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음공 1권(3화)
제1장 일상의 행복(1)
“형수님, 저 왔어요.”
백은은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오늘 우연히 얻은 사냥감인 작은 노루를 마루 한쪽 구석에 내려놓았다.
“도련님,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오늘은 운이 좀 좋았어요.”
“또 그런 말씀! 도련님 사냥 솜씨는 저희 마을에서 제일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한데요? 언제나 운이라니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만일 씨가 섭섭해할 것 같은데요.”
“하하. 사실은 사실이에요. 오늘은 전부터 봐 둔 늑대를 잡았는데 마침 그 녀석이 사냥을 한 참이었는지 이 노루를 얻게 된 거죠.”
백은은 부끄럽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렇다면 더 위험한 늑대를 잡았다는 말이네요?”
“그런가.”
왠지 모르게 백은은 자신의 앞에 있는 형수와 대화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자신인데 지금 이곳에 정착하며 살게 된 뒤로는 그런 자신이 조금씩 변해 가는 것을 느꼈지만 전혀 싫지는 않았기에 자신의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삼촌!”
그런 백운에게 6, 7살 정도로 보이는 한 여자 아이가 집 밖에서 달려와 안겨 왔다.
“우리 이쁜 금령이 재미있게 놀았어?”
“응. 삼촌이 알려 준 비석치기하면서 놀았는데 내가 1등 가장 많이 했다∼.”
어린아이답게 자랑을 하던 금령은 자신의 코를 막으며 백은에게서 떨어졌다.
“삼촌 냄새 나!”
“아! 미안미안. 오늘은 삼촌이 이쁜 금령이 주려고 호두 좀 따 오느냐고 그런 건데, 이건 혼자 먹어야 하나?”
“앗! 아니야. 아무 냄새도 안 나!”
“령아, 그리고 도련님, 나갔다 왔으니 먼저 씻으셔야죠.”
“네∼ 엄마.”
“아, 죄송합니다. 형수님, 그보다 형님은요?”
“오늘은 조금 많이 잡아서 그런 걸까요? 조금 늦네요.”
그녀의 말대로 금만이 늦는 날은 언제나 많은 양의 물고기를 잡아 처리하는 시간이 길어서 늦게 온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마을 제일 미녀로 통하는 화난령을 아내로 둔 금만의 눈에 다른 여자들이 들어올 일도 없을뿐더러 일편단심이었다. 화난령이 술을 사다 주지 않으면 절대로 입에도 대지 않는 그는 주위에서는 언제나 너무나 순진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즐겁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지만 사냥감 손질을 했다지만 요리로 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씻고 잠시 쉬고 계세요.”
“예. 그럼 뒷일을 부탁드릴게요. 형수님. 그리고 아직 형님도 오지 않으셨는데요. 뭘.”
“나는 배고픈데.”
“너무 많이 먹으면 나중에 커서 엄마처럼 미인이 못 되고 뚱뚱하게 될 수도 있어.”
“히잉.”
백은은 기가 죽어 버리는 금령의 모습에 살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방금 자신이 한 말은 솔직히 자신이 말했지만 믿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서 있는 이 어린 소녀는 ‘진짜 금만의 피를 이어 받았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산적같이 생긴 금만과는 전혀 다르게 그의 어머니인 화난령만을 쏙 빼다 박은 듯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 백은 역시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는 이 집의 첫째 아들도 화난령을 닮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무공의 재능을 인정받아 작은 문파지만 그곳에 들어가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아이에 대해서 말을 하면 화난령이 좋지 않은 듯한 표정을 자주 지었기에 자세히는 모르고 단순히 ‘아들이 하나 있구나’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 백은이었다.
“그러고 보면 형님은 형수님 한 분 잘 얻으셔서 아들하고 딸도 잘 얻은 것 같은데요?”
“어머나, 그렇게 말해 주시니 말만으로도 감사한데요.”
“아, 그건 제가 옮겨 드릴게요.”
