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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20화)
9화 재기(1)


“목표물…… 제거!”
바닥에서 솟아나 모습을 드러낸 어보이드 머신 2호가 레시온의 주변으로 몰려들며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의 공에 맞는 불상사는 없도록 지그재그로 포위를 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수리검과 표창을 들고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레시온은 타들어 가는 긴장감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한 번 날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엄청난 스피드와 양으로 밀어붙일 그들의 행동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레시온은 필승을 다지며 어보이드 머신 2호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2분 후, 하나의 공이 레시온을 향하여 날아왔다.
휘리리릭!
레시온의 등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표창으로 쳐 낸 레시온은 공을 날린 어보이드 머신 2호를 향하여 섀도우 스텝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마 섀도우 스텝이 없었더라면 이번 퀘스트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동력까지 갖추고 있는 어보이드 머신 2호를 그냥 쫓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태껏 자주 사용하여, 레벨은 올라가지 않았지만 7랭크까지 랭크를 끌어 올린 터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사정거리도 1m 정도가 늘어났고 또 시전 속도도 약간 빨라져 찰나의 순간을 잡을 수 있었다.
부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두 개의 공을 피한 레시온은 섀도우 스텝을 사용하여 그 근방을 벗어났다. 그러나 또다시 날아드는 공 때문에 레시온은 몸을 수그려야 했다.
짧지만 쿨타임이 존재하는 스킬이기 때문에 연속해서 사용하기란 불가능했다. 후에 2차 전직을 하게 된다면 연속 이동이 가능하지만 지금의 레시온은 1차 전직을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태.
팍!
섀도우 스텝을 네 번이나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격이 날아오자 급기야 레시온은 수리검을 이용하여 막을 수밖에 없었다. 공을 막아 줄 표창을 꺼낼 시간마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레시온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회가 날아들었다.
자신의 등에 있던 70cm 정도 되어 보이는 중검을 꺼내 든 어보이드 머신 2호 두 마리가 레시온에게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근접전을 해 보자는 심산인 듯 보였다.
그리고 날아오는 공을 피하기에만 바빴던 레시온은 갑작스러운 그들의 행동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근접전이라면 이골이 나 있는 레시온에게는, 어보이드 머신 2호들이 마치 스스로 죽으러 오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수리검을 붙잡은 레시온은 다가오는 어보이드 머신 2호들에게 달려간 다음 수리검을 휘둘렀다.
채쟁!
두 마리가 레시온의 수리검을 협동하여 막아 냈다. 아무리 레시온이 수리검에 힘을 주어도 그들 사이에 딱 위치하고 있는 검들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급기야 협동 방어로 손이 비게 된 어보이드 머신 2호들이 반대편에서 수리검을 뽑아 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레시온은 무언가 심상치가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섀도우 스텝으로 후퇴했다. 그러면서 표창을 뽑아 한 녀석에게 자벨린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단검을 꺼내 든 그들은 날아오는 표창을 향하여 단검으로 방어에 나서기 시작했다. 두 개의 단검과 표창이 부딪치자 엄청난 금속음이 생기며 스파크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스킬의 힘 때문인지 두 마리가 힘을 합했음에도 불구하고 표창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자연 생물체가 아닌 인조적인 생물체들이라 힘을 쓰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뒤로 물러났던 레시온은 고전하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눈빛을 번뜩였다. 무언가 가능성이 있다는 걸 발견한 레시온은 곧바로 표창을 하나 더 꺼내어 저들의 빈틈을 향하여 날렸다.
일전에 날렸던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날아간 표창은 한 손으로 방어하는 어보이드 머신 2호의 무기를 반파시키며 몸통으로 박혀 들었다.
두 마리가 힘을 합쳐도 고전하는 판국에 한 마리로는 역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로 말할 것 같으면 오른쪽 가슴 부근에 박혀 든 표창에서 스파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꽤 깊숙하게 들어간 표창 때문에 표창에 맞은 어보이드 머신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힘이 약해지기 시작한 그 기계는 다시금 달려드는 레시온을 바라보며 폭발했다.
퍼엉!
레시온의 방심을 노린 듯한 폭발. 그러나 이 폭발이 주변에 있던 어보이드 머신 2호에게도 미치고 말았다. 거의 옆에 있던 그 기계는 폭발의 화마에 휩싸이며 거의 거동 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저승길이 두려운지 동무를 데리고 간 것이다.
