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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9화)
제3장 약하다는 것을 깨닫다(2)
“햐∼ 오늘도 많이 잡았네. 그건 그렇고 네 녀석은 힘들지도 않냐?”
평균적으로 잡는 날보다 많이 잡은 날이었기에 기분이 좋아진 금만은 오늘 역시 같은 질문을 하였다. 항상 같은 질문을 한다며 백은에게 한마디 들어도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하는 금만에게는 그것 역시 하루의 일상의 일과 중 하나였다.
“지겹지도 않아요, 형님? 안 힘들어요. 사내가 고작 몇.시.진 물속에 들어갔다가 녹초가 되는 게 더 웃긴 일이죠.”
“애이! 재수 없는 놈. 잘난 척은.”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금만의 입에는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오늘 백은이 잡은 조개 속에 있던 진주로 인해 화난령에게 진주 목걸이를 만들어 줄 수 있게 된 것이었기에 조개를 잡은 순간부터 일이 끝나는 내내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지워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목걸이라 해도 조금 세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만한 돈은 있어요?”
“응? 어, 어!? 아무튼 방법은 있으니까 걱정 마.”
무언가 숨기는 듯한 금만의 행동에 백은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이쁜 우리 색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는 먼저 간다!”
그런 백은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도망치듯 백은에게서 달아나는 금만이었다.
“수상해.”
금만이 화난령에게 무슨 용돈을 타는 것을 본 적도 없을 뿐더러 돈을 빼돌리는 것 역시 본 적이 없기에 더욱더 수상하게 느끼는 백은이었다.
“뭐, 집 팔아먹을 형님은 아니니 괜찮겠지.”
바람직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할 것이라 생각한 백은 역시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진 금만을 따라 천천히 뛰었다.
“응?”
언제나 나타나는 이 길을 돌아보며 나란히 늘여 있는 길의 끝에서 세 번째 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백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집이 더욱더 눈에 띈 것이 문제였다.
“사람들이 왜 앞에 모여 있는 거지?”
요즘은 뜸해진 마을 남녀들의 방문 아닌 방문인데 오늘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부족해 이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생물이 있었다.
“말?”
살짝 의문을 느낀 백은은 좀 더 빠르게 뛰어서 금만의 집으로 들어섰다.
“형수님, 금령아, 그리고 크리니, 저 왔어요.”
백은이 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보자 수군거렸다. 그러나 길은 잘 열어 주었기에 백은은 쉽게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백은의 눈앞에는 다섯 명의 백의 여인들이 서 있었다.
“삼촌!”
“오라버니.”
금령과 크리니가 무언가 불안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백은에게 달려왔다. 누군지 묻고 싶었지만 말이 서툰 크리니와 아직 어린아이인 금령이었기에 딱히 질문을 하지 못한 백은은 그나마 이 집안에서 가장 똑똑한 화난령이 어서 나와 주길 바랐다.
자신이 찾아 들어가고 싶었지만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백의 여인들로 인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백은의 눈에는 그녀들의 허리 옆에 신체의 일부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서 와요, 도련님. 여기 이분들은 도련님 손님이라는데요?”
부엌에서 금만과 나란히 나오던 화난령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백은은 살짝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당신이 백은이라는 사람입니까.”
묻는 듯한 말투가 아니었다. 당연한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동명이인이 없다면 아마 맞을 텐데요.”
“그럼 한 가지만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천 마을의 축제 중 하나인 해양제의 둘째 날 쌍칼해적단을 잡은 백은이라는 자가 당신이 맞습니까.”
안 그래도 이 일로 상당히 말이 많았었다. 단순히 힘만 좋고 착실하기로 알았던 백은이 크리니를 처음 데려올 때 그냥 짧게 우연히 만나서 데려왔다는 말을 했었다. 지금은 옆 마을에 친지나 친우가 있는 이들이 백은이 해적들을 잡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놀랐지만 그냥 그들의 거짓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서 ‘나 무림인이오’라는 기운을 마구 뽑아내는 무림인들이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그런 거짓이 왠지 모르게 사실로 와 닿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
“대답이 없으신 것을 긍정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잠시 따라와 주셨으면 하는군요. 이곳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는 않으시겠죠.”
살기였다.
백의 여성들 중 백은에게 말을 걸던 여성이 백은에게 강한 살기를 품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살짝 당황하고 있던 백은은 자신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녀는 감자기 몸을 멈칫거리더니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는 백의 여성 뒤로는 왠지 모르게 양아치들에게 끌려가는 힘없는 학생 같은 모습을 한 백은과 그런 힘없는 학생 같은 백은을 둘러싸고 움직이는 우두머리의 부하들이 있었다.
***
여인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중의 하나로 공터가 조금 넓게 나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가끔 전쟁놀이나 무림인을 흉내 내는 등 아이들의 놀이장소인 곳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공을 익히신 것으로 보이는데 무슨 무공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
“확실히 이런 것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실례로 알고 있었지만 대답을 안 해 주시는군요. 그럼 어느 종류의 무공인지라도 알려 주시겠습니까.”
