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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12화)
4장 몬스터 토벌작전(2)
목표 지점에 도착하자 숲이 끊어지고 자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방이 탁 트인 장소였기 때문에 섣불리 이동하다가는 몬스터들에게 발각되기 쉽다는 것 때문에 일행은 숲의 경계에서 잠깐 멈추었다.
제라드에게는 쌍안경이 주어져 자갈밭 속에서 마나석을 찾게 하였고,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1개 분대는 현 지점에서 대기하며 은폐 엄폐. 1개 분대는 선발조로 자갈밭이 시작되는 계곡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방향으로 신속히 이동.
나머지 1개 분대는 엄호를 하며 대기하고 있다가 선발조가 도착하여 엄호를 실시하면 선발조가 위치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계획을 잡고는 신속하게 이동을 실시했다.
― 착착착착.
자갈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지만, 다행히도 2개 분대가 모두 이동하는 동안에 몬스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라드의 지시로 더블 백 세 개가 금세 마나석으로 가득 찼다.
엄청난 무게의 더블 백을 어떻게 옮기는가에 대해 제라드는 다시 걱정을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돌덩어리를 한가득 채운 길쭉한 더블 백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걸머메는 끈이 있기는 했지만 도저히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걱정과는 무관하게 2인 1조가 되어 가득 찬 더블 백을 깃털처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먼저 준비된 조가 앞뒤로 두 사람이 나란히 어깨에 걸머멘 더블 백을 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차례차례 마나석들이 옮겨지고, 나머지 일행들도 서둘러 이동하자 숲의 그늘 속에 있던 2소대원들은 임무의 절반은 달성한 데에 고무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부터 복귀에 들어간다. 현재 남은 시간은 55분으로, 복귀까지는 빠듯한 시간이다. 지금부터는 전원이 함께 이동하며 복귀하도록 한다. 후열에는 김 상병, 최 상병 두 사람이 흔적을 지우면서 따른다.”
더 이상은 길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 하사가 선두에 서서 사방을 살피며 이동을 실시했다.
목적지까지 오는 것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고 있었고, 얼마 안 가 오크들과 조우했던 지점을 지나치게 되었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근처의 다른 오크들이 발견하지 못했는지 별다른 흔적이 없었고, 일행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계속 전진했다.
너무 이른 안도의 한숨이었을까. 이들은 얼마 안 가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선두의 이 하사가 손짓으로 일행을 멈추어 세운 것이다.
신속하게 박 중사가 선두로 나서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복귀 루트가 완전히 막혔습니다. 해안선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지만, 얼추 200 정도는 되는 놈들이 해안선 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소대원 누구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제라드만이 상황을 듣고는 덜덜 떨면서 불안해할 뿐이었다.
어차피 상륙군으로서의 임무가 주된 해병대는 그만큼 생존률이 낮고 힘든 임무들을 수행한다. 이런 식의 퇴로 차단에 따른 복귀 불가능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오크들이 아무리 외모가 흉포하고 어지간한 장정보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제대로 된 총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해병대원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길을 막아서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특히 직접 오크들의 목을 따 본 대원들은 그들의 동물적인 감각에는 신경을 쓰지만 전투력에 있어서는 절대로 못 따를 것이라고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신병은 1소대에 연락하고, 전투준비에 들어간다. 각자 개인화기부터 점검한다.”
실전 같은 훈련 속에서 지내 오던 이들이었기에 실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일사불란하게 각자 장비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모두 점검을 마치자 무전을 통하여 지시 사항이 내려왔다.
― 1소대는 서둘러 철수하고, 2소대는 작전지역을 돌파. 1소대와 함께 귀환. 함포사격 지원은 없음.
상부의 판단은 신속했다.
근접전 양상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해상에서의 함포 지원사격이 있으면 아군도 위험했다.
더욱이 가급적 군사 자원 소모를 줄이고 최대의 이익을 보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해안선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는 1소대가 쓸데없이 오크들과의 접전을 통하여 탄약과 폭약을 소모할 필요는 없었다.
또 만약에 있을 대규모의 오크들이 공세를 펼쳐 올 경우를 위한 1소대여서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었기에 1소대는 철수를 준비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이제 2소대에게는 오크들에게 차단되어 있는 길을 뚫고 해안선에 접근하여 신속히 전선을 이탈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물론 더블 백 가득한 마나석을 가지고서 말이다.
오크들은 해안선에 가까워지자 걸음을 늦추고 바닷가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크들은 숲 속에서 일렬로 늘어섰고, 1소대는 설치한 클레이모어를 수거하고 IBS 고무보트를 바닷가까지 옮긴 상황이었다.
소대원 전원이 IBS 고무보트를 중심으로 숲 쪽에 총구를 겨눈 채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크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크워어어!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1소대는 더욱 긴장한 모습으로 총구를 바싹 들어 올렸고, 2소대는 오크들이 후방 100미터 지점까지 따라잡은 상황이었다.
도끼와 글레이브를 치켜들고 소리치는 오크들은 백사장으로 다가서지 않은 채 그저 소리만 질러 대었고, 한동안 그 상태가 지속되었다.
제라드는 오크들의 행동이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수백이나 되는 오크들이 불과 20명 남짓의 대원들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을 뿐인데도 접근조차 시도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제라드의 머릿속에 번개같이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저 오크들은 크라켄이 무서워서 숲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랬다. 오크들은 오랜 세월 이 땅에 살아오면서 바다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크라켄의 공포로 인하여 바닷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오크들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로 바닷가에 접근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박 중사는 오크들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오크들을 우회하여 해안선으로 접근하려 한다면 노출된 위치에서 1소대가 기다리고 있는 지점으로 달려가야 했다.