백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화난령은 살며시 웃으며 백은이 잡아온 사냥감을 요리하러 부엌으로 가져가려 했다. 그녀에게는 무거울 것이기에 백은이 말리며 그녀 대신 부엌으로 옮기고는 아침에 자신이 길러다 놓은 물로 더러워진 몸을 씻기 위해 마당으로 다시 나왔다.
“네 녀석 또 내 욕 했지?”
그런 백은의 눈에 자신의 귀를 후비며 들어오는 금만의 모습이 보였다.
작년만 해도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것은 물론이고, 착한 형수님의 의지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말도 안 통하고 살 곳도 없는 백은을 받아 준 마천 마을 최고의 어부인 금만이었다.
“그냥 형님이 부럽다고 했을 뿐입니다.”
“에잇, 그럼 누가 내 욕을 이렇게 하는 거야. 귀 엄청 가렵네. 부인 나왔어∼.”
백은보다 족히 20㎝는 더 커 보이는 덩치와는 전혀 맞지 않게 애교를 부리며 화난령을 찾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금만의 행동이었다.
18살에 자신보다 2살 많은 화난령과 결혼해 지금은 15살 된 아들 금곤과 그런 첫째와 상당한 나이 차이긴 하지만 7살 된 금령이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아이를 갖고 있는 금만은 마을의 모든 남성들에게 언제나 질투의 대상이었다.
일편단심인 아름다운 부인인 화난령부터 시작해 그의 어부로서의 실력은 그런 원성을 받을 만하였고, 최근에는 백은으로 인해 더 많은 시샘과 부러움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금만뿐만이 아닌 화난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백은으로 인해 그런 시선을 받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이 마을에 고향을 두어 가끔가끔 부모를 보러 오는 한 상인이 있는데, 문제는 그 상인이 아닌 그 상인의 딸 때문이었다.
진풍상단이란 이름으로 손에 꼽을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알아주는 상단이었다. 그런 상단주의 딸이 백은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그녀뿐만이 아닌 파천 마을 대부분의 젊은 아가씨들은 백은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마을에 있는 처녀들이 백은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우선 선이 가는 것도 아니고 사내답게 굵직한 것도 아닌 오묘한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백은이었다. 그렇기에 우선 외모로 여심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첫 번째였고, 백은이 사냥을 잘한다고는 하지만 잘하는 것은 사냥뿐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다시 점수를 얻는 것이었다.
백은이 사냥을 하지 않는 날에는 주로 금만을 따라서 어업을 행한다. 그리고 백은과 금만이 같이 일을 하면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물고기를 잡았다.
대부분 어업으로 먹고사는 마천 마을 사람들이었기에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그들이 볼 때 백은은 금만 못지않은 실력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복을 불러오는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금만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니 백은은 꼭 자신의 사위로 들이고 싶어 한다는 부모들로 인해 마을의 젊은 여성들에게 최고의 사냥감이었다.
거기에 부가적으로 보름에 약 세 번에서 많게는 다섯 번까지 사냥을 나가는 백은은 언제나 푸짐한 사냥감을 잡아와 금만네 가족은 매일같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 역시 백은을 현재 마천 마을 최고의 신랑감이라 부르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캬∼ 나보다 육지에서의 사냥 실력은 뛰어나단 말이야.”
금만의 귀가로 식사를 시작하게 된 금만의 식구들 중 가장 말이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금만이 자신의 부인인 화난령이 따라 주는 술 한 잔과 오늘 백은이 잡아온 노루로 요리한 음식을 한 점 먹더니 평소와는 다르게 백은을 칭찬했다.
평소에는 ‘어부라면 물고기!’라고 외치며 백은에게 지기 싫어하던 금만에게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금만의 행동에 백은은 살짝 웃으며 말하였다.
“거절하겠습니다.”
“내, 내가 머, 뭘 했다고!”
밑도 끝도 없이 거절하는 백은의 행동에 금만이 당황해하였다. 그런 금만의 표정이 웃겼는지 화난령은 술을 따르며 슬쩍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또 누구의 말을 듣고 오신 건가요?”
