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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18화)
8화 또 다른 전직 퀘스트(1)
고블린 킹의 면상 앞에서 소리친 레시온이 유용한 이동 스킬인 섀도우 스텝으로 고블린 킹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지그재그로 이동하며 고블린 킹의 머릿속을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왼쪽을 보면 오른쪽에 있고, 또 오른쪽을 보면 왼쪽에 있는 레시온의 모습에 고블린 킹의 얼굴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활화산처럼 변했다.
분노 게이지가 점점 차오르는 가운데 10여 분 동안 이런 상태가 지속되자 참다못한 고블린 킹은 레시온을 향해 무조건 돌진했다.
부우우웅!
돌진을 하면서 레시온이 이동하는 경로에 도끼를 휘두른 고블린 킹은 그의 다음 행동에 최대한 주목했다. 무언가 작전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도끼로 시선을 분산한 다음 덮치려는 고블린 킹의 속셈을 단번에 파악한 레시온은 도끼를 피한 다음 기존에 들어가려던 경로를 수정하여 고블린 킹의 몸 쪽으로 들어가며 스킬을 시전했다.
“나이프 스트라이크!”
순간적으로 수리검에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유지가 되면서 레시온의 수리검이 고블린 킹의 복부를 강타했다. 강격을 적중시킨 레시온. 그러나 만족감에 도취할 시간은 없었다.
복부가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은 고블린 킹은 괴성을 지르며 레시온에게 재차 공격을 날렸다. 그러나 섀도우 스텝으로 간단하게 피해 버린 레시온은 다시 다가와서 수리검을 휘둘렀다.
공격하는 자는 통쾌하지만 당하는 자에게는 더없이 비열하게 보이는 공격 수단. 그것은 바로 치고 빠지기. 도적들의 주요 공격 수단인 이 치고 빠지기에 고블린 킹이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복부의 상처를 시작으로 전신을 난자당하는 고블린 킹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레시온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레시온을 잡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우선적으로 덩치 차이가 두 배였기 때문에 기동력에서 문제가 있었고, 또 고블린이라는 족속들이 인간보다 지능이 안 좋기 때문에 고블린의 지능이 레시온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블린 킹은 이대로 가면 반드시 자신은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만물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듯이 고블린 킹도 예외는 아니었다.
점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지만 살아야겠다는 본능이 고블린 킹을 이끌어 주고 있었다.
채쟁!
드디어 고블린 킹이 레시온의 공격을 오랜만에 방어했다. 본능에서 나오는 의지가 레시온의 스피드를 따라가게 한 것 같았다.
공격이 막힌 레시온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고블린 킹을 피해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뒤쪽으로 물러난 레시온은 다시 한 번 표창을 꺼내며 자벨린 스트라이크를 시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날아가는 표창과 동시에 들어가기로 생각한 듯 섀도우 스텝으로 표창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위에는 표창이, 아래에는 레시온이 고블린 킹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고블린 킹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살수가 각기 다른 곳에서 날아오는 가운데 일단 하나는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뼈를 깎고 살을 취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그리고 레시온이 다가오는 동안 고민을 거듭한 고블린 킹은 표창과 레시온 중 하나를 선택한 듯 굳은 표정을 지으며 결심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다시금 도끼가 휘둘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도끼는 표창이 날아드는 위쪽이 아닌 레시온이 다가오는 아래쪽으로 향했다.
당장 날아오는 살수보다는 그 살수를 날린 원흉을 제거하는 편이 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고블린 킹의 선택에 레시온이 섀도우 스텝으로 도끼를 피한 다음 약간 아래쪽으로 방향을 비틀었다. 그럼과 동시에 고블린 킹의 왼쪽 다리에 다시 한 번 나이프 스트라이크를 시전했다.
벼랑 끝으로 몰려가고 있는 고블린 킹. 그러나 고블린 킹은 끝까지 레시온을 고집했다.
퍼억!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던 표창이 고블린 킹의 가슴 부근에 깊이 박혀 들었다. 빼내기가 곤란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엄습해 오는 고통을 참으며, 다가오는 레시온의 수리검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약간 의외의 반응이라는 듯한 얼굴 표정을 지은 레시온은 급히 섀도우 스텝으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고블린 킹이 그 상태에서 그대로 홈런을 치듯이 날려 버리는 바람에 수미터를 날아갔다. 레시온은 왼쪽 가슴에 심한 상처를 입으며 나가떨어졌다.
중상을 입은 레시온을 모습을 바라본 고블린 킹은, 그가 다시 일어나서 다가오기 전에 몸에 박힌 표창을 빼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쇳독이라도 오르면 상처가 심각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눈을 부릅뜨면서 미친 듯이 표창을 뽑아내려고 노력했다.
“으으…….”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머리에 충격까지 먹어 버린 레시온은 고블린 킹이 표창을 빼내기 전에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혹시나 표창을 빼낸 다음 공격을 하러 온다면 100% 죽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시온은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여기서 죽어 버린다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레시온의 생존 여부는 앞으로 지속될 5분 안에 가려질 것이다.
미간을 찡그린 채 표창을 빼내기 위해 노력하던 고블린킹이 갑자기 방패를 버리고 오른손에 도끼를 집어 들었다.
