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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6화)
제2장 쌍칼 해적단과 여인(2)


“으하하하. 어서 마을 하나 털고 돌아가자!”
“옛. 선장님.”
쌍칼해적의 두목인 갈매등은 지금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오늘 우연히 만난 배를 하나 털었는데 운이 좋게도 상당한 노예들을 얻을 수 있었다.
돈은 별로 없었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더욱이 남성들은 몰라도 여성 대부분은 특등품이었다.
더욱이 그들 중에는 말로만 들어 본 색목인도 한 명 있었는데 여태까지 살면서 정말로 처음 보는 미인이었다.
“이름이 뭐라고?”
갈매등은 잡아온 그 순간부터 아무 말도 못하고 떨고만 있는 색목인 여성에게 이름을 물었지만 상대방은 자신의 시선을 피하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년이 미쳤나! 선장님이 말씀하시는데!”
갈매등의 말에 색목인이 대답을 하지 않자. 옆에서 색목인의 몸을 감상하던 얍삽하게 생긴 인물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여성을 때리는 것에서 흥분감을 느끼는 그런 인물이었기에 좋은 기회로 여겨 나선 것이었다.
“이 미친것이!”
퍽.
“커헉.”
갈매등이 그런 자신의 부하를 보자마자 바로 일어나 부하의 얼굴에 솥뚜껑만 한 주먹을 먹여 준 것이었다.
“크흠. 아∼ 미안하군. 아직 부하 놈들이 영 시원찮아서.”
그러며 색목인의 앞에 짧은 다리를 꼬고 앉았다. 물론 눈은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게 만드는 색목인의 몸의 이곳저곳을 훔쳐보기 바빴지만 말이다.
‘우선은…….’
갈매등의 생각은 우선 그녀가 고분고분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일반 미녀들 같았다면 그냥 취한 뒤에도 자신에게 붙지 않으면 그냥 팔아 버리면 되는 일이었지만 이 앞에 있는 여인만은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고 싶은 갈매등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요지부동이었다. 갈매등의 얼굴은 해적단 두목의 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 얼굴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갈매등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 얼굴을 들이미니 당연히 색목인의 여인은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가련한 몸부림은 오히려 갈매등을 더욱더 자극하였다.
‘캬아∼ 저 가련한 표정! 숨길 수 없는 몸매! 천생연분으로 나의 여인이구만!’
갈매등은 자신이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여태까지 여러 미인을 만났지만 그냥 지나친 것이라는 판단에까지 이르렀다.
“으으.”
“뭐야? 너 아직도 있었냐? 썩 나가!”
“예, 옛! 두, 커헉! 선장님.”
“야! 그리고 일 끝내기 전에 여자 건드리는 놈들 있으면 내가 친히 그곳을 잘라 준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선장님!”
다시 주먹을 말아 쥐는 갈매등의 모습을 본 그의 부하는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사라진 부하를 대신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흐흐흐.”
갈매등은 자신의 입으로 떨어지는 침도 알지 못하는지 색목인 여성의 몸을 감상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것은 곧 들려오는 소리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
“으아아아.”
“머, 머리. 끄아악!”
한두 명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 왠지 그 목소리의 주인들은 자신의 부하라는 느낌이 와 닿았다. 한참 즐거운 때를 방해했다는 것이 짜증난 것인지 안 그래도 험상궂은 얼굴이 더욱더 흉악해졌다.
“으으으.”
그러자 색목인 여성은 금방이라도 자신이 잡아먹힐 것 같은 느낌과 밖에서 들리는 비명으로 인해 더욱 겁을 먹으며 이제는 작은 신음 소리까지 내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어떤 잡것인지는 몰라도 감히 내 여자를 떨게 만들어?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 금방 처리하고 올 터이니!”
어느덧 색목인을 자신의 여성이라 칭하고는 선실 밖으로 나가는 갈매등이었다.
“좋은 시간을 방해한 죄로 아주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마. 아! 아니지 빨리 가서 우리 마누라 봐야 하니까 그냥 편하게 보내 줘야지? 운 좋은 놈이구만. 히히히.”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일처리를 하러 가는 와중에도 입 밖으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 갈매등이었다.
쾅.
“감히 어떤 잡것이 이 갈매등 대협, 으이?”
닫혀 있던 문을 걷어차며 선박으로 나가며 자신을 거창하게 소개하던 갈매등의 입이 떡 벌어졌다.
