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음공 1권(14화)
제4장 수련(3)
백은의 움직임이 점차 보법에 맞추어져 갔다.
그리고 보법이 점차 백은에게 맞추어져 갔다.
조금씩 둘이 하나가 되어 가자 어둠 속에 작은 빛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닮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닮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손에는 각자 들고 있는 거도 다 달랐다. 검, 도, 창, 편 등등 마치 무기 모음편이라 해도 좋을 만했다.
하나, 둘 생기던 것이 점차 그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의 수평선을 보듯이 끊임없이 이어진 빛의 인형의 행렬! 하지만 발자국은 조금씩 그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던 빛의 인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이 찔러 오고 도가 베어 오고, 주먹이 날아왔다.
살기가 없는 공격이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들이 백은을 노려 왔다. 조금씩 적응을 하던 백은은 몸이 적응되었는지 빛의 인형들이 움직임을 보이기 전에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작지만 공간의 움직임이 백은의 신경으로 전달되어 온 것이다. 그렇기에 움직임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훈련은 그런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단순한 보법의 수련이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다른 것을 습득하게 된 백은이었다. 그러나 빛의 인형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백은이 성장하자 마치 자신들 역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인지 그들의 공격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은의 발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빛의 발자국보다 먼저 백은의 발이 바닥에 닿기 시작했다. 처음과는 다르게 백은이 빛의 발자국을 쫓는 것이 아닌 빛의 발자국이 백은을 쫓는 형상이 되었다.
‘움직여라!’
무엇인지 모르게 자신의 몸속에 백은은 말하였다. 그러자 백은의 몸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던 내공이 꿈틀거렸다. 첫 보를 내디딜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잠시 자석에 쇠붙이가 끌리는 것과 같이 내공이 보법에 반응하여 살짝 움직였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내공이 어서 자신을 사용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백은은 그런 내공을 해방시켰다. 내공이 멋대로 움직이긴 하지만 그것은 규칙적으로 몸의 혈도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한 보, 한 보마다 내공은 최대한 백은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자신의 길을 찾아 움직였고, 그런 느낌이 백은의 몸속에 조금씩 기억되어 갔다.
― 다음 단계의 시작이다. 보법에 맞추어 음공을 펼쳐라.
자신의 보법에 자신이 취해 있던 백은이었지만 어둠의 말만큼은 확실히 귀에 와 닿았다.
힘들었다. 내공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기에 호흡도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보법 하나에 이렇게나 많은 내공이 들어가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백은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백은 자신이 자신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았다면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운 춤사위였다. 그리고 아직 정확한 운공법을 몰랐기에 필요 없이 많은 양의 내공이 보법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백은은 단순히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와중에 노래하라니 솔직히 환장할 지경이었다.
호흡이 고르지 않는 상태로 노래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백은은 어둠의 말을 따랐다. 싸움을 할 때에 상대방이 자신이 지쳤다고 봐 줄 위인이 몇이나 될 것인가? 아마 좋다고 달려들지 않는다면 그게 다행일 것이었다.
“하아아.”
백은을 기준으로 조용한 음이 어둠을 뒤덮어 갔다. 그리고 빛의 인형들이 점차점차 백은을 뒤덮어 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육체가 고생하는 훈련의 시작이었다.
***
내공의 운용과 상당한 움직임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지쳤다. 그런 상황에 음공을 펼친다는 것은 더욱더 힘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조금씩 익숙해지자 내공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은 변화였다. 자신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백은은 조여 오는 빛의 인형들이 더욱더 많아진다고만 생각했다. 이제는 단순한 공격에서 마치 무공을 펼치는 것같이 조금 섬세해진 공격을 가해 왔기 때문이었다.
“허억허억.”
내공도 부족하고, 체력도 부족했다.
퍼억.
“컥.”
잠시 흐트러진 사이에 검을 들고 있던 빛의 인형이 백은의 목을 가격하였다. 하지만 운이 좋은 것이라면 좋은 것일까? 실전이 아니었기에 목이 잘려 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통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 강했다. 결국 백은이 쓰러지자 빛의 인형들이 백은을 둘러싼 상태로 자신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백은에게 겨누었다.
“졌다.”
인형들은 웃고 있었다. 마치 백은의 패배를 비웃듯이 말이다.
“윽.”
