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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23화)
제7장 길을 돌아가다(2)
“그렇다면야.”
“백 오라버니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본데요? 팽 오라버니가 이렇게까지 할 정도니, 원래라면 한 번 거절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성격이에요. 생긴 것과 다르게 소심한 면이 많이 있는 사람인데.”
“내, 내가 무슨.”
강하게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니 없지 않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확실히 남이 한 번 거절한 것에 대해 다시 말한다는 것은 소심한 사람에게 있어서 조금 어려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말까지 듣고 보니 곰 같은 팽도운이 나름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소소한 대화를 하던 일행들은 전부 멈추어 서고 말았다.
가장 선두에 있던 황보근이 멈추었기에 은연중 황보근을 따르던 그들이 전부 멈춘 것이었다.
“앞에 무언가 있다.”
“마을 아니에요?”
매영영은 이제 씻고 자고 싶은지 마을부터 찾았지만 아쉽게도 마을은 아니었다.
“사람들인가?”
작은 불빛 하나에 10여 명도 되지 않는 인물이 있었다. 그런 그들 중 단 한 명만 앉아 있었는데 아마 가장 편하게 있기에 그가 우두머리로 보였다.
“그럼 일단 가서 마을 위치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 무언가 이상하다. 조금 더 살펴보는 게 좋겠어.”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인지 황보근은 다가서지 말자고 하였다.
‘확실히 인간이 짐승같이 ‘크르릉’거리지는 않겠지?’
무림인들 대부분 시각이 뛰어나다면 백은은 청각이 뛰어났다. 그런 백은의 귀로 불빛 앞에 있는 인물을 뺀 나머지가 숨을 쉴 때마다 짐승의 울음 같은 ‘크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말을 해 줄 수는 없었다.
“형님, 여기서 조금 기다려 주십쇼.”
조금 더 접근하던 그들은 모두 황보근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기척을 숨기며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 누가 이곳에 있더라도 느낄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로 저쪽에 모여 있는 인물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어둡고 칙칙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상당히 불쾌한 기분인데…….’
청각의 감각을 조금 죽이자 백은의 몸 전체로 싸늘한 느낌이 와 닿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무엇인지 모를 것이 몸을 조여들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위험해!’
위험했다. 이들이 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것을 느낀 것은 백은만이 아닌 듯했다. 모두가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무기가 있는 자들은 조금이라도 불안감을 떨쳐 내기 위해서 자신의 무기를 꽉 쥐었다.
‘근데 왠지 우리들이 나쁜 놈들 같네?’
상대방의 사정도 듣지 않고, 기습하려는 것 같은 모습을 취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백은들이 나쁘게 보일 만했다.
‘응?’
― 일단 내가 나가 보지.
끄덕.
‘저게 전음이라는 건가?’
팽도운의 전음이 향한 곳은 황보근이었다. 남들의 전음을 듣는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백은은 가만히 있는데도 들려왔다.
‘전음이란 거 의미가 있는 건가?’
가끔 모르는 것이 많아 보이는 백은이었다. 그런 백은에게 당필중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 전음이란 것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움찔.
알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나름 멋지게 연기를 해 주었다.
― 혹시 모르니 이것을 갖고 계십시오. 암탄구라는 걸로 저 역시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조금 강력한 충격을 받으면 사방으로 암기가 튀어 나가는 암기입니다. 독도 묻어 있으니 가급적 가까이서는 던지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것은 해독제입니다. 그럼.
전혀 예상 못한 당필중이 자신을 챙겨 주자 백은은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불빛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이들의 뒤를 따르는 당필중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름 쿨하다.’
왠지 모르게 멋있다는 지금의 상황에서 전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백은이었다.
***
팽도운은 조심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걸음걸이였다.
‘뭐지, 이 냄새…….’
그들에게 조금씩 다가갈수록 무엇인지 모를 지독한 냄새가 나가 시작했다.
“이런 늦은 시간에 이런 곳에 젊은이가 있다니.”
지팡이를 들고 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이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길을 좀 잃어서 그렇습니다만 죄송하지만 근처에 마을이 있는지 알고 계시면 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클클클. 어디로 가는 길인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목적지를 묻는 말에 팽도운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크릉.”
“크르르.”
그런 긴장감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내공이 흘러나오자 노인의 주위에 있는 7명의 입에서는 마치 짐승이 우는 듯한 소리가 팽도운의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노인에게 너무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주위에 시선을 돌리지 못했던 팽도운이었다.
“자네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그쪽 방향에 있는 마을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겠나?”
목소리와는 다르게 친근한 느낌을 주는 말투였다. 그런 노인의 말이 타당했다고 생각했는지 팽도운은 자신도 모르게 수긍하고 말았다.
“팽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클클클클.”
하북성 북경이 아닌 자신의 세가 이름을 대자 노인이 웃기 시작했다.
