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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제천 1권 (20화)
파―앙.
공기가 터지는 시원스런 소리와 함께 반으로 접혔던 혈무악의 몸이 번쩍 솟구쳤다. 혈무악의 팔을 따라 은빛 꼬리가 길게 이어졌다.
스컹.
은빛 꼬리가 스친 두 자루 창이 반으로 뎅겅 잘려 바닥을 굴렀다. 매끄럽게 잘린 창대에 두 명의 창수가 미처 놀랄 틈도 없이 슬쩍 뒤로 빠진 혈무악이 발을 놀려 바닥을 구르는 두 개의 창대를 가볍게 찼다.
씨―잉.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잘린 창대가 주인에게 돌아갔다.
푸푹.
“크악!”
“으악!”
거한의 옆구리를 스친 창대가 두 창수의 가슴에 박혔다.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쏘아진 창대에 두 명의 창수가 삶을 마쳤다.
털썩.
자신의 병기에 생을 마감한 그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비, 빌어먹을.”
순식간에 두 동료가 당하자 자신만만하게 들이닥쳤던 거한이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몸을 날렸다. 이내 거한을 쫓아 발을 놀리는 혈무악의 앞으로 새롭게 세 명의 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랑검진(波浪劍陳)을 펼치게, 아우들!”
촤―르륵.
세 검수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애꾸 중년인의 외침에 두 명의 검수들이 혈무악을 포위하는 형상을 취했다. 이들은 감숙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자들로, 사람들은 이들을 파랑삼검(波浪三劍)이라 불렀다.
찌릿찌릿.
날카로운 기운이 혈무악의 심장을 찔렀다.
검수들이 자리를 잡아 가려고 하자 애꾸 중년인이 기세 좋게 검을 들어 올렸다.
“모두……!”
쑤―아앙.
푸―욱.
중년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혈무악의 도가 중년인의 배에 틀어박혔다.
“쿨럭. 어떻게……?”
분명 혈무악과 중년인의 거리는 삼 장 이상이었다.
절정의 경공을 익히지 않은 이상, 순식간에 좁힐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불신 가득한 눈으로 도신을 따라 도의 손잡이를 바라본 애꾸 중년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없다!
도를 잡고 있어야 할 혈무악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전과 같은 의문을 담은 애꾸 중년인의 시선이 삼 장 거리에서 손을 뻗은 혈무악의 모습에 꽂혔다. 그의 입에서 피거품이 게워 나왔다.
“쿨럭.”
‘도를…… 던지다니!’
애꾸 중년인이 털썩 쓰러졌다.
“대형!”
“형님!”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두 명의 검수가 비명을 지르며 애꾸 중년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팟.
발을 놀려 애꾸 중년인의 시체 앞에 도착한 혈무악이 애꾸 중년인의 배에 박힌 도를 뽑아 거칠게 휘둘렀다.
후두둑.
도에 얽힌 내장이 두 검수를 향해 쏘아졌다.
“허억.”
“어헛.”
비처럼 쏟아지는 내장에 두 검수가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멍청한 것들.”
싸늘한 냉소를 터트린 혈무악이 내장이 덕지덕지 붙은 도를 들고 검수들을 향해 들이닥쳤다.
“대형의 원수를……!”
내장을 피한 한 검수가 붉은 눈으로 혈무악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그의 면전에 들이닥친 후였다.
부―우욱.
사선으로 그어진 도가 검수의 상체를 걸레로 만들었다.
“으아아악!”
절로 소름 끼치는 처절한 비명을 끝으로 검수의 몸이 양단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형님!”
가장 어려 보이는 검수가 절규를 지르며 혈무악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형님의 원수를 갚아 주마!”
츙츙츙츙츙―!
검수의 검이 낭창낭창 휘어지며 공간이 흐릿한 검영(劍影)으로 가득 찼다.
“해상검무(海上劍霧)!”
힘찬 기합과 함께 검영의 수가 많아졌다.
곧 수많은 검영이 한 명, 혈무악을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우지끈.
그 압력에 주변의 풀들이 몸을 뉘었고, 거목들이 푸들푸들 몸을 떨다 부러졌다.
“제법!”
얼굴을 굳힌 혈무악이 도를 곧추세우고 쏟아지는 검영을 향해 마주 달렸다.
부―오오오오.
혈무악의 도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수많은 도영을 만들었다.
이내 도영들이 도풍에 담겨 사방으로 흩어졌다.
살형도법의 일초식인 요란살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뒤로 움직이는 본래의 요란살과는 달리 앞으로 전진하면서 펼친다는 점이었다.
꽝꽝꽝꽝!
검영과 도영이 서로 만나 부서지며 폭음을 터트렸다.
수십 개의 검영과 도영이 서로 만나고 부서지기를 반복하자 장내에 뿌연 먼지가 가득했다.
‘어디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모래먼지에 검수가 오감을 끌어올려 혈무악의 기척을 읽어 냈다.
‘거기냐?’
이내 한쪽에서 강렬하게 느껴지는 기척에 검수가 검을 앞세워 몸을 날렸다.
스슥.
은밀히 발을 놀려 기척의 면전에 다가선 검수가 감춰 뒀던 살기를 한순간에 터트리며 검을 찔렀다.
“죽어라!”
푸욱.
검이 살을 파고드는 묵직한 촉감과 함께 상대편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성공이다.’
검수의 얼굴 위로 미소가 번졌다.
“하하하. 원수를……!”
점차 모래먼지가 사라지며 검수의 얼굴에 번진 미소 또한 함께 사라졌다.
“다, 당신은……?”
“너 이 새끼…!”
