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대검의 암살자 1권(21화)
9화 재기(2)
레시온의 앞을 막아선 네 마리의 어보이드 머신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레시온의 수리검을 향하여 무기를 내질렀다.
그리고 완벽하게 공격을 차단한 그들이 힘으로써 레시온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네 마리의 힘자랑이라서 그런지,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레시온의 검날이 공중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잠시 후, 무언가를 생각해 낸 레시온은 섀도우 스텝으로 신형을 앞으로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레시온의 행동에 놀란 어보이드 머신들은 순간 자신들의 뒤에 있는 동료를 떠올렸다.
곧바로 레시온이 노리는 대상이 부상을 당한 자신들의 동료라는 사실을 간파한 그들은 뒤를 향하여 검을 던져 버렸다.
부우우웅!
원을 그리면서 날아간 네 개의 칼. 하지만 이미 동료의 숨은 끊어진 뒤였고 그를 죽인 레시온은 우측에서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엄청난 기세와 함께 말이다.
순간적인 모습에 당황한 그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가까워질 대로 가까워진 거리로 인하여 또다시 두 마리의 어보이드 머신이 희생되었다.
목이 베인 어보이드 머신 2호 두 마리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두 마리만 남게 된 어보이드 머신들은 이제 최후의 발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도망치면서 공을 발사하는 작전. 정말로 그것밖에는 없었다.
순간적인 방심과 동료애로 인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른 그들은, 더 이상 방심하지 않고 더욱더 레시온을 집요하게 괴롭힐 것이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전력 질주를 시작한 어보이드 머신들이 레시온을 향하여 다시 공을 발사했다. 비록 맞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섀도우 스텝으로 꾸준하게 거리를 좁혀 나가기 시작한 레시온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동 능력은 일반 사람의 달리기 속도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5초에 10m를 넘게 이동하게끔 해 주는 레시온의 섀도우 스텝으로 인하여 그 능력은 무용지물이 되어 갔다.
10여 분간의 술래잡기 끝에 어보이드 머신의 앞을 막아선 레시온은 왼발로 지면을 디딘 다음 섀도우 스텝으로 그들에게 튀어 올랐다. 그리고 참신한 자세로 그들의 목을 향하여 수리검을 밀어 넣었다.
이에 레시온의 공격을 감지한 그들은 다가오는 수리검을 피하기 위하여 전방을 향하여 검을 휘둘렀다.
“이런 젠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던 레시온은 결국 수리검의 각도를 틀어 검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대로 진행했더라면 저들의 검이 자신의 목을 뚫었을 것이다.
채재쟁!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 낸 레시온은 한 놈을 향하여 킥을 날렸다. 그리고 나머지 한 놈에게는 수리검을 밀어붙인 다음 그대로 내리그어 버렸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일자로 그어진 레시온의 공격 루트에 그대로 적중한 어보이드 머신은 약간의 몸부림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예상대로 바닥 위에 고꾸라졌다. 이제 남은 개수는 단 하나!
자신의 킥에 주춤거리고 있는 어보이드 머신을 바라본 레시온은 곧바로 표창을 꺼내 든 다음 그를 향해 마지막이 될 자벨린 스트라이크를 날려 주었다.
그리고 그 어보이드 머신도 날릴 수 있는 최대 한도의 공을 레시온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부 다 헛수고로 돌아갔고 레시온은 결국 나머지 한 놈도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런데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더 남아 있단 말인가?”
“후후후.”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다시 짓기 시작한 노인. 그러나 이번에는 엄청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그의 눈빛. 결국 그 기대는 현실로 드러났다.
퍼벙! 퍼버벙! 퍼버버벙!
그들이 죽음과 동시에 폭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노인이 생각하고 있는 마지막 꼼수였다.
아직 완벽하게 죽지 않았던 그들이 우연의 일치로 마지막 녀석을 제압한 후에 순차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광경들을 바라보고 있던 KBT 팀원들은 레시온을 속였다는 생각에 환호성을 질렀다. ‘어찌 이렇게 통쾌할까!’라고 말이다.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연기와 폭발을 뒤집어쓴 레시온은 지금에서야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띠링!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대검의 암살자로 전직하셨습니다.
―모든 NPC들의 태도가 경계에서 보통으로 전환됩니다.
―기존의 스킬이 사라지고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4단계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여러 가지 메시지가 들려왔지만 레시온은 막판 스퍼트와 같은 폭발에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기분 좋게 돌아섰을 때 폭발을 송두리째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아무튼 스토리 퀘스트가 끝나고 드디어 레시온은 대검의 암살자로 전직할 수 있었다.
