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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9화)
3장 여기는 부산(釜山)(6)


마을 전체가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외쳐 대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동작 봐라! 그러고도 해병대냐!”
이 일병은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시작했고, 일부 사람들은 박 상병의 모습에 약간의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피티 8번 구령에 맞추어 10회 실시한다. 몇 회?”
“10회!”
“목소리가 작다. 20회 실시한다. 몇 회?”
“20회!”
“그래도 작다. 40회 실시한다. 몇 회!?”
“40회!”
“15회 시∼작!”
― 삑 삑 삑. 삑 삐빅 삐빅!
“하나!”
어느새 꺼내 든 호각 소리에 맞추어 이 일병은 바닥에 누워 양팔을 벌리고 다리를 좌우로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고개 또한 약간 들려진 채 다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한참을 그렇게 얼차려를 굴린 박 상병과 그동안 빠질 만큼 빠진 군기를 다시금 되찾음과 동시에 흙투성이가 된 이 일병이 마주 섰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군기 빠진 모습을 자꾸 보이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너 바보냐? 여긴 바깥이다. 안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농담 따먹나?”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마주 선 상태에서도 박 상병은 한동안 이 일병의 군기를 잡기 위해서 이것저것 태클을 걸었다.
대답하는 이 일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온 마을을 울릴 만큼 퍼졌고, 너무도 무서운 모습에 사람들은 그저 멀찌감치 서서 구경만 할 뿐 차마 다가서지는 못했다.
“두 번 다시 선임한테 그런 망발을 내뱉다가는 진짜 지옥이 뭔지 보여 주겠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박 상병은 종종 주변 사람들로부터 로리콘이라는 소리를 들어왔었고, 그 단어만큼은 금기어였다. 사회에서 같이 지내던 친구들의 경우라면 금기어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부대 내에서는 아이들을 만날 일도 없을 뿐더러, 박 상병의 금기어를 단짝인 이 일병이라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평소와 완전히 달라진 박 상병의 모습에 평상시 가깝게 지냈던 이 일병은 그 변화를 쉽게 눈치채고서는 박 상병의 얼차려를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투식량을 받아 든 이 일병은 평상시 부대 내에서 식사하듯이 수직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하룻밤을 머문 박 상병과 이 일병은 다음날 오전부터 부대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각자 개인장비들을 점검하면서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마을 바깥으로 나섰다.
전투식량은 남은 것 모두 부모 잃은 남매에게 줬다. 그리고 제라드를 통해 가급적 빨리 먹도록 알려 주었다.
아이들은 연신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쳐 대며 허리를 숙였고, 박 상병은 그저 웃음으로 답해 주었다.
그리고 복귀하는 길에는 제라드가 따라가기로 했다. 제라드가 동행해 준다면 구두 보고를 하는 것보다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일병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제라드는 완전히 이 일병에게 바싹 붙어 다녔고, 이 일병에게 얼차려 준 박 상병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 일병의 이야기로는 제라드는 이 근방의 마을들에서 상당히 인지도 있는 인물이었다.
쓸 줄 아는 마법은 거의 없지만, 마법적 지식은 상당하며, 무엇보다 여러 가지 약초에 관한 지식이 많아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약을 만들어 주고 식사를 제공받는 식의 생활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던 싸구려 스태프는 오크들에게 습격당할 당시에 부러지면서 잃어버린 상태였고, 지금은 아무런 마법도 못 쓰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언어가 통하는 귀걸이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이곳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박 상병 일행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귀중한 현지인이었다.
그리고 그 제라드는 마을을 나선 지 불과 10분 만에 이 일병과 박 상병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이고, 용사님들. 천천히 좀 갑시다. 헤고, 헤고. 뭔 숲 속을 엘프 다니듯 다니십니까. 히유우.”
그랬다. 체력 약한(?) 제라드는 이 둘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힘에 부쳤던 것이다.
결국 상당히 느린(?) 속도로 박 상병은 천천히 길을 뚫으며 나갈 수밖에 없었고, 이 일병도 느긋하게 뒤따랐다.
