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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4화)
2장 이계 상륙작전(4)
구조 요청을 한 잠수함은 다름 아닌 김유신함이었다.
해병대들과 기술자들이 대거 투입되어 김유신함을 구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독도함이 있었기에 김유신함은 구조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해가 슬슬 수평선 너머로 기울어 가려는 무렵, 독도함 함교에서는 각 함의 함장들과 사령부 참모들, 그리고 사령관인 김충렬 준장이 모였다.
전기 계통의 장비들에 대한 수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기 때문에 모인 것이다.
그 첫째로는 방수되는 무전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
둘째로는 세종대왕함이나 율곡 이이함의 경우 탄도미사일 요격을 위하여 무궁화 위성과 연결이 가능한 시스템이지만, 위성이 안 잡힌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모습을 드러낸 두 개의 달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아니 상식을 떠나 지구상의 인간이라면 갓난아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아는 사실인 하나뿐인 달이 두 개씩이나 떠 있다는 것이다.
지휘관들만이 동요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병들 모두 동요하고 있었다. 하늘에 달이 두 개 떠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보니 현실에 대한 감각 자체를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더욱이 핵 공격을 맞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달이 두 개가 되었다는 상황에 다다르면, 누구라도 생각한다. ‘이곳은 저승이 아닐까?’라고.
하지만 자신들은 분명히 살아 있었고, 군인으로서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설령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해병과 해병대는 그리 허약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지휘관급 긴급회의가 실시된 지 30분 만에 결론이 나왔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곳은 지구가 아닐 것이라는 결론을 짓고, 데프콘 태세도 3단계로 낮추어 버렸다.
낯선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전에 별다른 전투를 치르지 못한 장병들에게 적당한 휴식도 취해 줘야만 하는 것이다. 더욱이 무엇 하나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레이더와 소나를 통하여 위험은 사전에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북동쪽 방향은 일찌감치 F―35가 갔다 온 방향이었고, 수백 킬로미터를 지나는 동안 육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확실했고,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 두 척 모두 서쪽 70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육지를 포착하였기에 함대는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종대왕함이 선두, 율곡 이이함이 후미, 독도함이 한가운데 위치에서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함대의 측면에는 긴급 수리를 마친 김유신함이 따라붙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오자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은 더욱 그 빛을 밝히고 있었다.
새하얀 달과 핏빛의 붉은 달.
그리고 모두가 식사를 하면서 긴장을 늦추는 시점에서, 다시금 함대 전체를 소란스럽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독님! 문어 모양의 거대 생명체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박태성 참모가 헐레벌떡 뛰어와 식사중인 김충렬 준장의 시간을 방해했다.
“무슨 헛소리야! 크라켄이라도 나타났단 말이야?”
“세종대왕함의 전문에는 백 미터가량의 생명체입니다!”
사실 그다지 크게 소란 피울 상황은 아니었다. 최초 발견 당시 길이만 100미터에 육박하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저 지나가던 고래 정도로만 추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쳐 가는 것 같았으나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함대를 향하여 방향을 바꾸어 접근해 온 것이다. 그리고 약 2킬로미터 정도의 거리까지 접근해 오면서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기에 육안으로 그 형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세종대왕함에 전하도록. 함포사격을 허가한다고.”
김충렬 준장의 허가가 떨어졌고, 잠시 뒤 세종대왕함의 127밀리 주포가 불을 뿜었다.
목표는 1.5킬로미터 전방에 모습을 드러낸 채 다가오고 있는 거대 문어였다.
너무 가까이 접근을 허용하면 주포를 쓸 수 없게 된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만 있다면 공격은 쉬우나 접근하여 바다 밑에서 급작스런 공격을 받는다면 상당히 까다롭게 되기 때문에 선공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세종대왕함은 단 한 발의 주포를 쏘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탑건함다운 솜씨였다. 원 샷. 원 힛. 원 킬.
철갑고폭탄을 쏜 것은 정답이었다.
포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타깃의 장갑을 뚫기 위한 목적인 철갑탄, 두꺼운 탄환을 재차 폭발시키는 유탄, 그리고 그 복합형인 철갑고폭탄이 있다.
세부적으로 나누자면 철갑탄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일부는 순수하게 구멍을 뚫기 위한 목적으로 발사 직후 포탄이 갈라지면서 내부에 숨겨져 있는 화살과 비슷한 관통자가 날아가기도 한다.
철갑고폭탄의 경우는 어느 정도 두께의 장갑을 뚫고 지나가서 폭발하는 형태이다. 일반적인 유탄이 충격을 받자마자 폭발하는 것과는 형태가 다른 것이다.