직선거리상으로는 오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먼 위치였고, 전선을 이탈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부적절했다. 무엇보다 오크들 앞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달려가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자칫 오크들이 이성을 잃고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몰려오는 오크 떼를 맞상대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주변 지형지물들을 다시금 살피기 시작했고, 곧 묘책이 떠올랐다.
“이따위 오크들을 상대로 총알을 난사하기엔 아깝지 않아? 그리고 총성의 크기를 생각하면 주변 오크 떼거리를 박박 긁어모을 위험도 있고. 지난번 이 하사와 같이 오크 마을 하나를 싹쓸이하던 경험을 살려서 이번에도 화공을 써 보자고.”
시기적절하게도 해가 기울면서 바람이 바뀌어 육지에서 해안 쪽으로 불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동안 비가 오질 않아 숲 전체가 상당히 건조한 상황이기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숲 전체에 두껍게 깔린 낙엽들이 바싹 말라 있었으니 화공의 조건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무전을 통하여 보고를 한 다음, 대원들은 신속하게 숲 속으로 흩어져 스며들 듯이 사라졌다.
잠시 뒤, 오크들의 뒤쪽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라이터로 간단하게 불을 피우며 이동한 것이라서, 낌새조차 느끼지 못한 오크들은 급작스런 연기로 인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렬로 나열해 있는 후방에서 연기가 갑자기 피어올랐다는 점에서 깜짝 놀랐으며, 길게 선을 그으며 포위하듯이 연기가 피어오르자 오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결국 오크 한 마리가 해안선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크라켄의 공포가 있지만 뒤에서 불길이 덮쳐 오자, 이왕 죽을 것 침입자라도 하나 죽이고 죽겠다는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 타앙!
한 발의 총성이 들려왔고 숲을 벗어나 몇 발짝 뛰지도 못한 채 달려가던 오크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철수 대기 중이던 1소대에서 누군가가 총을 쏘았던 것이다.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자신들의 동료가 쓰러져 일어나지 않자 오크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1소대에서 발포를 한 사람은 일벌백계를 떠올리며 총을 쏘았을 것이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 오크들의 흉성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발전해 버렸다.
어차피 불길로 인하여 물러설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고, 오크들은 일제히 숲 속에서 일어나 1소대가 있는 해변으로 뛰기 시작했다.
“총 쏜 놈 누구야? 발포 허가 떨어졌다고 막 쏴 댄 놈이!”
총성에 놀라기는 2소대도 마찬가지였지만, 박 중사는 벌컥 화를 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여 오크들은 달리기 시작했고, 1소대원들도 총을 쏘기 시작했다.
“크워어어!”
― 탕! 타타탕! 탕!
총격전이 벌어지자 2소대는 오히려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자칫 아군이 쏜 총에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박 중사는 이를 부득부득 갈아댔다.
“NGO 1소대 노 갓 원. 그래 복귀하면 이 자식들 개털 뽑듯이 굴려 주겠어!”
군대란 계급사회다.
지난날에는 상병이라는 계급으로 같은 사병들끼리도 별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중사가 되었기 때문에 1소대 소대장을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뭐라 할 만한 사람이 없음을 박 중사는 잘 알고 있었다.
“2소대 전원은 들어라. 오크들은 1소대에서 다 잡아 준다. 어차피 뭐 하나 가진 것 없는 1소대가 총알 한 발의 소중함도 모른 채 갈겨 대는 상황이다 보니, 눈먼 총알에 우리가 맞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어차피 복귀하면 저치들은 총알 마구 쏴 대어서 200마리. 우리는 총알 한 발 안 쏘고 70마리. 숫자로는 우리가 1소대보다 적을지 모르나 질적으로는 우리가 월등하다는 것을 입증시켜 뒀으니 사격 끝날 때까지 전원 현 위치에서 대기한다.”
사병들은 열심히 총질하고 있는 1소대를 까면서 웃어 대기 시작했다.
“그냥 있기도 뭐하니 전원 담배 일 발 장전.”
박 중사의 명령에 흡연자들은 일사불란하게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불 댕겨.”
각자가 가지고 있는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자 제라드는 그제야 화공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조약돌 사이즈의 조그마한 도구에서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2소대는 몇 시간 동안 돌을 줍고 들고 옮기느라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게다다 주변으로는 숲이 불타며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오크들은 1소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1소대는 자신들을 향해 뛰어오는 오크들을 향해 미친 듯이 총을 쏴 대고 있었고, 2소대는 편안하게 앉아 담배를 물고 쉬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총성이 잦아들었다.
무전기를 통하여 1소대가 오크들을 모조리 잡아냈다는 사실을 확인한 2소대는 다시금 자신들의 장비와 마나석을 챙겨 들고 1소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백사장에 도착한 2소대의 시야에는 백사장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오크들의 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체들의 위치를 보니 일부는 1소대가 있는 쪽으로 상당히 접근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수류탄을 투척하거나 유탄을 쏘지 않은 것이 기특할 정도였다.
1소대원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 낸 것에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2소대원들은 1소대원들 몰래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후일 마나석 채취 작전으로 알려진 이 작전은, 최초로 현대화 무기로 인간형 몬스터를 잡아낸 전투이자, 탄약 낭비의 표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