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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4화)
제1장 일상의 행복(2)


“흠.”
백은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인터넷으로 가끔 괴생명체 등이 등장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백은은 믿지 않았었다. 아니, 인터넷 자체를 그다지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대충 머리기사로만 보던 것과 조금 비슷한 현상이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기에 백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무언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쉐에에에.”
“캬아앙.”
츄우우.
파지직.
백은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눈앞에서 손바닥만 한 고양이와 머리 둘 달린 족히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뱀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뱀도 백은이 보기에는 특이했지만 작은 고양이의 이마에는 고양이 자체가 작아서 그런지 작은 뿔이 하나 나 있다는 것 역시 상당히 신기한 볼거리였다.
작은 고양이와 뱀이 싸운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기도 하지만 일단 크기로 보아하니 절대적으로 뱀이 유리해 보였다. 더군다나 뱀은 두 마리 정도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남을 정도로 두 개의 머리가 엇갈림 없이 움직여 고양이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싸움의 승부는 쉽게 점칠 수 없었다. 손바닥만 한 하얀, 아니 은빛이 나는 고양이의 움직임은 그런 커다란 뱀, 아니 뱀이라기보다는 성인 허벅지만 한 몸을 갖고 있는 구렁이라고 불러도 충분할 놈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피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고양이가 뿔에서부터 번개를 뿜어내는 아주 진귀한 장면을 연출하였기에 승리를 쉽게 점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에 맞게 뱀 역시 독을 뱉어 내기도 하였는데 그 독은 닿는 즉시 돌이건 나무건 모두 녹여 버릴 정도로 위험한 독이었다.
그런 장면을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백은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것들이 분명 영물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백은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곳에 떨어지고 난 뒤로 화난령에게 글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배웠다. 그러던 중 화난령이 마천 마을 사람이 아니며 과거에 작은 문파에 속해 있던 여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백은이 볼 때 화난령은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부잣집 아가씨 같다는 느낌이 가끔씩 들 정도로 언제나 단정하며 교양 있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녀에게서 이 세상의 지식과 익히고 있는 호신용 무공이라는 것을 배우는 도중 영물이라는 것을 들어 보긴 했지만 백은이 들어 본 몇 안 되는 영물 중에는 저런 영물들은 없었기에 난감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형님은 형수님이 무공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지?’
백은이 아는 금만은 다른 이들보다 힘이 좋은 인물이지 무공을 익힌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화난령이 백은에게 무공을 알려 주면서 절대로 금만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였다.
“캬아앙.”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던 백은은 고양이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고양이가 처음 보기보다는 조금 길어진 발톱으로 뱀의 왼쪽 머리에 있는 눈을 하나 긁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뱀 역시 쉽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오른쪽 머리가 고양이의 오른쪽 뒷다리를 물어 버린 것이었다.
“쉐에.”
“캬앙.”
기세 싸움일까? 두 마리의 영물은 치열하게 기 싸움을 하였다. 하지만 분명 불리한 것은 고양이라고 느끼고 있는 백은이었다. 뱀이 독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기에 분명 이번에 물리면서 독이 고양이의 안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백은의 생각대로 고양이의 오른쪽 뒷다리가 독에 중독되어 검게 변하고 있었다.
백은이 보기에는 마치 뱀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뒤로는 조금 일방적이라 할 정도로 뱀이 고양이를 몰이붙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다쳤기에 잘 움직이지 못하는 고양이는 단지 한쪽 머리의 눈이 다친 뱀보다는 싸우기가 더욱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갑자기 두 마리의 영물이 서로 떨어져 노려보기 시작했다.
‘대단하다!’
단순한 짐승들의 싸움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몸이 오싹할 정도로 주변의 기가 움직이는 것이 보통의 힘 대결이 아니라고 느낀 백은이었다.
‘어떻게 해야…….’
두 영물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서로가 잡아먹기 위해서 싸웠다면 고양이가 이기면 저 큰 뱀을 먹기 위해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그사이 도망이라도 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백은이었다. 하지만 만약 뱀이 이긴다면? 성인 남자도 한 입에 잡아먹고도 남을 뱀인데 저런 주먹만 한 고양이야 식후 간식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기에 백은이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 그냥 아까 도망갈걸!’
뒤늦은 후회였다. 호기심으로 인해 도망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백은이었다. 자신이 무공을 배웠지만 처음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은 도망가기에는 조금 뭐한 음공과 그에 어울리는 심법이었고 화난령에게 배운 것 역시 보법이 아닌 ‘사(絲)’라는 실을 이용한 무공이었다.
‘스파이더맨 놀이에는 어울리지만 도망치는 것에는…….’
이곳에 높은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높은 나무라 해도 저 영물들이라면 충분히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 백은은 일단 끝까지 지켜보기로 하였다. 아마 저 영물들의 힘이 빠져 있지 않은 상태라면 자신이 덤벼도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지금은 저렇게 싸우고 난 상태이니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름 승산이 있을 것 같았고, 보기 드문 싸움 구경의 결과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하자 결국 끝까지 구경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백은이 그런 결정을 내리고 있을 때, 고양이의 주변으로는 스파크가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직, 파지직.
그와 반대로 뱀의 주변으로는 스산한 녹색의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주변의 식물들이 죽어나는 것을 보아하니 평범한 독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츠으으으으.
