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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제천 1권 (7화)


재빨리 얼굴을 바꾼 우용택이 굽실거렸다.
“헤헤. 이 부근부터는 광풍사의 영역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니, 그깟 마적들이 무서워 지금 이렇게 더디게 가는 것이란 말인가!”
청현의 입에서 터진 노호성에 우용택이 찔끔 몸을 사렸다.
유영철이 기도 안 찬다는 얼굴로 청현을 거들었다.
“자네, 지금 우리를 누구로 아는 겐가. 이분이 그 유명한 천리화향검 청현 대협일세. 거기다 뒤에 있는 도사 분들은 화산파가 자랑하는 매화검수들이고!”
“에헴.”
청현의 턱이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손바닥으로 폭풍을 만들어 낸다고 해서 폭풍장이라 불리는 자란 말일세.”
청현이 ‘그건 아닌데……’ 하는 얼굴로 유영철을 힐긋 바라봤다.
“그리고 내 뒤에 있는 무인들은 각각 철웅대와 비응단으로 우리 매화표국이 자랑하는 무인들일세. 광풍산지 뭔지 하는 마적 놈들은 한 식경도 안 돼서 깡그리 쓸어버릴 수 있는 무인들이란 말일세. 안 그렇습니까, 대협?”
“한 식경이 뭡니까, 일 다경도 안 걸리지요. 하하하.”
청현이 고개를 쳐들어 대소를 터트렸다.
“그, 그러시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둘의 장단을 맞춰 주는 우용택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에이, 미친놈들. 그런 놈들이 매일 표물을 빼앗기다 이제 와서 복수를 한다고 지랄들이냐?’
내심 조소를 흘린 우용택이 자화자찬을 하는 두 미친놈들을 뒤로하고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곳 대막에서 광풍사를 배신한다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말과 같다.
그럼에도 자신이 광풍사를 배신하고 이 미친놈들이 모인 무리를 안내하기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황금이라는 엄청난 제물 때문이었다.
천형적인 체형 탓에 변변한 직업도 없는 자신이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 그런 엄청난 재물을 만져나 보겠는가. 우용택의 입장에서 이번 안내는 목숨을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풍문에 의하면 이 근처 어딘가에 광풍사의 거처인 광풍처가 있다고 했으니 이 근처까지만 미친놈들을 안내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황금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 미리 준비한 짐을 들고 다른 곳으로 날아 그때부터 인생의 황금기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버석.
‘응?’
상상 속의 황금기에 빠져 해롱거리던 우용택이 모래언덕에서 쓸려 내려오는 모래더미에 눈을 치켜뜨고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데구르르.
우용택의 눈알이 빠른 속도로 굴러가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우용택의 행동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자화자찬에 빠져 있던 청현과 유영철이 입을 다물었다.
“놈들인가?”
“쉿.”
일그러진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우용택이 낙타에서 내려 바닥에 엎드렸다. 이내 바닥에 엎드린 우용택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몸을 굴려 모래언덕을 향해 움직였다. 뜨겁게 달궈진 모래에 몸이 닿는 것이 고통스러울 만도 하건만 우용택의 얼굴에서 그런 고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체 저게 뭐 하는 거요?”
“그,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우용택을 향했다.
“낄낄낄.”
“크크큭.”
꼽추 사내가 바닥에 누워 꿈틀거리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잠자코 우용택을 지켜보던 무인들이 하나 둘 웃음을 터트렸다. 청현과 유영철 또한 웃음을 터트리며 우용택의 행동을 지켜봤다. 이내 우용택의 신형이 모래언덕 뒤로 완전히 사라졌다.
“…….”
휘오오오.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한 줄기 모래바람이 무리를 헤집었다.
시간이 흘러도 우용택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청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도망간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일이 끝나야 황금을 준다고 했으니 도망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으음.”
묵직한 신음을 흘리며 탐스러운 수염을 쓰다듬은 청현이 몸을 돌려 매화검수 둘을 가리켰다.
“너희들은 모래언덕 위로 가서 그자를 찾아보거라.”
“예.”
청현의 명령에 젊은 도사 두 명이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낙타를 몰고 모래언덕을 향했다.
마침내 두 명의 도사가 모래언덕 위에 도착하는 순간, 한 도사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저기……!”
피―잉.
푸확!
