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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23화)
10화 세상의 품속으로(2)


“멈춰라!”
무언가 기분이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본 레시온은 자신을 보고 있는 무리들의 정체를 하나둘 파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레이스트나 블라덱은 그곳에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부하들만 나왔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복수를 다짐했던 레시온은 그들의 정체를 보고선 그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뒤지려고 왔나?”
“하하하, 누가 누구에게 그런 소리를 하지? 내 뒤로 열 명이다. 숫자를 생각해야지.”
“열 명이든 백 명이든 떠돌이 개들일 뿐이지.”
“뭐라?”
떠돌이 개라고 비유한 레시온의 태도에 속이 상한 그들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이끄는 대장격인 유저가 건들기만 해도 죽일 것 같은 기세를 띠며 레시온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한 번 뒤지고 나더니 드디어 미쳤구나.”
“잔소리 작작 하고 덤비기나 하시지.”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뭣들 하십니까? 공격!”
카리온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유저가 자신의 아군을 이끌고 레시온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꺼낸 무기로 보아서 전부 다 전사들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일반적인 다구리로 레시온을 상대할 속셈인 것이다.
그러나 비영승보로 단번에 접근하는 레시온에게 즉각적으로 대응할 리 만무했다. 비영승보 한 방으로 단숨에 그들의 중심으로 다가간 레시온은 뒤에 있던 한 유저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팍!
검기가 어려 있는 레시온의 대검에 맞은 그 유저는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몸을 뉘었다. 그리고 이때, 레시온을 괴롭혔던 패널티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검날로 공격해서 기절을 시킨 것이기 때문에 유저를 죽임으로써 얻어지는 패널티에 해당하는 메시지는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패널티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공격은 정확하게 레시온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몸을 이리저리 돌려 공격을 피한 레시온은 그들의 몸을 향하여 참마격을 시전했다.
다시 한 번 일자의 선이 발생하며 두 명의 유저를 순식간에 기절시켰다.
검기를 내뿜지 못하는 그들의 바스타드 소드가 이번에도 맥없이 두 동강 났고 그들의 신형도 대검의 날 없는 부분에 정통으로 가격되어, 그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 잠시 후퇴.”
무언가 달라진 레시온의 실력에 데스사이트의 팀원들이 적당하게 거리를 벌리며 레시온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다굴을 해도 실력 차이가 너무나도 극심했기 때문에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무리들을 이끄는 카리온의 마음속에 불안한 감정이 피어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레시온에게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 카리온은 일전에 레이스트에게 보고받은 것들을 차근차근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명 레이스트 님은 한 번 죽인 놈이라 기본적인 것밖에 착용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갑옷과 무기가 좋지?’
카리온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레시온의 복장이었다. 일전에 PK를 한 상태에서 레이스트가 한 번 죽였기 때문에 흘릴 만한 것들은 다 흘린 상태.
그러한 상태에서 짧은 시간에 저런 엄청난 복장을 입고 나타난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질을 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비록 레시온은 감옥에 있지만 데스사이트의 팀원들은 레시온을 그냥 일반적인 시민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질을 한 다음 레어 아이템을 구입한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레시온의 무기가 그들이 궁금해하는 최대의 의문점이었다. 원래 도적으로 전직을 해서 단검을 사용한 레시온인데 왜 지금은 대검을 들고 싸우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그들도 도적이 대검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레시온은 버젓이 대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전사들의 무기인 대검을 말이다.
‘혹시 새로 키웠나? 아니야. 최대한 플레이를 해도 죽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캐릭터를 전직시키는 건 불가능해. 그리고 외모 설정을 그대로 할 리도 없잖아. 이상하군.’
홀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카리온. 그러나 대답은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그대로 실현되어 현재의 레시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레시온이라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의문들은 카리온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이봐.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거지?”
“복수, 오직 복수만을 위해 이렇게 강해진 것이다. 이제 그 데스사이트라는 단체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웃기는 놈이로군. 우리들은 불멸이다. 그 누구도 우리를 죽일 수 없다!”
카리온이 또렷한 목소리로 레시온의 말을 되받아쳤다. 하지만 레시온이라는 존재에서 풍겨 오는 위압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이 곧 현실이 될 거라는 사실을 카리온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오늘 네놈은 비참한 두 번째 죽음을 맛볼 것이다. 네놈이 이 게임을 접을 때까지 우리들의 추격은 계속된다.”
