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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10화)
第三章 홍의 여인(紅衣女人) ― 검과 도 중에 뭐가 더 좋소?(1)


홍의(紅衣)를 입은 여인이 숲 속을 달리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긁혀서 온몸에 생채기가 났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의복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아, 하아…….”
잠시 숨을 고르며 뒤를 살펴보던 홍의 여인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풀썩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얼굴과 전신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홍의 여인의 눈동자는 햇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오뚝해 보이는 코와 서글서글한 눈매, 그리고 얄팍한 입술을 가진 미인이었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눈매였지만 한편으론 고집스러움을 지닌 눈매였다.
숨을 고루 쉬며 나무에 등을 기댄 홍의 여인이 갑자기 청승맞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워낙 청승맞아 누가 본다면 등을 두들겨 주고 싶을 정도였다. 청승맞았지만 애써 누가 들을세라 숨죽여 우는 모습은 애처롭기만 했다.
“흐으윽…….”
그때였다. 갑자기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렸다.
홍의 여인의 울음이 멈춘 것도 그때였다.
가만히 숨죽인 채 주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던 홍의 여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숨을 수 있을 만한 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작은 수풀이 있었는데 홍의 여인이 숨기에는 적당할 것 같았다.
그곳을 발견하자마자 홍의 여인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숨었다. 자신의 흔적을 애써 지운 채.
홍의 여인이 몸을 숨기자마자 사내들이 나타났다.
두 명이었는데 적당한 체격과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다.
그들의 의복 정중앙에는 용(龍)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혀 있었는데 꽤나 유려한 필체였다.
“용문(龍門)에 점창 따위가 그렇게 필요한가?”
뺨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짜증을 내며 묻자 옆에 서 있던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찼다.
“그따위 문파의 주인은 삼류일 뿐이지. 그런데 무슨 바라는 것이 이렇게 많은지…….”
“솔직히 생각을 해 봐. 아무리 과거 구파일방(九派一幇)에 들었던 점창(點蒼)이라도 지금은 그저 이류잖아. 그따위 장문인의 딸내미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생고생을 해야 하니…….”
뺨에 흉터가 있는 사내도 짜증이 나는지 주변에 있던 돌멩이를 거칠게 찼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내도 공감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에 있던 애꿎은 나뭇가지들을 검으로 내리쳤다. 나뭇가지들이 힘없이 떨어졌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유운(流雲)의 점창? 개나 주라지.”
“크크, 그 말이 정답이다. 개나 줘라!”
뭐가 그리 좋은지 사내들이 서로 키득거리며 주위를 훑었다. 아까 와는 다른 몸가짐이었다.
주위를 훑는 그들의 눈매는 사냥감을 노리는 맹호처럼 날카로웠고 매서웠다.
그때였다.
뺨에 흉터가 있는 사내의 눈매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내도 서로 눈짓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검을 뽑아 들더니 수풀을 베며 외쳤다.
“찾았다!”
그러나 웬걸. 수풀이 갈라지자 바지에 걸쳐서 반쯤 보이는 엉덩이가 사내들을 반기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검을 든 채 멍한 상태에 빠져 버렸고, 엉덩이를 본의 아니게 노출한 백의 청년은 급히 바지춤을 올리며 투덜거렸다.
“또 청목(靑木) 선배요?”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린 백의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청목 선배가 아니네. 당신들은 누구요?”
백의 청년의 눈동자를 마주친 청년들이 검을 슬쩍 거두었다. 그러나 사내들의 적의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이곳은 깊은 숲 속이다.
가뜩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갑작스럽게 사람을 만났으니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백의 청년은 궁금한 표정을 가득 실은 채 그들을 직시하고 있었다. 전혀 적의라고는 없는 서글서글한 눈동자를 보자 사내들이 검을 마저 거두며 말했다.
“우린 용문(龍門)에서 온 자들이오. 이 근처에서 홍의를 입은 여인을 보지 못했소?”
