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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11화)
第三章 홍의 여인(紅衣女人) ― 검과 도 중에 뭐가 더 좋소?(2)
현란한 보법을 밟으며 사내가 뒤로 물러서며 검으로 독고천을 가리키더니 성을 내듯 외쳤다.
“너, 넌 도대체 누구냐!”
그들은 용문(龍門)의 이대제자였다.
그들 위로 일대제자와 칠룡(七龍), 그리고 장로들이 존재했지만 이대제자들은 감히 무시하지 못할 존재들이었다. 이대제자들은 흔히 영재라 불리는 자들의 집합소였다.
처음에 용문에 입문할 당시에는 오대제자지만 그 후 실력으로 서열과도 같은 항렬이 정해진다.
아예 검술의 재능이 없는 자들은 사대제자로, 그나마 평범한 기재들은 삼대제자 그리고 잠재력이 뛰어난 자들은 이대제자로 들어갔다.
일대제자로는 한 번에 올라갈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검술과 높은 명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대제자와 일대제자들은 미래의 용문을 이끌어 갈 후기지수(後起之秀)라도 불러도 무방하다.
심지어 앞으로 오 년 내에 용문이 구파일방 중 한자리를 꿰찬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용문의 영향력은 거대했다.
사내의 다급한 외침에 독고천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 걸음에 맞춰서 사내는 뒷걸음질 치며 검으로 위협을 했다. 그러나 독고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말했지 않은가.”
말을 꺼내며 다가오는 독고천을 지켜보던 사내가 괴성을 내지르며 검으로 독고천의 다리를 찔렀다.
그러자 독고천은 슬쩍 다리를 들어 올리며 여유롭게 피했다. 그러자 사내가 옆으로 흘려진 검을 재차 찌르려 했다. 그러나 독고천이 들어 올렸던 발로 검면을 거칠게 내려찍어 버렸다.
“크흑.”
사내가 갑자기 꺾인 검에 의해 신음성을 내뱉으며 검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검면을 짓밟은 채 사내를 쳐다보는 독고천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검마저 놓쳐 버린 사내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독고천이 밟고 있던 검이 서서히 땅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마치 묽은 진흙처럼 쉽사리 검이 땅을 파고들고 있었다.
우두둑―
흙이 파이는 소리가 들리며 검이 땅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그제야 독고천은 발을 떼었다.
그리고 경악한 표정을 지은 채 뒷걸음질 치는 사내에게 나직이 말했다.
“난 독고천이라고.”
거만한 독고천의 모습에 사내가 이를 갈며 외쳤다.
“두고 봐라! 꼭 이 원수를 갚겠다.”
외쳤던 사내는 뒷걸음질 치며 도망가려 했다.
그러자 독고천이 쓰러져 있는 사내의 뒷덜미를 잡고 일으키더니 내던졌다.
“동료는 데려가야지.”
사내가 놀라며 날아온 자신의 동료를 받았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독고천과 홍의 여인을 번갈아 노려보더니 신음성을 내뱉고는 숲 속을 벗어났다.
독고천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몸을 숙였다. 뒤에 서 있던 홍의 여인은 멍하니 있다가 독고천의 반응에 놀라며 다가왔다.
“괘, 괜찮아요?”
독고천의 얼굴은 붉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는데 입가가 씰룩거렸다.
여전히 홍의 여인은 걱정스러운 듯 독고천을 살피고 있었다. 사실 독고천은 터지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독고천은 지난 삼 년 동안 은거괴동에서 미칠 정도로 수련을 반복해 왔다.
어떤 날은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고, 또 어떤 날은 다리가 박살 날 것만 같았다.
그러한 나날들이 삼 년이 흘렀고 그 삼 년은 독고천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초 수련이 끝난 후 독고천은 선배들과 비무를 했다.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며 심지어 눈에 흙까지 뿌려 오는 선배들 아래서 독고천은 이를 악다물고 버텨 온 그런 하루하루였다.
물론 자신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도 몰랐다.
항상 선배들에게 무참히 깨졌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전 처음 적으로 보이는 자에게 쓴 자신의 무공. 항상 선배에게 깨져 왔던 자신의 무공이 무림인에게 먹히자 좋아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홍의 여인이 여전히 지켜보고 있었기에 독고천은 헛기침을 하며 애써 웃음을 참더니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험험, 괜찮소.”
“정말 감사해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는지…….”
홍의 여인이 감격스런 표정으로 독고천을 직시하고 있었다. 독고천은 자세히 홍의 여인을 훑어보았다.