목을 어루만지며 발끈하는 백은이지만 내공이고, 체력이고 모두 바닥난 상태였다. 더군다나 요즘 들어 몸을 너무 움직여서 공복감도 자주 찾아왔다. 하지만 아직 맛없는 항아리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도 많이 남아 있기에 백은은 명상에 빠졌다. 지겹도록 단순한 패턴이지만 조금씩 무언가를 습득해 간다는 것에서 작게나마 즐거움을 찾고 있는 백은이었다.
한동안의 명상을 끝낸 백은은 눈을 떴다. 그런 백은의 시선에 맛없는 항아리가 들어오자 백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가 항아리를 열어 맛이 없는 식사를 하였다. 양도 적었기에 소화를 시키는 데 드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보법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움직일 때의 호흡과 음공을 펼치는 것이 조금 어색한 상태였다. 백은 스스로는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수련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는 뜻은 아직 백은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뜻이다.
백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다시 하나, 둘 불이 켜지는 것같이 빛의 인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빛의 인형이 어느 정도 생겨나자 백은이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런 백은의 움직임에 빛의 인형들도 백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아아하아.”
백은의 목에서 소리가 퍼져 나가자 백은에게 달려들던 빛의 인형들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것이 인형이기에 이렇게 반응한 것이지 만약 어줍잖은 무림인이었다면 벌써 피를 토하고 쓰러질만한 음공을 퍼부은 백은은 무언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느낌대로 지금 펼친 음공은 확실히 잘못되어 있었다.
지금 백은의 상태는 단순히 힘이 넘치기에 보법과 음공이 조화를 이룬 것 같아 보일 뿐이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단순히 힘으로 조화를 끌어내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둘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어둠은 원하고 있었다. 한 보 한 보에 맞게 몸을 움직이며 그에 맞게 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된다면 더욱더 힘을 분배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기에 장시간 싸움에 유리할 수 있다.
백은은 음공을 멈추고는 한동안 보법으로 빛의 인형들 사이를 지나다녔다. 그리며 잠시간 호흡을 고른 뒤 다시 음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처음과 다르게 약한 힘으로 음공을 펼쳤다.
작게 움찔거리며 백은에게 달려드는 빛의 인형들! 하지만 백은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공격을 피했다. 어떻게 보면 생쥐 같다는 표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릴 정도로 요리조리 빛의 인형들 사이를 파고드는 백은이었다. 가끔은 손을 이용해 빛의 인형들을 밀어내는 동작까지 취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인 음공의 호흡과 보법은 좀처럼 융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딱히 조언이 필요한 것이 아닌 자신의 호흡에 맞추는 것이기에 단순한 반복에 반복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백은 역시 잘 알고 있기에 훈련을 계속할 뿐이었다.
얼마간 빛의 인형들과의 박진감 넘치는 사투가 있었지만 그것도 곧 끝나 버렸다.
퍼버벅.
가슴과 양팔, 그리고 양쪽 허벅지를 다섯 명의 봉을 든 빛의 인형이 백은이 미처 피할 기회도 주지 않고, 뛰어난 합공으로 가격한 것이었다.
“크윽.”
말로 표현 못할 고통이 몸을 엄습해 왔다. 여태까지는 기껏해야 한 군데를 한 번만 맞으면 끝이었는데 처음으로 다섯 군대를 한 번에 두들겨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대자로 누운 백은은 고통을 호소하며 푸른 하늘 아닌 검고 어두운 어둠을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 사이로 하얀 이물질 같은 빛의 인형들의 무기가 눈에 들어왔다.
“졌어.”
잠이 오지는 않으나 왠지 이렇게 누우니 한숨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백은이지만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쓰러진 것이 조금 분했는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또다시 빛의 인형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번 역시 몇 수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으윽, 가, 갑자기 잘 싸우는 것 같은데.”
사실이었다. 백은이 아무것도 모르기에 이렇게 맞는 것이었다. 백은을 공격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합격진이었다. 무림인들의 내공을 기준으로 해 작은 진법을 구축하는 것뿐만 아닌 내공이 필요 없는 단순한 연계공격만으로도 보법이 완벽하지 않은 백이었기에 빈틈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연이어 하는 공격에 백은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졌어.”
