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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10화)
제3장 약하다는 것을 깨닫다(3)
“북해빙궁의 검광빙화 빙화린이다.”
백은은 자신의 귀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살려 두시는 것입니까? 음공을 사용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한 여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언성을 높이며 말을 하였다.
“이자는 그 녀석의 무공을 이은 자가 아니다.”
“…….”
빙화린의 말에 말을 그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솔직히 백은과 싸운 검광빙화 빙화린을 제외하고는 딱히 음공에 무언가가 맺힌 인물들은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다. 물론 빙궁에 나이가 있는 인물들 중 몇 명은 있다. 하지만 빙화린의 제자일 뿐인 이 여인들은 빙화린을 비롯한 빙궁의 몇몇 인물이 왜 음공을 싫어하는지 사건의 정확한 전말은 모르고 있었다. 하나 확실하게 아는 것은 음공을 지독히도 싫어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음공이란 말을 듣고는 그 먼 빙궁에서 이곳까지 단숨에 온 것이었다. 혼자 가겠다는 빙화린을 그래도 빙검대의 대주인 여인이었기에 혼자 보낼 수 없다며 급하게 따라붙은 빙검대 1대 제자 4명의 여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상대방이 음공을 익히고 있는지 아닌지를 직접 확인하러 그녀가 움직였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아니라 하면 아닌 것이었다.
검광빙화 빙화린!
무림에 몇 번 나온 적은 없는 인물이었다. 나왔어도 빙궁에 대한 일로 나온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소문은 상당했다.
그녀가 나왔을 때, 그녀와 검을 나눈 이들이 말하길 그녀를 여성이라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인 실수라는 말을 하였다. 싸움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여를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 무림인들이었지만 그녀와 검을 나운 이들이 대부분 강호에서 알아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작은 입소문으로 인해 점차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이었다.
그런 말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제자들이 그녀가 강호에 나올 때 따라 나왔기에 그런 제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추측해 보면 그녀는 말 그대로 검 하나에 미쳐 있는 여인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어진 별호가 검광, 그리고 그 뒤에 붙은 단어는 차갑도록 날카롭지만 그녀의 검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빙화였다.
“아마 그 무공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겠지.”
빙화린은 작게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자신이 나약한 탓에 잃어버린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하나뿐인 스승을 빼앗아 간 무공! 그것이 음공이었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었다. 평화롭던 북해에 한 색마가 나타난 것이 시발점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는 음공으로 빙궁의 여인들을 농락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런 일은 계속되었다. 거기에 빙화린 역시 그 색마에게 당할 뻔하였다.
빙화린이 어릴 적, 검이 최고의 병기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자신이 알던 언니들이 몇몇이 그런 색마에게 당해서 복수를 하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만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홀려 버린 것이었다. 내공으로 귀를 막았지만 그의 음공은 마치 가슴속을 파고들듯이 파고들어 와 자신의 정신을 빼앗은 것이었다. 그때 자신이 사라진 것을 알고 찾아온 스승이 그런 색마와 싸우게 된 것이었다.
그 강하던 스승과 막상막하로 싸우는 색마를 본 빙화린은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하려 했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런 둘의 치열한 싸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변수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빙화린!
아무런 말도 없이 나온 빙화린을 따라 그녀의 스승인 북해나찰 빙소은 역시 자신의 제자가 자주 하던 말을 떠올리며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지리 짐작해 나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북해빙궁에서 지원군이 빠르게 오지 않았지만 색마는 그런 상황을 몰랐기에 빠르게 처리하고 빠져야 한다는 생각에 빙화린을 노린 공격을 하였고, 그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빙소은이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빙소은의 공격으로 이곳저곳이 만신창이가 된 색마였기에 그런 색마는 힘없이 쓰러져 있는 그녀를 처리하고 가기로 생각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빙소은이 생각한 것은 동귀어진이었다.
색마가 유리하긴 하였지만 다 죽었다고 생각한 여인이 설마 진원진기까지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색마와 빙소은은 같은 날 죽게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빙소은은 색마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오죽했으면 검광빙화가 무림에 나오면 색마들이 무덤 속에라도 숨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더욱더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음공이었다. 세상에 음공이 나온 적은 몇 번 없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주루 같은 곳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이 유혹하기 위해 조금씩 배우기는 하지만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 외에 강호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몇 번 나온 음공은 가히 두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무공들뿐이었다. 일대일이건 일대다수건 상관않고 퍼지는 죽음의 소리는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어줍잖은 음공을 익히고 세상에 나오는 것은 오히려 독이었다. 잘못하면 무림공적으로 몰리기 쉬운 대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선 이자를 데리고 돌아간다.”