비록 헐었지만 척 보아도 고급스러운 의복이었고, 예의가 담겨 있는 행동과 말투였다.
“어쩌다 저런 파락호들에게 쫓기게 되었소?”
독고천의 물음에 홍의 여인이 잠시 고민하는 듯 기색을 보였다. 독고천은 독촉할 마음이 없었기에 조용히 홍의 여인을 직시했다.
그러자 홍의 여인이 자신감이 생긴 듯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점창(點蒼)을 아시나요?”
점창파(點蒼派)는 구파일방의 한자리를 꿰차고 있던 명문이었다.
하지만 오 년 전 십지회(十之會)에서의 비무대회로 결국 구파일방에서 쫓겨나게 된 비운의 문파였다.
점창의 몰락은 팔운(八雲)과 장문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점창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여덟 명의 고수 팔운. 그들이 한 명씩 주색(酒色) 혹은 도박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모름지기 고수가 되려면 심신(心身)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고수들은 쉽사리 주색 혹은 도박에 빠지지 않았고 현혹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빠지기 어렵지만 한번이라도 맛을 들이면 그만큼 헤어 나오기가 힘든 법이다.
점창 전(前) 장문인, 영도훈(英道勳)은 주도(酒道)를 아는 자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했지만, 자제를 아는 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그는 술에 취하기 시작했다.
영도훈의 내공이라면 쉽사리 취기를 억제할 수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그는 서서히 취색에 물들기 시작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던가.
결국 영도훈의 시작으로 팔운들은 하나씩 주색에 빠지기 시작했다.
점창의 재산은 장로원 측에서 관리를 맡고 있었다.
주색에 빠지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팔운들을 비롯한 영도훈은 장로원의 힘 없이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재물로 주색을 즐겼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장로원에서는 영도훈을 비롯한 팔운들을 믿고 있었다.
점창을 구파일방의 수좌까지 올린 영도훈, 한때 점창검왕(點蒼劍王)으로까지 추앙받던 자였기에 잠시 외도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점창은 몰락했다. 서서히.
그리고 결국 구파일방에서 무참히 쫓겨났다.
그리고 운남의 패자였던 점창은 주위 중소문파의 눈치를 보는 수준까지 몰락했다.
하지만 점창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아직까지 절정의 고수인 팔운들과 점창검왕 영도훈이 남아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점창이 십지회로부터 구파일방에서 쫓겨난 다음 날, 영도훈은 방 안에서 목이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
장문인을 믿고 있던 팔운들은 각자 문파를 떠나, 다른 문파들로 흩어졌다.
그 팔운 중 한 명은 점창에 남았다. 그리고 그자는 점창의 제이십삼대(第二十三代) 장문인이 되었다.
그자는 유운검(流雲劍) 장운천(將云賤), 홍의 여인의 아버지였다.
한참을 홍의 여인의 말을 듣고 있던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제 질문의 요지는 이거요. 왜 소저께서 파락호한테 쫓겨 다니는 거요?”
기껏 배경을 설명해 놓았더니 자신의 질문만을 고집하는 독고천을 보자 홍의 여인이 순간 울컥했다.
자신의 처지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문파의 몰락 과정을 눈물을 머금고 말했더니 나오는 반응이 고작 그거였다. 역시 남은 남일 뿐이었다.
“그렇죠! 당신의 질문은 그거겠죠. 그들이 원하는 점창의 신물을 제가 가지고 있으니까요!”
앙칼진 홍의 여인의 대답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홍의 여인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걸려 있을 정도였다.
홍의 여인을 조심히 훑어보던 독고천이 천천히 물었다.
“왜 화를 내시오?”
“당연하죠. 제 문파의 몰락을 말했는데도 안타깝다는 반응 없이 궁금한 것만 물어보잖아요! 남은 남일 뿐이죠. 알아요.”
“당신이야말로 이상하오.”
“……?!”
독고천의 나직한 대답에 홍의 여인이 눈을 부릅뜨고 독고천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독고천이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몰락(沒落)이란 단어는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요. 당신의 문파는 아직 몰락하지 않았소.”
말을 꺼낸 독고천이 잠시 뜸을 들였다. 침묵으로 둘러싸인 숲 속에 새소리가 고즈넉하게 울려 퍼졌다.
잠시 동안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독고천이 신중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단 한 명이라도 점창의 이름을 잇는 자가 있는 한, 당신의 문파는 영원할 것이오.”
두근―
순간 홍의 여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홍의 여인이 스스로 놀랐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던 홍의 여인이 조용히 독고천을 훑었다.
