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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17화)
제4장 수련(6)
모든 것을 녹일 듯이 거칠게 돌아다니던 내단의 기운은 조금씩 백은에 의해 길을 잡기 시작했다. 거기에 조금 전 어둠의 공간 안에서 펼쳤던 마지막 음공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노폐물이 빠져나갔기에 백은의 몸은 현제 막힐 것이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뚫어 버린다!’
지금은 내단의 기운이 조금 더 자신의 말을 듣게 하기위해 몸의 이곳저곳을 돌리고 있긴 했지만 그 기운이 도착해야 할 곳은 한 곳이었다.
‘임독양맥!’
적당히 자신의 말을 듣게 되자 백은은 빠르게 기운을 이끌었다. 기운이 임독양맥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여태까지 막혀 있던 곳이 없었기에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혈도가 뚫리는 고통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물러날 수는 없는 일!
쿵.
백은의 몸이 들썩거렸다.
고통으로 인해 백은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하지만 운기를 할 때마다 살짝살짝 건드려 봤던 임독양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뚫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길게 끌면 안 된다. 이번에 끝을 낸다!’
길게 하면 할수록 정신적으로 지치는 백은이었기에 빠르게 임독양맥을 뚫기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런 백은의 의지에 몸속에 잠들어 있던 다 긁어모으지 못한 내단의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금, 조금만 더!’
모이는 양의 조금씩 줄어들어 가긴 했지만 백은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지금!’
아직 다 모여든 것은 아니지만 백은은 기다리지 않고 다시 한 번 더 기운을 임독양맥이 있는 곳으로 밀어 올렸다.
‘가랏!’
쿠구궁.
백은에게만 들리는 거대한 충격 소리!
쉽게 뚫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임독양맥이 생각보다 단단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백은은 느꼈다.
‘뚫리고 있어!’
막혀 있던 벽에 금이 가는 느낌이 들고,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 느껴졌다.
콰과과광.
그리고 내단의 기운은 그런 작은 구멍으로 거대한 자신의 덩치를 밀어 넣었다.
‘끄윽.’
한순간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짧았다. 그 뒤로 느껴지는 환희에 곧 묻혀 버린 것이었다.
백은의 신체가 점차 떠올랐다.
쩌저정.
여태까지 백은을 속박하고 있던 신체가 깨져 나며 신체가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우득으드득.
치지지직.
뼈가 맞물리는 소리와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
두 눈 뜨고 볼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백은이 있는 곳에는 작은 산짐승 심지어 벌레조차 없는 곳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점차 백은의 몸에서 나는 소리가 적어지기 시작하자 백은의 몸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백은의 눈은 한동안 떠지지 않았다.
번쩍.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떠진 눈에서는 강한 기운이 한순간 뿜어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후우∼ 이게 화경의 경지인가?”
신체가 재구성됨으로 인해 많은 양의 내공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보다 힘이 넘쳤다.
“몸과 내공이 하나가 된 것 같은데?”
‘아니, 그것이 화경의 단계인가?’
몸에 느껴지는 것을 말로 표현한 백은이지만 순간 정신이 번뜩거리는 것을 느꼈다.
만약 백은의 말대로 몸과 내공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면?
그다음의 단계인 현경의 신위는 내공과 하나 된 몸과 정신이 일통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현재는 아직 여태까지 깨달은 깨달음은 확실하게 활용하지 못하였기에 현경을 넘본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찬바람이 백은의 몸을 훑고 지나가자 먼저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옷을 걸쳐 입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져오지 않았던 짐 위에 놓여 있는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또박또박 읽기 좋은 글씨체로 써져 있는 서신이었다.
이 서신을 보셨을 때라면 아마 그곳에서 나오신 거겠죠?
집안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제가 잘 처리해 놓을 태니까요. 하지만 걱정은 과연 도련님이 언제 그것을 나오실지지만 저는 도련님을 믿기에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답니다.
