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이계의 대한제국 1(14화)
4장 몬스터 토벌작전(4)


지난 1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차근차근 주변 마을들을 통합하면서 인구는 약 8천에 육박하게 되었다.
시멘트의 사용과 콘크리트의 이용으로 단층이기는 하지만 튼튼한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콘크리트로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가 마을을 가로질렀다.
고령토를 구워 벽돌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건축물에 색이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콘크리트와 보도블록이 조화를 이루며 현대식 도로가 만들어졌다.
대규모 취수 시설과 구리 광산의 개발로 비교적 성형 가공이 쉬운 동 파이프가 매설되어 상수도 시설이 만들어졌다. 사실상 주철로 찍어 낸 상수도관에 비하여 동으로 상수도관을 만들어 내면 원자재 비용만 해도 엄청나게 드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인하여 철이 훨씬 비싸게 취급되고 있는 점과, 장기적으로 교체 수명을 고려하여 동관이 설치되었다.
취수장은 최대한 상류에 지어진 상태였고, 취수되는 물이 깨끗한 물이어서 거대한 물탱크 몇 개를 거쳐 가는 식의 간단한 침수식 정화 시설로 이루어졌다.
재미난 사실은 상수도 시설을 갖추면서도 어느 부분 하나 마나엔진이나 전기모터는 사용되지 않았다. 고저 차를 이용한 자연급수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그 이유였다.
각종 관공서들이 세워졌고, 행정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장병들이 투입되어 행정 업무도 차질 없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토를 확보하고 기반을 다지는 1년 동안 아무도 이의를 제시하지 않았던 문제가 갑자기 발생했기에 지휘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박 중사가 최초 접촉을 시도했던 마을에서 부모 없이 동생을 돌보며 살고 있던 여자아이와 결혼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박 중사는 평소에도 가깝게 지내면서 틈만 나면 그 아이들이 사는 집으로 달려가 이것저것 도와줬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여자아이는 박 중사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고, 마을 어른들이 축하하는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법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들은 열여섯이면 조금 빠르긴 하지만 상관없다며 결혼을 추진하였고, 지휘부에서도 어영부영하는 동안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영부영 답을 내릴 수 없었던 이유로는 원주민들과의 사이에서 과연 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나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렇다고 생체 실험을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주민들의 의료를 담당하고 있던 군의관의 의견을 통해 외모적 특성을 제외하고는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시험 케이스로 그냥 내버려 두면서 관찰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게 박 중사는 별다른 문제없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박 중사가 결혼하자 많은 사병들이 제 짝을 찾기 위해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였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도 기존 주민들 가운데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던 상륙군이었다.
대부분 젊은 남성으로 이루어진 해병대와 해병이었고, 상대적으로 주민 남성들은 인기가 떨어졌다.
전체 인구 8천여 명 중 4분의 1 가까이가 청해 함대 장병들이 아닌가.
기존의 마을들은 비교적 남성의 비율이 낮은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는 것이 남성들의 역할이었고, 그만큼 피해가 컸기에 성비 불균형은 어찌해 볼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지휘부는 인구의 증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고,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절치부심하기에 이르렀다.
첫 번째 의견으로는 다시 영토 확장을 실시하여 각지에 흩어진 마을들을 모으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산맥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지형적 특성상 인구 증가가 힘들다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마을들을 발견할 때마다 이웃 마을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영토를 확장해 왔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는 마을이 없음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다른 마을을 합치기 위해서는 몬스터들과 대치하고 있는 영역을 광범위하게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지킬 병력도 없이 무분별하게 전선을 넓히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두 번째 의견으로는 해안선을 따라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만나는 원주민들을 이주시키자는 것이다.
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을 한곳으로 끌어모으자는 의견이었으나, 기존의 마을 통합에서도 몇몇 주민들은 끝까지 마을에 남겠다고 할 정도로 고집이 대단했던지라, 타 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이주는 불가 판정을 받았다.
세 번째로는 타국으로부터 이민을 받는 것이었다.
타국의 주민들을 받아 해상을 통해 이주시키자는 계획이었고, 해상 전력으로는 그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현대식 이지스 구축함이 무려 두 척이나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져 세부 내용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 * *

독도함에 여전히 남아 있던 장비들은 지상으로 내려졌다.
UH 헬기들도 한곳에 착지하며 줄을 섰고, 만약을 위해 AH 공격헬기 아파치 2대는 갑판 위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F―35는 도저히 내릴 만한 장비도 없고, 다시 이륙할 만한 활주 공간의 부족으로 그대로 남겨졌다. 그나마 엘리베이터를 통하여 내부로 옮겨져 봉밀 보관된 상황이었다.
하부 적재 공간에는 마나엔진을 탑재한 보트 몇 대와 상당량의 마나석, 그리고 대륙 공용어가 가능한 몇몇의 사람들이 탔을 뿐이었다.
