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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16화)
제4장 수련(5)


이제는 익숙해진 표정 없는 빛의 인형을 상대로 백은은 분발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음공과 아직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실을 활용하여 빛의 인형 군단과 대적하고 있는 백은이었다. 아직까지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백은 혼자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실과의 타협 상태로 이름 모를 실을 사용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타협이었기에 가끔 이런 일도 일어나곤 했다.
“큭.”
생각했던 방향으로 실이 움직이지 않는 일이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실이 백은에게 예기를 뿜어 백은의 손을 노렸기에 실의 출발점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전체적인 길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도 한, 두번이 아니었는지 백은은 능숙하게 대처했다. 그러며 어둠에게 부탁해서 청각을 막고선 수련을 하고 있었기에 조금 느린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뒤에서 해 오는 공격까지 피한 백은은 슬쩍 자신을 공격한 빛의 인형을 밀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말 좀 들어!”
안 그래도 힘들었기에 백은은 실에게 화를 내며 내공을 주입했다. 그러자 실은 백은의 내공을 며칠 굶은 사람이 소면을 먹는 게 아니고 삼키듯이 백은의 내공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먹보 자식!’
기를 주입하지 않아도 단순히 실의 예기만으로는 검기에 뒤쳐지지 않았기에 그냥 훈련을 해도 괜찮았지만 이 실은 끊임없이 백은에게 내공을 원했다. 그렇다고 백은의 내공을 이용해 검기처럼 더욱더 날카로워지기라도 하면 괜찮을 것이었다. 하지만 내공만 먹고 나 몰라라 하는 태도에 백은은 실을 상당히 얄밉게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자신은 쉽게 빛의 인형에게 밀릴 것이 뻔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내공을 주입해 주는 백은이었다.
‘청각 봉인하지 말걸!’
언제 다시 말을 들을지 몰랐기에 백은은 일단 서둘러 빛의 인형들을 상대했다. 물론 빛의 인형의 수는 끝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현재를 바라보며 열심히 달려야지!’
하지만 그런 것도 얼마 안 가서 봉에 한 대 맞고 비틀거리다 몰려드는 빛의 인형의 끊임없는 구타에 쓰러지고 말았다.
“삭신이 다 쑤신다.”
노인들이나 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백은이었지만 사실이었다. 맷집이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맞을 때마다 항상 비슷한 고통으로 와 닿았다. 마치 자신의 맷집이 늘어나는 만큼 빛의 인형들의 힘도 강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요즘 들어 실력이 늘지 않았다. 아니, 완벽한 제자리걸음이었다.
멸마곡을 통한 수련으로 실과 주변에 있는 것을 이용해 악기를 만드는 방법을 터득했다. 물론 연주 가능한 곡은 멸마곡 하나뿐이었다. 백은이 무슨 연주를 배운 것도 아니었기에 단지 이번에 배운 멸마곡이 연주 가능한 유일한 곡이었다. 하지만 곡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청각을 키움으로 인해서 한 가지 늘어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소리를 구분하는 방법이었다. 작은 소리 하나하나 섬세하게 구분이 가능했으며 다른 것은 몰라도 소리를 기억하는 것만큼은 천재가 된 것같이 한 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백은이었다.
― 한 가지 확인을 위해 청각의 봉인을 풀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실력이 쌓이면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만 하였던 어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으로 어둠이 무언가를 확인해 보겠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 악기진을 펼쳐라.
빛으로 된 숲이 생겨나자 백은은 어둠의 말대로 빠르게 움직이며 ‘멸마곡’을 연주할 수 있는, 정확하게는 그 어떤 곡이라도 연주할 수 있는 ‘악기진’을 펼쳤다. 처음에 할 때는 단순히 아무렇게나 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그것 역시 일종의 진법으로 상당한 규칙이 필요했다.
― 지금부터 내는 음을 찾아서 같은 음을 내어라.
어둠의 말이 끝나자 비슷한 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처음에는 하나의 음만이 나왔지만 가면 갈수록 음의 수는 많아졌고, 비슷하고 닮은 것이 일반인들이 들었다면 몇 가지는 아예 똑같다고 생각할 만한 음들이 복잡하게 섞여서 들려왔다. 그러나 소리에 관한 일이라서 그런지 백은의 집중력은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음에 대한 것이 나오니 자신도 모르게 집중력이 올라간 것이었다.
― 마지막이다. 이 음을 잘 듣고 기억해 두어라.
복잡한 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주위가 점차 밝아졌다. 어둠이 물러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본 백은은 눈을 감아 버렸다. 갑작스런 변화로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리는 복잡하지만 일정한 규칙도 있었다. 하지만 잊을 만한 음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하듯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그럼 음이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음이 끝났다. 천천히 백은의 눈이 떠졌고, 다 떠진 눈은 순간 짧기는 하지만 그의 눈에는 현광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백은 역시 무언가를 이용하지 않고는 자신의 눈을 볼 수는 없었기에 그 누구도 그런 것을 볼 수는 없었다..