하얀 빛과 진한 초록 빛이 격돌하였다.
“캬아앙.”
“쉐에에.”
하지만 고양이가 밀리기 시작했다. 뒷다리의 고통이 강한 탓이었다. 또한 힘을 이 공격에 모두 쏟다 보니 겨우 멈추어 놓았던 독이 퍼지기 시작했다. 뒷다리에 머물러 있던 독은 어느덧 엉덩이 부분까지 타고 올랐다.
‘왜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은 이미 늦은 생각이었다. 적은 내공이기는 하지만 ‘기’를 유형화 할 수 있는 단계의 깨달음도 있기에 짧지만 백은은 자신의 기운을 다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런 기운을 화난령에게 받은 ‘은사’라는 아주 특별한 실에 주입한 뒤 다섯 손가락을 뱀을 향해 쭉 뻗었다.
손을 뻗음과 동시에 손가락이 아주 작지만 섬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벌써 날이 어두워져 하늘에는 달이 뜨고 있었기에 아주 잠깐 투명에 가까운 은사가 살짝 빛을 반사시켰다.
“쉐에.”
백은의 손가락을 따라 기를 뒤집어쓴 은사가 뱀의 머리가 갈라지는 부분을 노렸다. 그런 살기에 반응한 뱀이 몸을 살짝 비틀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고양이와 힘 싸움을 하고 있었기에 몸을 지탱하는 부분이 갑자기 움직이면 힘이 빠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뱀의 실책이었다. 백은의 힘은 그다지 강한 것이 아니었다. 뱀의 가죽이라면 기가 씌워져 있는 은사라고는 해도 그냥 맞아도 괜찮을 정도였다. 그만큼 백은의 내공은 적었고, 뱀의 가죽은 상당히 질겼다. 그러나 뱀은 적은 살기에 몸이 저절로 반응한 것이었다.
“캬아아앙.”
백은이 만들어 준 기회를 마지막 기회라 생각한 것일까? 고양이가 있는 힘을 다해 뱀을 몰아붙였다.
콰지지지직.
검게 변한 부분이 이제 엉덩이를 포함한 왼쪽 다리까지 다 뒤덮어 버렸다. 그에 비해 번개의 굵기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굵어져 있었다. 절대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듯한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쉐에에에.”
뱀 역시 기운을 끌어올렸지만 이미 기세는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 둘의 싸움을 백은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적은 내공이었기에 그것을 사용하자 이마에는 벌써 송글송글 땀까지 맺혀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은사를 한 점에 모아서 공격했는데 뱀에게 닿은 은사의 끝부분이 독에 녹아 버린 것이었다. 더 이상 고양이를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미 기세는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며 속으로는 고양이가 이기길 빌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뱀이 나쁜 놈 같아 보였기 때문에 고양이를 응원하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뱀을 공격해 불똥이 튈 것 같다는 생각 역시 아주 조금은 갖고 있었지만 말이다.
콰과과과과.
“끼에에에에.”
고양이의 몸에 독이 더욱더 퍼지자 결국 번개는 뱀을 덮어 버렸다.
‘끝났나?’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번개는 화난령에게 들은 무림 고수들의 호신강기라 하더라도 바로 즉사할 정도로 대단한 번개였다. 영물이라 몸은 인간보다 튼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도저히 살아남을 수 있을 만한 번개는 아니었다.
“키이키키.”
하지만 세상은 모두 생각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뱀이 살아 있던 것이다. 뱀의 몸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지만 뱀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고통에 몸을 꿈틀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뱀은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양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을 많이 쓴 것과 뱀의 독에 중독된 것이 이유였다. 인간으로 치면 하반신은 전부 검게 변해 있는 상태였다.
“읏차.”
백은 혼자 뛰어내리면 괜찮겠지만 백은의 등에는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짊어져 있었다.
“어부지리인가?”
영물 하면 내단이라는 공식이 떠오르는 백은이었기에 자신의 부족한 내공을 보강할 수 있는 기회라고 느낀 백은이었다.
‘기연이라는 건가?’
그렇지만 쉽게 다가서질 못하는 백은이었다. 고양이는 언제라도 번개를 뿜을 수 있으며 뱀 역시 아직 죽은 것이 아니었기에 뱀의 독에 닿으면 그 부위를 잘라 내지 않는 이상 자신은 거의 즉사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냐앙.”
힘없어 보이는 고양이의 소리에 백은은 움직이지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위험해 보이는 뱀에게서 시선을 돌려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윽.”
왠지 모를 애절한 눈빛으로 백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고양이는 곧 고개를 돌리고는 앞발로만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듯이 움직이지 않는 뒷다리 부분을 끌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아.”
길게 한숨을 쉰 백은은 고양이의 뒤로 다가섰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박력으로 인해 잘 몰랐지만 가까이서 보니 상당히 귀엽게 생긴 고양이었다. 더군다나 작았기 때문에 더욱더 그 귀여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고양이는 백은을 바라보더니 마치 길안내를 하는 것처럼 한쪽 발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잠깐만.”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명령까지 내린다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기에 백은은 살짝 당황해 있다가 곧 자신의 손가락을 살짝 깨무는 고양이의 행동에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