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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13화)
제4장 수련(2)


연습 도중 어둠에게 들었던 말을 백은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 전해라. 세상의 모든 것에게 너뿐만이 아닌 세상이 느끼도록 너의 감정을 그것이 음공이다.
“아아.”
그러고는 목을 살짝 풀었다.
조용히 눈이 감긴다.
조용히 세상이 감긴다.
그리고 조용히 세상이 잠기기 시작했다.
“하아아.”
박자도, 특별한 음도 없었다. 누구나 낼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낼 수 없는 백은만의 소리가 어둠 속을 잠식해 나갔다. 주변의 모든 것이 동요하고 있었다.
‘이건 무엇일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백은은 느꼈다.
지금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은 어둠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 역시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호기심’이라는 것 하나로 서로가 엮기고 엮긴 것이었다.
‘뭘까?’
자신이 부르면서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한 백은이었다. 무엇인지 모르기에 알고 싶고, 무언인지 모르기에 두렵다.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백은은 생각했다.
‘더욱더 다가가야 해.’
무언가 잡힐 듯이 잡히지 않았기에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백은이었다. 두려움도 많았지만 그런 두려움 역시 호기심이었다.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호기심에 두려움이 발생한 것이다.
무섭지만 무섭지 않은 느낌이 백은을 뒤덮었다. 그러자 조금씩 백은의 ‘소리’가 줄어들었다. 주위가 웅웅거리며 방금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에 조금 더를 외치고 있었지만 여기까지였다.
“후우.”
마지막으로 길게 숨을 내쉰 백은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표정은 마치 이건 어땠는지 어둠에게 묻는 것 같았다.
― 다음으로 내야 할 것은 네게 가장 부족한 것이다.
통과란 말은 없었지만 통과였다. 그러나 다음에 나온 것이 문제였다.
“극과 극이네. 그것보다 일단 지금 느낌부터 다시 한 번 느껴 보고, 내공도 없으니 운공도 다시 하고.”
잠이라는 것이 없어졌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백은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잠을 대신해 유일하게 자신에게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운공 시간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으며 백은은 생각했다. 아마 이번 잠은 푹 들 거 같다고 말이다. 처음이기에 힘 조절도 부족했고, 분위기에 휩쓸려 조금 무리한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푹 잠들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몸이 지쳤기에 아주 달콤한 잠이 될 것이라고.

***

백은은 자신이 이렇게나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금만의 집에 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빙은해를 잃은 것으로도 슬픔이나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분노라는 이런저런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자기 스스로의 만족감으로 지금은 나아가고 있다.
백은은 조금 궁금하기도 하였다. 과연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딱히 관객이라고 해 봤자 형태가 없는 어둠뿐이었다. 더군다나 어둠은 질문만 남길 뿐이기에 남들이 어떻게 듣는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백은이 전혀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 딱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라.”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다. 과거에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현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의 즐거움에 취해서 사랑이란 것을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자신이 가장 못할 것 같다는 감정으로 두려움을 선택했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가장 어렵다고 느꼈지만 지금 생각하니 왠지 지금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백은이었다.
“아아. 편법이라도 없나.”
앞으로도 못 간다면 돌아서라도 가고 싶은 것이 백은이었다. 백은이 편법을 생각한 이유는 이 장소에 어떤 사람이 올지 몰랐을 것을 대비해 무언가 편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사람에게 감정이 없다는 것은 가능할까? 물론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일부의 사람들이 자신에게는 그런 감정이 따위는 없다고 하는 말은 솔직히 거짓일 것이다. 아니, 단지 느껴 보지 못했기에 자신에게 그런 감정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백은 자신 역시 즐거움 같은 감정도 없다고 생각했다. 두려움 따위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즐거움이란 감정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느꼈고, 두려움 같은 것은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분명히 사랑이란 것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법은 다 다르다.
‘응?’
왜 그런 모르겠으나 갑자기 어둠이 자신이 헤매고 있을 때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이라…… 사랑을 좀 더 넓게 표현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만 나가는 것이 아닌 백은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보았다. 좀 더 넓게 바라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형수님이 도와주시네.’
잠시 잡생각이 들었지만 이 정도는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 백은이었다. 왠지 모르게 이번에도 화난령이 해 주었던 말로 인해 뒤로 한번 돌아봄으로써 길을 찾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찾을 수 있어.’
명상하듯 잠이 든 백은의 근처로 식사용 일명 맛없는 항아리라 이름 붙인 항아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런 항아리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횟수는 점차 많아졌지만 백은은 전혀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야위거나 무언가 변하는 것은 없었다. 마치 시간이 백은만은 지나쳐 가는 것 같았다.
아마 다른 무림인들이 본다면 놀라워할 만한 집중력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실속은 단순히 자신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작지만 현재 백은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큰 것이었다.
백은의 눈이 떠졌다. 명상을 할 때와도 같은 어둠이 눈앞에 있지만 눈이 떠진 것만큼은 확실했다.
“아아아.”
어둠이 살짝 동요했다. 하지만 짧은 동요일 뿐이었다. 지금 백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에 들어 본 감정이었다. 어둠의 짧았던 동요는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백은이 표현하는 감정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 마치 물감에 새로운 색을 첨가하여 조금씩 색이 바뀌어 가듯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어둠 역시 백은의 소리에서 시작되는 감정에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음공은 본래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탄생되었다. 그렇지만 사람의 일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둘씩 약자의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약하기 때문에 강해져야 했고, 강해지기 위해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찾아내기 시작한 끝에 음을 이용한 싸움법이 만들어진 것이 음공이다. 음공은 적은 양으로도 여러 사람을 쓰러트리며 남이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뛰어난 장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법이다. 근접에 대한 취약한 약점을 보였다. 그런 끝에 근접에 대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보법이다.
어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둠 속에서 뿌옇게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으로 보이는 인물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빠져들기 시작하자 마치 그 인형의 움직임은 춤사위를 보는 것 같았다.
― 만천변화보(萬天變化步)라는 만 가지 하늘의 변화라는 뜻이다. 그럼 시작이다.
긴 설명도 없었고, 내공 운용 방법도 알려 주지 않았다. 그저 백은의 앞에 사람의 발자국 하나가 생겨났다. 새하얀 빛을 내는 발자국은 마치 어서 자신을 밟아 달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백은은 망설임 없이 일단 밟아 보았다.
“응?”
일 보에 단전에 있던 내공이 살짝 꿈틀거렸다. 작은 변화였지만 수없이 많은 명상을 치른 백은으로서는 그런 자신의 변화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보다 자신이 밟은 빛의 발자국 앞에 다른 발자국이 나타났다. 그것으로 시작이었다. 마치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걸어가는 것을 따라가는 것처럼 백은은 계속적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나는 발자국을 밟아 나갔다
“이, 이거 언제 끝나는 거지?”
분명 자신이 처음이기에 오래 걸릴 거란 생각은 했지만 적어도 방금 전의 인형이 움직인 것만큼은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빛의 발자국은 계속 이어졌기에 백은은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백은이 몰랐기에 이런 말을 내뱉은 것이었다.
만천변화보! 말 그대로 만천변화보였다. 말로는 만 가지지만 익히게 된다면 단 일 보를 걷더라도 수없이 만은 길이 있기에 어떻게 보면 끝이 없는 보법이었다. 백은은 그런 것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공도 안 움직이고, 이크.”
잠시 잡생각을 하던 중 간단해 보이는 발자국을 밟으려던 백은은 왠지 모를 어색함에 넘어질 뻔하였지만 운동 신경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조금 걱정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첫 보를 내디뎠을 때 빼고는 내공의 움직임도 없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움직이지 않았다면 괜찮겠지만 첫 보를 내디뎠을 때는 내공이 살짝 움직였다는 것이 상당히 신경 쓰였기에 잡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발자국을 따라 밟는 것뿐이었다. 결국 다시 수련의 시작이었다.

