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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11화)
제3장 약하다는 것을 깨닫다(4)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자신에 대한 물음에 백은은 대답한다.
― 나 때문에 그녀가 떠난 것 같아서겠지!
‘너의 무엇 때문에 떠난 것이라 생각하지? 그녀가 떠난 것은 그녀의 선택이라고 하던데?’
― 그녀는 그렇다 해도 내가 인정을 못해서다!
어두운 공간에서의 대화는 조금씩 백은의 길을 만들어 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끝에 작은 빛이 보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지 않을 건가?’
― 아니, 존중하지만 내가 직접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빛이 길게 선을 그리며 백은의 앞으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백은은 천천히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그렇다 해도 너에게는 방법이 없지 않아?’
여태까지 수십 번, 자신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질문이 나왔다. 그러자 가는 빛의 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빛의 길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런 것 때문인지 천천히 걷던 백은은 자리에서 걷던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흔들리는 가는 빛의 선을 바라보았다.
― 왜 방법이 없지?
빛으로 된 선의 흔들림이 사라졌다.
‘있었다면 벌써 움직였을 거 아니야?’
자신의 질문에 살짝 미소를 지은 백은이었다. 그것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너무나도 쉬운 답을 여태까지 찾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스스로 이런 질문을 내게 만든 것이었다.
―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돼!
강력한 빛이 백은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 빛은 빛의 길이 굵어지며 뿜어져 나오는 빛이었다. 잠시 빛에 시력을 빼았겼던 백은은 시력을 되찾자마자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걷는 것도 잠시였다. 입가에는 미소를 짓던 백은은 빛을 향해 뛰어갔다. 이미 길은 하나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였다. 그 골인점을 향해 빠르게 뛰어가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누워 있던 백은의 눈이 떠졌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끊임없는 고민 끝에 약하긴 하지만 주화입마의 길로 빠질 뻔한 것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무공 실력 상승한다거나 하는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을 깨달은 백은이었다.
“도련님, 식사하세요.”
그리고 그런 백은의 귀로 듣기 좋은 화난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형수님.”
백은의 입에도 미소가 걸리며 그녀의 말에 예전의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어머?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실 건지 정하셨나 보네요?”
백은의 달라진 모습에 화난령은 그가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예. 어렵겠지만 바보같이 뒤로 물러서는 짓은 이제 그만두려고요.”
“흠…… 그런가요?”
“예. 그렇지만 전에 형수님이 해 주신 말씀으로 인해 조금 큰일 날 뻔했지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가요? 저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화난령은 백은의 말이 무엇이라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백은에게 말하였다.
“그럼 우선 든든하게 식사부터 하셔야죠?”
“예. 오늘도 감사히 먹겠습니다.”
화난령이 차려 준 음식을 먹으며 백은은 슬쩍 화난령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해야 좋을까?
화난령은 무언가 묘한 느낌을 주는 형수님이었다. 남들이라면 놀라거나 그럴 일도 언제나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처음에는 작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조언으로 인해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어 주는 여인이었다.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예? 아, 아니요. 그냥 좀.”
백은의 말에 화난령은 조용히 미소만을 지었다. 아마 지금 화난령이 무슨 말이든 했다면 백은이 난감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조용히 미소만을 짓고 있더니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손바닥을 쳤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녀의 말에 백은은 정확하게 답을 내려 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어두운 공간에서 본 것은 자신이 도착해야 할 종점이었을 뿐 중간중간의 과정은 아직 정확하게 짜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고생한 것이 전부다 그 중간 과정으로 인한 것이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이뤄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아 여태까지 방구석에만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그게 오히려 잘못된 것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를 뒤로 물러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아직 정확하게 답은 나오지 않네요. 딱히 제 무공에 대한 스승님이 있는 것도 아니라 홀로 배운 것이라…… 그렇지만 여태까지와 같이 뒷걸음질 치는 것은 그만두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만 나아가도 버거운 판국에 뒷걸음질이나 치고 있다니…… 크리, 아니 은해에게 미안한 짓만 했네요.”
