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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22화)
제6장 세상일은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4)


서로 상대방을 알아보기 위해 조금씩 벌이던 그런 행사가 이제는 형식적으로 일종의 인맥관리와 상대방의 전력을 알아보기 위한 모임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런 곳에 자신을 초대한다는 말이었기에 백은은 바로 발을 뺀 것이었다.
“그럼 저와 같이 돌아가시죠.”
언제 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차를 홀짝이며 빙고은이 말하였다.
“…….”
“…….”
“…….”
그녀의 갑작스러운 말에 정적이 흘렀다.
“그렇다면 언니도 돌아가시겠다는 거예요?”
“응.”
매영영의 물음에 빙고은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갑자기 왜요?”
“어떻게 보면 백 공자는 우리 빙궁의 손님 같은 사람이니 혼자 가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
빙고은의 말을 들어 보니 맞는 말 같다고 생각한 매영영이었다. 백은의 말대로라면 빙궁에 아는 동생이 있다고 했으니 서로 얼굴만 모를 뿐 완전히 모르는 사이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원래의 계획은 그런 것이 아니었어. 그러니 돌아가 보도록 해야지.”
빙고은의 말대로 그녀의 처음 계획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스승님이자 어머니의 서신을 무림맹에 전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다.
물론 왜 자신이 가야 하는지 궁금했다. 자신보다 밑에 있는 사람들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강요 아닌 강요로 그녀가 나온 것이었다.
그러다가 만난 인연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팽가까지 가게 되었는데 안 그래도 늦어진 일정이 더욱더 늦어지기 전에 그냥 백은과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물론 혼자 하는 여행이 더 좋기는 하겠지만 모른 척하기에는 지금은 확실히 아는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빙고은에게 동행을 하도록 만든 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녀의 스승은 다른 이들이라면 한 번쯤 무림에 나가 보려 하겠으나 빙고은은 전혀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고, 무공만을 갈고닦고 있었기에 무림에 나가 경험을 쌓으라는 뜻에서 일부러 그녀를 내보낸 것이었기에 늦게 돌아가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빙고은으로서는 어서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끄응…… 왜 이렇게 되는 걸까.’
괜히 자신만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백은은 절대로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하. 걱정 마세요. 이렇게 보여도 기본적인 호신술과 보기와는 다르게 나름 힘을 좀 써서요.”
백은의 말은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들이 여성이기는 하지만 내공을 사용하면 서생으로 보이는 백은 정도는 쉽게 제압하고도 남을 것이기에 그냥 무시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헤어지는 것은.”
빙고은의 성격으로 보아하니 다시 무림에 나올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그녀는 자신 이외의 일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백은을 데리고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조금 뜻밖이긴 하였지만 말이다.
“나중에 서신이라도 보낼게.”
“진짜로요? 정말로요?”
“……응.”
‘그 버퍼링은 뭘까?’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신들끼리 대화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백은 역시 그녀들을 무시해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자리를 뜨는 것은 아니었고, 혼자 어떻게 할지는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잠시간 대화하고 있을 때 남자들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자 백은은 생각했다.
‘왠지 내가 불리하게 느껴져…….’
어제 대충 보니 제갈문과 당필중은 빙고은에게 관심이 있고, 팽도운과 황보근은 자신과 형, 동생 하는 사이이기에 자신을 붙잡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길한 백은의 예상은 적중하고 말았다.


제7장 길을 돌아가다(1)


‘하아 지금 뭐하고 있는 짓이람…….’
백은은 현재 북해빙궁으로 가야 하지만 어찌어찌 끌려서 팽도세가에 가기로 결정되어 따라왔다. 대충 지리상 팽도세가는 백은들이 묵었던 곳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된 일에도 작은 문제는 생겼다는 것이 문제였다.
“오라버니!”
참다못한 매영영이 결국 팽도운에게 소리쳤다.
“머, 뭐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런가, 근? 하하하.”
누가 봐도 어색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웃음을 흘리는 팽도운은 자신의 친한 친구인 황보근마저 자신을 무시하는 표정에 좌절하고 말았다.