약 두 시간을 걸었지만 아직 부대에는 훨씬 못 미치는 지점이자, 박 상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거 이러다가 정말 정시 땡할 때 복귀하는 거 아냐?”
“그래서 아침 일찍 서두르자고 했지 말입니다. 그래도 이 속도면 제시간에 복귀는 가능하지 말입니다.”
“무슨…… 헉, 헉. 체력들이……. 헉, 헉. 몬스터 수준……. 헉, 헉. 입니까.”
제라드는 녹초가 되어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고, 박 상병은 그 모습에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5분간 휴식. 사주경계 잘하고, 일단 여기서 쉬도록 한다.”
제라드는 동물의 위장으로 만든 물통을 꺼내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이 일병도 박 상병과 함께 담배를 꺼내 물고서는 주변을 스윽 훑어보면서 말했다.
“제라드 님에게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저희들은 평소 절반 속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약 한 시간 정도만 이동하면 저희 부대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으니 참아 주시겠습니까?”
“헉, 헉. 저…… 절반이라고요? 그럼 평소엔 얼마나 빨리 다닌다는 겁니까?”
“뭐, 박 해뱀 혼자서 움직였다면 마을에서 부대까지 한 시간이면 주파 가능할 겁니다. 어쩌면 더 빨리 도착할지도 모르겠지만……. 하하하.”
제라드는 이 인간 같지도 않은 체력을 가진 두 사람이 은근히 무서워졌다.
너무나 짧은 휴식이 끝나고 두 사람이 다시 일어나자, 제라드는 죽을 맛이었다.
자신은 기껏해야 간단한 건량과 물통 하나, 몇몇 소지품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무거울 것 없는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이 두 사람은 뭔지 모를 이상한 쇳덩이부터 시작해서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것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치 평지 다니듯이, 아니 평지라도 저 정도로 빠르지는 않을 터인데 두 사람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숲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제라드는 거의 뛰다시피 하니,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제라드는 산악전에 능하다는 레인저라 할지라도 이 정도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크와 싸울 때보다도 필사적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박 상병 일행의 뒤를 따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부터 바닷바람 특유의 짠 냄새가 슬슬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고, 거의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저 앞 숲 속에서 두 명의 인영이 천천히 접근해 왔고, 그 모습이 박 상병 일행과 동일했다.

경계 근무 중이던 사병들이 박 상병 일행이 접근하자 조심스레 다가왔고, 신원 확인이 이루어지자 일행은 통과되었다.
그러고도 약간의 숲이 이어지다가 끝난 순간, 제라드는 눈앞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돌을 나르고, 나무를 잘라 방책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닷가 쪽에도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부두를 만들고 있었고, 방책 안 곳곳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쇠로 된 마차가 서 있었다.
일부는 무언가가 위에 덮여진 채 가려져 있었고, 일부는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155밀리 야포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외형이었고,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그것과 매우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이것은! 마동포가 아닙니까?”
지통실로 향하던 중에 제라드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155밀리 야포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동포?”
박 상병은 고개를 갸웃했다.
“울린 제국만이 가지고 있다는 마동포 말입니다. 스승님한테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아, 그럼 설마 여러분들은 울린 제국분들입니까?”
갑작스럽게 멈춰 서서 질문하는 제라드였고, 복귀 신고를 해야 하는 두 사람으로서는 살짝 난처해지기 시작했다.
“제라드 님, 마동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울린 제국이라는 곳은 모릅니다. 아시다시피 말도 안 통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궁금하신 점은 천천히 풀어 나가도록 하고, 일단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러나 제라드는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였는지 155밀리 야포를 떠나지 않고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계속 관찰을 시작했다.
“흐음. 그래도 이 마동포는 너무 크기가 큰데. 확실히 울린 제국이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마동포는 길이 2미터에 폭 1.5미터로, 마차에 싣고 다닐 정도라고 들었는데, 이건 엄청나게 크군. 이 정도 크기라면 마나석도 장난 아니게 들 텐데. 흐으음.”
두 사람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였고, 몹시 난처해하는 두 사람이었다.
