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음공 1권(18화)
제5장 여행(2)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산동이 끝나는 건가?”
산동에서 산서로 넘어가기 전까지 별 탈 없이 잘 온 백은이었다. 서둘러 오기 위해 노숙도 마다하지 않고 걸어오던 백은은 슬슬 날씨가 가을의 끝자락을 향해 가는 것을 느끼고는 더욱더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북해는 안 그래도 추운데 더 추워지면 걷다가 얼음 인형이 될 수도 있잖아.’
마을에 있는 작은 객잔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오늘은 이곳에서 묵을 생각을 하고 있던 백은은 자신의 식탁 위에서 야채볶음을 먹고 있는 신기한 고양이로 보일만한 월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참았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객잔에서 일하는 여성도 고양이가 생선이 아닌 풀을 먹는 것이 신기하고 또 귀여운지 연신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 옆에 걸려 있는 무구들이 소리를 냈다.
‘무림인.’
백은의 신경이 그들에게 쏠렸다. 이곳까지 오면서 몇 번 무림인들을 보긴 봤지만 흔히 말하는 삼류무사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들어오는 이들은 달랐다. 적어도 일류 이상의 무림인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캬릉.”
월화 역시 맡은 것 같았다. 그들의 몸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말이다.
“주인장! 방 얼마나 있나? 된다면 1인실 7개 되나?”
거의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에 남들과는 다르게 등에 멘 거대한 도가 특징으로 보이는 남성이 객잔의 주인에게서 방을 찾았다. 나름 단체 손님이기에 주인장은 입가에 진득한 미소를 지으며 비어 있는 방을 확인하였다.
“죄, 죄송하지만 1인실은 3개밖에 없습니다. 대협. 하지만 2인실과 3인실이 있어서.”
조금은 애절한 눈빛으로 방금 들어온 이들을 바라보는 주인장이었다. 단체 손님이기에 좋기는 하지만 무림인과 잘못 엮이게 된다면 자신의 집인 객잔이 한 번에 날아가게 된다.
물론 상대방이 착하거나 돈이 많은 자들의 자식들이라면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자신과 같은 일을 하던 인물들에게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돈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는 그들은 돈을 한번 꺼내서 잘만 된다면 객잔의 위치를 좋은 곳으로 옮기는 것은 물론이요. 건물 층수도 높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주지만 가난뱅이 무림인을 만나면 말 그대로 쪽박을 차는 것과 같았다.
‘돈이 많은 인간들이다!’
그의 경력상 그들에게서 돈 냄새를 맡았기에 객잔의 주인의 입에는 즐거운 미소가 끊이지 않는 것이었다.
“알겠네. 그럼 영매들이 1인실을 쓰고, 나하고 근이가 그리고 제갈 동생과 당 동생 이렇게 둘둘 나눠서 쓰도록 하지.”
“저는 상관없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형님. 어서 씻고 싶을 뿐이네요.”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인지 동조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주고 바로 씻을 수 있게 준비 좀 해 주게나.”
자신의 눈앞에 떡하니 떨어진 번쩍거리는 금전을 본 주인의 입은 귀에 걸렸다.
“그리고 나는 시, 커헉 왜, 왜 그래, 영매?”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는 자신보다 한없이 작아 보이는 여성의 눈초리에 꼼짝 못하는 덩치의 인물인 팽도운은 왜 그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연인인 매영영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가 제일 설쳐서 제일 지저분하거든요? 당.장. 가서 씻고 오세요!”
여자의 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침없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주변에 있는 인물들 역시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씻을 물을 준비하겠습니다.”
눈치를 본 주인장은 매영영이 가장 실세라는 것을 깨닫고는 빠르게 씻을 물을 준비하였다. 그러더니 주방장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도 빠르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주인을 뺀 나머지는 뒤늦게 온 손님을 그다지 달가워하는 눈빛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무기를 보고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안내했다.
그런 그들 중 백은의 시선을 잡아끄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백은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상대방 역시 백은을 바라보았다. 백은의 시선을 잡아끈 인물은 여성들 중, 아니 그곳에 모여 있는 인물들 중 가장 강해 보이는 사람이자 백은보다 심할 정도로 순백의 차림을 한 여성이었다. 백은이 그녀를 보고 느낀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차갑다.’
어딘지 모르게 한번 만나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알기에 저런 여성은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저렇게 젊은 여성은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짧은 시선의 교차도 그녀가 이층으로 올라감으로 인해서 끊겨 버렸다. 그러자 기억났다.
탕!
백은은 자신도 모르게 식탁을 내리쳤다.
‘북해빙궁.’
그 차가운 느낌! 틀림없이 북해빙궁일 것이라 생각했다. 빙화린과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분명 이 느낌은 북해의 싸늘한 한기였다.
왠지 모르게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아직 세상에 나와서는 자신의 실력을 잘 모르고 있다. 그렇기에 호승심이 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백은은 다시 정신을 다잡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은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무림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동생인 빙은해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고, 지금은 생각을 조금 바꿔서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확인함과 동시에 화난령의 부탁으로 인해 북해빙궁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화난령의 부탁만이 아니었다. 무슨 문파인지 이름은 알려 주지 않았지만 화난령에게 수련을 받은 것과 다름없기에 결국 백은 역시 그 문파의 소속이 된 것이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무공을 익힌 것이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뭐 겸사겸사겠지. 그것보다 언제 나오는 거야.’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지만 슬슬 내려오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기에 식사를 끝마친 백은으로서는 계속 앉아만 있는 자신을 노려보는 주인장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결국 원치 않게 술을 시키는 백은이었다. 작은 접시 같은 것에 조금 따라 월화도 먹이며 즐거워하던 백은은 위에서 내려오는 무림인들을 보고는 마지막 잔을 들이켰다.
“주인장! 여기 주문 좀 받지!”
“예. 예. 무엇으로 가져다 드릴까요?”
금전을 받았기에 깍듯이 대하는 주인이었다.
“이곳에서 잘하는 음식하고, 술은 가장 좋은 걸로 부탁해.”
그러며 다시 주인장에게 금전 하나를 튕겨 주었다.
“허이구,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절이라도 할 것 같은 주인장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들은 곧 서로 잘 맞는 사람들끼리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본 백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향했다.
백은이 접근하자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기감이 뛰어난 그들은 바로 알아차리고는 백은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별 볼일 없는 서생풍의 인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과연 알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말이다. 아니, 몰랐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고, 그들과 백은의 실력 차이는 그들이 백은의 실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백은이 한 행동은 상당한 신경 쓰이는 행동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접근은 말이다. 거기에 같은 무림인도 아닌 서생같이 생긴 사람이니 말이다.
“혹시 북해빙궁에 속해 계신 분이십니까?”
얼음공주라는 별호는 아니지만 별명을 갖고 있고, 차기 검후 예정인 빙검화 빙고은에게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말을 걸었다는 것이 그곳에 있던 문파의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의 기분을 좋지 않게 만든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빙화린 못지않게 말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흔히 말하는 여왕님 포스를 뿜어 대는 여인이었다.
“제가 아는 동생이 북해빙궁에 들어가 있어서 그런데 혹시 빙은해라는 아이를 아시는지 해서.”
그녀는 백은의 말에 생각하는 표정은 전혀 짓지도 않고, 백은의 눈만을 바라봤다.
“참고로 색목인입니다.”
7쌍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조금 난감할 만도 하지만 백은은 얼굴에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어찌 보면 얼굴에 철판을 깐 것이고, 또 다르게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애매한 표정이었다.
“잘 모르겠군요.”
“그렇습니까.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하군요. 그럼.”
백은은 두말하지도 않고 바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