도사의 목소리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 그리고 동시에 두 도사의 머리가 퍼석 하고 깨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참혹한 최후였다.
꾸허어엉.
두 마리 낙타가 서로 부딪치며 비명을 질렀다. 이내 낙타의 등에 올라타 있던 도사, 아니 이제는 도사라고 부를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천천히 떨어졌다.
털썩.
데구르르.
바닥에 떨어진 도사들의 시체가 모래언덕을 타고 부드럽게 굴러 내렸다.
푸들푸들.
미처 식지 않은 시체 두 구가 경련을 일으켰다. 시체의 미간을 중심으로 반 뼘 정도의 구멍이 나 있었는데 그 구멍의 크기가 어린아이 주먹이 들락날락 할 정도였다. 아마 화살이 미간을 꿰뚫으며 거센 회전을 일으켜 그 주변의 살 또한 함께 뜯어 버린 듯했다.
“뭐, 뭐야!”
“허억!”
시체를 마주한 무리가 비명을 지르며 경악했다. 피 냄새를 맡은 낙타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비명을 질렀다.
“모, 모두 진정해라!”
“모두 낙타들을 진정시켜라!”
청현과 유영철이 각자 이끄는 무리를 진정시켰다.
“으아아아악!”
한 줄기 비명, 그리고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모래언덕을 향했다.
“저, 저놈은!”
청현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모래언덕 위에서 인영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인영은 바로 꼽추 우용택이었다.
“히이익.”
데굴데굴.
몸을 날리다시피 해서 무리 앞에 도착한 우용택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무, 무슨 일이냐.”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냐.”
낙타에서 내린 청현이 우용택의 멱살을 잡아 올려 눈을 부라렸다. 딱딱 소리 나게 턱을 떤 우용택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노, 놈들이 옵니다. 놈들이 와요.”
“놈들?”
낙타에서 내린 유영철이 다급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히익. 노, 놈들이 옵니다. 놈들이 와요. 모두 도망쳐야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전부가 아니에요. 그 뒤에는, 뒤에는……!”
짜―악!
“똑바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우용택의 횡설수설을 듣지 못한 청현이 우용택의 뺨을 후려쳤다. 우용택의 고개가 돌아가며 피를 뿌렸다.
“대체 누가 온다는 것이냐.”
한가득 눈물이 고인 우용택의 눈에 담긴 두려움이 들끓었다.
“광풍사, 대막의 미친 바람이 옵니다!”
절규와도 같은 우용택의 외침에 청현과 유영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거의 동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둘의 신형이 움직여 낙타 위에 올랐다.
“모두 병기를 들어라!”
“각자 병기를 들고 대열을 갖춰라!”
둘의 명령에 매화검수들과 철웅대, 비응단이 각자 대열을 맞췄다.
“매화검수들은 낙타에서 내려 만화천검진(萬花天劍陳)을 펼쳐라!”
“예!”
타타탁.
낙타 위에서 몸을 날려 가볍게 착지한 매화검수들이 대열을 갖춰 만화천검진의 대형을 갖췄다. 비록 두 명의 매화검수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늘 놈들의 피로 대사형의 원혼을 달랠 것이다!”
적 수괴의 손에 죽임을 당한 철담검호 유운은 화산파의 일대제자로, 비록 항렬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의 대사형 격인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과거 매화검수에 속했던 적이 있었다. 매화검수들의 복수심이 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상황은 매화표국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 년 동안 우리가 당한 치욕은 오늘로 끝날 것이다!”
이글이글.
철웅대는 물론 비응단의 두 눈에서 투기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모두 숨을 죽이고 놈들을 기다려라!”
청현의 외침에 삼백에 가까운 무인들이 숨을 죽이고 손에 들린 병장기를 꼬나 쥐었다. 숨 막히는 적막이 무리를 내리눌렀다.
꿀꺽.
누군가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으으.”
몸을 누르는 압력과 긴장감에 누군가의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사람은 긴장 상태로 오랜 시간을 있으면 자연스레 심신이 망가진다. 지금 매화검수들과 매화표국 무인들의 상태가 그랬다.
‘대체 왜 오지 않는 것이냐!’
핏발 선 청현의 눈이 모래언덕 너머를 향했다.
두 발의 화살로 공격의 신호를 알렸다면 응당 놈들이 모래언덕을 넘어 공격해 왔어야 했다. 하지만 놈들은 오지 않았다.