“못 봤소.”
백의 청년이 전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내젓자 사내들이 순간 의아해했다.
용문은 운남 지역을 주름잡는 대문파였다.
광동에까지 명성이 떨쳐질 정도로 거대한 문파이니 놀라워해야 하건만, 그러한 문파명을 듣고도 태연하니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저 시골에서 살았으니 모른다고 판단한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알았소. 실례가 많았소이다.”
그리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헤어지려는 순간.
“엣취……!”
모두의 시선이 수풀 쪽으로 돌아갔다.
수풀은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
돌아가려던 사내들이 검을 재차 뽑으며 수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백의 청년은 그저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들이 검으로 수풀 위쪽을 걷어 치자 그곳에는 홍의 여인이 바들바들 몸을 떤 채 쪼그려 있었다. 홍의 여인을 발견하자 사내들이 만족한 미소를 터트리며 홍의 여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 가시죠. 장문인께서 기다리십니다.”
“가, 갈 수 없어요! 제가 당신들의 음모를 모를 것 같나요?”
앙칼진 홍의 여인의 외침에 사내들이 혀를 차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들고 있는 검을 툭툭 움직이더니 사내들이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좋은 말로 할 때 가시는 것이 나을 겁니다. 장문인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갈 수 없어요. 점창의 검은 부러질지언정 굽히진 않을 겁니다!”
“하, 이거 안 되겠군요. 최대한 무력은 안 쓰려 했지만…….”
사내들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며 홍의 여인의 손아귀를 잡더니 억지로 끌어내었다.
홍의 여인은 힘없이 사내의 손에 끌려 나오고 말았다.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홍의 여인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허리춤에 매여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이 뽑히자 검광(劍光)이 숲 속에 흘렀다.
명검(名劍)이었다.
먼지조차 벨 수 있을 것 같은 검신(劍身)을 지니고 있는 명검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명검을 쥔 홍의 여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다, 다가오면 벨 거예요!”
“하, 명색이 검객인데 이거 평범한 아녀자하고 다툴 수도 없고…….”
“전 아녀자가 아니에요! 당당한 점창의 검객입니다!”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홍의 여인이 외쳤다.
그러자 사내들이 서로 배를 움켜쥐며 웃기에 바빴다.
한참을 웃어젖히던 사내 중 한 명이 검을 흔들며 나섰다.
“다치셔도 모릅니다.”
능글거리는 사내의 모습에 홍의 여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멀뚱거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백의 청년이 다가왔다.
존재감이 없던 그였기에 사내들은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가 직접 나서자 검으로 그를 가리키며 외쳤다.
“방해하면 베겠다! 애송이.”
아까 정중한 말투와는 다른 건방진 말투였다.
그러나 백의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홍의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가장 앞에 있던 사내가 인상을 찡그리더니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베겠다고 했다! ……헛?”
사내는 분명히 벤 감촉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검은 허공만을 베었을 뿐이었다.
백의 청년은 어느새 홍의 여인의 옆에 서 있었다. 홍의 여인은 갑작스런 인물의 등장에 당황할 따름이었다.
“적(敵)이라면 베, 베겠어요!”
그러나 백의 청년의 적의는 없었다. 오히려 홍의 여인을 뒤에 둔 채로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사내들은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서로를 쳐다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사내들을 둘러보던 백의 청년이 외쳤다.
“진소화 선배께서 말하시길, 아녀자를 괴롭히는 놈들치고 제대로 된 놈들이 없다고 하셨다. 고로, 너희들도 제대로 된 놈들이 아니란 소리다. 맞는가?”
주위를 둘러보며 백의 청년이 외치자 사내들의 이마에 핏줄이 새겨졌다.
아까 어리벙벙해 보이던 백의 청년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사내들은 그런 것을 알 틈이 없었다.
한낱 애송이에게 자신들이 우습게 여겨졌다고 생각하니 분노로 머릿속이 가득 차 버린 것이다.
“너는 누구냐!”