놀랍게도 마나석은 황금을 능가하는 보석과 같은 것이어서 그 가치가 매우 높았다.
대륙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마나석은 공교롭게도 드래곤의 레어를 털어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구하기 힘들었고, 마나석의 광맥조차 없는 실정이었다. 그간 주변국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기에 알 수 없던 부분이었다.
대륙의 상황이 이러할진대, 대한제국에는 그런 귀한 마나석을 그저 동네 뒷산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마냥 넘쳐 나는 입장이었다.

제라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대한제국과 가장 가까운 항구인 울린 제국의 가장 번화한 항구도시인 틸트항에 나가 있었다.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만 해도 어마어마한 크기인데, 독도함을 타고 바다 한가운데까지 나와서 마나엔진을 단 나무 보트로 갈아타고 틸트항에 도착하고 보니, 항구에 가득한 범선들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틸트항은 주변 뱃길에 있어서 중요한 길목으로 각국의 배들이 드나드는 곳으로서, 언제나 활기차고 사람들로 가득하여 북적이는 도시였다.
당연히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울린 제국의 군함도 여러 척 보였으며, 각종 대형 상선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기에 어지간한 촌구석 출신들이라면 입이 떡 벌어질 규모였다.
그럼에도 제라드 일행에게 있어서는 숫자만 많지 별 볼 일 없는 배들로 여겨졌다.
독도함 한 척이 몸통 박치기로 밀어붙이기만 해도 이곳에 있는 배들은 장난감 부서지듯이 너무나 간단하게 으스러질 것이라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거대한 쇳덩이로 만들어진 배가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를 자랑하며 밀어붙이는데 견뎌 낼 목조 선박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생각이 머리 한구석에서 들기도 했지만 이들은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잡생각은 금방 떨쳐 버리고 임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우선, 배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범선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인원도 문제였지만, 그 문제는 구입할 때 제라드와 함께 나온 일행에게 마나석 한 개를 더 주고 조선 기술도 알려 주기로 계약하여 해결되었다.
매우 큰 범선이지만, 제라드와 함께 나온 30여 명만으로도 기초적인 조선이 가능할 정도인 배는 마나석 두 개로 손쉽게 구입하였다.
일행들이 조선 기술을 배우는 동안, 제라드는 노예시장을 찾았다.
제라드의 곁에는 이 하사가 붙어 다니며 경호를 하였고, 제라드가 가지고 있던 귀걸이는 이 하사가 착용한 상태였다.
매우 비싸고 소중한(?) 마나석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구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경호가 붙은 것이다. 전투 능력만으로는 박 중사가 따라붙는 것이 옳다고 판단되었지만, 지식 면에서 이 하사가 적합하다고 판단되었기에 그가 붙어 다녔던 것이다.
마나석 한 개로 상당한 규모의 범선을 살 수 있는 것을 확인하자, 이 하사는 새삼 마나석의 가치에 혀를 내둘렀고, 노예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그마한 마나석 한 개로 한 노예 상인으로부터 소유한 노예 전원을 살 수 있었으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노예시장 전체의 노예를 사 버리다시피 하면서 노예들을 모으는 동안, 마나석은 고작 열댓 개 정도만 사용했을 뿐이었다. 가급적 늙은 노예는 가족이 아닌 이상에는 사질 않았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들도 같이 구매할 것을 주장하는 제라드였고 자금도 충분했지만, 이 하사는 그런 그의 의견을 막았다.
이 하사로서도 당연히 노예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사들여 데려가고 싶었지만 명령이 있었다.
국가 발전을 위하여 늙은 노예를 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인 노예는 약 2천여 명에 달했고, 남성이 약 오백여 명인 것에 비해 여성은 천오백여 명에 달했다.
남자 노예들은 대부분 국가적인 차원에서 군함에 쓰일 노예로 소모가 많았고, 울린 제국에서 노예병을 대대적으로 모으고 있기에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필요성이 떨어지는 여성 노예의 비율이 높았다.
비교적 건장한 남자 노예들은 따로 추슬러져 조선 기술을 배우도록 하였고, 며칠 동안 항구에서 숙식하면서 생필품과 식량 등을 구매하였다.
제라드와 이 하사는 틸트항을 휩쓸다시피 다니며 매물로 나와 있는 배와 노예 들, 각종 교역품들을 사재기하였다.
일주일 사이에 범선 30여 척과 노예 4천여 명, 그리고 엄청난 양의 식량이 시장에서 사라졌으며, 각종 생필품과 농기구 등도 어떤 경우에는 배가 항구에 들어오자마자 하역 작업도 하기 전에 배와 함께 팔려 버렸다.
