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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20화)
제6장 세상일은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2)


백은은 줄어든 잠으로 인해 솔직히 잠이 오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언제나 하는 운기행공과 명상까지 하고 나니 오히려 쌩쌩해졌다. 하지만 어둠의 공간에서 나온 뒤로 꿈이라는 것도 꿀 수 있는 잠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확실히 깨달아 억지로 자려고 한 백은이었다. 그런 백은의 귀로 한 인물의 자신의 방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 기척은?’
자신에게만 들릴 만한 조용한 걸음 소리를 구분해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백은이었다. 그런 백은과는 다르게 냄새로 상대방이 누군지 월화도 알아차렸는지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귀엽게 두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고 있어.”
백은은 무언가를 생각했는지 월화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조용히 자는 척을 하였다.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면 자신 역시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어중간하게 행동하면 뒤로 다가오는 보복이 더욱더 크기 때문에 이왕 할 것 확실하게 처리할 생각을 한 백은이었다.
‘응?’
들어올 줄 알았지만 문 앞에 서 있기만 한 당필중으로 인해 백은은 조금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가 들어와야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는데 상대방은 밖에만 있을 뿐이니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려던 백은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백은의 편이었다.
‘독인가?’
무슨 독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문틈으로 뿌리는 것을 깨달은 백은은 내공을 운용하였다. 이미 이런 독은 자신의 몸에 통하지는 않았으나 그런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지 못했기에 몸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며 문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잠시 후 조용히 문이 열렸다. 작은 발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온 당필중은 자신들의 방과 백은의 방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행운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은신에 관한 것을 제대로 익히고 있던 인물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기척을 그들이 느끼고 찾아오면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자신이 뿌린 독으로 인해 확실히 잠들었을 것이라 생각한 당필중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며 백은이 누워 있는 침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바로 옆에 섰다. 그러며 자신이 준비한 독을 꺼내 들어 독을 뿌리려 했다.
“으음?”
백은의 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백은으로 인해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당필중은 깜짝 놀라며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백은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당필중의 한쪽 다리를 툭 건드린 것이었다.
“으응?”
백은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기를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가 자신의 손에 걸려서 깼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도, 도둑이야!!”
그러고는 일어나자마자 객잔이 떠나갈 듯이 크게 소리쳤다. 다른 방들이 소란스러워지는 소리가 백은의 귀로 들려왔고, 백은의 눈으로는 복면을 사용했지만 당황하는 당필중의 표정이 들어왔다.
그는 허겁지겁 도망치려 하였다. 하지만 백은은 그를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그의 다리를 슬쩍 건드린 순간부터 그의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당필중이 도망가려는 낌새를 느끼자마자 침대에서 몸을 날려 당필중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그다지 오랫동안 계속 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일반인으로 보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퍽.
“컥.”
당황한 당필중이 내공을 끌어올리지도 않은 맨주먹으로 백은의 등을 가격하였다. 하지만 이미 많이 맞아 본 백은이었기에 조금 단련됐다고는 하지만 당필중의 주먹으로 어떻게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백은은 일단 한 번에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다.
“도둑이 어디야!”
팽도운의 거대한 목소리가 객잔에 지진이 난 것처럼 울리자 백은은 바로 소리쳤다.
“여기요! 여기!”
허약한 서생이라 생각하여 한 번이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한 그였지만 백은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악에 받혀 소리치자 당필중은 더욱더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너 자신을 원망해라!’
그의 손이 녹색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냥 독으로 반 불구로 만들 생각이었던 그였지만 도망가기 위해서는 백은을 죽이는 것이 빠르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팽도운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기에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런!’
그렇지만 조금 생각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손에 독 기운이 몰린 것이다. 이자가 독에 의해 죽게 되면 자신이 상당히 몰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쾅.
“이 쥐새끼! 오늘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당황한 순간 이미 팽도운이 백은의 방 앞에 도착해 문을 발로 걷어차고는 거대한 대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얼굴만 들키지 않으면 돼!’
어떻게든 잡아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당문의 힘을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들 역시 조금 악감정은 생겨도 고작 모르는 인간 하나로 당문에게 이를 드러낼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 철거머리 같은 서생으로 보이는 백은을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 당필중은 내공을 사용해 백은이 끌어안고 있는 팔을 떼어 내자마자 그의 배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나중에 확실하게 죽여 주마!’
이번에는 생각보다 잘 떨어지는 백은이었다. 그런 백은을 보며 당필중은 이를 갈았다. 오늘 일은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크윽.”
백은이 밀려나며 당필중이 쓰고 있던 복면을 잡았고, 얼굴에 붙여 놓은 것이 아니었기에 복면은 너무나도 쉽게 당필중의 머리와 분리되었다.
“…….”
“…….”
“…….”
주위가 조용해졌다. 더군다나 운도 없는 것이 달도 크게 떴으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에 가려져 있던 것이 당필중의 얼굴이 드러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구름 뒤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다.
‘비, 빌어먹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참는 당필중이었다. 당필중에게 있어 최악으로 수치스러운 날이었지만 그는 몰랐다. 이날을 기준으로 자신이 어떻게 바뀔지를 말이다. 최악이 아닌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날로 말이다.

