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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2화)
2장 이계 상륙작전(2)
“허어억!”
잠에서 깬 김충렬 준장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족들 꿈을 꾼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뭔가 묘한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여보, 상아, 령아.”
왜인지 모르겠지만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가족들의 모습이 떠오른 그는 잠깐이나마 감상적이 되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을 조국 한반도가 떠올랐다.
주요 도시란 도시에는 핵이 떨어져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문득 대구에 있을 딸자식이 떠올랐다.
“제독님, 일어나셨습니까?”
그때 작전참모가 그의 침대 주변에 둘러진 커튼을 걷으며 모습을 보였다.
“작전참모인가?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나?”
“10분 남짓입니다. 출혈로 인한 쇼크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신 것은 대단한 정신력이라고 군의관이 알려 줬습니다. 역시 청해 함대의 불사신다우십니다.”
“농담 말게.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되었나?”
“예. 우선 각 부서에 대한 피해 보고입니다. 해병대 중상자 셋, 경상자 마흔일곱. 조타실 경상자 하나. 함교 피해는 조타수가 우측 손목 골절이 전부이고, 대부분 가벼운 긁힌 상처 수준입니다. 사망자는 없습니다.”
“기적이로군. 그만한 충격에 사망자가 없다니.”
“제독님이 철모를 안 쓰셔서 크게 다치신 겁니다. 다음부터는 꼭 철모를 착용해 주십시오.”
“그러지.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은 어떤가?”
“예. 현재 두 함 모두 별다른 피해는 없다고 합니다. 다만, 두 함 모두 전기 계통 장비들이 먹통이 되어 버리는 통에 통신 장비와 레이더 수리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서둘러 정비하라고 하고, 달리 장비 손실은 없나?”
“특별히 큰 피해는 없습니다만, K―511A1 한 대가 고정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반파되었습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서둘러 상황 정비하고, 수리가 어느 정도 끝날 때까지 현 지점에서 대기한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짱깨 놈들한테 들킬 수 있어. 각 함에 그리 전달하게.”
“예, 알겠습니다. 필. 승.”
“필승.”
작전참모가 나가고 불과 5분 남짓 지났을까.
갑자기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방금 나간 작전참모가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제독님! 아군기입니다! KF―35입니다!”
“뭣? 아군기라고?”
레이더와 통신 장비가 모두 망가져 버린 탓에 비행기가 접근해 오는 것도 몰랐다. 그나마 소리가 들리고 육안으로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저공비행으로 독도함 위를 지나간 비행기는 틀림없이 쥐색의 대한민국 공군기였다.
작전참모의 부축으로 관제실로 비틀거리며 돌아온 김충렬 준장은 선회하여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를 보았다. 선회하는 순간에 비행기의 상부가 그대로 비쳤고 날개에 찍혀 있는 문장은 틀림없이 공군의 KF―35였다.
하지만 약간 이상함을 느낀 김충렬 준장은 갑자기 아군기가 나타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그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벗어난 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작전참모. 전투기가 단독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나?”
그 순간 작전참모의 뇌리에도 저 아군 전투기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확실히. 전투기는 편대를 형성해서 다닙니다. 최소한 두 대는 붙어 다니면서 행동하는 것이 맞습니다만.”
“우리가 핵 공격을 받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약 40분 경과하고 있습니다.”
“F―35 랜딩 기어가 내려가 있습니다!”
쌍안경을 들고 상황을 살피던 한 장교가 외쳤다.
그리고 선회하는 모습을 떠올린 김충렬 준장은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군함식 때 자신의 딸이 손바닥만 한 비행기 모형을 들고 보여 주던 장면이었다.
“F―35는 말이죠. 마하 2를 넘는 최고 속도를 가지고 있지만, 82노트의 저속으로 비행하면서 받음각 40 정도로 하면, 독도함이 23노트의 속도로 전진하고 있을 때 아슬아슬하게나마 착륙이 가능해요.”
“작전참모. 당장 갑판 비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판을 비우라니요?”
“잔소리 말고 당장 헬기들 다 띄워서 치워 놔! 어서! 어프로치 해 온다! 착륙한단 말이다!”
“무슨! 말도 안 됩니다! 이건 수송함이지, 항공모함이 아닙니다!”
“안 되면 되게 해! 그리고 지금 당장 전속 전진해! 최고 속도로. 풍향은 어디야?”
“12시 방향입니다.”
“좋아, 그럼 돌릴 필요도 없겠군. 어서 서둘러! 당장!”
― 왜앵! 왜앵!
급작스런 명령에 핵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모두 다시금 긴장감을 되찾았다.