“으으으.”
모두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침내 참다 못한 청현이 막 돌격을 명령하려는 순간, 피피피피핑 하는 불길한 소리가 일정 간격으로 연이어 터졌다. 마음 한쪽에서 고개를 쳐드는 불안감과 함께 고개를 쳐든 청현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화, 화살이다!”
쐐―애애액!
청현의 절규에 화답이라도 하듯, 청현의 망막에 비친 수백 대의 화살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핏빛 철시(鐵矢)들이 모여 전설 속의 거조(巨鳥)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화살이 내리는 모습이 마치 앞으로 흐를 혈우(血雨)와도 같았다.
“흐으.”
청현의 입에서 나온 한 줄기 신음.
모두의 눈에 절망이 떠올랐다.

* * *

바닥의 모래 색과도 같은 누런 황의에 손에 들린 커다란 대궁(大弓)의 시위에 철시를 먹인 자들이 바로 통천대다. 수는 그리 많지 않은 백여 명으로 오현, 오칠 형제가 이끄는 마적들의 활 솜씨는 가히 신기에 가깝다는 소문이 자자한 이들이었다. 특히나 쌍혈마궁이라 불리는 오씨 형제의 궁술(弓術)은 신궁(神弓)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천대로부터 약간 떨어진 왼쪽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검은색 철갑(鐵鉀)을 걸치고 허공으로 치켜든 창극(槍極)을 통해 무시무시한 살의를 내뿜는 이백의 기마대가 존재하는데 그들이 바로 철갑혈마대였다. 그들이 타고 있는 말은 적혈마(赤血馬)라 불리는 명마(名馬)로, 질펀한 모래 위에서 낙타보다 빠른 돌진력을 보여 주는데 말 자체가 철갑혈마대의 두 번째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본래 철갑혈마대는 소국(小國)의 군대로, 나라가 대국(大國)에 멸망당할 때 가까스로 몸을 피한 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적단이었다. 대주인 일섬창 위지공에 관해서는 소문이 분분한데 누구는 한때 그가 소국의 태자였다고 했고, 또 누구는 소국의 대장군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위지공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어 진실을 알 길이 없었다.
또 그들의 왼쪽에는 이백에 가까운 무리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었는데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백여 명의 옆에는 하나같이 흉포한 혈랑이 한 마리씩 붙어 있었다. 이백의 사람 수에 맞춰 혈랑들의 수 또한 정확히 이백이었다. 그들이 바로 ‘대막의 핏빛 늑대들’이라 일컬어지는 혈랑대였다.
혈랑과 함께 치고 빠지는 변칙적인 공격이 주를 이루는 이들은 비록 무공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대신 육체를 극한으로 단련한 자들로 개개인이 모두 뛰어난 전사(戰士)였다. 특히 혈랑대의 대주 광혈랑 석중은 타고난 신력(神力)으로 그의 손에 잡히면 남아나는 뼈가 없었다.
가장 끝에는 대략 천여 명에 가까운 무리가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는데 그들이 규모만으로는 대막 제일이라 불리는 폭풍대였다. 그들이 지나간 마을에는 풀 한 포기 남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커다란 규모, 그리고 그 커다란 규모만큼이나 커다란 잔인성을 보여 주는 이들이었다.
특히나 대주인 혈풍검 우공산은 철저히 원칙에 얽매이는 인물로 죄를 지은 자가 설령 자신의 혈육이라 해도 처벌하는 무서운 자였다.
그들의 반대편 오른쪽에는 핏빛 피풍의(避風衣)를 걸친 이들이 총 이백여 명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핏빛 혈봉(血棒)을 움켜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이 바로 혈살단으로, 그들이 들고 있는 몽둥이의 붉은색은 여태껏 그들이 때려죽인 자들의 피가 스며들어 그렇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도는 대막의 귀신들이었다. 단주인 혈살마옹은 한때 중원인들에게서 대막마왕(大漠魔王)이라는 섬뜩한 별호로 불린 적이 있었다.
그 밖에도 변변한 이름조차 가지지 않은 소규모 마적단들 또한 무리 속에 틈틈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진열의 중앙에는 그들, 광풍사가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 날씨 좋다.”
피부를 찌르는 태양을 힐긋 바라본 혈무악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날씨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