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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8화)
제2장 쌍칼 해적단과 여인(4)
“그렇게 된 것이군요.”
“예.”
백은은 화난령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크린 역시 같은 자세로 두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어째서 그녀가 여기에 있느냐? 이유는 얼마 전으로 돌아간다.
백은은 만신창이가 된 해적들과 그들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들을 옆 마을에 있는 관에 무사히 넘겼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려는 백은을 크린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그녀로서는 대화가 통하는 백은이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인식한 것이다.
결국 백은은 관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녀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 분, 마치 자세가 마치 부모님께 혼인 허락을.”
“아아? 아닙니다. 형수님, 절대로 그런 거 아니에요.”
백은은 화난령의 날카로운 지적에 자세를 다시 하여 평소대로 편한 자세를 하였다.
“아쉽네요. 도련님. 도련님께 있어 해양제는 처음 보는 건데 집에서 이 아가씨를 보고 계셔야 하다니.”
“뭐, 어쩔 수 없죠.”
백은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처음에는 그냥 같이 즐기려 하였지만 크린이 사람들을 너무나 두려워했기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피난 아닌 피난을 온 것이었다.
물론 마을 청년들이 크린을 여자로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그녀가 두려워할 만한 일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정말로 딱한 사정을 가진 아이이니 잘 좀 부탁드려요. 저는 남편을 좀 챙겨야 할 것 같아서.”
백은에게 짧게 크린의 사정을 들었던 화난령은 살짝 자리를 빠져나가기 위해 금만의 이름을 꺼냈다. 물론 자신이 술을 마음껏 마셔도 된다고 말을 해 놓고 왔기에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럼 저는 가 볼게요. 아! 죄송하지만 크리니 씨가 생활할 수 있게 옆에 빈방 보이시죠? 그곳 좀 치워 주시겠어요?”
크린이라는 발음이 잘 안 되어 길게 늘여 발음하는 화난령은 자신이 해도 되지만 가만히 있기에는 서먹서먹해 보일 것 같았기에 작은 일을 시키고 나갔다. 솔직히 평소에도 금곤의 방이었기에 꾸준히 청소를 해 놓은 그녀였기에 딱히 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
“…….”
하지만 화난령이 나가자 백은과 크린은 딱히 할 말이 없는지 서먹서먹하게 앉아 있었다. 서로의 사이가 서먹해서였을까? 백은은 먼저 크린에게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물론 자리를 피하기 위한 말이었다.
[나는 잠시 할 일이 있어서. 여기서 쉬고 있어. 그동안 힘들었을 테니까.]
[저, 저도.]
[괜찮아. 그다지 어려운 것도 없는데.]
[하지만.]
[그럼 대화 상대로도 해 줄래? 옆방 좀 치워 달라고 해서.]
[네!]
활짝 웃는 크린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백은은 그녀가 16살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1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성숙한 그녀였기에 백은은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곳까지 둘이 오면서 서먹서먹했기에 이런저런 것을 물어본 결과 그녀에 대한 사정을 알 수 있었다.
크린, 그녀는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백은이 듣기에는 그래도 평민과는 구분되는 귀족 가문이었지만 자신을 노리는 다른 가문과의 싸움에 패하여 가문이 망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상대방은 승리했다는 것과 크린만으로 부족했는지 입은 피해와 가문의 위상을 살린다며 크린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을 처형한 것이었다.
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어릴 적 우연한 인연으로 만났던 마법사에게 얻은 마법 아이템이 반응한 것이었다. 공간전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마법이 발동해서 깨어나 보니 이쪽 대륙에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선 대화가 통하지 않았고, 귀족의 여식답게만 자란 그녀였기에 몸을 지킬 수단과 방법도 없었다.
결국 노예상인에게 잡혀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중 백은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처녀가 더욱더 비싸게 팔린다는 이유로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솔직히 할 것도 없네…….’
고집 끝에 걸레를 들고 있지도 않은 먼지를 닦는 백은은 한쪽에서 자신을 돕겠다며 방을 청소하고 있는 크린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중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일단 입을 열었다.
[크린.]
[네?]
처음 해 보는 일이었고, 일단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이곳은 자신이 느낄 때 좋은 장소라고 느꼈는지 그녀에게서는 겁먹고 있던 표정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을 잃은 슬픔은 감출 수 없는지 즐거움 얼굴에는 슬픈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자 백은은 괜히 말을 걸었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는 말을 하였다.
[내일부터라도 역시 글을 배워야겠지?]
[네. 부탁드려요.]
두 손을 꼭 말아 쥐고는 부탁한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의 행동에 백은은 이제는 괜찮아졌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냐앙.”
“응?”
그때, 백은의 가슴 부분이 들썩거리더니 월화가 귀엽게 고개를 내밀었다.
