앞만 바라보고 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 상태로 조금 걷자, 동굴 벽면에 돌부리들이 덕지덕지 붙은 공간이 나왔다.
돌출된 부분이 많아서 개구멍을 통과할 때마다 완전 전신 마사지를 받는 듯했다.
혹시나 지도로 남은 거리가 표시되는지 지도 창을 열어 본 레시온은 지원 불가라는 메시지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지도 창을 닫았다. 무턱 대고 전진하는 방법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는 듯 보였다.
“개구멍이 엄청나게 길군.”
엄청나게 긴 개구멍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레시온. 사실 100m 정도 되는 이 개구멍에는 고생 좀 하라는 KBT 팀원들의 속마음이 담겨 있었다.
게임상에서의 레시온의 행동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팀원들이 레시온을 향한 가벼운 복수 차원에서 개구멍의 길이를 길게 한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100m가 다 되었는지 개구멍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광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빛을 보고 힘을 얻은 레시온은 최선을 다하여 출구 쪽으로 기어갔다.
“후우!”
수십 초 후, 길게 한숨을 내쉰 레시온은 2단계 퀘스트가 진행될 지하 동굴 내부의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광장 내부는 그야말로 자연의 보고처럼 여러 가지 석회 동굴의 구조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천장에 있는 종유석을 비롯하여 용식공, 석회, 석회화단구 등이 대표적인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동굴을 처음 보는 레시온은 동굴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했다. 개구멍에서 빠져나온 뒤에 마주친 석회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수동굴은 비교가 안 될 만큼의 큰 광장에서 레시온은 난적 고블린 킹과 싸워야만 했다.
저벅저벅.
천천히 광장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레시온은 이곳에 있다고 하는 고블린 킹을 찾기 시작했다. 불시에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레시온의 오른손에는 수리검이 쥐여져 있었다.
10여 분이 흐르고, 레시온은 어둠 속에서 뒤를 보고 있는 커다란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바로 레시온이 상대할 고블린 킹이었다.
그의 왼편에는 커다란 도끼가 하나 놓여 있었고, 오른손에는 커다란 방패가 덩그러니 쥐어져 있었다. 레시온의 키만 한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걸 보니 키가 어지간히 크긴 큰 것 같았다.
“저놈이 고블린 킹이라는 놈이로군. 킹이라는 말답게 덩치는 크다는 것인가. 뭐 상관없다. 어차피 나의 손에 쓸쓸히 죽어 갈 놈이니깐 말이야.”
레시온이 필승의 의지를 드러내며 오른손으로 표창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일단 격전이 될 육탄전의 준비 차원에서 표창으로 최대한 체력을 줄여 놓을 생각인 듯 보였다.
성공 여부는 비록 미지수였지만 길고 짧은 건 붙어 봐야 아는 법. 레시온은 일단 질러 보자는 생각으로 고블린 킹에게 들키지 않도록 슬며시 다가가기 시작했다.
꽤 벌어져 있었던 고블린 킹과 레시온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해서 점점 줄어들어 갔다. 그러나 고블린 킹은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한 듯 처음 보았던 자세 그대로 일관하고 있었다.
혹시 성공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은 채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간 레시온이 10m 정도 다가섰을 무렵이었다.
“결투다!”
사정거리를 확보한 레시온이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자벨린 스트라이크를 시전했다.
레시온의 손을 슬며시 떠난 표창이 빛을 발산하며 엄청난 속도로 고블린 킹을 향하여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표창의 모습은 마치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연상시켰다.
그러자 지금까지 요지부동이던 고블린 킹이 뒤에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직감한 듯 오른손의 방패로 날아오는 표창을 힘껏 막아 내기 시작했다.
방패와 정면충돌한 표창은 쇳소리를 내며 방패 바로 앞에서 무한 스핀을 반복했다. 깨끗하던 고블린 킹의 방패의 한쪽 부분이 표창으로 인하여 잘려 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던 표창은 방패라는 거대한 산을 넘지 못하고 구석으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구석에 박혀 버린 표창을 바라본 고블린 킹은 자신에게 살수를 날린 레시온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크르르…….”
낮은 신음 소리로 레시온에게 불만을 표시한 고블린 킹, 그를 바라보는 레시온은 눈빛이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냉랭하게 바라본다고 해서 고블린 킹을 무시한다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대표 스킬과 같은 자벨린 스트라이크를 저렇게 튕겨 버린 고블린 킹이 그저 만만하게 보일 리는 없었다.