“파리 여덟 마리! 어서 뛰어! 당장 갑판에 붙어 있는 파리들 타고 날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출동이라뇨?”
“긴급 상황이다! 잔말 말고 당장 튀어 가서 일단 띄워!”
영문을 모른 채 헬기 조종사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헬기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EMP 맞아서 못 띄울 텐데요!”
한 조종사가 외쳤다.
“이 짬밥은 X구멍으로 처먹은 자식아! 독도함이라는 두꺼운 철판이 때려 막은 상태에서 못 띄워? 과정 생략하고 8번부터 순서대로 이륙해!”
UH 헬기와 AH 헬기 들이 차례대로 갑판에서 뜨기 시작했다.
해저에서 폭발한 핵폭탄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한 EMP는 도체를 통하여 이동하면서 각종 전자 장비들을 무력화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지만, 독도함의 구조적 특성상 헬기들은 EMP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우선 독도함이라는 거대한 철판이 일차적인 방호 기능을 하고 있었으며, 갑판에 돌출되어 있는 와이어 고정 블록은 비전도체로 싸여져 있었다. 게다가 각 헬기들은 고무바퀴가 달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EMP의 영향에서는 완전할 정도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F―35 어프로치 해 옵니다!”
작전참모가 외쳤다.
천천히, 아니 천천히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초속 42미터의 속도를 내고 있는 F―35였다.
간신히 갑판을 어느 정도 비워 활주로마냥 만들어 놨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저기, 관제관님. F―35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지 않던가요?”
한 부사관이 화기 관제관에게 물었고, 화기 관제관은 그런 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그러고도 군인이냐?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F―35 중에서도 A타입이라고.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건 B타입. 대당 가격이 천만 달러씩이나 차이가 나니까 B타입은 비싸서 없어! 그리고 랜딩 기어 잘 보라고. 앞바퀴 부분이 작지? C타입은 A타입과 같이 수직 이착륙은 불가능하지만 캐터펄트를 견디기 위해서 랜딩 기어가 커. 즉, 항공모함용이란 말이지. 저건 우리나라 공군에서 운용하는 A타입이라서 갑판이 짧은 이곳엔 착륙 못 할 텐데, 저 파일럿 누군지 모르지만 단단히 미쳤군. 미쳤어.”
그 순간에도 갑판에서는 난리도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비상시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도 훈련해 본 적이 있었고, 미약하나마 장비도 갖추고 있었다.
K―511A1 두 대가 갑판의 후미 양쪽 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두 대의 차량 사이에 와이어가 걸쳐지고 단단히 고정시키게 되었다.
두 차량은 시동이 걸린 상태였으며, 운전병들은 긴장감 속에 클러치를 밟은 채 엔진 알피엠을 높이고 있었다.
깃발이 흔들리고 두 대의 차량이 서로 등을 맞댄 채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F―35의 거대한 몸체가 그사이를 지나갔고, 뒷바퀴가 와이어에 걸렸다.
마치 한 마리의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K―511A1 2.5톤 트럭 두 대는 순식간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서로가 반대 방향을 향해 질주하는 것과는 반대로 거리를 좁히면서 끌려가고 있었지만 충돌하지는 않았다.
전투기에는 지상 착륙에서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경우에 대비하여 훅이 달려 있었고, 만약 훅을 사용했다면 두 대의 트럭은 끌려가다가 충돌했을 것이다.
조종사는 그것을 감안하여 훅을 내리지 않았고, 뒷바퀴의 폭만큼 여유가 생겨 두 대가 서로 맞부딪히지 않았던 것이다.
끌려가는 것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두 대에 타고 있던 운전병들은 실린더가 터질 정도로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해서 F―35가 바다에 떨어지면 자신들도 바다에 같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죽을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갑판에 길쭉하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12개의 타이어가 갑판을 가로지르며 연기를 내뿜은 것이다.
단 한 번의 기회에 착륙에 성공한 F―35는 엔진을 정지시켰다.
일반적인 항공모함의 경우 케이블은 3개 내지는 4개 정도를 두고 있으며, 조종사는 케이블을 거는 순간 엔진을 최대출력으로 올린다. 만약 케이블이 걸리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다시 이륙하기 위함인 것이다.
하지만 독도함은 항공모함이 아니다. 당연히 갑판에 고정되어 있는 착륙 보조용 케이블 장치가 없었고, 차량으로 임시 대처를 했던 것이다.
단 한 줄의 케이블. 그리고 단 한 번의 기회.