“오늘은 밤하늘도 어두워서 별도 보이지 않아 방향을 못 찾겠는데.”
똑똑하다고 불리는 제갈문도 조금 난감한 것 같아 보였다. 어제 묵었던 여관도 운 좋게 발견한 것이긴 하지만 제갈문이 별자리를 보아서 일단 방향만은 북쪽으로 정확하게 올라오다가 찾은 것이었다.
‘전부 길치들만 모여 있나…….’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에 백은은 주변에 있는 나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는 나뭇가지가 길고 잔가지가 많은 곳이 남쪽이라 본 거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백은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만을 지었다. 백은이 보기에는 그냥 다 똑같은 나무 같았기에 구별이 조금 힘들었다.
‘흠…… 나이테가 있는 거는 없나?’
나뭇가지보다는 나이테로 구분하는 것이 쉽겠다고 판단한 백은은 혹시나 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잘려 있는 나무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해 보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이곳에는 나무꾼 몇십 명 역할을 하고도 남을 인물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미안하지만 누가 이 나무 좀 잘라 주지 않을래?”
한참 투닥거리고 있던 이들의 사이에 끼어들며 백은이 조심스럽게 말을 하였다. 그러자 대부분이 갑작스런 백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표정 변화가 없는 황보근이나 빙고은, 그리고 생각 외로 당필중만이 날카로운 눈으로 백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 엄한 나무는 왜 건드리는 겁니까?”
“응? 아, 그건.”
쿠궁.
설명을 하려던 백은은 어느새 나무가 잘려 쓰러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빙고은이 잘랐고, 당필중이 나무를 가격하여 쓰러트린 것이었다. 빙고은이 너무 반듯하게 잘라서 쓰러지지 않았기에 당필중이 나무를 쓰러트린 것이었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나이테로 방향을 구분한다는 말을 들었거든. 어디 보자.”
다행히도 나이테는 백은이 보더라도 구분이 될 정도로 넓은 쪽과 좁은 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네요. 나뭇가지로도 구분한다고 한 것 같았는데.”
“응. 하지만 나뭇가지로는 잘 구분이 안 돼서 좀 잘라 달라고 한 거야. 저쪽이 북쪽인 거 같은데?”
나이테가 조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쪽으로 방향을 가리킨 백은이었다.
“맞지? 문아? 좁은 쪽이 북쪽, 조금 확실치가 않네.”
“저도 확실치는 않지만 그렇게 봤던 것 같습니다.”
아닐 경우를 대비해 조심스럽게 보험을 들어놓는 백은이었지만 제갈문은 마치 자신을 띄워 주기 위한 행동으로 느낀 것인지 백은의 말에 서슴없이 동의했다.
“그럼 일단 북쪽으로 가죠. 마을은 못 찾더라도 방향이라도 대충 맞아야 나중에 멀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매영영의 결단은 빨랐다. 너무 어두워진 것도 아니었기에 가다가 운이 좋으면 마을이 나올 수도 있다는 작은 바람에 서두르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형님, 업히시죠? 이제부터는 조금 서둘러 뛰어가게.”
“나, 난 괜찮은데?”
갑자기 등을 들이대는 팽도운으로 인해 백은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였다.
“무공으로 뛰어갈 거라서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하는 형님이라도 따라오기는 힘드실 거라 그런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내뱉은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정도로 백은은 속이 좁지는 않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좁아지기도 했지만 자기 스스로는 넓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그럼 미안하지만 부탁할게.”
정신이 남아 있는 상태로 다른 사람에게 업히는 것은 ‘고스트37’ 이외에는 처음이었기에 조금 난감하기도 했지만 업히기로 하였기에 서슴없이 팽도운의 등에 업혔다.
‘상당히 편하네.’
팽도운의 도는 이미 황보근에게 넘긴 상태였기에 불편한 것은 없었다. 자신의 무기를 넘길 정도이니 황보근과 팽도운의 사이가 친해도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나 백은은 전혀 그런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형님, 토납법은 익히셨다고 하셨죠?”
