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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6화)
3장 여기는 부산(釜山)(3)


김충렬 준장이 자리에 앉고, 나머지 참모들이 모두 착석을 완료하자, 김충렬 준장은 온화한 모습으로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말해 보게. 내 꼭 자네 의견이 듣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사소한 실수는 신경 쓰지 말고.”
“옛. 그, 그럼 설명 드리겠습니다. 선발조의 정보에 따르면 각 마을의 문명 수준은 현저히 낮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나무 방책이 세워져 있었고, 마을 바깥으로 나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필시 무언가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하지만 그 규모나 정도를 생각해 볼 때, 외부의 적은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되기 어렵고, 이곳 어딘가에 살고 있을 몬스터를 막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몬스터라니?”
“에…… 그러니까…… 숲 속에 사는 맹수 같은 부류입니다.”
“음……. 계속해 보게.”
“원주민들과의 우호적인 접촉을 시도하기에 앞서 우리 청해 함대가 가진 힘으로 맹수들을 내쫓고 보호해 주는 모습을 보여 주게 되면, 그들은 우리를 우호적으로 맞이해 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과연……. 일리 있는 말이군. 그나저나 선발대 소식을 일반병인 자네가 어찌 그리 잘 아는가?”
“옛. 제 동기들만 해도 이곳에는 백 명 가까이 있습니다. 평소 사이가 좋았던 관계로 여기저기서 조금씩 이야기를 전해 들어 조합한 것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정보가 틀리군. 자네 말로는 나무 방책이 있고 주민들이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보고를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러자 작전참모 박태성 대령이 말을 이었다.
“극히 사소한 내용이었기에 제독님께 보고 드릴 때는 누락된 것 같습니다.”
“그런가? 과연. 그럼 접촉은 잠시 늦추도록 하고, 우선은 현지에 서식하는 맹수들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선결 과제겠군. 자칫 우리 사병들이 다칠 수도 있을 테니 조심해야겠어. 일단 수색조를 편성해서 살피는 것이 좋겠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박 상병이 한 발 나서며 말했다.
“저희가 갔다 오겠습니다.”
박 상병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보다 저기서 무섭게 눈을 이글이글 불태우고 있는 대대장의 모습을 보면서 엄청나게 깨질 것 같자 그냥 벗어나는 것보다는 임무를 받아 도망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군 생활 동안 썩혀 둔 두뇌 회전을 200퍼센트 가동하여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응? 방금 근무 서고 온 참에 쉬지도 못하였을 텐데, 괜찮겠나?”
“이 해병의 별명은 이글아이입니다.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어떻게 숨어 있어도 귀신같이 찾아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리고 이 해병이 갖춘 이곳 세계와 유사한 판타지 세상에 대한 지식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박 상병의 모습에 매료된 이 일병도 가세했다.
“저 또한 박 해병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박 해병님은 부대 내에서도 유명한 포레스트 디…… 숲 속을 평지 다니듯이 헤집고 다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근접전 능력에 있어서도 매우 뛰어납니다.”
이렇게 두 사병이 나서자 김충렬 준장은 부하들의 유능함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하하하. 한 중령 자네는 유능한 부하들을 두고 있군? 역시 해병대야. 일단 식사부터 하고 한 시간 뒤에 출발하도록.”
방금 전까지 주제넘게 나선 자신의 부하 사병들을 어떻게 훈련을 빙자한 고문을 시켜 줄까 고민하던 한 중령은, 사령관의 칭찬을 받자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이내 힘주었던 시선을 풀었다. 일개 사병이 제멋대로 주제넘는 행동을 하여 매우 언짢았지만, 오히려 이렇게까지 칭찬을 받게 되자 화풀이할 이유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예. 필. 승!”
그리고 그 애증의 대상인 부하들은 거수경례를 하고선 지통실 바깥으로 나갔다.

박 상병과 이 일병이 지통실을 나가자 김충렬 준장은 2대대장인 한지욱 중령에게 고개를 돌렸다.
“한 중령, 자네 부대 소속 아닌가?”
“맞습니다.”
“수색 임무는 특수 수색 대대가 하는 게 적합한 게 아닐까 싶은데, 왜 안 말렸나?”
“저 두 사람 원래 1사단 특수 수색 대대 출신입니다.”
“응?”
“수색 대대에서 사고를 쳐서 영창에 갔다 온 다음에, 진급이 누락되어서 저희 대대로 흘러왔습니다.”
“사고라니? 어떤 사고를 쳤단 말인가?”