비록 보상으로 주는 경험치의 약은 극히 미미했지만 이것이 전부 다 게임의 벨런스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천하의 레시온이라도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그러나 레시온의 관심은 새로운 직업의 스킬. 대검의 암살자라는 직업의 스킬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이보게, 자네. 잠시 내 말 좀 들어 보게나.”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스킬 창을 열려던 레시온이 노인의 말 한마디에 행동을 정지하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대검의 암살자로의 전직을 축하하네. 그리고 이것은 원래 보상에는 없는 거지만 내 특별히 자네에게 주도록 하겠네.”
―대검을 얻으셨습니다.
“대검이라, 나는 대검이 싫은데 말이야.”
“싫더라도 자네는 당분간 대검만을 사용해야만 하네. 나중에 강해지면 여타 다른 무기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네.”
“뭐라! 대검만을 써야 된다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레시온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레시온에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수리검을 사용하지 말라는 조치는 차라리 죽으라는 말과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노인은 갑작스러운 레시온의 말에 고개를 가우뚱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대검의 암살자. 말 그대로 대검 쓰는 도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무슨 한이 맺힌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언성을 높이는가?”
“나는 이 수리검에 한이 맺힌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데 대검만 쓰라고 한다면 도대체 나는 어쩌란 말이냐!”
“그러면 복수는 포기하실 생각이십니까?”
뒤쪽에서 또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노인을 거의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던 레시온의 시선이 휭 하고 뒤로 돌아갔다. 레시온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바로 동욱이었다.
동욱의 얼굴을 바라본 레시온은 이내 동욱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동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대검만을 사용하라니.”
“대검의 암살자의 직업 특성상 오직 대검만 무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불가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나를 속였단 말인가?”
“속인 게 아니지요. 단지 레시온 님이 물어 보지 않은 것일 뿐.”
“그러면 나는 계속 단검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후후, 혹시 사용할 수 있을 날이 올지는 모릅니다.”
의미심장한 답을 한 동욱은 통쾌하다는 듯이 레시온을 바라보았다. 사실 레시온의 살성을 죽이기 위해 고안한 방책이 바로 이것이었다.
단검을 거의 끼고 산다는 말을 들은 동욱이 단검과 반대되는 무기인 대검을 사용함으로써 살인마로서의 살기를 죽여 보자는 심산으로 그런 설정을 한 것이다.
레시온이 받아들이는가가 문제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동욱의 말에 따라 단검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 지금의 레시온은 그 먼 훗날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면 표창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주 무기가 단지 대검이라는 것이지 보조 무기인 표창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표창을 사용하는 건 가능하단 말인가?”
“네. 혹시 표창까지 막아 버리면 제가 살 길이 있겠습니까?”
농담 섞인 말투로 레시온의 화를 누른 동욱은 곧바로 한 가지 말을 덧붙었다.
“일단 대검과 표창을 사용해 보세요. 아마 대검의 암살자라는 직업도 꽤 흥미로울 겁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태는 언제까지 유지되는 것이지?”
“레시온 님이 마을로 돌아가고 10분 뒤에 자동으로 로그아웃이 될 겁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인터넷에 공지를 띄운 다음에 서버를 열 계획입니다. 지금 시간을 기점으로 한 세 시간 뒤에요.”
“현실 시간으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레시온 님을 죽인 데스사이트라는 단체를 저희들도 찾고 있는 중인데 서버가 열리면 아마 그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방금 전에 그들이 레시온 님 말고 다른 유저들도 죽였다는 사실을 추가로 알아냈습니다. 원래 더 일찍 잡을 수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다는 듯 약간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동욱이 말했다.
“역시 늦장 대응이 부른 결과로군.”
“하, 하지만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을 겁니다. 그러니 레시온 님께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내게 도와 달라고? 뭐 나쁘지는 않군.”
자신도 당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레시온은 동욱의 말이 그렇게 거슬리게 들리지 않았다. 원조를 해 준다는 요청을 거절할 리가 만무했다.
곧바로 긍정의 뜻을 내비친 레시온은 곧바로 들려오는 동욱의 설명을 들었다.
“일단 자세한 사안은 쪽지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접속하신 후 세 시간 내로 답을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레시온 님을 죽인 단체에게 죽은 다른 분들과 함께 일을 맡아 주십시오.”
“그냥 혼자 하면 안 되나?”
“다시 죽고 싶으십니까? 대인기피증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저희들은 레시온 님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이 사항은 양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다. 그렇게 하지.”
레시온의 대답에 동욱의 안색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레시온과의 합의까지 이끌어 냈으니 이제 저들의 위치만 알아내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