북해와는 어떻게 보면 거의 반대쪽에 떨어져 있는 곳이었기에 빙은해가 자신의 소식을 들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만약 들었다면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그런 것일 거라는 생각에 자신 못지않게 자괴감에 빠질 것이라 생각한 백은이었다. 그만큼 빙은해는 마음씨가 착한 아이라고 백은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흠…… 그렇다면 제가 조금 도와드릴까요?”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화난령이었다. 더군다나 가문도 없어졌다고 말했던 그녀였다. 만약 그런 여건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다면 백은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작은 신뢰도 같지 않았을 것이지만 화난령이 그런 말을 하자 자신의 길을 탄탄하게 다져 줄 것 같다는 생각에 수저를 내려놓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사람이 아닌 형수님이라면 오히려 제가 무릎 꿇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데요?”
“너무 부담스러운데요? 그럼 식사를 끝마치시고 옷가지만 조금 챙겨서 잠시 따라오시겠어요?”
“예.”
그런 그녀의 말에 백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솔직히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익힌 음향록을 되짚어 본다거나 아니면 실전식으로 강호로 뛰어나갈까도 생각해 본 백은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는 스승이 없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고, 지금 자신과 같은 실력으로 강호에 나간다는 것은 석유통을 짊어진 상태로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던 백은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일단 무공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빙은해를 만나서 데리고 오는 것이었는데 자신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어차피 자신 스스로 종점에 이르기까지는 힘들다고 생각했기에 믿음이 가는 화난령이 도와준다는 말을 하자 바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
백은은 화난령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다.
“실은 제가 좋은 것을 발견해서요.”
마을을 전부 돌아본 적은 없었으나 분위기상 이런 곳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곳이었다.
“아! 여기예요.”
마치 무언가에 막혀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신기한 장면이 백은의 눈앞에 들어왔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드는 곳이 상당히 많았다고 느꼈던 백은이었지만 그건 단순한 느낌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느낌이 아닌 시각에 보일 정도로 확실한 이상 현상이었다.
“신기하죠? 진법은 처음 보시겠지만 이런 진법도 있답니다.”
“그, 그렇긴 한데 형수님은 어떻게 이런 곳을.”
“딱히 집에 있어 봤자 할 것도 없어서 가끔 산책을 하거나 하는데 그때 운 좋게 찾은 거예요.”
“그, 그런가요? 그럼 이곳에 들어가 보셨나요?”
백은은 자욱한 안개가 일정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앞으로 나와 그것을 만져 보려는 듯이 손을 내밀며 화난령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화난령은 그런 백은의 질문에 생뚱맞은 대답을 하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도련님. 뒷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툭.
“어?”
언제 자신의 뒤로 온 것일까? 전혀 느끼지 못한 사이에 자신의 뒤로 돌아온 화난령은 안개를 쿡쿡 찔러 보는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하던 백은을 안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작은 힘이었지만 백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바로 앞으로 쓰러지듯 들어간 그였지만 화난령의 눈앞에는 처음과 같은 안개만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곧 바람이 부는 것과 동시에 바람에 흔들리며 안개의 형태가 자유스러워졌다. 그것뿐이 아닌 숲도 점차 모습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럼.”
화난령은 그런 백은을 뒤로하고 다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산을 조금 내려온 화난령은 올라오던 도중에 백은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돌에 살짝 손을 올려놓았다. 그녀의 손에서 작은 빛이 나오더니 돌에 흡수되듯 빛이 돌로 옮겨 갔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돌이 한순간 빛이 남과 동시에 빛은 바로 사라졌다.
“이런 곳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말투로 말하던 화난령은 뒤돌아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산을 내려갔다. 그녀는 내려가는 도중 몇 가지 숲에 있는 돌이나 나무 등을 건드리며 처음 돌과 같은 일을 하며 내려왔다. 산을 다 내려온 화난령은 치마의 끝자락에 무언가 묻었나 확인을 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빛이 방금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바뀐 것은 그런 눈빛만이 아니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평상시의 화난령으로 돌아온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서둘렀다. 조금 있으면 그의 남편과 예쁜 딸이 돌아올 것이기에 그 전에 해야 할 몇 가지 일을 끝내야 다음번 백은을 만날 때 자신의 소중한 가족들이 아무런 의구심 없이 만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녀는 한 남편의 아내이자 두 아이를 가진 평범한 여성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