“아, 아무 일도 없었어!”
금만은 부인했으나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 지기 싫어하는 금만이었기에 누군가가 살짝 그런 금만의 성격을 이용해 백은을 중매 서게 만들려는 것이 분명했다.
“흐음…… 설마?”
“설마 그렇겠습니까. 형수님. 보나마나 또 누군가가 저에게 지고 산다며 옆에서 바람 좀 잡았겠죠.”
“헤앵. 아니라네요. 이 동생님아∼.”
그러나 이번에는 확실히 아니라는 듯이 당당하게 말하는 금만이었다. 성격상 남을 속이지 못하는 금만이었기에 거짓을 말하면 언제나 얼굴로 다 드러났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확실히 방금 전에 백은이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진짜로?”
화난령과 백은이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금만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그건 진짜로 아니야. 그때 이후로는 절대로 그런 짓은 안 한다니까. 믿어 줘, 부인. 오늘 준 거는 오늘 잡은 고기 값으로 사 온 거야.”
뇌물 식으로 무언가를 받아 오는 것을 싫어하는 화난령의 성격을 알고 있는 금만이었다.
전에 한 번 자신이 받은 것이 그런 뇌물이란 것도 모르고 실실거리며 받아 온 것을 자랑하던 금만이 화난령에게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후로도 가끔 그런 일은 있었다. 그만큼 남의 말을 잘 믿고 순진한 면이 많은 금만이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언제나 화난령에게 한소리를 들어서 이제는 아예 다른 사람들이 주는 것은 화난령에게 물어본 후에 받을 정도가 되어 버린 금만이었다.
그러나 오늘만은 정말로 아니었다. 자신이 하루 힘들게 잡아 올린 고기값으로 화난령에게 선물한 노리개가 있었는데 화난령이 그것을 의심한다고 생각하자 평소와는 다르게 빠르게 눈치채고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 그냥 진풍댁 아가씨가 백은 좀 보고 싶다고 해서.”
쉽게 자백을 한 금만의 말에 백은과 화난령, 그리고 금령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지었다.
“하아∼.”
“호호호.”
“응? 나는 그 언니 싫어!”
금만의 말에 백은은 한숨을, 화난령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그리고 금령은 맛있게 밥을 먹던 중 인상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딸들과는 다르게 금령은 ‘나는 커서 삼촌하고 결혼할래!’라고 하며 돌아다니는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백은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은 전부 싫다고 말하는 금령이었다.
“그건 그렇고, 도련님도 슬슬 장가를 가셔야죠.”
“으으…… 이건 축객령인가요?”
“어머나? 그게 그렇게 되나요?”
“…….”
완전 빈말은 아니었는지 말 한마디를 더하는 화난령이었다. 확실히 금만과 화난령에게 있어 백은은 신혼 분위기를 방해하는 존재였다.
백은이 전에 살던 시대에서 보면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부부였기에 셋째를 노려 볼 만했기 때문이었다.
“흠…… 아쉽지만 조금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기회를 놓치면 언제 장가갈지 몰라요.”
화난령은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이 백은을 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백은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닮은 사람들끼리 만나겠죠.”
“그보다 해 보고 싶단 게 뭐야? 어이구, 우리 이쁜 딸 많이 먹어.”
백은의 말에 화난령이 한마디 더 하려 하였지만 다행히 눈치 없는 금만이 중간에 끼어들어 장기전이 될 뻔한 사태는 면하게 되었다. 백은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금만에게 한마디 날려 주었다.
“그건 아직 비밀이에요.”
“쳇. 쪼잔한 놈.”
별것도 아닌 것에 삐친다고 느낀 백은이었지만 그의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는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미소였다.
아마 전에 있던 세계에서는 느껴 보지 못한 가족이라는 정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는 곳이 바로 이 장소이기에 이런 거짓 없는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하는 백은이었다. 그렇게 그날 역시 평소와는 그다지 다를 바 없는 하루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