***

‘저것들은 잠도 없는 거야!’
늦은 밤 객잔의 주인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뿐만이 아닌 객잔의 요리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힘이 없는 것이 죄고, 돈 앞에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자신들이었다. 더군다나 방문도 하나 부서졌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아쉽게도 팽도운이 돈도 안 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받은 돈이 얼마인지를 그새 잊어버리는 주인장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주인장, 미안하지만 술을 좀 더 가져다 줘!”
“예. 예.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요.”
힘 앞에 두려운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오늘도 한없이 비굴해지는 주인장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음식을 저곳에 나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분위기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하루 되는 일 하나도 없겠네. 퉤!’
속으로만 박박 이를 가는 주인장은 조용하지만 엄격한 분위기를 잡고 있는 무림인들이 있는 곳에 술을 갖다 놓고 후다닥 다시 자리로 돌아와 그들의 눈치만을 살폈다.

***

탁탁탁탁.
팽도운은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 자신도 모르게 하는 버릇 중 하나인 검지로 탁자를 두드리는 것을 7명의 인물들 앞에서 해 대고 있었다. 그만큼 생각할 것도 많았으며 심기도 상당히 불편했다.
차라리 자신들이 당필중을 놓쳤다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누구라도 빼도 박도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기에 술만 연이어 들이키는 팽도운이었다.
“피곤하군요.”
예의상 아픈 척은 해 줘야 했기에 자신의 배에 한쪽 손을 올려놓고 있던 백은은 빨리 이 자리를 끝내 달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하였다. 그러자 팽도운의 표정이 조금 험악해졌다. 애초에 저 인간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할 수도 없는 일이고, 누가 보더라도 잘못은 당필중이 한 것이었다. 그냥 당필중을 버리면 편하겠으나 그는 오대세가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당문세가를 이끌 인물이라는 것이 쉽게 버릴 수 없는 일이었다.
“어이 형씨, 조금 조용히 해 주지 않겠나? 나 지금 상당히 기분이 크헉. 여, 영매?”
“조용히 해요. 저 사람은 죽을 뻔했다고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아야 하지만 그것은 쉽게 일어날 것 같지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당필중으로 인한 것이었다.
‘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
자신의 범행이 확실해짐으로 인해 당필중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모두 그만하지. 생각보다 복잡한 일은 아니니.”
황보근이 조용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곧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며 한마디 하였다.
“백은이라고 하였나?”
“그렇습니다.”
살짝 심기가 나빠질 만한 말투였지만 백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과 동갑이거나 한, 두 살 어리게 보였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백은의 태도에 황보근은 감았던 눈을 조용히 뜨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도 있는 법이다. 자네 혹시 누군가가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여기에 있는 우리들이 무시 못할 힘을 가지고 있나.”
황보근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눈빛에 백은은 몸을 살짝 떨어 주는 확실한 연기를 하였다.
“없습니다.”
하지만 말만은 또박또박하였다. 너무 물러서는 것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철그렁.
황보근은 백은의 앞에 작은 주머니를 던졌다.
“모른 척해 주었으면 한다.”
“흐음.”
백은은 주머니 안에 든 것을 확인하였다. 금전과 조금씩 보이는 은전도 있었다. 화난령이 챙겨 준 돈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양이었다.
“황보 오라버니!”
그런 황보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매영영이 나섰다. 하지만 황보근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였다.
“당필중은 당가의 소가주가 될 인물이다. 매영영 네가 정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알지만 조금은 세상 돌아가는 법도 알았으면 좋겠군. 아니면 저 사람이 죽을 때까지 당가로부터 지켜 줄 자신이 있는가?”
마치 당필중이 다시 한 번 더 백은을 노릴 것같이 말하는 황보근이었다.
“저희 화산파는!”
“영매!”
한마디 하려는 매영영이었지만 팽도운의 만류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여성이고, 당필중은 남성이다. 그만큼 문파나 세가에서 받는 대우도 달랐기에 생각을 해 보면 황보근의 말이 사실이었다.
“이게 제 목숨 값이란 것입니까?”
“그렇다. 내가 볼 때 너 역시 세상 사는 법을 전혀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요. 세상 사는 법은 조금 알지요.”
백은은 조용히 자신의 앞에 있는 술잔을 들이켰다.
“하지만 제 목숨치고는 조금 적군요. 당신들에게는 벌레 같을지는 몰라도 저에게 있어서는 조금 소중한 목숨이라서요.”
“훗.”
백은의 말에 처음으로 황보근에게서는 보기 힘든 미소를 보게 되었다. 그러며 황보근은 다시 돈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마음에 들었다. 그것까지 주지. 그리고 당필중.”
“…….”
백은은 늦게 받은 조그마한 돈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굳이 확인하지 않고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며 입가에는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당필중만 골려 줄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좋은 것도 받았기에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백은이 그렇게 즐거워하는 반면 당필중은 황보근의 불음에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당필중,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황보근의 미소는 어느덧 사라지고 굳은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당필중을 불렀다.
“죄송합니다. 황보 형님.”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거라. 너의 행동은 잘된 점도 그렇다고 잘못된 점도 없다. 남자가 되어 자신을 무시했다면 복수를 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허나 그 복수가 실패되었다면 그에 합당한 손해는 지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왠지 모르게 멋있네.’
황보근의 말에 백은은 살짝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