“으으으.”
“허어억.”
“두, 두목.”
“뭐, 뭐야!?”
갈매등의 눈앞에는 약 30여 명의 부하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져서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는 듯한 표정과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두목이라 부르는 것도 잊고 자신의 뒤에서 줄줄이 밀려 나오는 부하들에게 밀렸지만 아무 말 없이 선박으로 밀려나오는 갈매등이었다.
그런 갈매등의 눈앞에는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물속에 들어가면 상당히 추울 법도 한 상황인데 물에 젖은 것으로도 부족해 딸랑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은 바지 하나만 걸치고 있는 인간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여? 저 호구 자식이 내 동료들에게 이런 짓을 한 거여?”
싸움이 일어나면 언제나 거대한 도끼를 들고 가장 앞에서 싸우는 무식이가 자신의 거대한 도끼를 들고는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곧 멈추어 섰다. 그를 멈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작은 휘파람이었다.
“휘익∼.”
“커헉.”
작은 휘파람이지만 무식이 몸을 비트며 그 자리에서 쓰러져 몸을 비틀거리더니 개거품을 물고는 쓰러졌다.
“이런 조금 심했던 것 같군요. 처음 사용해 보는 거라서 말이죠.”
옷은 금만의 배에 놓고 왔고 은사는 옷 안에 있었기에 사용할 수 없었다. 백은은 어쩔 수 없이 음공을 사용하여 무식이를 쓰러트렸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힘 조절을 조금 잘못했다는 듯이 태연하게 작지만 모두 다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백은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백은이 해적선을 발견한 것은 눈이 좋거나 아니면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물이 가득 차 올라오던 도중 금만의 배로 달려드는 거대한 배를 보고 허겁지겁 물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다행히 배는 부서지지 않았지만 거대한 배가 옆을 지나가자 배가 뒤집히며 배 위에 있던 오늘의 수확물들이 전부 다 물속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월화를 데려오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에 머리가 확 돌아 떨어지는 해산물을 주을 생각보다는 손에 기를 넣어 두꺼운 배에 손을 박으며 배 위로 올라온 것이었다.
겉으로 볼 때 상당히 큰 배였기에 처음에는 단순히 물어 달라 하려 하였지만 올라와서 보니 일반 배가 아니었다.
‘해적선인가?’
무슨 만화처럼 돛에 무언가를 그려 넣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딱 해적선이었다.
“여기 해적선인가?”
“뭐?”
“으하하하.”
“저 꼴통은 뭐야.”
“으헤헤, 해적선이냐고 묻는데?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까? 으헤헤.”
백은의 첫마디에 해적들은 배를 잡고 웃어 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도련님은 무슨 일로 이런 누추한 해적선까지 오신 것입니까?”
한참 웃어 대던 해적 중 한 명이 백은에게 비아냥거리며 물어왔다.
“저기 내가 타고 온 배가 이 배로 인해 뒤집어져서 배에 들어 있던 해산물이 전부 바다에 빠졌습니다. 보상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해적선이라는 것을 알자 백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렇지만 우선은 정중하게 말을 하였다.
“야, 야! 이 쥐방울만 한 것이 우리가 누군 줄 알어? 우리는 말이지!”
“쌍칼! 쌍칼! 쌍칼!”
“쌍칼! 쌍칼! 쌍칼!”
“쌍칼! 쌍칼! 쌍칼!”
갑자기 발을 구르며 쌍칼을 외치기 시작하는 해적들이었다.
“하아?”
그런 그들의 유치한 행동은 절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제 알겠어, 도련님? 다시 한 번 물을게. 뭐 하러 왔다고?”
어느새 한 해적이 백은의 앞까지 다가와 노예선과 싸우다가 튄 피가 묻은 소매로 백은의 얼굴에 묻은 물을 닦아 주며 나긋나긋하게 물어왔다.
“저 녀석 남자 취향이었어?”
“그러고 보니 네 녀석도 저 녀석과.”
“무슨 소리여! 나는 예쁜 처자들이 좋아!”
이곳저곳에서 그런 그의 행동에 재미있다는 듯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보상 받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말장난에 백은은 조금 더 힘을 주어 말하였다.
“저것이 미쳤나!”
