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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21화)
제6장 세상일은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3)
너무 물러 터지게 대응하는 것은 좋지 않을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 역시 그냥 당해 주었으면 될 것을 일부러 당필중을 엿 먹으라는 듯이 이렇게까지 크게 만든 것이었다.
“두 가지만 하여라.”
“…….”
“첫째, 방금 내가 그에게 준 돈은 내 동생을 내가 관리 못했다는 죄책감에 준 것이다. 그렇기에 너는 이자에게 네가 저지르려고 한 만큼의 죗값에 해당하는 돈을 주거라.”
“…….”
“왜 그러느냐? 혹시 돈이 없느냐? 미안하지만 나는 방금 준 것이 전부이기에 빌려줄 돈이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빌리던지 하여 꼭 그에 합당한 만큼의 돈을 주거라.”
“……예.”
“둘째, 사과할 필요는 없다.”
“황보 오라버니! 돈은 돈이라지만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지 않나요?”
“끼어들지 말거라, 매영영.”
이번에는 물러서지 못한다는 듯이 매영영은 다시 한 번 말하려 하였지만 그것은 백은이 말렸다.
“괜찮습니다. 이미 저는 사과를 돈으로 받았으니까요. 제가 돈을 받지 않았으면 사과를 받아 마땅하겠습니다만 이미 받았기에 사과는 받는 것이 오히려 더 미안하게 느껴지는군요.”
“그렇다. 그자의 말대로 사과는 할 필요는 없다. 물론 당필중 네가 돈을 주기 싫다면 사과를 하던지 하거라. 방금 그가 받은 돈은 내가 준 돈이니 말이다. 아무튼 사과는 하지 말고 한 가지만 약조를 해라. 더 이상 그를 건들지 않겠다고 말이다.”
“…….”
“당.필.중 네가 그렇게 속이 좁은 남자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승부는 아니지만 너는 그에게 패배한 것은 사실이다. 언제나 이기는 일만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니 적어도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방법이 아닌 더 좋은 의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의견을 내 보도록.”
“…….”
“…….”
평소에는 전혀 말이 없던 황보근이 이렇게나 많은 말을 한 것이 신기한 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한 번에 정리한 것이 놀라운 것인지 모두들 침묵을 지켰다. 물론 매영영만은 조금 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쉽게 수긍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생각 외로 당필중은 쉽게 수긍했다. 황보근의 눈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했다.”
무엇을 칭찬하는지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었다.
“그럼 올라가서 쉴 사람들을 뺀 나머지는 술이나 한잔하지. 자네는 어떤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은 못 마시지만 조금이라면 마시겠습니다.”
“그래? 하하하, 자네 화끈한 게 마음에 드는데? 백은이라 하였던가?”
“그렇습니다.”
밝아진 분위기가 마음에 든 것인지 팽도운이 크게 웃더니 백은의 등을 팡팡 치기 시작했다.
“주인장, 여기 술 좀 더 가져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미리 시켜 놓는 팽도운이었다.
‘제길!’
객잔의 주인만 고생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밤늦게까지 술잔이 오갔다. 백은 역시 잘 취하지 않았지만 팽도운들은 무림인이었고, 백은의 인생사를 듣기 위해 내공을 이용하여 숙취를 몰아내기까지 하였다.
팽도운들이 여행을 하며 이런저런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서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당사자에게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목표.
마지막으로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행복을 갖고 사는 백은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있어 상당히 새롭게 와 닿은 것이었다.
“나름 힘든 삶을 살았구만. 그건 그렇고 늦었지만 나는 자네가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우리 서로 호형호제하는 어떤가?”
“예?”
팽도운의 갑작스런 제안에 백은이 조금 당황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찍이 올라가 자려고 한 백은이었지만 그들의 사이에 끼어 질문을 받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 사이에 시간이 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물론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 있었던 일까지 말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으로 단순히 그들이 모르는 서민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백은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팽도운이 상당히 당황스러운 조건을 제시한 것이었다.
“뭐, 그렇게 되더라도 제가 같이 있거나 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
쿵.
백은의 나약한 말에 팽도운이 식탁을 크게 두들겼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팽도운만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취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물론 인연이 짧을 수도 있지!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 역시 인생이고 인연이야.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고!”
“그, 그렇습니까?”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팽도운의 박력이 더해지자 백은이 살짝 움찔하였다. 적당히 하여 인연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팽도운은 그런 백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아무런 힘도 없이 무림인인 자신들을 대하는 백은의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든 것이었다.
물론 백은은 그런 팽도운의 생각을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그렇게 백은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연의 끈이 엮이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귀찮은 것으로 말이다.
***
새벽까지 먹은 술은 그다지 백은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뒷간에 갔다 오니 운기조식을 한 것처럼 시원했다.
매일같이 하던 운기조식과 아침 명상을 하지 않으면 몸이 개운하지 않기에 오늘 역시 두 가지를 끝내고 난 백은은 어제 팽도운의 술기운으로 인해 이제는 호형호제하며 지내기로 한 황보근이 주었던 돈주머니를 하나로 합치려 했다.
“이왕 줄 거면 그냥 줄 것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백은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두 대 맞은 것치고는 상당한 양의 돈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솔직히 평생 일해도 못 만져 볼 만큼의 돈이었다.
쓰는 양도 있었기에 돈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평민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허, 부자인 것은 알았지만.”
쓸데없이 돈주머니를 나눠 준 것이 불만이었던 백은은 돈주머니를 열어 보고는 놀라고 말았다. 다른 하나의 주머니에는 작은 보석들이 들어 있던 것이었다.