잠시 후, 그 기계도 순차적으로 폭발했다. 그리고 레시온은 표창 두 방으로 두 마리의 어보이드 머신 2호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어허허, 혹시나 근접전에 기대를 걸었건만 역시 허탕이었군.”
근접전에 엄청난 강세를 보이는 레시온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어 보인 노인. 그러나 표창 2방에 나가떨어진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약간의 씁쓸함도 배어 나왔다.
아무튼 이번 공격의 성공으로 인하여 남아 있는 어보이드 머신 2호의 숫자는 다섯 마리. 그러나 아까처럼 근접전을 걸어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멋모르고 나선 자신의 동료들이 나가떨어진 광경을 두 눈으로 지켜본 그들은 기존의 방식인 원거리 공격을 중심으로 레시온을 상대해 나갈 것이다.
포위망을 벌린 다섯 마리의 2호들은 180도의 각도에 나란히 서서 레시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엄청난 소리를 뿜으며 공들이 레시온을 향하여 무자비하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몸을 낮춘 레시온은 그 상태를 유지하며 어보이드 머신 2호에게 섀도우 스텝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미처 치지 못한 공들이 레시온의 몸을 타격했지만 퀘스트의 내용 중에서 맞는 개수의 제한에 관한 항목은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고통만 참으면 되는 것이었다.
신속하게 이동하는 레시온, 그러나 어보이드 머신 2호는 그런 레시온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리기 위해 포위망을 더욱 넓게 풀었다. 그러면서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그들의 공격은 정교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레시온도 필사적인 저항을 했다. 낮은 궤도를 그리며 표창을 날린 레시온은 날아가는 표창을 최대한 엄호하며 그 표창을 어보이드 머신 2호의 다리 부근으로 몰아갔다.
일단 다리를 제압하면 숨을 끊는 일은 쉬웠기 때문에 다리를 묶어 두는 것이 우선이었다.
한편 레시온이 다리 부근으로 몰고 간 표창은 다행이도 오른쪽 다리에 적중했다. 무수히 날아드는 공들을 요리조리 피한 표창이 정말로 운이 좋게 적중한 것이다.
표창을 맞은 어보이드 머신 2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남은 네 마리가 부상당한 아군을 둘러싸며 레시온에게 추가적으로 공격을 날렸다.
그러나 섀도우 스텝으로 옆으로 피한 레시온은 몸을 낮추어 공격을 피해 낸 다음 그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도망칠 그들이었지만 아군의 부상 때문인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검을 뽑았다.
“아군을 죽이려고 하는 자…… 우리가 죽이자.”
“죽이자.”
자리를 회피하지 않고 동료를 지키기로 다짐한 어보이드 머신들이 부상당한 아군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리고 어보이드 머신 2호들의 행동이 이전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시온은 그들의 동료애로 인하여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근접전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 왔던 그들이 과연 레시온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수적 우위를 이용하여 반격한다면 레시온에게 중상을 입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타닥!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레시온, 가볍게 몸을 돌린 레시온이 어보이드 머신들을 향하여 수리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르릅!
무언가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 분위기는 약간 침침했지만 무언가 희망이 넘쳐흘렀다. 현재의 상황으로 그러한 곳을 꼽으라면 단 한 곳, 그곳은 바로 다이나믹 본사 최상층에 있는 KBT 팀실이었다.
어느덧 마지막에 도달한 레시온의 플레이를 보기 위하여 모니터 앞에 삼삼오오 모여든 팀원들이 심야 작업으로 인한 피로를 달래기 위하여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일단 그들이 평가하기에는 이번 퀘스트는 거의 성공적이었다. 엄청나게 공을 들여 준비한 3단계가 어이없게 날아가 버렸지만 4단계를 통해서는 아주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특히 레시온이 공을 맞는 장면을 볼 때는 마치 서커스 구경을 온 어린아이처럼 좋아했고 레시온이 선전을 하는 순간을 보면 바로 실망하는 표정을 짓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이번 퀘스트로 인하여 레시온이 재기하기를 바랐고, 더 나아가서는 레시온을 죽인 데스사이트의 뿌리를 뽑길 바라고 있었다.
“현수 씨, 뭐 별다른 이상 같은 건 없죠?”
“네. 현재 모든 것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게임에서 류현상을 죽인 단체에 관한 것들은요?”