“확실하게 덜미를 잡힌 것으로, 훈련 중에 일어난 사건이고, 추측되고 있는 건수만도 몇 건이 되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떠맡게 된 계기는 작전지역에 설치된 훈련용 지뢰 서른 개를 몽땅 캐내어 엉뚱한 곳에 매설한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게.”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방어군 진영에서 설치한 훈련용 지뢰를 찾아내어 방어군 이동 지역에 매설함으로써 총알 한 발 안 쓰고 방어군 1개 소대를 싹쓸이해 버렸습니다. 본디 내려진 명령은 방어군 순찰 지역의 수색과 병력 상황 보고가 임무였으나, 이를 어기고 적 진영 깊숙이 침투하여 1개 소대를 전멸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에 따라 명령 위반으로 둘 다 영창에 보내졌고, 부대에서 쫓겨나 결국 제가 맡게 된 것입니다.”
“능력 있군. 그런데 어찌 그리 잘 아나?”
한 중령은 순간 표정을 굳히며 이를 살짝 갈았다.
“당시 방어군 진영이 저희 대대였습니다. 1중대 1소대가 순찰 임무에 투입되었고, 전멸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후우, 날카로우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사실 그 정도로 끝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왕 말씀드리는 것 다 풀어놓겠습니다. 그 직후 병력을 투입시켜 수색 작업에 돌입하였으나, 그 두 녀석이 수색망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대단하군. 같은 해병대에서 그만한 능력이 있다니. 그리고?”
“지통실 텐트를 대검으로 찢어 버리고 진입하여…… 한 놈이 제 목에 대검을 겨누고, 다른 한 놈이 총을 겨눠 사실상 지통실 전체가 점령당해 버렸습니다.”
“응? 아, 그 사건. 그 거물들. 하하하하하. 그랬군, 그랬어. 하하하하.”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방어군이든 점령군이든 정상적인 훈련을 위해 분주했는데, 그 두 놈 덕분에 점령군 쪽에서도 다른 사병들은 총 한 발 못 쏴 보고 끝나 버렸고, 방어군도 어이없게 지통실이 점령당해 버리는 통에 훈련다운 훈련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직후 수색 대대장과 면담해서 명령 위반으로 영창에 집어넣은 다음, 제가 받게 된 것입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목에 그 차가운 감촉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한 중령은 슬쩍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크크크큭. 그런데 수색 대대장도 그런 거물들을 어찌 그리 흔쾌히 자네한테 넘겨줬나?”
“마지못해 넘겨주는 듯하는 모습이었습니다만, 알고 보니 그 두 녀석은 수색 대대에서도 전무후무하다는 괴짜들이었습니다. 각종 수색 임무와 저격 임무에서 전과는 확실히 세웠는데, 명령은 제대로 듣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훈련장 과녁을 저격하랬더니 과녁 모가지를 따오질 않나, 부대 내 시가전 훈련 중에 방어군 소속이면서 근무지를 이탈하여 점령군 소속 중대를 반쯤 털어놓고 복귀하질 않나, 대민 활동 갔다가 마을에 종종 내려오는 멧돼지를 잡아 오질 않나. 취사병이 힘들다고 밤사이 취사실에서 양파 한 포대를 몽땅 까놓질 않나. 산불 진화 작전에 투입시켰더니 노루 새끼를 끌어안고 내려오는 등 화려합니다.”
“하하하하. 화려하네, 화려해. 확실히 화려해. 그리고 자네가 인도받고 나서도 여전했을 것 같은데?”
“1소대에서 제 생일 선물로 준비 중이던 해삼과 전복을 그 두 녀석이 몽땅 건져 올려 2소대 생일 파티에 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부대 곳곳에 1소대에서 키우던 더덕, 산딸기, 송이버섯 등 그 두 놈이 오고 난 다음부턴 항상 있던 행사치레 같았던 1소대 자연식이 갑자기 중단되었고, 그 두 놈 소행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하하하. 갈수록 흥미로운 녀석들이군. 좀 더 자세히 알려 줄 수 없겠나?”
그러자 한 중령은 어느새 부관에 의해 준비된 자신의 앞에 놓인 파일을 펼쳐 김 준장 앞에 놓았다.