재미삼아 데리고 놀려 하던 해적들은 백은이 강하게 나오자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한두 번 사람을 죽여 봤던 그들이 아니기에 이번에는 어떻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간을 죽일까 고민하는 해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백은의 앞에 있던 해적이 다음 말을 하자 웃어 대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은 돈이 쪼∼금 부족하니까. 요 앞에 쬐그만 마을 하나 처리하고 나서 얻으면 보상해 드리죠. 도.련.님.”
“와하하! 내가 제일 많이 보상해 드리죠. 도련님!”
“원하면 여자도 가능한데? 낄낄낄.”
“여자는 안 돼! 집에서 기다리는 애들이 몇인데.”
“이 녀석 지 동생 챙기는 것 봐라. 하하하. 끈끈한 애정이여? 아니면 금단의 사랑이여?”
다시 이곳저곳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서걱.
“꺼어꺽.”
“다시 말해 보시지?”
백은의 움직임은 한 치의 오차도 작은 생각도 없이 움직인 행동이었으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자신의 앞에 있던 해적이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어들어 그의 목을 그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분수가 뿜어지듯 뿜어져 나오는 목을 감싸 쥐며 밑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백은을 손가락질하더니 곧 숨이 끊어졌다.
“지금 어느 마을을 건드린다고 하셨죠?”
사신의 웃음이 이러할까? 피 묻은 얼굴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백은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물었다.
백은이 보기에 해적들은 흔히 말하는 건달보다 조금 더 강하거나 거의 그 수준이었다. 만약 저들 중 무공을 익히고 있는 이들이 없다면 자신이 음공을 사용할 경우 머릿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어른과 애들의 싸움 정도라 생각했다.
“미친 새끼! 죽여!”
“죽여!”
해적들은 개떼처럼 백은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백은은 웃음을 지었다.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백은은 작게 중얼거리며 닫았던 입을 열었다. 사일런스의 부활이었다. 그러나 말을 한 백은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단지 서 있을 뿐이었다.
무슨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었고, 요란하게 자세를 잡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입으로 무언가를 쏘아 내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입을 작게 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백은의 행동은 싸움의 시작과 동시에 끝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끄아아악!”
“머, 머리!”
“커헉.”
쿵.
철퍼덕.
갑작스럽게 가판 위에 있던 해적들이 모두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색이며 무취를 넘어 무형의 공격인 음향록에 실린 ‘무음(無音)’이었다. 소리를 내서도 가능하지만 자신이 한국에 있었을 때 사용하던 무음이 가장 익숙하며 가장 자신이 있었기에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바닥 위에서 몸부림치는 해적들을 보며 백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미 이런 것보다 더한 것을 수없이 보아 온 백은이었기에 이 정도는 애들 장난 수준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적들은 그런 백은의 차가운 눈빛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이미 갑판에 모두 머리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대일로 싸울 때는 확실히 강한 위력을 보이는데?”
오히려 한 명에게 몰아서 음을 쏘아 내는 것이 더욱더 어려운 것이 음공이었다. 검이나 도등 일반적인 무기에 기를 주입해서 싸우면 많아 봐야 몇이나 강하고 큰 기술을 사용할 줄 알더라도 많은 양의 내공이 소모되지만 음공은 그 반대였다.
아니, 정확히는 반대가 아니었다. 한 사람에게 모아서 쏘면 조금 더 섬세한 내공 조절이 필요하지만 위력 역시 상당히 강해진다. 또한 보이지 않는 무공이었기에 시각에 의존하는 무림인이라면 아마 백은이 그들의 천적이 된다 해도 맞는 말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요. 해적 여러분들의 현상금이 얼마나 될런지. 안 그러세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기에 백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쾅.
“감히 어떤 잡것이 이 갈매등 대협, 으이?”
첫인상을 그 누가 보더라도 ‘거참 한 인상 하네?’라는 말을 당연히 듣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 백은의 눈앞에 등장하더니 입을 떡 벌리기 시작했다.
“두, 두목!”
백은의 음공에 당했으나 그나마 조금 괜찮은 상태를 보이는 몇몇이 두목을 외쳤다.
“뭐여? 저 호구 자식이 내 동료들에게 이런 짓을 한 거여?”
부하들의 부름에 정작 두목은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그런 두목이라 불린 자의 옆에 서 있던 거대한 도끼를 든 인물이 백은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백은은 사용해 보지 않은 ‘현음(眩音)’을 사용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