“팽가라…… 이쪽으로 약 반 시진 걷다 보면 작지만 마을이 하나 있네.”
“그렇습니까.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정파인으로서 또한 팽가의 일인으로서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자와 싸우면 무림인 대 무림인으로서의 무의 끝을 보기 위한 대결이 아닌 일반적인 살인을 위한 싸움이 될 것 같았다. 또한 자신 혼자만이 아닌 다른 이들의 목숨도 어떻게 보면 자신이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이자와 싸우게 되면 분명히 그들은 도망치지 않고 자신과 같이 싸울 것이라 믿었기에 함부로 달려들 수는 없었다.
“이보게, 젊은이.”
노인의 말을 듣고 돌아가려던 팽도운은 자신을 불러 세우는 노인의 말에 멈추었다.
“내가 자네에게 무언가를 주었는데 자네 역시 나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하지 않겠나?”
노인의 말에 팽도운은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는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노인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았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팽도운의 말에 얼굴을 숙이고 있던 노인의 고개가 처음으로 들려졌다. 고개를 들은 노인의 눈은 순간이지만 빛났다.
“자네와 저곳에 있는 자네 동료들의 몸이면 충분하다네. 클클클.”
스릉.
거대한 대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팽도운의 도가 뽑혔다.
“무슨 뜻입니까. 노인장.”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하네. 좋은 가문의 아이들이니 상당히 뛰어난 물건이 나올 거야. 클클클.”
노인이 손을 앞으로 뻗자 그곳에는 금색의 작은 종이 들려 있었다.
딸랑.
종이 한번 울렸다.
칙칙한 분위기의 노인과는 다르게 상당히 맑은 종소리였다.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듯한 종소리는 왠지 모르게 그런 종소리를 듣는 이들에게 공통된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갖고 싶다.’
“가라, 나의 귀여운 아이들아.”
사람들을 빨려들게 만드는 종소리에 정신을 살짝 놓고 있던 이들은 노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크아앙!”
온몸을 가리고 있던 인형들 중 네 명만이 움직였다. 세 명은 여전히 노인을 호위하듯 노인의 주위에서 서 있었다.
“흩어지지 마!”
팽도운은 자신을 상대하려고 하는 한 명의 인형을 바라보며 뒤에 있는 이들에게 외쳤다. 하지만 시선은 앞에 고정해 둔 상태였다. 팽도운의 앞에 있는 상대는 팽도운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달려들겠다는 기세를 뿜어 대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자신의 도를 으스러질 정도로 꽉 쥔 팽도운은 눈앞에 짐승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인형에게 달려들었다.
캉.
팽도운의 거대한 도를 한 팔을 들어 막는 인형이었다. 더군다나 문제는 상대방이 특별한 무기를 사용한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도에 있던 기로 인해 옷이 찢어지자 맨살이 들어났다. 보기 거북할 정도로 창백한 피부가 말이다.
“인간이 아닌 건가.”
금강불괴가 아니고서 도를 맨몸으로 막는 인물이 과연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내공이 아닌 외공으로 신체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절대로 패도적인 도법을 사용하는 팽가를 상대로 이렇게나 대담하게 자신의 몸을 들이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팽도운의 앞에 있는 인형은 달랐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몸으로 팽도운의 도를 막은 것이다.
“크크크. 해볼 만하겠어!”
제대로 싸워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대부분의 싸움, 아니 무림인들 간의 비무는 어떻게 보면 자신들도 모르게 한계를 정해 놓고 하는 싸움이었다. 이유는 솔직히 별것 없었다.
단순한 비무였다. 상대방을 죽일 이유는 없었고, 자신 역시 죽을 일은 없다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깔려 있기에 자신의 능력 이상을 끌어올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그렇기에 가문에 있는 이들 중 몇몇은 실전 감각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 가문에서 내쫓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크아아!”
팽도운은 거침없이 자신의 몸속에 있는 기운을 끌어올렸다. 거대하고 패도적인 기운이 그의 몸을 중심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크아앙!”
그것은 상대 인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소리를 지르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곧 옷이 부풀어 오르고, 한계점에 이르렀는지 옷이 터져 나갔다.
“역시 인간은 아니었어.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지!”
팽도운 역시 사람이다. 남을 죽인다는 것에는 알게 모르게 망설임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것은 그의 소심한 성격도 한몫했다. 할 때는 해도 그 후가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제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으나 여전히 꿈속에서 나오며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간은, 아니 움직이는 시체는 달랐다.
“꿈에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꿈 따위는 뒷일이었다. 지금 당장 살아야 그런 꿈으로 인해 고생을 하던지 할 것이었다.
쾅.
팽도운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가 깊게 파이며 팽도운은 앞으로 튀어나갔다. 두 마리 야수 간의 격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