“궁으로 말입니까?”
“아니, 방금 전의 그 집으로.”
“예.”
한 여인이 백은을 들어 올렸다. 내공을 사용했기에 자신보다 큰 남성인 백은이 무겁지도 않다는 듯이 번쩍 들어 올렸다. 하지만 제자들은 빙화린의 굳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단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절대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제자들은 언제나 당당한 스승으로 인해 전혀 빙화린의 생각을, 아니 표정조차 보지 못하고 그녀의 등만을 바라보며 백은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빙화린이 저지른 이 작은 실수로 훗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말이다.
***
“다녀오세요.”
“알겠어. 동생 좀 잘 부탁해.”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요.”
오늘도 어김없이 집을 나서는 금만은 보름이 넘도록 집 밖으로 아니 방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으려 하는 백은을 자신의 부인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는 터덜터덜 걸어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향했다.
백은의 일이 신경 쓰여서일까? 최근 고기도 잘 잡히지 않는다고 느끼는 금만이었다.
“애휴∼ 저 녀석 어서 정신 차리지 않고 뭐 하는 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가.”
혼자 작게 중얼거리며 그물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금만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최근 부진한 고기잡이에 더욱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집 밖까지 따라 나와 바라보던 화난령은 골목을 돌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금만에게 자신 역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럼 도련님 식사라도 가져다 드릴까.”
방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백은에게 손수 식사까지 가져다주는 화난령이었다. 처음에는 식사조차 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집안의 실세인 화난령이 부탁 아닌 부탁을 받자 식사는 챙겨 먹는 백은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잠시 방 밖으로 나와서 밥을 먹을 뿐 그 외에는 다시 자신의 방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조용히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백은이었다.
“도련님. 식사하세요.”
그녀는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그래도 백은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듯이 언제나 금만과 같이 밥을 먹던 백은의 밥을 따로 챙겨 주었다.
“매번 죄송합니다. 형수님.”
어떻게 보면 웃긴 말이었다. 미안하면 금만과 같이 식사를 하면 될 것인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따로 식사를 했다.
“괜찮아요. 저는 도련님을 믿으니까요. 하지만 연장자로서 작은 충고를 하나 하자면 어떤 길을 걸어갈지 확실하게 결정하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백은의 철없이 고집 부리는 듯한 행동에 오히려 미소를 지어 주는 화난령을 보자 백은은 더욱더 죄책감을 느꼈다.
“잘 먹었습니다. 형수님.”
“예. 그럼 들어가서 쉬세요.”
인사를 한 백은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몸에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백은은 17일 동안 한 번도 정리해 놓지 않은 이불위에 몸을 던졌다.
“하아∼ 한심하다. 정말.”
알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마 그녀가 없어지지 않았다면 힘들긴 하겠지만 백은은 평상시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느낀 강력한 패배감에 분명 한동안 슬럼프 같은 것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긴 하지만 거기까지일 것이다. 언제나와 같은 일상생활에 자신이 익히고 있는 무공을 조금 더 발전시키는 식으로 노력하려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유는 다름 아닌 크리니로 인한 일이었다.
크리니 그녀가 북해빙궁으로 향한 것이었다.
백은이 기절해 있던 3일간의 일이기에 정확하게는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나 화난령의 말로는 크리니가 빙공에 뛰어난 신체이기에 검광빙화 빙화린이 자신의 제자로 삼겠다는 말이 오고갔다는 것이었다. 물론 선택은 크리니 그녀가 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일은 17일 전으로, 아니 15일 전의 일이었다.
***
“크리니, 꼭 가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녀는 당신이 따라가지 않는다고 저희들에게 뭐라고 할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화난령의 말리는 듯한 말에 크리니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화난령을 지나쳐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아 누워 있는 백은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라버니.”
기절한 후로 아직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도 한 몫 하였지만 단순한 기절이 아닌 대결로 인해 상처까지 입어 더욱더 야위어 보이는 백은의 옆에 그녀는 조용히 무릎 꿇고 앉아 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강해지고 싶다.
자신이 살던 곳에도 마법이나 기사 등이 있어서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그런 자들을 무림인이라 칭한다는 것을 솔직히 백은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날 처음으로 알았다.