“박두식 상병. 한국체대 출신. 어릴 적부터 스포츠에 능해 어지간한 스포츠는 거의 만능으로 통달해 있으며, 태권도 3단, 검도 3단, 유도 2단, 특공무술 2단으로 각종 무술에 통달. 수색 대대 당시 별명은 귀신 우는 해병. 귀신도 울면서 잡힐 솜씨의 해병이라는 약자라는 별명입니다. 특히 산악전 능력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며, 숲 속에 들어가면 1개 대대 병력 전원을 투입시켜도 모를 정도로 도망치는 솜씨가 일품. 나무 타는 솜씨는 원숭이도 못 따라간다고 하여 일부에서는 손오공이라는 별명도 붙여진 상태입니다. 2대대 전입 후 여전히 그 괴짜 성격이 문제가 되어 벌로 제초 작업 명령을 내렸더니 야삽 한 자루로 이틀 만에 각개전투 훈련장까지 모조리 파 뒤집어엎어 버리고, 춘계 진지 공사 당시 부대 주변에 무성히 자란 나무들을 정리하는 데 투입시키자 박도 한 자루로 울타리 주변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내어 포레스트 디스트로이어라는 별명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익한 일병. 경북대 경영학부 출신. 태권도 2단. 양쪽 눈이 어릴 적부터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2.0을 기록. 야간에도 그 시력이 짐승과도 같은 수준이어서 야간 훈련에서도 적외선 스코프를 착용한 기록이 없음. 수색 대대 당시 그의 저격 능력을 시험하고자 천오백 미터 바깥에 과녁을 세워 놓고 스코프 없이 저격 성공 기록. 그 직후 호크아이라는 별명을 획득. 그 외에 사물을 보고 인위적인 흔적을 발견하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 수색대 내에서도 호평을 받음. 체력은 일반 수색 대원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는 편. 틈만 나면 책을 읽고, 부대 내 구식 흑백 PDA를 반입하여 수천여 권의 책을 밤중에 몰래 읽다가 관물 검사에서 발각된 적 있음. 자대 배치 직후부터 박두식 상병과 짝을 이루었으며, 두뇌 회전이 빨라 육체적인 것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뛰어난 존재였지만, 지나치게 살갑게 구는 성격상의 문제로 간혹 트러블을 발생시킴. 2대대 전입 후 그의 시력은 부대 내에서도 인정을 받았으나, 눈매가 너무 이글거린다 하여 한 선임에 의하여 이글아이로 별명이 붙여짐. 현재 2소대에 두 명을 배치시켜 1소대와 경쟁이 되도록 하여 서로 발전하게끔 도모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임무 성과에서도 차이가 생겨, 두 사람의 전입 전에는 1소대와 2소대의 대결에서 1소대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으나, 전입 후에는 1소대가 단 한 번도 2소대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신상 명세와 입대 후 화려한 활동을 보여 준 두 사람의 전과를 보고 들으면서 김충렬 준장은 매우 흥미 깊다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 * *

수색 임무를 부여받고 숲을 가로지르는 박 상병과 이 일병은 방금 전 근무 서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김충렬 준장의 지시로 개인화기부터 시작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장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이 떨어졌고, 두 사람은 입이 귀에 걸린 듯이 기뻐하며 각자에게 알맞은 장비들을 갖추었다.
이 일병은 MSG―90 저격 소총에서 과감하게 스코프를 떼어 낸 주화기. 그리고 K―5 보조화기에 캐멀 백, 대검, 야삽 등과 함께 두 사람의 이틀치 식량을 챙겼고, 박 상병은 기본 장비는 이 일병과 공통으로 하고, 식량을 챙기지 않는 대신 적외선 스코프, 쌍안경 등 각종 부수적인 장비들과 주화기로 K―7 기관단총, 그리고 왼손에는 박도가 들려졌다.
‘작전시간은 이틀. 현지 원주민들을 위협하는 맹수에 대한 조사와 포획, 그 외 모든 작전행동은 자유. 필요하다면 원주민들과의 접촉도 허가.’라는 파격적인 명령이 내려졌다.
참모들이 기겁하면서 말렸지만 김 준장은 단호하게 이 둘에게 임무를 맡겼고, 개인화기 및 장비는 자율 지참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각자 챙길 것들을 챙겨 들고 필요한 것은 곧장 요구하여 받아 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별나게도 양쪽 상의 두둑하게 초코바를 한가득 꽂아 넣고 있었다.
투입 전 보고를 위해 선 두 사람을 살펴본 김 준장은 그들의 상의 주머니 한쪽에 삐져나온 초코바 껍질을 보고서는 이내 빙그레 웃었다.