모니터 옆에서 홀로 작업을 하던 현수는 여태껏 조사한 자료를 뽑아 동욱에게 주었다. 현장 조사까지 하며 철저하게 조사한 현수의 성과물이었다.
현수가 준 보고서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한 동욱은 보고서를 넘기면서 다시 현수에게 입을 열었다.
“일단 위치는 잘 파악이 되지 않는군요. 다만 용산에서 접속 제한 한 시간 전에 접속을 했다…… 음.”
“일전에도 용산이고 지금도 용산인 것으로 보아 그들의 거주지는 용산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력이 너무 없어서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대동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죄송하지만 수고 좀 해 주십시오.”
“에휴, 알겠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앞으로 도래할 미래를 상상한 현수는, 엄청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그들을 홀로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막막한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노크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언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의 행동으로 보아 이번 계획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인사인 것 같았다.
단정한 양복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자, 그자는 바로 경찰청장이었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팀원들은 경찰청장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청장에게 입을 열었다.
“청장님이십니까?”
“오랜만일세. 상황이 궁금해서 방문을 했는데 아무도 없더군.”
“원래 지금 시간대에 근무하는 분들은 없습니다. 단지 저희들은 류현상 때문에…… 하하.”
“류현상이 게임 속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내 방문했다네. 나도 같이 봐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의자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청장의 말에 대답한 동욱이 밖으로 나가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 하나를 방 안으로 들고 왔다. 곧바로 가운데에 의자를 배치한 동욱은 상석으로 청장을 안내했다.
제일 중앙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던 청장은 동욱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지 설명할 수 있겠나?”
“류현상은 검거된 이후로 저희들이 자정이 될 때까지 류현상의 재기를 위하여 나름대로 만든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새벽 3시이니 아마 아홉 시간 정도 플레이를 했을 겁니다.”
“혼자 플레이 가능한 시간은 최대 어느 정도인가?”
“공지로는 현실 시간으로 하루 정도 띄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스피드라면 꽤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퀘스트를 끝낸 다음에 바로 접속 제한을 푼단 말인가?”
청장이 약간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하자 동욱이 청장의 속마음을 꿰뚫은 듯 말을 이어 나갔다.
“레벨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들의 레벨은 넉넉하게 잡아도 30 내외.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동안에 검기발출이라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검을 대여하여 상대하게 한다면 레벨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류현상의 레벨은 10이네. 그런데 그들의 레벨은 30 내외라. 20 차이를 어떻게 극복한단 말인지 모르겠네.”
“약간 치사한 방법이긴 하지만…… 운영진 차원에서 약간 원조를 해야겠지요.”
“아이템 능력으로 말인가?”
“바로 보셨습니다. 당연히 회수를 해야 되겠지만 아이템의 능력으로 일시적인 힘의 균형을 맞춘다면 상대적으로 몸놀림이 좋은 류현상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약간 꺼림칙하긴 했지만 청장은 동욱의 생각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 방법이 바로 류현상이 최대한 다른 사람과 밸런스를 맞추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옆에 있던 현수가 청장에게 입을 열었다.
“청장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사실 제가 게임에서 류현상을 죽인 자들을 조사하고 있는데 혹시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경찰의 도움? PK 한 번 했다고 형사 처분을 하자는 말인가?”
엄청난 말에 현수가 양손을 휘저으며 급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처벌은 저희들이 할 생각인데 인력이 너무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전담팀을 꾸릴 수 있을까요?”
“흐음, 그 사항은 아무리 내가 청장이라도 약간 힘드네.”
“아시겠지만 그들로 인하여 류현상이 탈옥을 한 겁니다. 부디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알겠네. 내 자네에게 전담팀을 맡기도록 하겠네. 하지만 자네가 경찰청으로 와야 하네. 만약 이 조건을 수락한다면 전담팀 하나를 주도록 하지.”
현수는 바라던 바가 이루어지자 기쁘게 웃었다. 경찰의 힘을 이용한다면 더 효과적으로 그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기간도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승낙을 한 현수는 이 시간 이후로 엄청난 짐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리고 방구석으로 갔던 서현이 커피를 탄 다음 청장에게 커피를 건넸다.
“아, 고맙네.”
서현이 준 커피를 받아 든 청장이 다른 팀원들처럼 커피를 마시며 레시온의 플레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