“…….”
그런 그녀의 말에도 백은은 입을 열지 않았다. 무공을 알려 준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기를 놓고 싸움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잠시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인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백은에게 출수했다.
“큭.”
날카로웠다.
눈에 보이는 단순한 찌르기였지만 자신이 피하는 쪽으로 검이 따라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백은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맞아 줄 생각은 없었다. 살기가 없다면 몰라도 검에는 살기가, 아니 그녀의 몸 자체에서 전체적으로 살기가 뿜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할 수는 없다!’
백은은 빠른 판단을 내렸다.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같이 공격하거나 아니면 막거나였다.
날을 세워서 찔러 오는 공격이었기에 백은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과거에 암살을 할 때 사용하는 단검이나 이곳에 와서 화난령에게 조금 배운 실을 이용한 무공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 질기디질긴 은사조차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갖고 있었다. 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고스트37’에게 배울 때 이곳저곳 베이며 느낀 것은 자신이 베지 않으면 베인다는 점과 등잔 밑이 어둡다는 점이었다. 생각 외로 가까이 있다면 살짝 닿기만 해도 베일 정도의 예기를 지닌 검이 아니라면 오히려 힘을 최대치로 받지 않은 휘두름을 받을 위치가 가장 가까운 곳이기에 오히려 베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었다.
백은은 검의 옆면을 슬쩍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빠르긴 하였지만 자신이 한발 앞섰기에 한 방을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백은만의 착각이었다.
파앙.
조금 짧은 곳에서부터 타격을 시작했지만 상대는 여성이었고 몸이 강철로 된 거인이 아닌 인간이었기에 충분한 타격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백은의 공격 따위는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달려오던 그 속도 그대로 옆으로 피해 버렸다. 그러자 오히려 백은의 옆구리가 완전히 비어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백은을 노리지 않고 슬쩍 물러났다.
“본 무공을 꺼내지 않으면 내 검에 죽을 것이다.”
방금 전과는 말투도 기운도 완전히 변했다. 백은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흘렀지만 그런 것은 이미 백은의 감각에 끼어들지도 못했다.
몸이 살짝 떨려 왔다.
강하다.
아니, 이 세계에서는 어쩐지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말을 하면 그녀는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다. 거의 일방적이라는 싸움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초식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기본적인 공격으로 백은을 계속 노렸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방을 노리지 않았다. 아마 백은에게서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 같은 그녀의 행동이었지만 그 외의 공격은 백은을 봐주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백은의 몸은 이미 칼에 베인 상처가 가득했다.
“막거나 피해라. 그렇지 않으면 진짜로 죽을 것이다.”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의 주위가 요동치듯 소란스러워졌다. 그녀는 더 이상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는 듯이 기운을 뿜으며 방금 전까지와는 다른 기수식을 취했다.
검을 자연스럽게 내려놓은 상태였지만 압도적인 힘이었다. 그러나 백은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혹시 잡은 해적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무공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아하니 자신의 무공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 됐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드는 머리를 차갑게 식힌 백은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할까라는 것까지 생각해 보니 답이 나온 것이었다.
‘약해서였군.’
그렇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핑곗거리만을 찾는 것이었다. 딱히 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생사고비를 많이 넘겨 온 인물인가? 따지고 보면 많이 넘겨 오긴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무공과 일반인 간의 싸움 때일 뿐 무림인과 싸워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차피 죽는다. 그렇다면 한번 써 봐도 상관없겠지.’
지금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라고는 음향록뿐이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음공은 사용하지 말라고 몸이 경고했지만 어차피 죽을 거 사용하고 죽나 그렇지 않고 죽나 마찬가지였다.
‘끝까지 발버둥 쳐 주지.’
자신이 다리에서 뛰어내리며 작게 중얼거렸던 말이 떠올랐다.
“난 살고 싶다고!”
“빙마참!”
“하아아.”
변질된 백은의 기운에 여인은 처음으로 초식명을 말하며 달려들었다. 그런 그녀와는 다르게 백은은 부드러운 소리만을 내뱉었다.
파바방.
여인의 검이 백은에게 접근하기 전에 무언가의 벽에 부딪친 듯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흐아아아!”
“아아아.”
여인은 기합을, 백은은 좀 더 높은 고음을 부르듯 소리를 높였다.
쩌저저적.
채앵.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크게 공터에 울렸다.
“커헉.”
주변은 이미 하얗게 변해 있었다. 빙공의 힘이었다. 그러나 백은은 그런 것에 볼 겨를도 없었다. 몸의 기혈이 뒤틀렸고, 정신은 이미 혼미해지고 있었다. 입으로는 한 모금의 피를 토해 냈다. 백은의 몸이 점차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은의 앞에 있던 여인은 백은의 목 앞을 겨누고 있던 검을 빠르게 회수했다.
철컥.
깔끔한 소리와 함께 차가운 예기를 뿜어내던 검이 검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