쓰러지기 무섭게 백은은 자신을 조여 오는 무기들에 패배를 시인했다. 그 다음도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의 다음도 거의 몇 수 견디지 못하고 백은은 계속 쓰러져 갔다. 수십 번 넘도록 계속 도전하던 백은은 결국 고통을 호소하며 또다시 쓰러졌다. 이번에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충격에 대한 데미지는 거의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정신적으로 좀 타격이 컸다. 거대한 대도를 마치 야구 선수가 배트를 풀스윙하듯 휘둘러 백은의 배를 횡으로 깔끔하게 날려 버린 것이었다.
“또 졌다.”
몇 번인지 모를 패배에 백은의 의지는 조금 꺾였다.
‘뭐가 잘못된 걸까?’
자신 역시 그들의 움직임을 조금은 미리 알고 피해 왔지만 지금은 상대방들 역시 자신이 움직일 곳을 알고 공격해 온다는 것으로 인해 자신이 피할 곳이 가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만천변화보라도 완벽하게 익혔다 하더라도 움직일 곳을 읽힌다면 그들의 공격에 계속 몰릴 뿐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백은의 움직임이 읽히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읽히는 것이 아닌 백은이 피할 곳을 점차 줄여 가는 것이 맞았다.
한 보에 실린 균형과 힘, 그리고 상대방의 위치와 그런 상대방이 자신의 어디를 공격하느냐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 것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지만 빛의 인형들이 펼치는 합공 역시 상대방이 잘 피하는 것을 염두해 두고 만든 것이었다.
물론 그것과는 반대로 힘의 증폭을 위한 것을 위해 만들어진 합진도 있었지만 지금의 백은에게 그런 것까지는 사용하지 않았다. 타격을 받아도 비슷할 정도의 타격만을 받았고, 더군다나 백은이 맞상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작 당사자인 백은은 그런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거기에 이 전체적인 진법은 만든 자 역시 만천변화보를 알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백은은 길을 읽힌 상태에서 상대방과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왜 못 피하는 것일까?’
무엇이 잘못되어 못 피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백은이었다. 상대방의 공격이 마치 반 박자 빠르게 파고 들어와 자신이 못 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문제는 그것을 ‘피해 낼 방법’이었다.
‘피한다고?’
고개가 살짝 갸웃거렸다.
‘왜 피하기만 해야 하지?’
답의 실마리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백은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보법에 맞추어져 보법을 따라 계속 피하기만 하였다. 거기가 문제점이었다. 반 박자씩 빠르게 공격해 오는 합공에 대응할 방법이라고는 무리해서라도 내공을 끌어올려 이동 속도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확실히 속도는 빨라지겠지만 내공의 소모가 많아져서 장기간의 싸움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반 박자 빠른 공격을 피해야 하지?’
백은도 알고 있다. 그들이 어디를 노리는지를 말이다. 한마디로 물고기가 그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하는 자신이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물을 찢고 탈출하던지 아니면 그물이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수밖에 없었다.
‘찢는다? 막어?’
그렇다. 자신이 피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자신의 공격이 겨우 상대방을 움찔거리게 할 정도밖에 되지는 않았으나 그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다. 그러자 한 가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생겨났다. 다시 의욕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지금은 눈앞에 나타난 맛없는 항아리가 먼저였다.
“뭐 조금 생각할 것도 있으니 잠시 생각 좀 할 시간을 갖을까?”
백은이 생각한 것은 빛의 인형을 노릴 수도 있지만 그들이 노려오는 타격점을 노리는 것을 생각한 것이었다. 사람을 노리는 것이 더욱더 효율적이겠지만 잠깐 움찔거리는 것으로 끝나는 빛의 인형들에게 만약 무기를 노려 그것이 성공하게 된다면 빛의 인형을 노릴 때보다 피할 시간이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만 죽지는 않을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뭐 죽을 만큼 아프겠지만.”
식사를 마친 백은은 자신이 할 일을 명상으로 한번 확인해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실험해 볼 차례였다.
백은과 빛의 인형들은 금방 뒤섞여 싸우기 시작했다. 빛의 인형들도 처음부터 합격진을 펼치진 않았다. 하지만 슬슬 백은이 잘 피해 나가자 잠시 빛의 인형들이 조금 뒤로 물러났다. 백은이 볼 때, 끼리끼리 모이는 것같이 무리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은의 눈으로 보이는 만천변화보의 길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얼마 안 됐다. 빛의 인형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백은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려 한 것인지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백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서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덤벼 보라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친 백은의 훈련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