후환을 없애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표창을 빼낼 목적인 듯 보였다. 불행히도 고블린 킹이 도끼를 집어 들었을 때, 레시온은 완벽하게 정신을 추스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고블린 킹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무기를 집어 든 광경을 보고 필사적으로 저지해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까지 주고받은 공격으로 레시온과 고블린 킹의 체력은 출혈 데미지까지 포함하여 절반가량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아직까지 출혈이 지속되고 있는 고블린 킹은 조금씩 체력이 더 떨어지고 있었다. 만약 이러한 상태에서 급소를 강하게 공격한다면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시온은 고블린 킹의 머리 위에 표시되어 있는 HP와 MP 수치를 주시하면서 슬슬 다가오는 고블린 킹의 심장 부근에 시선을 집중했다.
“인간, 이제 끝내야 되지 않겠나?”
“물론이다. 허억, 네놈과의 대결은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 같군.”
“당연지 잊지 말아야지. 당한 게 얼만데.”
고블린 킹의 말에 레시온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만큼 고블린 킹이 받은 데미지도 크다고 생각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고블린 킹이 오른손으로 도끼를 꽉 쥐고 레시온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찝찝하기는 했지만 대화를 나누며 그런대로 몸을 추스른 레시온도 시선을 다시 고정하며 다가오는 고블린 킹에게 섀도우 스텝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채쟁!
그들의 무기가 다시 충돌하며 스파크를 만들어 내었다. 그럼과 동시에 수리검에 주었던 힘을 스르르 풀어 버린 레시온은 몸을 아래로 숙이며 섀도우 스텝으로 단숨에 오른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오른쪽 지면에 발을 디딘 레시온은 다시금 날아오는 고블린 킹의 공격을 피한 다음 그의 복부에 수리검을 또다시 박아 넣었다.
고블린 킹이 괴성을 지르더니 곧 레시온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시온은 섀도우 스텝으로 자리를 뜬 다음 표창을 든 채로 다시 다가와 다른 부위에 표창을 무기처럼 찔러 넣었다.
그런 다음 날아오는 고블린 킹의 주먹을 피한 레시온은 복부에 박혀 있던 수리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섀도우 스텝을 사용하여 거리를 벌린 다음 고블린 킹의 주변을 다시 스킬을 이용하여 돌기 시작했다.
지능이 부족한 고블린 킹을 혼란시키는 작전으로 보였다.
일전에도 비슷한 작전으로 고블린 킹에게 강격을 날린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한 패턴으로 가려고 하는 듯 보였다.
원의 모양이 생성되며 고블린 킹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비쳐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수어 번 돌리던 고블린 킹은 어지럽다는 듯 머리를 짚었고, 원형 포위망을 생성했던 레시온은 점점 포위망을 좁혀 가며 경우의 수를 늘려 나갔다.
고블린 킹의 사정거리에 딱 맞추어 포위망을 형성한 레시온은 머리를 노릴 작정으로 빈틈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고블린 킹은 정지한 상태, 어찌하면 될 것 같았다.
“인간, 돌기만 할 건가?”
“도는 꼴 보기 싫으면 죽어 주든가.”
“하하하, 도는 꼴만 봐야겠군.”
죽기가 싫다는 듯 고블린 킹이 농담성이 짙은 말을 내뱉었다.
일단 고블린 킹은 항복할 의사가 없는 것 같았다. 레시온에게 죽는다고 해도 싸우다 죽는다는 각오로 끝까지 레시온을 괴롭힐 것 같았다.
마지막 회유가 이렇게 무산되고 레시온은 슬슬 결정을 지어야 될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고블린 킹과의 거리는 대략 5m. 섀도우 스텝 한 번 후 공격으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블린 킹의 체력도 20% 수준이기 때문에 얼굴에 강력한 한 방을 먹이면 즉사의 가능성도 있었다. 레시온으로선 후환을 없애기 위해 치명타를 먹여야만 할 것이다.
“하압!”
20여 바퀴를 돌던 레시온이 4시 방향에서 멈춰 서더니 이내 고블린 킹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미묘한 공기의 흐름을 간파한 고블린 킹은 레시온이 다가오고 있는 4시 방향으로 몸을 몰린 다음, 밑에서 위를 향하게 하여 도끼를 휘둘렀다.
최대한 회피 루트를 차단하여 후퇴를 하게 만들려는 생각이었다.
완벽하게 회피 경로가 막히고 후퇴 경로만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레시온에겐 선택의 여지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계속 앞으로 가려고 하던 레시온의 몸이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고블린 킹의 공격 라인이 레시온의 머리 바로 위로 스쳐 지나갔다.
격렬한 움직임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일부가 잘려 나갔지만 레시온이 받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승리는 결정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몸을 수그린 자세로 있는 레시온이 최대 출력으로 점프를 하며 고블린 킹의 턱 부근에 나이프 스트라이크를 찍어 넣었다. 묵직한 수리검 날이 고블린 킹 얼굴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공격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표창을 꺼내 든 레시온이 고블린 킹의 머리를 사정없이 찍기 시작했다.
이번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레시온도 죽는 거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이 순간만큼은 한 번 잡은 사냥감을 죽어도 놓지 않는 맹수가 되어야 했다.
팍! 팍!
표창 박히는 소리가 템포를 그리며 들려왔다. 레시온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고블린 킹의 머리를 표창으로 쉼 없이 난자했다.
레시온의 격한 행동에 고블린 킹은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띠링! 2단계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광장 건너편에 생성된 문으로 들어가 노인을 만난 다음, 그가 제시하는 테스트를 통과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