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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19화)
5장 격돌(4)
약 1해리 정도의 거리를 남겼을 때, 상대방 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거기 해적들에게 경고한다. 너희들은 대한제국의 영해에 무단 침입을 시도하고 있다. 더 이상 접근할 시 국가보안법에 의거 공격을 실시하겠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확실하게 들려왔다. 분명 확성 마법이라도 사용하였으리라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상대방은 자신들에 비해 형편없는 숫자의 배가 아닌가.
대한제국이라는 듣도 보도 못 한 나라가 갑자기 생겨났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의 상대는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함선의 숫자가 터무니없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갑판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한 척당 다섯 명은 될까 싶은 숫자였으니 기가 막혔다.
특이하게도 배 전체가 청회색으로 칠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의문을 품을 만했지만, 확실히 1년 전 사라진 40척 중의 열 척임에 분명했기에 해적들은 그대로 돌격을 실시하였다.
그 선봉에는 크리브가, 중간에는 딕이, 가장 후미에는 울리히가 있었다.
해적들은 역시 들은 척도 안 하고 돌진을 계속하였지만, 1함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전술 항행을 실시한다. 각 함 엔진 시동.”
“엔진 시동!”
1함대에서 지휘를 내리는 사람은 불과 2년 전만 하여도 그저 대한민국 해군 소속 세종대왕함에 있던 일개 사관에 지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1함대의 제독이 되었고, 그 밑에 있던 부하 사병들이 지금은 각 함의 함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의 대부분은 바로 새로이 대한제국의 국민이 된 원주민들이었다.
함대사령관의 지시에 수기신호가 오갔다.
수기신호 직후 다시 신호로 보고가 돌아왔다. 모든 함선의 엔진 시동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30대의 젊은 함대사령관은 다시금 지령을 내렸고, 함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함을 중심으로 10척의 배들이 방추 진형을 만들었고, 그것은 일순간의 일이었다.
가장 선봉에서 돌격해 오던 크리브는 돛이 접힌 채로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진형을 바꾸는 상대의 모습을 보았고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가 나와서 젓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더욱이 상대방은 적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방추 진형을 만들고 있었다.
크리브의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보통의 해적들이라면 바다에서의 싸움이라면 응당 상대방의 배에 줄을 던져 꼼짝 못 하게 묶고 난 다음에 약탈을 실시한다. 약탈을 실시하는 동안 돛을 태워 버리거나 키를 부셔 버리는 등의 작업을 통하여 상대방을 행동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이 우선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두 척을 상대할 경우에 한한 것이다.
해적들이 군함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첫째로 군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에 있다. 아무리 바다에서 일당백의 전투력을 지닌 해적들이라고 할지라도 정규 해군의 체계적인 공격을 당해 낼 수는 없다.
둘째는 해군의 경우 군함 한 척만이 바다에 홀로 다니지는 않는다. 여러 척의 군함이 치밀한 전술을 써서 상대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군함의 순간 속력에 있다. 군함에는 많은 숫자의 노예를 싣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전투가 벌어질 때에는 바람에 관계없이 노예들을 이용하여 노를 저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해적들은 거의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근접전이 벌어질 때 역풍이라도 부는 날에는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그러한 이유로 해적들은 정규 해군을 상대하기를 싫어한다. 거기에 하필이면 기사라도 타고 있는 날에는 피해가 막급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평소라면 숫자라는 면에서 지극히 불리한 해적들이 도망을 치는 것이 당연하였고, 정규 해군이라면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이들의 눈앞에 나타난 함대는 고작 자신들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고, 드러난 인원수만 하여도 형편없이 적었다.
그렇게 해적들은 수적인 우위를 믿고 있었고, 대규모 함대전의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소수로 돌진하려는 저들의 행동을 오히려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브는 눈치챘다.
분명히 상대방은 역풍이다. 역풍이기에 당연히 돛을 접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저들은 노가 나오는 기척도 없이 매우 신속하게 진형을 만들었다.
진형을 만드는 속도와 정확도를 생각해 보면, 저들은 상당히 훈련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크리브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 오며, 선두 간의 거리가 순식간에 5백 미터까지 가까워졌다.
4백 미터, 3백 미터, 2백 미터, 백 미터.
극도의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해적들은 저마다 상대방의 배에 갈고리를 걸 준비와 충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정면의 배와 충돌하기 직전, 크리브는 황급히 키를 돌렸고, 서로가 스치듯이 지나갔다.
아니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급격히 돌린 키로 인하여 우측 후미가 상대방과 부딪쳤다.
― 콰지직!
엄청난 충격과 함께 크리브의 배 일부가 부서졌다.
부딪친 부분은 상대방의 마스트가 아닌 그저 측면의 일부분이었지만, 크리브의 배는 그 데미지가 심각했다. 한쪽으로 배가 기울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침몰만은 면했다.
반면 부딪친 상대방은 긁힌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크리브의 배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갑판 위의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깨끗한 흰옷에 두툼한 조끼를 입은 모습. 하나같이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확실히 한 나라의 해군임을 느꼈지만, 그런 감상을 계속할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바로 뒤이어서 또 한 척의 배가 진로를 막으며 돌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같은 배라면 상대방에도 충격이 있을 터인데, 자신의 배만 박살이 났다.
게다가 저쪽은 청회색의 칠을 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무판자의 이음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크리브는 다시 키를 급히 선회하며 배를 황급히 좌우로 돌리기 시작했고, 그의 부하들은 서둘러 물이 새는 곳을 퍼내고 수리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크리브는 상대방이 터무니없이 강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당장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렇게 피해 나가는 동안, 어느새 상대방은 해적들 진형의 한가운데까지 뚫고 들어갔다.