전혀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었다.
물론 꼭 이상형과 이어지라는 법은 없었지만 오히려 반대라고 볼 수 있었다.
홍의 여인에게는 스스로 생각하는 약점이 있었다. 자신의 키가 다른 여자들에 비해 크다며 스스로 자학을 해 왔는데, 그런지 몰라도 아담한 남자를 좋아했다.
특히 동안(童顔)인 남자를 매우 좋아했다.
그에 반해 독고천은 키가 큰 편이었다.
또한 절대 동안은 아니었다.
지나가다가 얼굴만 흘겨보아도 대충 몇 살인지 짐작할 수 있는 얼굴의 소유자였다.
그렇다고 못생긴 것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독고천은 남자답게 잘생긴 편에 속했다.
하지만 홍의 여인의 이상형은 아니었다.
하지만 홍의 여인의 심장은 계속 두근거렸다.
심지어 뺨에서 열이 날 정도였다.
그러한 모습에 독고천이 얼굴을 가까이하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소?”
“괘, 괜찮아요!”
갑작스런 상황에 홍의 여인이 놀라며 외치듯 말했다.
그러자 독고천이 무안한 듯 뒤통수를 긁었다.
그때였다.
갑작스런 인기척과 함께 백의를 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홍의 여인은 놀라며 뒷걸음질 쳤고 독고천은 반가워했다.
“청목 선배, 오셨습니까?”
“그려, 그런데 누구냐?”
청목 노인이 풀숲에서 나오자마자 홍의 여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독고천이 뒤통수를 벅벅 긁더니 홍의 여인에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전 장소연(將少聯)이라고 해요.”
정중하게 장소연이 인사를 하자 청목 노인은 독고천을 흘겨보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독고천의 옆구리를 찌르더니 조심히 물었다.
“아는 사이냐?”
“오늘 처음 뵌 분입니다.”
독고천이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청목 노인이 혀를 차며 장소연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러한 순박한 모습에 장소연도 마주 웃어 주자, 청목 노인이 살짝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청목이라 한다네.”
순간 청목이라는 말에 장소연의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아까 독고천이 말했을 당시 자신이 잘못 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노인이 직접 밝힌 것이다.
만약 이 노인이 자신이 알고 있는 청목이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런 시골에서 썩을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혹시 몰랐기에 장소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사천에서 활동하셨던 칠보권왕(七步拳王) 청목 선배님은 아니시죠?”
“맞는데.”
청목 노인의 대꾸에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아니시…… 네?! 칠보권왕 청목 선배님이 맞으시다구요?”
“맞다니까.”
“그, 그 일곱 번을 움직이면 아무도 당할 자가 없다는 그 청목 선배님이요?”
청목 노인이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소연이 눈을 뜬 상태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독고천은 급히 쓰러지는 장소연을 받아 들고는 청목 노인을 쳐다보며 갸웃거렸다.
“청목 선배가 유명했었던 모양입니다?”
“야, 이놈아. 내가 삼 년 전에 말했지 않느냐. 무림인이 이곳에 오면 뒤처리가 골치 아프다고. 오는 놈들마다 발작을 일으키니 원. 쯧쯧.”
“전 못 믿겠습니다.”
독고천이 혀를 차며 기절해 버린 장소연을 제대로 업었다. 보기와는 달리 장소연의 무게는 의외로 가벼운 편이었다. 그러나 흑심은 없었다.
독고천의 마음속에 무공이라는 단어가 살아 숨쉬기 때문일까.
장소연을 업은 독고천을 흘겨보던 청목 노인이 눈썹을 까닥이더니 앞장섰다. 앞장서던 청목 노인을 직시하던 독고천이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혼절하는 것은 약간 심한 거 아닙니까? 선배께서 그리 대단하신 분도 아닌데…….”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런데 혼절한 놈들은 몇 없었다. 단지 기겁하며 계속 묻고 또 묻기에 내가 손수 기절시킨 놈들은 몇몇 있었지만.”
뭐가 그리 재미나는지 키득거리며 웃던 청목 노인이 주위를 살피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청목 노인이 드디어 찾았는지 나무로 다가갔다. 청목 노인이 손가락을 대고 나무에 무언가를 쓰니 갑자기 나무 앞에 있던 바위에 유려한 필체가 새겨졌다.
은거괴동(隱居怪洞)
유려한 필체를 보고 만족한 웃음을 짓던 청목 노인이 턱짓을 했다.
“들어가자.”
그들이 사라진 숲 속은 고즈넉한 새소리가 메워 주고 있었다.
짹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