“적당히 놀고먹으면 평생 먹고살 만할라나? 그것보다 올 때는 좋은 말을 사서 편하게 돌아올 수 있겠는데?”
솔직히 화난령이 백은의 돈까지 관리해 주었기에 아직 돈에 대한 개념이 그다지 많지 않은 백은이었다. 그렇기에 평민이라면 충분히 먹고살 정도의 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백은이었다. 물론 있다고 해도 놀고먹기만 할 생각은 없던 백은이었다.
“이건 그냥 따로 보관해야지.”
백은은 자신이 묵었던 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짐은 별로 없지만 혹시 놓고 가는 것이 없나 둘러본 뒤 백은은 아침을 먹기 위해서 1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어제 자신과 비슷한 시간에 술을 조금 마신 뒤 올라갔던 빙고은이 있었다. 어제 자신을 주의 깊게 바라보던 그녀였기에 조금은 꺼려지는 백은이었지만 모를 척할 수는 없었다.
“숙취가 없으신 것 같군요? 어제는 잘 주무셨습니까?”
“예. 백 공자야말로 괜찮으신지요.”
백은보다 어린 나이라는 것은 알긴 했지만 그다지 친해지지 않았기에 둘은 서로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예. 어제처럼 마셔 본 적은 없었지만 술에 대해서는 조금 강한 것 같더군요.”
“그렇습니까.”
형식적인 대화가 끝나자 백은은 조금 난감해지기 전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같이 앉아도 되긴 하지만 괜히 뒤늦게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오해 살 만한 말은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쪽에서 같이 드시지요.”
“예? 아, 뭐.”
하지만 뜻밖에도 빙고은이 먼저 백은을 불러 세웠다. 그런 빙고은의 행동에 백은은 솔직히 조금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백은이 앉기를 기다리고 있던 객잔의 한 인물이 백은에게 무엇을 먹을 것인지 물어왔다.
“속에 무리가 가지 않는 걸로 부탁드리고 야채가 들어간 요리도 하나 갖다 주십시오. 야채에는 너무 향신료를 넣거나 튀기거나 하시지 마시고 신선할 걸로 부탁드립니다.”
“예. 바로 대령하겠습니다요.”
어제 월화가 음식을 먹던 것을 보았기에 이미 백은이 원하는 주문을 대충 알았는지 그는 바로 주방으로 뛰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은과 월화의 아침 식사가 나오자 백은은 자신의 품속에서 나오지 않는 월화를 끄집어 냈다.
“아침 먹어야지.”
“냐앙.”
귀찮고, 졸립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한 월화였으나 곧 음식에서 얼굴을 떼지 않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응?’
월화가 음식을 먹는 것을 보던 백은 역시 식사를 시작하기 시작하였다. 백은의 것은 조금 얼큰한 음식이었는데 아마 어제 먹었던 술을 해장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것을 가져다 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음식보다 조금 상기된 얼굴로 힐끔힐끔 월화를 바라보는 빙고은이 백은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백은은 속으로 슬며시 웃으며 조금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고은 언니는 벌써 일어났네? 응? 꺄아! 고양이!”
식사를 거의 끝마쳤을 때쯤에 매영영이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내려오더니 백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이 빙고은에게는 말로써 인사를 하고는 월화에게는 몸으로써 인사를 하려 하였지만 월화는 이미 그런 매영영의 기습 공격 아닌 기습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백은의 속주머니로 쏙 들어갔다.
“쳇.”
그런 매영영의 행동에 그녀보다는 조금 뒤늦게 내려온 남궁연청이 한마디 쏘아 주었다.
“네 나이 좀 생각해! 얘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됐거든? 그것보다 오라버니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직 남궁연청은 백은을 오라버니라 부르지 않으나 조금 화통한 면이 있는 매영영은 어제 같이 한 술자리를 통해 다른 남성들과 같이 백은의 나이를 듣고는 오라버니라 부르기로 하였다.
그때의 일이 살짝 떠오르자 백은의 입가에는 재미있었다는 듯한 미소가 걸렸다. 그 자리가 편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제 매영영이 술에 취해 상당히 분위기를 띄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뭐 그 결과가 그녀와 친해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상당히 여성스러움만을 강요하는 이런 곳에서는 상당히 만나기 힘든 여성상이었다.
“응.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가야지 잘못하면 걷다가 얼음 동상이 될 수도 있잖아.”
“헤∼ 얼음 동상이라…… 하긴 북해는 정말 춥겠죠? 그쵸. 언니?”
“그다지.”
매영영의 말에 빙고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언니야 그곳에서 살아서 그렇죠. 일반인이 가면 말 그대로 얼어 죽기 딱 좋다는데요.”
“얘가! 말 좀 가려서 해.”
“뭐 어때? 가식은 할아버지하고 아버지 앞에서 충분해. 그러는 너야말로 내숭은 그만 떨지?”
“내, 내가 뭐!”
“흐응.”
매영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남궁연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매영영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백은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러며 당필중으로 인해 여러 가지를 얻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당필중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나는 먼저 일어나야겠어.”
“에? 벌써요?”
“응. 말도 없으니 튼튼한 두 다리로 조금 서둘러 걸어가야지.”
“그러지 말고 같이 팽가에 들렀다가요. 제가 팽 오라버니께 말씀드려서 말 정도는 하나 구해다 드리도록 할게요.”
“어제 그렇게까지 신세졌는데 또 그럴 수는 없지.”
왠지 귀찮아질 것 같았기에 백은은 바로 거절했다. 무림에서는 각 계절 등 나름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이런저런 행사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언제나 여러 문파나 세가가 많이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