화난령의 배려가 절로 느껴지는 편지였다. 그렇게 화난령의 서신을 읽던 백은은 서둘러 금만의 집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얼마나 어둠의 공간 속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화난령이 처리해 주고 있다고는 하나 직접 가서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빙화린에게 진 뒤로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 끝에 백은이 내린 선택은 강해진 뒤 크린, 아니 이제는 빙은해로 생활하고 있을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복잡했던 머리는 방금 전 화경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으로 인해 상당히 차분해졌다.
몸과 내공이 하나 된 것만이 아닌 정신적으로도 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과 백은 자신이 얼마나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 그 누구라도 겪을 만한 패배.
그런 패배감에 휩싸여 생각해 낸 방법이란 것이 단순히 강해진 뒤 그녀를 만나러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조금은 눈치채게 되었다.
자신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스스로의 욕망 등을 잘 억제한다고 한다. 그것은 백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신력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다. 물론 그것을 거부하지만 말이다.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일까?”
자신의 옆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것이 단순한 오라버니라는 위치로서 그런지 아니면 그 이상의 감정인지에 대한 것이 문제였다.
‘조금 생각해 봐야겠지?’
금만의 집에 돌아가 다시 평상시의 생활을 하며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백은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화난령의 서신을 읽어 감으로 인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충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 역시 평범한 문파에 속해 있던 사람은 아니랍니다. 음공을 다루는 문파에 속해 있었죠. 제가 속해 있던 문파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문파라기보다는 가족 같은 곳이었죠. 조용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만의.
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수련을 해 본 도련님으로서는 확실히 느끼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음공은 심히 무서운 무공이지요.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 한 자가 문파의 규율을 깨고 이탈한 것입니다. 처음 한 사람이었던 것이 점차 늘어나 문파의 인원 중 상당히 많은 수가 그런 행동을 취했습니다. 결국 문파에서는 그들을 처단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저희들은 그들을 처단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안 것인지 조용히 잠적을 했습니다.
화난령의 사연은 상당히 길었다. 하지만 뭐랄까? 그다지 와 닿지 않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가…….’
그런 그들 중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자가 있었는데 그가 모습을 나타냈던 곳이 북해빙궁이었습니다. 색마로 상당한 이름을 날렸지요. 조금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그곳에 무슨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도련님이 한번 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흔적을 찾으면 형수로서 하는 작은 부탁이긴 하지만 뒤처리도 조금 부탁드려요. 뭐 가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그렇다면 도련님이 돌아올 곳은 한 곳밖에 없겠죠? 여성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는 남자를 좋아한답니다. 그러니 수고해 주세요.
아! 그리고 여행에 도움 될 몇 가지를 넣어 놓았으니 유용하게 사용해 주세요.
화난령.
“이거 완벽한 축객령이겠지?”
복잡한 머리를 정리할 시간을 금만의 집에서 가질 생각을 하였는데 마치 백은이 그러려고 했다는 것쯤은 미리 알았다는 듯이 화난령이 선수를 친 것이었다.
“그렇지만 형수님의 미소 앞에 장사는 없지.”
왠지 모르게 남들을 압도하는 분위기에 백은은 화난령에게 절대로 과거를 물을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며 한 번도 그녀에게 과거를 묻지를 않았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자신의 과거를 알려 주며 북해빙궁으로 떠민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네.”
날씨를 보아하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것 같은 와중에 하는 여행이기에 조금 불만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왠지 가슴속은 시원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정해지자 우선 백은은 화난령이 챙겨 온 물품을 확인했다.
몇 가지 비상약과 마치 자신의 수염이 자랄 것을 알았다는 듯이 수염을 깎을 수 있는 작은 칼 같은 것을 비롯해 자신이 모아 놓은 돈 등이 있었다.
“역시 철두철미하신 형수님.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니 조금 서둘러 볼까?”
자신이 얼마간 이곳에 있었는지 몰랐기에 서둘러 빙은해를 만나 그녀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자신의 감정이 왜 이렇게 됐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편안한 여행이 됐으면 좋겠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듯이 괜한 일에 휩싸이기는 싫은 백은이었다. 그렇게 여행 준비를 마친 백은은 짐을 챙기자 무언가 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런 기분은 금방 잊어 버렸다. 그것보다는 물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저쪽.”
백은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
“크, 크르릉.”