“별걱정 안 할 테니 잘 갔다 와. 복귀 시간과 몬스터 확보, 이 두 가지만 잘 지키고, 그 외에 시간엔 무얼 하든 자유니까 외박 나간 셈치고 다녀와.”
이 일병은 박 상병의 뒤를 따르면서 자신들을 배웅해 주던 사령관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수색 대대 당시와 같은 임무를 받고 나선 길이었지만 그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은 들떠 있었다.
500밀리 수통 대신 캐멀 백, 원하는 종류의 화기와 원하는 만큼의 탄의 지급.
그동안 정해진 화기와 정해진 임무만을 수행해야만 했던 과거와는 달라서일까. 박도를 휘두르면서 길을 만들며 앞장서고 있는 박 상병도 여느 때보다 힘차 보였다.
지도상에 표시된 마을 중 가장 가까운 마을이 자신들의 걸음으로 약 한 시간 반 거리에 있었다. 이런 숲 속에서 일반인이라면 거의 반나절은 넘게 걸릴 거리이지만 이들은 거침없었고 신속했다.
박 상병은 사령관의 마지막 말인 ‘외박 간 셈치고 다녀와’라는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정확히 48시간의 시간이 주어졌고, 임무라고는 ‘이곳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몬스터 한 마리의 모가지를 따갈 것.’이라는 극히 단순하고도 간단한 내용―으로 약간은 곡해되어 인식되고 있었다― 외에는 자유 시간! 자유 시간! 자유 시간!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겠다(?) 후다닥 가서 후다닥 해치우고 신나게 놀다가 복귀할 생각에 가득한 박 상병이었다.
그리고 이 일병은 필시 조우하게 될 몬스터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경이로운 속도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마을 근처까지 도착한 이들은 조용히 주변 지역 정찰에 들어갔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바싹 엎드린 채 쌍안경으로 마을의 모습을 살피는 박 상병이었고, 쌍안경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주변을 살피며 지형을 파악하는 이 일병이었다.
“박 해뱀. 여기 거의 중세나 다름없지 말입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입구 근처에 선 사람들 보이시지 말입니다. 칼 차고 있지 말입니다.”
“응? 어, 진짜네. 칼 차고 있네.”
“총 든 놈 하나도 없지 말입니다. 기껏해야 칼 차고 창 들고, 그마저도 칼 찬 사람은 두 사람뿐이고 창 든 사람도 세 사람이 전부지 말입니다. 경계 근무는 열 명 정도인데도 말입니다.”
“확실히 부실하긴 부실하네. 게다가 왜 저리 말랐냐? 못 먹고 사나?”
“당연히 못 먹고살지 말입니다. 이렇게 조그만 마을에 저런 나무 방책 세워 놓고, 힘쓸 만한 젊은이가 무려 열 명씩이나 경계를 서고 있으니, 농사도 제대로 못 짓지 말입니다.”
“하긴 일리는 있다.”
“가구 숫자는 고작 40여 개 정도인 걸로 보니, 한 가구당 힘쓸 장정 하나 내지는 둘씩 있다고 가정해도, 많아 봐야 60명 정도가 한계지 말입니다. 마을 규모로 봐서는 전체 인구가 200명에서 400명 사이로 보이지 말입니다.”
“어떻게 그리 잘 아냐? 그새 세어 보기라도 했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오지 말입니다. 한 가구당 가족 구성원의 숫자가 평균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리고 궁핍한 생활을 하는 이런 곳에서 먹여 살릴 애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반대로 척박한 땅이다 보니 노인들의 구성 비율도 그다지 많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아, 그래. 네놈 그분 참 굵으시다.”
“박 해뱀이 제 그분 보셨슴까? 어? 저기 오크들 지나가는데 말임다?”
“응? 오크라고?”
“11시 방향 숲 속에 한 덩어리 이동하는데 말입니다. 하나, 둘, 셋……. 아! 인질도 있는데 말임다.”
“뭐야 그럼 벌써 한탕했단 말이야? 근데 정말 네 말대로 돼지머리에 사람 몸뚱이, 무기는 투박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투박하구먼. 저게 오크라 이거지?”
“이럴 게 아니라 따라가지 말입니다. 잘하면 임무 완수는 쉽게 풀리겠는데 말입니다.”
“그래그래. 범 잡으려면 범굴로 들어가랬다. 저놈들 소굴에 직접 쳐들어가서 놈들의 대가리를 따 주겠어.”
박 상병과 이 일병은 조심스럽게 마을 건너 숲 속을 가로지르는 오크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