― 공간단음진(空間斷音陳)이다. 잊지 말도록..
점차 멀어지듯 들리는 어둠의 소리에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껴졌지만 그 시간은 아주 짧았다.
쾅.
공간단음진의 소리를 듣던 백은의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태까지 어둠의 공간 속에서 수련을 하며 쌓이고 쌓인 깨달음이 공간단음진의 소리로 인해 작은 연결점을 찾아 이어진 것이었다.
“아아…….”
시작은 작은 목소리였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못할 짜릿한 쾌감이 백은의 전신을 훑고 있었다.
단순한 하나하나의 초식이 아닌 모두 이어진 다르지만 모두 같은 초식이라는 느낌이 백은의 머릿속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머리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백은의 목소리에 내공이 실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어둠의 공간에서 수련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이 실려 나오기 시작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말이다.
“아아아아!”
콰과과광.
백은이 아무리 음공을 펼쳐도 꿈쩍하지 않던 어둠의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흔들린다는 말로는 부족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중심에 있는 백은은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하고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는 깨달음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백은의 전신으로는 찐득거리는 불쾌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깨달음이 있으나 아직 내공의 부족함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백은이 점차 지쳐 갈 때!
쩌적쩌저적.
어둠의 공간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거대하게 퍼져 나가는 백은의 기운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아.”
파지징.
백은의 음공이 멈추었다. 그리고 유리가 깨져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어둠의 공간 역시 처음부터 그런 장소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반적인 숲으로 돌아온 곳에서는 더 이상 어둠도 없었으며 그런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온 건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느낌이 잠깐 들었다. 얼마 만에 보는 햇빛인지 모를 정도이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백은이 음향록을 익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둠의 공간에서 한 수련으로 느낀 것이지만 음향록이 대단한 무공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는 수련의 밑바탕을 충분히 깔아 줄 정도였다.
그렇기에 그나마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으나 지금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했었다면 더욱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우선은 무엇인지 모를 불쾌감에 백은의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헉.”
하지만 곧 그런 불쾌함의 원인이 자신이란 것을 알아차리고는 백은은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이거!”
완전 상거지 꼴이었다. 분명 아무렇지도 않던 옷이었는데 더 이상 낡아 떨어질 곳이 없을 정도로 낡은 것은 물론이고, 없던 수염과 몰라보게 자란 머리카락,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나지만 자신 스스로도 참기 힘든 악취가 불쾌감의 원인이었다.
공간단음진!
소리를 가둔 곳에 사람을 가두는 진법이다. 소리만으로 최면 같은 능력을 발휘해 허상을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그렇지만 더러운 자신의 상태로 인해 무공뿐만이 아닌 다른 한 가지 역시 늘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백은은 자신이 가지고 온 짐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씻을 만한 곳 없나?”
자신의 짐에 면도를 할 만한 것은 없어도 갈아입을 옷은 있었기에 일단 이 찝찝함을 없애기 위해 씻으려 하는 백은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짐의 근처에 갔을 때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이 아닌 다른 물건들도 보였다.
그런 물건 중 가장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내단!’
쌍두독사와 월화의 어미가 남기고 간 내단이었다.
어둠의 공간이 사라짐으로 인해 무엇인지 모를 허전함에 살짝 정신이 혼란스러웠던 백은이었다. 그러나 내단이 들어 있는 곽을 보자 서둘러 그곳에 있는 쌍두독사의 내단을 꺼내 섭취했다.
부족한 내공으로 인해 많은 양의 깨달음이 물거품이 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백은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쌍두독사의 내단을 섭취했다.
‘큭.’
분명 전에도 느껴 보았던 고통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느낌이기에 조금 색다른 느낌이었다.
녹듯이 사라져 들어간 입부터 녹아 들어가는 강력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백은은 신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꾹 참았다.
정신이 분산되는 것도 그렇고, 자칫 잘못하면 내단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런 고통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 백은의 내부가 텅텅 비어 있다는 것을 느낀 내단의 기운이 백은의 혈도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나마 많이 운공을 했던 길이기에 입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고통이 덜하였다.
백은의 혈도를 내 집 드나들다시피 돌아다니던 내단의 기운은 점차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 섭취했던 쌍두독사의 기운이 아직 전부 흡수가 되지 않은 상태로 그와 같은 강한 힘이 혈도를 돌아다니며 흡수되지 않은 기운들을 끌어 모은 것이었다.
‘할 수 있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이 아니라면 얻었던 깨달음이 사라지는 것은 물경 사실이긴 하지만 백은은 그렇지가 않았다.
공간단음진으로 인한 소리로 인한 깨달음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다른 무림인들이 들었다면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만한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이 어떻게 보건 지금의 백은에게는 상관없었다.
지금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