그런 철갑고폭탄이 구멍을 내며 거대 문어의 몸속에 들어갔고, 미처 관통을 하기 전에 내부에서 폭발하여 거대 문어의 생을 마감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세종대왕함의 함포사격으로 크라켄은 일격에 몸통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크라켄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운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망망대해를 주름잡던 크라켄.
일부러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그 모습을 드러내어 강자의 여유를 보이던 크라켄이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인간들은 좋은 사냥감일 뿐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상대가 너무 나빴다. 아니 나쁘다고 표현할 수준을 넘어선 최악의 상대였다.
언제나처럼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어 공포에 떨면서 도망치려고 발악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접근해 오던 크라켄. 평소 사냥하던 배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배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에 약간 놀랍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확신은 자만이었고, 자만은 크라켄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대로 청해 함대의 승조원들과 해병대 인원 도합 약 1,600여 명에게는 한참을 배불리 먹을 식량과 간식을 제공해 주는 일이었다.
* * *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의 모든 기능들이 회복되었지만 크라켄의 출현 덕분에 태세는 3단계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알 수 없는 세상에 떨어진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식량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라켄은 127밀리 주포에 박살이 나 버린 몸통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독도함의 갑판 위로 끌어올려 놓았다.
상당한 분량이 몇 차례 끼니를 대신하여 소모되었고, 나머지 부분들은 해병대 700여 명이 달려들어 각자 소유하고 있던 대거로 포를 떠 말리게 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맑은 날씨에,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양의 문어포를 확보할 수 있었고, 모든 장병들의 간식 대용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안타까운 건 소주가 없다는 정도?
그렇게 며칠을 지내면서 독도함의 레이더에도 육지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섬부터 시작해서, 해안선이 포착되기 시작하였고, 점점 가까이 접근함에 따라 상당한 규모의 육지임이 확인되었기에 청해 함대에는 다시금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야간을 틈타 해안선 가까이 접근한 청해 함대는, 우선적으로 해병대 일부를 IBS 고무보트에 태워 상륙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정확하게 어떤 곳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발을 디딜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탐색조를 편성한 것이다.
육지가 간신히 보일락 말락 하는 위치에서 관측한 결과로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성한 숲뿐이었다. 차라리 항구라도 존재했다면 거주인의 존재 유무 확인이 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스무 명의 해병대가 두 대의 IBS 고무보트에 나눠 타고 탐색을 실시하였다.
정확히 24시간 후, 보고를 통해 숲 속 곳곳에 민가로 추정되는 마을이 몇 군데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각 마을들은 목재 건물로 세워져 있었고, 원주민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생김새를 추측컨데 서양인들로 생각되어졌다.
어차피 알 수 없는 세상에 떨어진 건 매일같이 밤하늘에 빛나는 두 개의 달로 확인되었다. 이제 와서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서양인으로 보인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반가워해야 할 입장이었다.
수색조의 보고에서는 문명 수준이 상당히 뒤떨어져 보인다고 했다. 마을에는 금속으로 된 제품이 없었고, 입고 있는 옷 또한 합성섬유가 아닌 천연섬유였고, 매우 단순한 염색이 되어 있다고 했다.
해안선 근처에는 다행히도 사람이 전혀 살지 않았기에, 지휘부는 상륙작전 명령을 내렸다.
UH 헬기가 상공을 가로지르고, 해병대의 상징인 상륙 돌격 장갑차가 바다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솔개에는 155밀리 야포와 K―711 트럭이 탑재되어 수면 위를 살짝 뜬 상태로 해안에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이 바다를 경계하고, AH 헬기가 공중을 감시하였고, UH 헬기가 분주히 왔다 갔다 하면서 지상을 경계했다.
해병대 700명이 상륙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UH 헬기와 AH 헬기 들이 쉴 새 없이 하늘 위에서 경계를 서는 가운데, 상륙 돌격 장갑차들이 순식간에 주변을 휩쓸면서 평지를 확보하기 시작하였고, 해병대 700명이 뛰어들자 무성하던 숲의 일부는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평지가 되어 버렸다.
1차 작전으로 헬기들이 공중에서 지상과 공중에 대한 경계 임무를, 상륙군은 주둔지 확보 임무가 우선적으로 내려졌고, 숲의 한 부분이 순식간에 휩쓸리며 공터가 되어 버리는 것으로 1차 상륙작전이 마무리되어졌다.