백은 같은 것은 무게 축에도 못 낀다는 듯이 힘들지도 않은지 빠르게 달리는 와중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을 하는 팽도운에게 백은은 그의 등 뒤에 고개만을 내민 상태로 대답했다.
“응. 운 좋게 과거에 한 낭인을 도와줬다가 건강해질 수 있다며 알려 주길래 토납법과 간단한 호신술을 배웠지.”
“그럼 다른 특별한 것은 안 배우셨겠네요?”
“그렇지. 호신술이라도 어떻게 보면 권각술보다 조금 못한 거지. 초식 없는 실전 무공이라 할까?”
“그런 것도 있습니까?”
“응. 타격보다는 꺾기 같은 것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데 유리한 기술이 많이 있어.”
“그럼 혹시 무공 좀 배워 볼 생각 없습니까?”
“별로 배우고 싶지는 않다. 힘이 있으면 그만큼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지잖아.”
자신은 전혀 무공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는 백은은 연신 자신을 힐끔거리는 당필중의 눈빛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자신에게 뭐라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날 이후 연신 자신을 몰래 감시하듯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날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하던 중 당필중은 무언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무리 맷집이 좋다고는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는 뭐한 무언가가 있었기에 여러 번 생각해 본 끝에 대충이나마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자신이 처음에는 힘을 조절해서 백은을 가격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백은이 자신을 끌어안는 순간 당황한 나머지 힘 조절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잘 생각해 보면 분명 그때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런 본능을 완벽하게 억제하지 못한 것 같았기에 분명 첫 타격 때 백은이 한 방에 쓰러졌어야 정상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혹시 다른 것은 배운 기억이 없으십니까?”
그렇기 때문일까? 그 일이 있은 뒤로 당필중의 거만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당필중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좋은 변화이긴 하지만 조금 심각할 정도로 차갑고 냉정해졌다는 것이 백은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아니. 그 영감님이 알려 준 것은 그것뿐인데?”
“그렇습니까.”
“으윽! 내가 형님과 대화 중인데 끼어들다니! 크흠! 그러지 말고 간단한 거 몇 가지만이라도 배우는 것이 어떻습니까? 솔직히 형님 나이도 있고 해서 본격적으로 하라는 말은 못하겠고, 보법이나 암기…… 흠.”
암기 하면 당가였기에 백은과 당필중 간의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오른 것인지 말을 하던 팽도운은 말을 멈추었다. 왜냐하면 둘의 사이가 조금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화해를 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모르는 어정쩡한 태도가 열심히 말을 하던 팽도운을 멈추게 만든 원인이었다.
어떻게 보면 화해를 한 것 같기도 하였지만 어떻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원하신다면 간단한 몇 가지 정도는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하하하. 그것참. 마음만 고맙게 받는다니까.”
“그럼 보법이라도 배우세요. 오라버니. 팽 오라버니 냄새 나지 않아요?”
“여, 영매!”
갑자기 말이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갔지만 매영영의 말에 백은은 진짜로 그런가라는 호기심에 냄새를 맡아 보려 하였다. 하지만 추접스러운 짓이었기에 그런 행동은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며 팽도운이 땀이 많이 나기에 그런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과 닿아 있는 부분이 축축한 것 같다고 느끼는 백은이었다.
‘확실히 많이 나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기에 백은은 자신에게 거듭 무공을 배우지 않겠냐는 매영영의 말에 다시 한 번 더 거절했다.
“시간도 없고 해서 안 될 것 같아.”
“걱정 마십쇼. 형님! 어려운 것이 아니고, 무슨 세가에서 엄청 중요한 것도 아닌 우연히 구한 보법이 있어서 제가 저희 세가에 가면 드릴 테니 빙궁에 가는 동안 빙 소저께 도움을 얻어서 하면 기본적인 것은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불편해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왜 못 줘서 안달이니…….’
그렇게 괜찮다고 하는데 주겠다니 더 이상 거절하는 것은 조금 그렇다고 느꼈는지 백은은 결국 받기로 하였다. 물론 속으로는 툴툴거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