일주일 만에 틸트항의 시장경제를 마비 수준까지 갈 정도로 사재기를 해 버린 제라드 일행은 무수한 소문을 남긴 채 수십여 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바다 멀리로 사라졌다.
제라드가 이끄는 대선단은 바다를 건너 하루 만에 독도함과 접선을 시도하였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거대한 독도함의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그 곁에는 독도함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작지만 그래도 거대한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이 있었다.
침몰하기 직전까지 물자들을 실은 범선들에서 싣고 있던 식량과 생필품을 독도함으로 옮겼고, 뱃멀미가 심한 사람들과 조선 능력이 없는 노예들이 독도함으로 이동했다.
범선들의 속도는 순풍을 만난다고 하여도 독도함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순풍 시 평균 최고 속도 15노트 남짓에 불과했기에 범선들은 돛을 접고 줄줄이 비엔나마냥 굵은 줄들로 연결되었다.
세 묶음으로 나뉘어져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 그리고 독도함에 매달린 범선들은 평균 17노트의 속도로 부산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반 범선이 항해할 때의 최고 속도는 대략 15노트 남짓이었다. 그것도 순풍일 경우에 한한 것이며 바람이라는 것이 언제나 원하는 만큼 강하게 불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현존하는 어떠한 범선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수십 척의 배들을 이끌고 바다 저 멀리 사라져 버린 청해 함대였고, 일주일 동안 엄청난 사재기를 한 대선단의 소식을 듣고 서둘러 추격하던 해적들은 흔적도 못 찾고 주변 바다만을 빙글빙글 돌다가 되돌아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렇게 틸트항의 범선 수십여 척은 무수한 소문을 남긴 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대한제국의 선포로부터 1년.
제국이라고 하지만 그만한 영토를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크라켄의 공포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인지 주변 해역으로 접근하는 배는 없었다.
잊혀진 땅 전체를 영토로 할 정도로 커진다면 제국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방대한 영토를 가지게 될 테지만, 현재로서는 조그마한 공국 수준에도 못 미칠 정도였다.
계획상에는 10년 이내에 잊혀진 땅 전체를 영토로 삼는 것으로 했지만 사실상 무리가 많았다.
해상에는 크라켄, 지형적으로도 산악 지형이 많고, 큰 강이 가로막고 있으며, 몬스터가 가득 몰려 있는 상황이었기에 접근조차 용이하지 않았다. 과거 수많은 나라들이 육상을 통하여 영토 확장을 시도하였으나, 잊혀진 땅 최북단의 강변에조차 접근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토 확장을 꿈꾸던 수많은 나라들을 좌절하게 만든 것에는 북방의 부족국가들의 영향도 컸다.
겨울이 되면 엄청날 정도로 추운 혹한의 땅에서 삶을 유지해 오던 북방 민족들은 잊혀진 땅으로 향하는 군대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대규모의 군대를 편성하여 보내려 하면 어김없이 북방 민족들이 보급선을 기습하여 약탈했던 것이다. 평상시에도 북방 민족과 인접한 국가들은 잦은 약탈에 시달려야 했었고, 북방 토벌을 나서면 매서운 혹한의 땅에서 얼어 죽는 병사가 속출한 탓에 전투다운 전투를 치르기도 전에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벽과 대규모로 군대를 이끌고 올라가면 오히려 기회로 삼아 어김없이 보급선을 끊어 버리는 북방 민족으로 인해 막혀 있던 잊혀진 땅이었지만, 이 넓은 땅에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각국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크라켄의 공포와 몬스터들에게 쫓기면서도 여기저기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잊혀진 땅에는 고대 제국이 있었다고 전해졌다.
대륙에서 불쑥 튀어나온 형태의 반도와 같은 형태였기에 상대적으로 이동이 곤란한 육로에 비해 해상무역이 발달해 있던 나라였다.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발달해 오던 고대 제국은 그 영토 북쪽에 있던 화산의 폭발과 더불어 급작스런 몬스터의 출몰로 인해 육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결국 대륙과 이어진 땅임에도 불구하고 섬나라가 되어 버렸다.
뒤이어 크라켄이 나타나면서 얼마 안 가 해상 루트가 완전히 막혀 버렸다.
단순히 뱃길만을 막는 것이 아니라 해안에 인접한 항구에도 크라켄이 나타났기 때문에 결국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 이르렀다.
아무리 고립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고 육로만이라도 뚫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나섰지만, 국토 전반에 퍼진 산맥을 타고 몬스터들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사분오열되었고, 얼마 안 가 국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면서 대륙의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버렸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 잊혀진 땅이었고,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륙에서 도망쳐 나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사람들과 몬스터의 습격 속에서 마을을 유지해 온 사람들이 살아남아 잊혀진 땅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의 부산이 위치한 이곳에도 그러한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 다시금 모여서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