“그만 씨부리고 덤비기나 하시지. 그놈의 데스사이트라는 단체는 씨부리기만 잘 씨부리는군.”
“이이…… 쳐라!”
레시온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카리온이 살아 있는 팀원들을 이끌고 레시온을 향한 2차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군이 무참하게 당하는 광경을 본지라 사기는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공격을 해 봤자 승리자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들이 다가오자 다시 한 번 레시온의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한 번에 세 명의 유저들이 레시온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의 교차 지점을 간파하여 공격을 막아 낸 레시온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세 개의 검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비영승보로 그들의 뒤로 간 레시온은 제일 가까이에 있던 유저의 발목을 가격하여 주저앉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유저들의 공격을 대검으로 막아 낸 레시온은 그들의 신형을 다시 한 번 밀어낸 다음 몸을 숙이면서 몸을 반대편으로 날렸다.
삭! 사삭! 사사삭!
레시온이 있던 자리에 다섯 개의 검이 향했다. 공격을 차단한 다음 빈틈을 공격하는 꽤 좋은 방법이긴 했지만, 이러한 환경에 적응을 하다못해 질려 있는 레시온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을 공격하는 유저들을 옛날에 자신을 잡기 위해 쫓아오던 경찰들이라고 생각했다. 능수능란한 일대 다수의 대처법을 가지고 있는 레시온에게 10대 1은 그리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한편 반대편으로 몸을 날린 레시온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앞으로 다가가며 참마격을 날렸다. 어느덧 주력 공격 수단으로 자리 잡은 참마격은 당분간 레시온의 주 스킬이 될 것이다.
타다닥!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며 전방에 있던 유저들의 몸이 날아갔다. 그러나 공격권에서 벗어난 유저들이 레시온의 몸에 검을 밀어 넣었다.
그들에겐 다행스럽게도 이 공격이 레시온의 옆구리를 가를 수 있었다. 결국 하나의 공격을 성공시킨 그들은 나름대로 공격의 조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아마 전문적으로 일 대 다수의 상황에서의 훈련을 제대로 받은 것 같았다. 동료가 중상을 당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격을 가하는 그들의 모습이 어찌 보면 살벌하기도 하였다.
옆구리에 스친 그들의 일격에 체력이 약간 줄어든 레시온은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살짝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가 놀랍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레시온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였다.
자신의 피를 보며 그들에게 죽었던 지난 시간이 레시온의 뇌리에 스쳐 갔다. 그리고 점점 레시온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분노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살인마의 본능이 다시 깨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자 레이스트와 블라덱에게 무참하게 짓밟힌 지난 시간이 떠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레시오은 죽일 듯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블라덱과 레이스트가 마치 자신의 앞에서 비웃고 있는 듯한 형상이 흐릿하게 비쳐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이곳에 없었지만 레시온의 분노가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띠링! 엄청난 분노가 표출되고 있습니다.
―분노의 영향권에 드셨습니다. 공격력이 10% 하향됩니다.
데스사이트의 팀원들에게 날아간 메시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분노의 영향권에 들었다는 이유로 공격력 10% 하향.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 일어났다.
레시온에게 칼을 찔러 넣은 유저들은 이 엄청난 결과를 보고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카리온은 전신을 떨며 레시온의 태도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라보면 뭐가 나오나?”
“닥쳐라. 네놈이나 그놈들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로군.”
“레이스트 님과 블라덱을 말하는 거냐? 힘도 없는 놈이 야망만 크구나.”
“야망이 큰 게 아니라 사실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가서 레이스트라는 놈에게 전해라. 잠시 후, 데스사이트라는 이름은 이 땅에서 사라질 거라고 말이야.”
이들의 운명을 예언한 레시온. 그러나 카리온은 이 모든 것들을 믿지 않았다.
그냥 땅꼬마가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한 카리온은 레시온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비웃었다.
그러자 레시온도 카리온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무언가 안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일종의 심리전과 같은 것이었다. 서로 티를 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칼자루는 레시온이 쥐고 있었다. 레시온의 행동이 지속되자 여유를 부리던 카리온도 속으도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레시온의 언성은 이때 최고조에 다다랐다.