뒤이어 2차 작전으로, 가장 가까운 고지를 확보하여 보다 효과적인 주변 경계와 외부에 대한 공격의 방비를 갖추기 시작하였고, 상륙작전 개시 두 시간 만에 사령부 텐트까지 완전히 세워졌다.
상륙군 해병대 700명. 그리고 각 함에서 차출된 해군 300명.
도합 일천에 달하는 대한민국 국군이 이계의 땅에 그 첫발을 내디뎠다.
3장 여기는 부산(釜山)(1)
상륙을 마친 뒤, 잠시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주변은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았고, 딱히 위험 요소도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 숲의 무성함에 비하여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곳이었다.
해안가는 자연 포구가 형성되어 있어서, 사람이 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개발이 가능할 정도로 지리적으로 좋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니 살려고 한 흔적조차 없다는 점이 이상할 정도였다.
오히려 살기 힘든 숲 속 깊숙한 곳에 마을이 존재한다고 하니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지휘관들이나 하는 것이다. 일반 사병들이나 일선에서 지휘하는 사관 및 부사관 들에게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반 사병 두 명이 숲 속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박 해뱀. 헥, 헥. 좀 천천히 가지 말입니다. 헥, 헥.”
“자식이 빠져 가지고. 해병대가 고작 그 정도로 죽는소리하냐? 포인트 베타로 신속히 이동하여 통신 장비 구축하라는 소리 못 들었어?”
“박 해뱀. 근데, 헥! 왜, 헥! 제가, 헥, 헥. 이걸 메고, 헥! 가야 하죠?”
“P―999K 가지고 그러냐? 자식이. 나도 군장 차고 있잖아? 안 보여? 부피만 따지면 너보다 훨씬 크다고. 완전군장 무게나 무전기 무게나 별반 차이도 없는데 왜 그래?”
“박 해뱀. 페트병.”
“시꺼 이 자식아! 자꾸 고참한테 말대꾸할래? 앙? 그리고 통신병은 네놈이지 나냐? 확보된 고지에 통신 장비 설치하는 임무가 네 주된 일인데, 이 몸이 몸소 따라가 주는구먼. 우는소리 할래?”
“김 해병님한테 시달리기 싫어서 가는 거 아닙니까?”
“무…… 무슨! 아, 다 왔네. 이 해병, 무전기 내려놓고 지통실 연락해.”
“헥, 헥. 무슨 산 하나 오르는 데, 10분도 안 걸려서 오르냐구요. 헥.”
“귀신 잡는 해병대다 이놈아! 자꾸 말대꾸할려? 그리고 길은 내가 만들었지 네놈이 만들었냐? 길 만들면서 가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그야 박 해뱀 제초 작업 솜씨는 부대 내에서도 손꼽히잖습니까. 헥, 헥. 후임들 사이에서는 박 해뱀님이 밟고 지나간 자리는 두 번 다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고 유명한데 말입니다.”
“그거 어디서 들었냐?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나쁘게 말하는 것 같다만?”
“좋은 뜻이지 나쁜 뜻은 하나도 없슴다. 확실함다. 그 능력이 워낙에 좋아서 포인트 베타까지 길 만드는 작업에 박 해뱀이 추천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말입니다. 확실히 박 해뱀 군장 찬 상태로 길 만들면서 가는 속도 장난 아니었슴다. 무전기 메고 있다고 해도 따라가기도 벅차던데 말입니다.”
“짜아식이. 어디서 그런 뒷구녕 핥는 소리 배웠냐? 비데가 따로 없네. 암만 그래도 네놈만큼은 싫지가 않구만. 그건 그렇고 진지 구축에 투입된 애들은 다 어디 갔지?”
고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헬기 레펠로 먼저 투입되어 있을 1소대 인원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 땅 파고 숨어 있는데 말입니다?”
“응? 어디? 보여?”
“그냥은 안 보이지 말입니다. 저쪽에 셋, 저쪽에 둘, 그리고 저쪽에 셋. 에…… 그러니까……. 아, 나머지 둘은 저기 사각 지역인데 말입니다?”
“오오, 역시 이글아이 이 해병. 근데 쟤들 왜 땅 파고 그 밑에 들어가 있는 거냐? 진지 구축까지 해 놓고 말이지.”
“그럼 가까이 있는 쪽에 물어보겠슴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부산.”
갑자기 메고 있던 K―1 돌격소총을 겨누며 암구호를 외치는 이 일병.
그런 이 일병의 모습에 박 상병은 그저 대충 이 일병의 총구가 향한 쪽으로 총을 겨누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