그렇게 독도함은 최초로 전투기가 착륙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F―35가 착륙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이 짧은 수송함 갑판 위에 전투기를 착륙시킨 파일럿의 솜씨는 신의 경지라 불릴 만했다.
그리고 잠깐 동안 이륙해 있던 헬기들도 차례차례 다시 제자리를 찾아 착륙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율곡 이이함과 세종대왕함에서도 함성이 울려 퍼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충렬 준장은 이 무모한 파일럿에게 욕을 퍼부어야 할지 칭찬을 해야 할지 복잡한 심정이었다.
갑판으로 내려간 김충렬 준장은 함교 앞 갑판으로 천천히 이동 중인 F―35를 바라보았다.
조종석 아래쪽에 대한민국이라는 글씨와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2.5톤 트럭들을 고정하는 와이어가 F―35를 고정하기 시작했고, 2.5톤 트럭들은 자리를 옮겨 함미 부분으로 이동했다.
캐노피가 열리고 조종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통 시커먼 바이크 헬멧마냥 머리 전체를 감싸고 있는 헬멧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전투기에서 내린 조종사는 씰을 풀어 헬멧을 벗었고,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얼굴을 드러냈다.
“필! 승! K2 소속 청수리 편대 김령 중위. 독도함에 착함하였습니다.”
* * *
독도함 전체에 무모한 F―35 파일럿에 대한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상해 함대 격파가 힘들 경우 제주도 방어를 위해 독도함에 타고 있던 해병대 700명에게도 그 소문이 전달되었다.
“김 해병님. F―35 파일럿이 여자랍니다.”
“야!”
“네?”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우리 머리 위에서 치킨 레이스한 미친놈이 여자라고?”
“예, 그렇습니다. 굉장한 미인이라는 소문입니다.”
그때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해병. 내가 듣기로는 근육이 엔간한 해병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우락부락한 여자라고 들었는데?”
“박 해뱀도 어디서 루머를 들으셨나 보네요. 파일럿이 입고 있는 슈츠 때문에 근육은 확인 못 한다구요.”
“뭐? 일병 짬밥 끄트머리가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 앙?”
박 상병과 이 일병이 투닥이고 있는데, 김 병장이 툭 끼어들었다.
“상병 짬밥 찌끄러기가 어디서 언성을 높여? 부사관 신청했다고 이젠 눈에 보이는 것도 없어? 그리고 후임 교육 안 시켜? 꺾이지도 않은 놈이 해뱀이 뭐야? 그리고 누가 말꼬리에 요를 붙여랬어. 엉? 사회인이야? 군대가 싫어? 전역하고 싶어? 페트병 종아리 끼고 두 돈 반에서 뛰어내려. 십자인대 끊어 먹고 전역시켜 줄 테니. 후임 교육 똑바로 해 짜샤. 네가 후임 교육 제대로 안 하니까 일병 끄트머리가 기어오르지. 이등병 쓰레기들이 뭘 보고 배우냐? 엉? 어쭈 대답 안 해? 귓구녕에 당근 쑤셔 넣었어? 건빵 10개 1분 내로 먹게 해 줘? 내가 물로 보여? 앙?”
쏟아지는 갈굼 속에서 박 상병은 아차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역을 한 달 남겨 두고 하루하루를 지내던 김 병장이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고 끌려와 전역은 물 건너간 상황이었으니, 그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할 것이다. 걸리기만 걸려 봐라 하며 벼르고 벼르던 김 병장이었고, 때마침 개념을 밥 말아먹은 이 일병이 기름을 퍼부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30분 뒤에 이 일병은 박 상병에게 불려 갔다.
내리 갈굼!
30분 동안 같이 갈굼받았지만 박 상병은 이 일병을 끌고 가 또다시 30분 동안 갈구기 시작했던 것이다.
군대란 참 미묘하고 복잡한 곳이었고, 사병들 사이에서의 갈굼은 어쩔 수 없었다. 악순환이라고 하지만, 사라졌다 싶으면 다시 고개를 드는 갈굼의 연속이다. 개념 없는 이등병들이 마음의 편지라는 것을 써서 자신들의 부당함을 호소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다시 일병을 거쳐 상병이 되고 병장이 되면서 자신들이 쓴 마음의 편지가 고참의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 자체를 없애 버렸음에 한탄한다.
그리고 사라진 갈굼이 다시 시작되고, 이등병들은 다시 마음의 편지를 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그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더욱이 지금은 전시. 전시에는 이등병들의 불평불만은 하극상으로 치부되었고, 전역을 앞두고 있던 병장들은 그들의 짜증을 갈굼이라는 형태로 승화시켜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