***

얼마간 발자국을 따랐는지 모르겠다. 맛없는 항아리를 먹은 것이 대충 30번이 넘었기에 10일은 훌쩍 넘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이상해.’
그렇다. 정말로 이상했다. 분명히 눈앞에 있는 발자국이지만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쉽게 생각하고 그것을 밟으면 꼭 넘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내공 운용법을 몰라서 그런가?’
단순히 겉핥기 식으로만 따라 한다고 무공을 따라 할 수 있다면 아마 무림인들은 자신의 무공이 보여지는 순간 그곳에 있는 인물들을 살인멸구하기 바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바로 내공의 운용법이 각자 다르기에 겉모습만 따라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가 있다. 그렇기에 남의 무공을 함부로 따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천변화보는 그렇지 않다. 내공 없이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각 상황에 따른 수십, 심지어 수백 가지의 길을 몸으로 익히는 단순한 연습뿐인 보법이었지만 전혀 예상치도 못한 길이 있기에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기는 충분한 기술이었다. 그리고 변화가 각기 달랐기에 본다고 따라 할 만한 보법이 아니었다. 물론 몇 가지는 필요상 따라 할 만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흐음.”
백은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다시 명상에 빠졌다. 보법을 연습하던 중 알아낸 것은 맛없는 항아리가 나오면 발자국은 사라지고, 식사가 끝날 때쯤 되면 사라졌던 곳에 다시 발자국이 생겨난다는 것과 자신이 필요할 때 보법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명상을 하여도 아무런 일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백은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인간의 형태를 인형이 춤을 추듯 보법을 밟던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한 번 본 것을 무조건 기억하는 그런 능력은 없지만 대충이나마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유일한 단서인 그때의 기억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백은은 눈을 떴다.
‘설마…….’
설마 하고 생각하던 백은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발자국을 밟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무언가 느낌이 다른 발자국이 나타났다.
자신이 과거에 ‘고스트37’에게 배울 때 그가 했던 말 중 하나가 피하는 것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기에 백은은 무의식중에 발자국을 따라 움직이려던 몸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몸의 반응을 따르려 하는 것이었다. 춤을 추듯 움직이는 보법이었기에 몸을 빙글 돌기도 하던 움직임이었다. 백은이 자신의 잘못된 점을 찾아낸 것이었다. 백은은 가장 빠르게 닿을 수 있는 방법으로 발자국을 밟았던 것이 그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몸을 낮추어 빙글 돌듯 발자국을 밟아 갔다. 자신이 느낄 때는 이상했지만 몸은 편하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성공하자 백은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발자국을 밟아 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잘못된 이유는 백은이 몰랐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조건이었다. 피할 방법이 수십 가지이듯 공격하는 방법도 수십 가지이다. 상대방의 키나 체격 등이 같다 해도 그 장소에서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였다. 이곳을 만든 자의 심술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 것인지 상대방이 공격하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기에 백은은 단순히 빨리 밟을 생각만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백은은 아직까지도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이 보법이 춤과 닮았다고 생각하며 몸에 정신을 맡기고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