상대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한 레시온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커다란 도끼를 발견하고는 섀도우 스텝으로 몸을 피했다.
쿵!
도끼가 대지에 부딪치며 흙덩이가 튀어 올랐다. 옆으로 이동한 레시온이 표창을 날리려고 하다가 솟아오른 흙덩이 때문에 다시 섀도우 스텝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런 다음 고블린 킹의 몸을 향하여 우회적으로 접근한 레시온은 수리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고블린 킹의 방어로 뒤로 밀려 나간 레시온은 섀도우 스텝으로 더 뒤로 간 다음 표창 두 개를 연속으로 내질렀다. 그러나 여지없이 막히고 마는 표창들.
이러한 상황에서 레시온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표창이 도저히 통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일전에 사냥했던 고블린들은 표창을 날리면 그냥 죽었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한 종족의 왕이다 보니 다이나믹사가 약간의 지능을 준 것 같았다.
“지능이 조금 있는 놈인지 표창을 쳐 내는군. 하긴 표창을 곧이곧대로 맞는 놈들이 바보였지만 말이야.”
이런 중대한(?)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은 레시온은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표창이 통하지 않는 이상 믿을 거라고는 오직 수리검뿐. 이러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수리검을 이용한 육탄전이었다.
하지만 이런 작전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자신보다 두 배나 큰 고블린 킹에게 한 대 얻어맞는 순간, 체력이 엄청나게 감소될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일방적인 육탄전이 아닌 적당히 치고 빠지는 육탄전을 구사해야 했다.
대략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레시온의 입술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승리를 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레시온은 죽기 살기로 고블린 킹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타압!”
기합을 불어넣으며 거침없이 달려간 레시온은 사선으로 날아오는 고블린 킹의 공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우우웅∼
간단한 고블린 킹의 공격을 피한 레시온이 섀도우 스텝으로 고블린 킹의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그런 다음 침착하게 고블린 킹의 목을 향해 수리검을 내밀었다.
서걱.
순간적인 반응으로 고개를 반대로 젖힌 고블린 킹.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고블린 킹의 살갗만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것에 그치긴 했지만, 레시온에겐 고블린 킹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 것이 크나큰 만족이었다.
혈선이 생긴 목에서 약간의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한 레시온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섀도우 스텝을 사용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퍼억!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는 듯 레시온의 경로를 파악한 고블린 킹이 왼손으로 쥐고 있던 방패를 그대로 밀어 버리며 레시온을 수미터 밖으로 날려 보냈다.
강철 방패로 레시온의 전신을 밀어 버린 고블린 킹은 구석으로 날아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레시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자신의 방패 공격을 신뢰한다는 것이었다.
고블린 킹의 방패 공격을 정통으로 맞은 레시온은 모든 사물이 거꾸로 보였다. 그밖에도 전신에 아픔이 엄습해 왔지만 필사적으로 버티며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여기서 추락하면 영원히 추락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레시온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필사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망할 놈이.”
엄청난 고통에 얼굴을 찡그린 레시온이 팔과 다리를 이용하여 절반 정도 일어났다. 이 상태에서 잠시 숨을 고른 레시온은 곧바로 바닥에서 양손을 떼며 완벽하게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레시온의 행동에 고블린 킹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맞고도 무사하다니. 나의 공격이!”
“방패로 한 대 치면 죽는 놈이 생명체냐? 너의 공격에 자만하지 마라.”
“닥쳐라! 나의 방패 공격은 절대적이다. 한 번 부딪치면 최하 사망이란 말이다!”
레시온은 무시하고 있었지만, 사실 고블린 킹의 방패 공격은 엄청나게 강력했다. 레시온의 체력 3분의 1이 방패 공격 한 방에 깎였으니 말은 다 한 것이다.
그러나 고블린 킹은 일격필살에 너무 도취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결과 고블린 킹의 머릿속에서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화가 나 있는 상황에서는 싸움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화가 과하면 판단이 흐려지는 법. 레시온의 승리 가능성이 점점 높아져 갔다.
덥석.
바닥에 있던 수리검을 집어 든 레시온은 완전히 몸이 풀렸다는 듯 자신 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세를 담아 레시온은 고블린 킹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이제부터 본라운드다. 류현상의 이름을 걸고 네놈을 반드시 작살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