“네놈들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다. 그대로 돌아가라. 아니면, 그대로 죽는다.”
“부, 분노 한 번 했다고 돌아갈 것 같으냐!”
“사람이란 때를 기다려야 하는 법. 원한이 없는 네놈에게 나의 화를 풀고 싶지 않다.”
“…….”
금방이라도 공격을 할 것 같던 카리온이 레시온의 저 자세에 살짝 당황한 안색을 내비췄다. 아무리 전문적으로 유저들을 죽이고 다녔어도 그들은 인간이었다.
당연히 무언가 미묘한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내뱉은 레시온의 말에는 진정으로 무언가가 있다고 감지한 카리온. 문득 레이스트의 보고와 현재 레시온의 태도를 매치시켜 보면서 카리온은 열심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이자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단지 상관의 원한으로 인하여 자신은 살인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태껏 아무 감정도 없이 게임 속에서 살인을 저질러 왔지만 레시온을 바라보니 무언가 측은한 감정이 들었다.
현재 절반 정도의 아군이 전투 불능의 상태. 이대로 철수를 해도 무방했다. 사실 질 확률이 높은 이 싸움을 무리하게 할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은 PK 유저였다.
만약 레시온에게 죽는다면 떨어지는 금액과 아이템은 엄청날 것이고 그걸 복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갈 것이다.
아무튼 카리온이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내린 결론은,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불안하기도 했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며 레시온과 다시 격돌하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 단정해 버렸다.
결심을 굳힌 카리온은 레시온에게 입을 열었다.
“그대의 말대로, 우리는 돌아가도록 하겠다.”
“카, 카리온 님, 레이스트 님이 반드시라는 말을 붙이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 책임질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다시 덤비다가는 개죽음입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레이스트 님께 돌아가 저자의 새로운 정보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러시다면 별수가 없군요.”
카리온의 설명에 다른 팀원들이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의했다. 그러자 레시온이 그에게 입을 열었다.
“잘 생각했다. 그 어리석은 데스사이트의 내부에도 실리를 생각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군.”
“세상은 돈에 살고 돈에 죽는 거지. 그리고 이렇게 해서 손해 볼 건 없거든. 안 그런가?”
“후후, 동감이다.”
레시온도 이러한 카리온의 태도가 나쁘지 않다는 듯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이 세상에는 꼭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된 레시온이었다.
검을 도로 회수한 카리온과 유저들은 이내 한마디의 말도 없이 데스사이트의 본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레시온도 고개를 돌려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레벨을 1이라도 더 올려야 했지만 지금 레시온의 기분은 사냥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카리온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혼란스러워진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지구에서의 삶에 대하여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살인만을 저질러 온 자신의 막장 인생을 되돌아보며 레시온은 이제껏 몰랐던 무언가를 깨닫기 위하여 노력했다.
멜타 마을로 돌아오고 꽤 시간이 흘렀지만 레시온은 좀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는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한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간 레시온.
골목에 위치한 벤치에 앉은 레시온은 조용한 이곳에서 30여 분간의 생각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들과 나부끼며 사는 인생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먼 길을 되돌아온 자신에게 한숨을 내쉰 레시온은 생각을 정리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장소인 광장으로 향했다.
세상의 품으로 다시 들어간 레시온. 처음에 비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모든 것들이 그나마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레시온은 모여드는 유저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레시온에게 메시지가 올라왔다.
―띠링! 운영자께서 보내신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제목 ― 메시지로 다시 뵙습니다]

발신인 : 운영자
수신인 : 레시온
내용
―레시온 님, 운영자입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데스사이트에게 당하신 유저 분들을 다 모셔 놓았습니다. 장소는 멜타 마을 남문입니다. 그곳에 제가 있을 예정이니 자세한 일정은 그곳에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마 곧바로 오시리라 믿습니다. 그 누구보다 복수심이 강하신 분이시니까요.
그럼 남문에서 뵙겠습니다.
- 운영자 올림 -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동욱이었다. 다행히도 복수를 희망하는 유저들이 즉각적으로 모여들었는지 말했던 시간보다 조금 일찍 메시지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