거대한 대호가 한 숲을 맴돌고 있다. 그가 이렇게 이곳을 맴돌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영토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찾아온 불청객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약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착각이었다. 자신보다 머리도 좋았고, 자신보다 힘도 강했으며 자신보다 빨랐다.
“캬앙!!!”
숲 전체를 울리는 한 짐승의 소리에 대호는 몸을 떨었다. 아직도 그에게 당했던 뒷다리가 고통스러웠다. 갑작스런 느낌에 대호는 떨던 몸을 진정시켰다.
“캬앙(잘있어라).”
작은 고양이는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대호를 스치듯 지나가며 작게 울었다. 하얀 고양이 월화가 자신의 주인인 백은의 냄새를 맡은 것이었다.
제5장 여행(1)
터벅터벅 다음 마을을 향해 걷는 백은은 중국 땅의 넓음을 한탄했다. 자신이 있던 마을과 북해는 거의 동쪽과 북쪽의 끝자락에 있는 정도였기에 걸어가려면 한세월이었다.
그래서 말을 살까 하였지만 나름 열심히 모은다고 모은 백은이었지만 말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니 살 수는 있으나 나이 든 말이나 힘이 없이 조금 병든 말 같은 것만이 전부였다.
마시장 주인이 자신에게 사기를 친다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자신 외의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하게 팔기에 백은은 어쩔 수 없이 걷고 있는 것이었다.
“우선 편지도 보냈고, 하아…… 야생마라도 한 마리 보이면 좋겠다.”
백은의 보법은 회피용이기에 먼 거리를 달리는 것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자신이 화경에 들어섬으로 인해 쉽게 지치지 않고, 빨리 걷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기는 하지만 대충이나마 계산을 해 본 경우 빨라도 한 달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돌아올 경우에 만약 빙은해와 같이 돌아온다고 생각해 볼 경우 빙은해는 여성이기에 더욱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
걸어서 도착할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을 생각하여 조금 서둘러 걷던 백은은 자신의 귀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멈추어 서고 말았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상대방은 가볍고 날렵한 몸놀림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살수?’
백은의 걸음은 조금 느려졌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걷는 걸음과 같았다.
‘원한 살 짓은 안 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걷고 있는 백은이었지만 청각을 더욱더 키워서 주위에 자신 말고 다른 이가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또한 방향은 자신에게로 반듯하게 향하고 있었다.
‘왔다.’
자신의 왼쪽 부분을 노리며 달려드는 인형을 향해 백은은 몸을 돌려 대응하려 하였다. 그러며 상대방이 살수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살수라면 상대방을 알아봤다고 바로 달려드는 행동은 잘 하지 않았다. 상대방은 면밀히 관찰한 후 최고의 상황에 자신에게는 최대한 피해가 오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이 살수였다.
“캬앙.”
“응?”
긴장한 백은의 귀로 익숙한 소리와 동시에 익숙한 크기의 하얀 생물인 월화가 안겨 왔다.
“월화야!”
당연히 금만의 집에 있는 줄 알았다. 자신이 집을 나올 때 금령이 데리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 월화가 자신의 눈앞에 나온 것이었다.
“어떻게 찾아온 거야.”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운 백은은 월화를 꼭 안아 들었다.
“냥냥냥.”
그러자 고양이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조금 백은의 품에서 발버둥 치더니 그의 손을 빠져나와 백은의 어깨 위에서 백은의 볼과 자신의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여행이 심심하지는 않겠는데?”
자신이 일방적으로 말하겠지만 그래도 상대가 있다는 것이 즐거운 백은이었다.
한동안 나름 감격스러운 재회를 끝낸 백은은 자신이 어둠의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가져왔던 짐이라 생각했던, 물론 어느덧 화난령이 바꾸어 놓은 옷가지 중에 마치 학자가 입을 법한 새하얀 옷의 안주머니로 쏙 들어가 고개만 내민 월화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고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할 말이 많기는 했지만 단순히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백은이었다.
백은이 정확하게 무림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위치도 잘 모르는 백은이었다. 단지 아는 것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뿐이었다.
‘무림인과 엮이지 않으면 좋겠는데…….’
일이 복잡해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백은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