“KH―179 155밀리 견인 곡사포. 사정거리 30킬로미터짜리로 보통탄 살상반경 50미터. 그 외 각종 특수탄 들을 수용할 수 있는 화포지.”
때마침 그곳에는 장비 점검 중이던 화기 관제관 김기욱 대위가 있었다.
김기욱 대위는 평상시 밀리터리 마니아로 불리며 온갖 종류의 화기와 군에서 사용되는 장비에 대해 가장 박식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굉장히 자긍심이 높은 사람이었다.
“80년대 당시, 미군의 155밀리 야포를 거절하고 자체 개발한 것에 대해서 미국이 태클 걸 때, 바로 이 KH―179가 미군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준 것 아니겠느냐. 야포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고 할 수 있지! 봐라! 크고 아름답지 않느냐?”
상당히 심취해 있는 화기 관제관이었다.
“한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2미터 길이의 포가 이곳에도 있다고? 그 성능은 어찌 되는 겁니까?”
통성명도 없이 곧장 제라드에게 달려들어 질문을 쏟아붓는 김 대위였다.
제라드는 그의 박력에 기가 죽어 약간은 움츠린 모습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울린 제국이 개발한 마동포라는 것으로 전체 길이 2미터, 폭 1.5미터이며, 사정거리 500미터인 마법 대포입니다. 마나석을 이용해 파이어 볼을 날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마법사 없이 500미터 거리에 파이어 볼을 발사할 수 있다는 대단한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마나석이 대단한 고가품인 것과 마동포의 포신 자체가 오리하르콘과 미스릴로 구성되어 있어 한 문의 가격만으로도 천문학적이지요. 발사 속도로는 분당 열 발 정도로, 마나석에 따라서 틀립니다만, 고급 마나석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포신이 못 버텨 낸다고 하더군요. 파이어 볼은 기본적으로 반경 10미터 정도의 범위 공격이 가능한 폭발형 마법입니다. 울린 제국에서 보유 중인 마동포는 다섯 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명을 들은 김 대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고작 그따위 화력이라니! K―4 유탄 기관총에도 못 따라가는구나! 그따위 마동포는 155밀리가 상대할 가치도 없도다!”
K―4 고속 유탄 기관총. 말 그대로 유탄을 기관총처럼 쏴 대는 장비였다.
40밀리 유탄을 이용하며, 분당 360여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것으로, 유효사거리 1,500미터, 최대사거리 2,200미터에 달하는 괴수급 중화기 중 하나다.
중국과 같이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올 경우, 이 K―4유탄 기관총만 있으면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퍼붓듯이 유탄 샤워를 광범위하게 쏟아부을 수 있었다.
제라드는 몹시 놀라워하며 김 대위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고, 당분간은 저 상태로 별수 없을 것이라 여긴 박 상병과 이 일병은 복귀 신고를 하러 갔다.
복귀 신고를 마치고 임무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제라드의 소개가 필요하게 되었고, 김충렬 준장과 참모들은 박 상병 일행과 함께 여전히 155밀리 포 옆에서 장황하게 설명 중인 화기 관제관 김기욱 대위에게 다가섰다.
“……그리하여 첨단 화포의 꽃이라고 불리는 K―9 자주포가 바로 저곳에 그 위용을 내뿜고 있습니다.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어흠. 어흠.”
전술참모 최 대령이 헛기침을 하였고,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김 대위는 화들짝 놀라며 거수경례를 붙였다.
“필! 승!”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최 대령의 냉담한 한마디였다.
“자네 여기서 뭐하는가?”
“넵. 작전참모 박태성 대령님의 지시로 장비 점검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최 대령의 시선이 박 대령으로 옮겨졌고, 박 대령은 고개를 끄덕여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알았으니 가서 일 봐.”
“넵. 필! 승!”
김기욱 대위가 자리를 뜨자 제라드는 멀뚱멀뚱 자신의 앞에 선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제라드라고 했던가? 나는 청해 함대 사령관 김충렬 준장일세. 만나서 반갑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