아까 잠시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던 크린은 아직까지 월화를 본 적이 없었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는 월화는 여성인 크린에게 있어서 크나큰 충격이었다.
[귀, 귀엽다아!!]
크게 소리친 그녀였지만 다가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백은과 오늘 만난 사이였고, 더군다나 남성이었기에 그의 가슴속에 있는 월화를 건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표정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로 고양이를 안아 보고 싶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월화야, 이리 나와.”
영물은 영물이었는지 백은의 말을 잘 알아듣고 날렵하게 백은의 어깨로 올라온 크린은 백은의 목 부분에 얼굴을 부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백은이 자신의 가슴 앞에 펼친 손을 보고는 그 손으로 내려앉았다.
“냐앙.”
백은에게 사랑받기 위해 고양이 특유의 귀여운 울음소리를 낸 월화였지만 월화의 몸은 조금씩 백은과 멀어졌다.
“냥?”
백은은 월화를 크린에게 건네주었다.
[조심해. 작긴 하지만 고양이는 아니니까.]
백은은 크린이 영물이라는 것을 모를 것 같았기에 그냥 조금 위험하다고 말을 해 주었지만 크린의 귀에는 그런 백은의 말이 들리지 않은 듯 풍만한 가슴으로 월화를 꼭 안았다.
“냐냐냐!”
귀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는 그녀의 행동과는 다르게 당하는 월화는 상당히 괴로워 보였다. 만약 남자들이 그런 월화를 보았다면 무시무시한 질투심을 불태웠겠지만 지금 이 장소에는 크린을 불쌍한 아이로만 생각하고 있는 백은만이 있었다.
‘잘된 걸라나?’
방금 전과는 다르게 조금의 슬픈 표정도 보이지 않았기에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백은은 월화에게 미안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냐아앙∼.”
월화의 울음소리만이 금만의 집에 울려 퍼졌다.
제3장 약하다는 것을 깨닫다(1)
마천 마을에 발음이 잘 되지 않아 본래 이름 대신 크리니로 불리게 된 그녀가 온 뒤로 약 30여 일이 지났다. 그런 그녀로 인해 금만의 집 앞으로는 젊은 남, 여성들이 자주 서성거렸다.
크리니의 미소를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한 남성들과 그녀를 견제하기 위한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최근 뜸해지고 있었다.
발음이 좋은 것은 아니나 그럭저럭 짧은 문장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크리니로 인해 백은이 다시 일을 나섰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말을 잘 하지 못할 때는 며칠에 한 번씩 사냥만 할 뿐이었다.
어업은 전부 금만이 했기고 백은은 쉬거나 금령과 놀거나, 매일 같은 시간에 크리니에게 말을 알려 주는 반복과 크리니의 노력으로 인해 얼마 전부터는 조금씩 일을 나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은 얼마 가지 못했다.
따각따각따각.
다섯 마리의 말과 온몸을 백색으로 도배한 듯한 옷, 그리고 말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검. 한 무리라고 하기에는 조금 적기는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있어 사람 같지 않은 무림인들이 마천 마을에 찾아온 것이었다.
무림인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얼굴을 얇은 면사로 가리고 있었지만 드러난 눈매와 확실히 겉으로 보이는 몸매는 누가 뭐라 해도 여성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정확하게는 그녀들이 타고 있던 말들이 마천 마을의 약초꾼인 대득이 앞에서 멈추어 섰다.
“이 마을이 마천 마을이 맞습니까.”
차가웠다.
봄으로 들어서며 따뜻한 날씨가 되었지만 대득이는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한기로 인해 몸을 한차례 떨고는 뒤늦게야 자신을 쏘아보는 듯한 다섯 쌍의 눈을 느끼고는 빠르게 큼지막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럼 혹시 이곳에 백은이라는 자가 어디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
얼굴을 가렸으나 분명 미녀라고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크리니와도 몇 번 대화를 나누어 미녀와 대화를 할 때마다 정신을 못 차린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대득은 지금만큼은, 자신의 앞에 있는 미녀 여성들로 추정되는 자들에게만큼은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저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다 보면 끄, 끝에서 세 번째 집이 백은이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조금 더듬기는 했지만 대득은 자신의 머리가 그런 위치까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것보다는 자신을 무시하며 지나가는 여성들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철컥.
그런 대득의 앞에 작은 주머니가 하나 떨어졌다.
“허억.”
그런 주머니를 열어 본 대득은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금전도 하나 들어 있었고, 은전만 해도 약 십여 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대득은 그런 돈을 들고 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런 돈을 받는다면 왠지 모르게 백은을 팔아넘긴 것 같아서였다.
그런 대득의 행동도 곧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다섯 여성들의 뒷모습으로 인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있다가 갖다 줘야지.”
대득은 마천 마을의 약초꾼인 대필이의 유일한 자식이었고, 상당히 소심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