해적 사건에 대해서는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솔직히 백은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있던 크리니였다. 그저 단순히 자신을 잘 챙겨 주는 오라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다쳐서 돌아온 것을 보는 순간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유 역시 듣고 보면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과거에 있던 어떤 사람의 기술을 혹시 익히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 크리니였다. 자신이 있던 곳도 그랬다. 힘이 없는 자는 결국 힘 있는 자에게 항상 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백은을 이렇게 만든 여인이 자신이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반드시, 반드시 강해질게요.”
그녀는 일어나지 못하는 백은의 얼굴을 보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백은의 얼굴과 가까워졌다.
옆으로 흘러내리는 머리를 그녀는 자연스럽게 귀 뒤로 쓸어 넘기며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백은의 입술에 갔다 붙였다. 어릴 적, 몇 번 책으로 보았던 왕자님과 공주님의 입맞춤이었다. 입장이 바뀐 것이 조금 우스운지 그녀는 첫입맞춤의 달콤함을 빠르게 잊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깨어나길 바랐다.
동화책에서처럼 마지막으로 가기 전에 그와 눈을 마주하고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현실과 상상의 세계는 확실히 달랐다. 크리니의 눈앞에 있는 백은은 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다녀올게요.”
들리진 않겠지만 크리니는 마지막으로 백은의 손을 한번 꼭 잡고는 방을 나왔다.
금만의 집 앞에는 마차가 한 대 준비되어 있었다. 말을 탈지 모른다는 말에 말을 팔고 마차로 준비를 해 온 것이었다.
“그럼 가지.”
“예. 잠시 동안이지만 신세를 졌습니다.”
“아니야. 크리니도 건강하게 지네고, 가끔 연락도 하고, 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우리 도련님 생각해서 몸 생각을 가장 많이 해야 해. 그리고 거기 그쪽 분 크리니 너무 힘들게 만들면 안 돼요.”
언제나 같이 변함없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화난령은 자신을 노려보듯이 바라보는 빙화린에게 말을 하였다.
“그럼 가기 전에 한 가지 말하겠습니다. 저희 빙궁은 고아들이 상당히 많고, 그런 고아들에게는 빙의 성씨를 선물하게 되어 있습니다. 크리니도 원한다면 새로운 이름을 지어 줬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들 가족으로 빠르게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빙화린 자신은 괜찮으나 궁에는 분명 그녀를 따돌릴 인물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자신들과 같은 성씨를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녀를 잡아 두기 위함도 있었다.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최근에는 없다고 생각한 빙령체를 만난 것이었다. 빙공을 익히는 속도부터 빙공에 관한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혼란 없이 받아들인다는 지금은 전설이나 다름없는 신체가 이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궁주인 빙천검후 빙나련은 극한빙체라는 신체로 궁주의 핏줄로만 전해지는 신체로 역시나 궁주에게만 전해지는 빙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극한빙체도 한계가 있었지만 그런 한계를 뛰어넘은 신체가 빙령체였다.
“그렇다는데 크리니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지금 이름이…… 아니 잠시만요.”
부모님께서 지어 준 이름이었기에 자신의 이름을 고집하려던 크리니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 크린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최근 바다가 너무 좋아졌다. 바다뿐만이 아닌 이 마을도.”
“왜요?”
“마을 사람들은 나에게 모두들 가족 같고, 바다는 내가 가장 처음으로 이곳에 온 장소이니까.”
“빙은해(氷恩海).”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바닥에 쓰는 크리니였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화난령이 말하였다.
“도련님과 같은 은(恩) 자겠지?”
크리니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께는 제가 잘 말해 놓을 테니. 부디 몸조심히 다녀와.”
화난령은 잘 가라는 말 대신 갔다 오라는 말을 하였다.
“여기가 크리, 아니 은해의 집이니까.”
“조심해서 다녀와.”
“언니, 나중에 놀러 와.”
“예. 모두 건강하게계세요.”
크리니, 아니 이제는 빙은해가 된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자신을 배웅하는 금만의 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이 길은 자신이 정한 것이지만 마지막에 화난령이 해 준 말로 인해 결국 빙은해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자신의 집이라는 그 한마디로 인해 돌아서는 다리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다시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강해져서 자신이 모두를 지킬 수 있게 되면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한 빙은해는 마차에 올라탔다.
‘내 손으로 지킬 거야.’
다시 한 번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빙은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