사내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성을 내며 외치자 백의 청년이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러한 모습에 뒤에 서 있던 홍의 여인의 표정에 희망이 감돌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나가던 의협이 넘치는 청년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홍의 여인은 알지 못할 희망을 느끼고 있었다.
주위를 훑어보던 백의 청년이 그들을 직시하며 외치듯 말했다.
“난 독고천(獨孤穿)이다.”
독고천의 말에 사내들은 서로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런 이름을 지닌 고수를 아느냐는 물음이었는데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이 고개를 내젓자 독고천이 그들의 허리춤을 훑으며 물었다.
“검을 쓰는가?”
“그렇다. 우리 용문은 검의 명문(名門)이다!”
사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자신의 문파를 칭찬하기 바빴다. 그러나 독고천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검(劍)과 도(刀) 중에 뭐가 더 좋은가?”
우문(愚問)이었다. 검을 바탕으로 일어난 문파에게 그러한 질문은 말 그대로 우문에 불과했다.
사내들은 독고천이 자신들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문 채 하나같이 눈동자를 희번덕거렸다.
그러자 독고천이 뒤에 서 있는 홍의 여인에게 물었다.
“검과 도 중에 뭐가 더 좋소?”
“다, 당연히 검이죠!”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지만 홍의 여인이 말하자,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쓰다듬었다.
“왜 검이 더 좋소?”
그러한 질문이 나오자 홍의 여인은 입을 다물었다.
이러한 질문을 직설적으로 받으니 홍의 여인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검으로 일어난 점창의 검객이면서, 왜 검이 더 좋냐는 물음에 입이 다물어져 버린 것이다.
잠시 고심하던 홍의 여인이 외치듯 말하려 했다.
“그, 그건 검이……. 앗, 조심해요!”
홍의 여인이 외치며 독고천을 옆으로 밀치려 했으나, 독고천이 슬쩍 뒤로 몸을 움직이더니 뒤로 돌았다.
사내들의 검이 독고천의 몸통을 노리며 찔러 왔다.
당장이라도 독고천의 몸은 검에 뚫릴 것만 같았으나 갑자기 독고천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분명히 베었다고 생각했건만 독고천이 모습을 감추자 사내들이 기겁하며 외쳤다.
“고, 고수다!”
“전열을 갖춰라!”
그러나 사내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독고천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는데, 그곳은 원래 독고천이 서 있던 자리였다.
말 그대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사내들이 침을 삼키며 전열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고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들에게 말했다.
“청목 선배께서 말하시길. 누구든지 한 번의 기회를 주라고 하셨다. 너희들도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물러서거나 아니면…….”
말을 흐리는 독고천의 눈에서 언뜻 귀광(鬼光)이 흘렀다. 그 눈빛에 사내들이 순간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설 뻔했다.
그러나 그들은 검을 움켜쥐며 검으로 독고천을 압박해 갔다. 그러한 모습에 독고천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을 빈틈이라고 생각했을까.
사내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제일 앞에 있던 사내가 독고천의 머리를 베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사내가 힘껏 독고천의 복부를 꿰뚫었다.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에 사내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허상이었다.
자신들이 찔렀다고 생각한 독고천은 이미 옆으로 빠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사내들이 급히 검을 거두며 재차 공격을 하려 했지만 독고천이 한 수 빨랐다.
곧바로 손등으로 사내의 손목을 내려치자 사내가 비명을 내지르며 검을 놓쳤다.
“크악.”
검이 떨어지자 사내는 급히 보법을 밟으며 옆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독고천의 내려왔던 손등의 각도가 직각으로 꺾이며 사내의 턱을 노렸다.
사내가 기겁하며 고개를 숙이자 매서운 손등이 머리칼을 스치며 뒤로 날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옆으로 지나치려던 손등이 갑자기 수직으로 방향이 꺾이며 사내의 목을 내리쳤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신음성도 뱉지 못한 채 널브러졌다.
지켜보던 사내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