몇몇 해적들은 용감하게 정면 승부를 걸었고, 그 결과는 해적들의 참패였다.
정면으로 부딪친 배들은 어김없이 박살이 났으며, 상대방은 상처 하나 없이 그대로 돌진해 왔던 것이다.
진형의 가운데까지 파고들자 좌우의 해적들이 측면을 노리고 부딪쳐 왔다.
측면을 당한 배는 크게 휘청하며 흔들렸지만 놀랍게도 구멍은커녕 약간 안쪽으로 찌그러진 모습만을 보인 채 별다른 피해가 없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부딪쳐 온 해적선은 처참했다. 선수 부분이 상당수 박살이 나서 선수부터 침몰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단 한 번의 중앙 돌파로 해적선은 순식간에 일곱 척이 가라앉았고, 상대방은 멀쩡했다.
중앙 돌파에 성공한 1함대는 그대로 후위로 돌아가 선회하였고, 다시금 진형을 넓게 펼쳤다.
이번에는 해적들이 공교롭게도 맞바람이었다.
저 앞은 육지. 뒤에는 대한제국이라는 나라의 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함대.
해적들은 침몰하거나 행동 불능이 되어 버린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비록 정면에는 육지가 있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고, 해안선을 따라 빙 돌아서 도망갈 생각이었다.
측면풍이라도 조선에는 자신 있는 해적들이었는데다가,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깨지고 나니 도저히 싸울 의욕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최초의 충돌로 키가 고장 나 버린 크리브는 선회가 불가능했기에 그저 돛을 접고 서둘러 수리에 전념하고 있었다.
크리브가 그런 상황이든 말든 해적들은 바다에 빠진 동료들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돌파당한 형태 그대로 진형도 좌우로 나뉘어져 있었기에 해적들은 당연한 선택을 한 것이다.
바로 선회해서 바람을 마주해서는 도망갈 수 없었던 탓도 있었고, 무엇보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순식간에 좌우로 갈라진 해적들은 쏜살같이 도망을 치기 시작했으나, 누구도 무사히 도망치지 못했다.
살아남은 해적들을 맞이한 것은 바로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이었던 것이다.
지금껏 본 적도 없는 거대한 배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해적들은 그대로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던 제국의 군함도 저보다는 작았다.
약 1해리 바깥에 있는 그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해적들은 눈을 의심했지만 점점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보게 된 그 거대한 모습에 반쯤 풀이 꺾였다.
울리히는 더 이상 가까워지기 전에 혼자만이라도 도망치겠다는 생각으로 일찌감치 키를 돌려 원양으로 나갔다.
가장 뒤에 있었기에 다른 해적선들이 눈치채는 데는 약간 늦었지만,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그들에게 무조건 항복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 콰아앙!
저 앞의 거대한 배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연기가 갑자기 확 피어오른다 싶더니, 원양으로 도망가던 울리히의 배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 버렸던 것이다.
치솟은 거대한 물기둥과 함께 울리히의 배라고 생각되는 나뭇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날아올랐다.
마스트는 수직으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고, 여기저기 비산하는 나뭇조각들만이 배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1해리 바깥에서 단 한 방에 그냥 침몰도 아닌 완전 산산조각을 내버리는 함포의 위력에 해적들은 완전히 얼빠진 모습으로 전의를 잃었다.
울린 제국의 마동포에 대해서 해적들은 알고 있었다. 약 0.3해리 정도의 거리에서 발사되는 마동포는 파이어 볼을 마법사 없이 먼 거리로 쏘아 보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위력은 한 발에 어떠한 배라도 쉽사리 구멍을 내고, 여러 발을 쏘아 대면 반드시 침몰하게 만든다는 위력적인 포였다.
하지만 그런 마동포를 능가하는 엄청난 위력이 눈앞에 펼쳐졌다. 단 한 발에, 그것도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에 부딪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배 한 척을 산산조각 내어 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1해리 바깥의 거리에서.
그렇게 단 한 발의 함포사격으로 도망치던 해적들은 완전히 일망타진되어 버렸다.
훗날 대한제국 첫 공식 해전으로 기록되는 건국 2년 서해교전의 격돌은 그렇게 압도적인 위력 차이를 확인하며 마무리 지어졌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해적들은 다수의 사상자를 내었고, 결국 모두 항복하고 말았다.
크리브 또한 손도 쓰지 못하는 배 위에서 그동안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울리히의 최후를 목격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저 정도까지 파괴력을 낸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었고, 단 한 번의 실력 행사를 통해 제국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현존하는 그 어떤 국가도 이 정도의 위력을 지닌 배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해적들이 항복하자 돛도 없는 거대한 배는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선수 중앙에 있는 회전식 127밀리 주포의 모습을 본 순간, 크리브는 저 포가 울리히를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린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반대쪽에서도 똑같은 배가 반대쪽으로 갈라져 도망치던 해적들을 향해 다가왔다.
울리히의 배가 산산조각날 때 엄청난 굉음이 있었기에 반대쪽으로 도망치던 해적들도 굉음에 놀라 돌아봤고, 단 한 방에 폭발하며 사방으로 비산하는 나뭇조각들을 똑똑히 봤었다.
그리고 정면에서 자신들을 향해 당당하게 접근해 오는 배를 접하자,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금방 항복하고 말았고, 그렇게 해적들은 모조리 붙잡혔다.
불쌍하게도 울리히의 배에서 살아남은 해적은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정도의 폭발에서는 시체가 남아 있기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증발했다는 표현이 적절한 수준인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상자는 울리히의 배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