놀랍게도 검수의 검에 꿰뚫린 사람은 혈무악이 아닌 대머리 거한이었다.
쩡그랑.
“쿨럭.”
도끼를 떨어트린 거한의 입에서 한 움큼 피가 쏟아졌다.
“왜 당신이……!”
잘게 떨리는 검수의 목소리에 맞춰 거한의 몸이 스르륵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거한의 뒤에서 혈무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대신 해 줘서 고맙군.”
“네놈 짓이구나!”
검수가 노호성을 터트리며 거한의 배에 박힌 검을 뽑아 혈무악을 향해 휘둘렀다. 슬쩍 고개를 젖혀 검수의 검을 피한 혈무악이 도를 곧추세워 검수의 배에 쑤셔 박았다.
푸드득.
“커헉.”
섬뜩한 소리와 함께 검수의 배를 꿰뚫은 도가 등을 뚫고 나왔다.
“잘 가라.”
쑤욱.
짧은 인사와 함께 배에 박힌 도가 빠져나왔다.
푸―화악.
붉은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피에 젖을세라 혈무악이 도를 갈무리하고 거리를 벌렸다.
키―잉.
도를 갈무리하며 몸을 돌리는 혈무악을 바라보는 철연화의 두 눈이 거칠게 떨렸다.
‘강해!’
오십여 명이 넘는 무인이 단 네 명의 무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도살당하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꿀꺽.”
늑대에게서 안전하기 위해 호랑이를 끌어들였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의 몸을 강타했다.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는 시체의 앞에서 도를 늘어트린 혈무악이 입을 열었다.
“내가 피를 보고 싶어 하는 미친놈은 아니나,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 만큼 멍청한 놈 또한 아니다.”
혈무악이 철연화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이내 장내가 모두 정리되자 숲에서 나머지 조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와 살이 잔뜩 엉긴 검을 털어 내는 흑서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그 다음으로 새하얀 뇌수가 듬뿍 묻은 단창을 흔들거리며 적돈이 나타났다.
“몇 놈이나 잡으셨습니까?”
검을 갈무리한 흑서가 혈무악에게 물었다.
“너부터 말해라.”
“저는 열다섯 놈 잡았습니다.”
흑서가 말한 무인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는지 혈무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적돈, 너는?”
“저는 열여덟 놈 잡았습니다.”
적돈이 육포를 우물거리며 답했다.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열다섯 놈 잡았는데 네가 어떻게 나보다 많이 잡아!”
흑서가 발악하듯 외쳤다.
“아저씨야 팔다리 다 자르고 난도질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지만 나는 깔끔하게 머리통만 부수는 놈이요. 내가 더 빠른 게 당연하지.”
“끄응.”
별달리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흑서가 침음하며 수염을 꼬았다.
“너는 이런 데서 뭘 처먹고 싶냐?”
“괜히 심술이야.”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흑서가 코를 잡고 면박을 주자 적돈이 투덜거렸다.
피와 내장이 질펀하게 흩어져 있고 시체가 꿈틀거리는 장내였지만 육포를 질겅이는 적돈의 입은 개의치 않았다. 끄응 하고 신음을 흘린 흑서가 다시 물었다.
“백랑은?”
“백랑은 참여하지 않았다.”
흑서의 물음에 답한 혈무악이 웃음기 어린 눈으로 장내를 돌아보다 문득 물었다.
“그 아저씨는?”
“그러고 보니 혈갈이 안 보이네…….”
적돈 또한 중얼거리며 장내를 살폈다.
“이 아저씨는 대체…….”
꽈―아앙!
미간을 찌푸린 혈무악이 막 운을 떼는 순간 수풀 저 멀리에서 커다란 폭음이 터졌다.
그 여파가 장내까지 미치는 커다란 폭음이었다.
후두둑.
폭음의 여파에 장내의 나무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모두의 안색이 대번에 변했다.
“저쪽은…….”
“혈갈이 사라진 방향입니다.”
답하는 흑서의 안색 또한 가볍게 굳었다.
“적돈, 가 봐라.”
“예.”
쉬식.
고개를 끄덕인 적돈이 단창을 고쳐 잡고 수풀 쪽으로 몸을 날렸다.
“백랑, 너는 여자를 지켜라.”
끄덕.
백랑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적돈이 수풀 속으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수풀이 들썩였다.
“뭐가……?”
휘―이익.
철퍽.
혈무악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수풀이 흔들리며 두 개의 인영을 뱉어 냈다.
“혈갈! 적돈!”
놀랍게도 두 인영의 정체는 혈갈과 적돈이었다.
“크윽.”
“으윽.”
수풀 속에서 나타난 두 사람이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난자된 것인지 둘의 옷은 걸레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해져 있었고, 해진 옷 사이사이로 보이는 피부 또한 수많은 자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챙―!
“어떻게 된 거냐!”
도를 뽑아 든 혈무악의 거칠게 외쳤다.
“쿨럭. 빌어먹을 새끼가…….”
“아저씨, 누가 이랬냐니까!”
혈무악이 소리를 지르자 혈갈이 피투성이 얼굴을 잔뜩 구겼다.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쿨럭.”
한 움큼 피를 게워 낸 혈갈이 스르륵 바닥에 쓰러졌다.
그저 힘이 다해 쓰러진 것인지 바닥에 쓰러진 혈갈이 쿨럭 마른기침을 해 댔다.
“적돈, 어떻게 된 거냐.”
싸늘한 혈무악의 물음에 적돈이 단창에 의지한 채 입을 열었다.
“혈갈을 찾으러 갔더니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상황을 보니 혈갈이 밀리고 있는 것 같아서…….”
“혈갈이 밀려?”
“예.”
적돈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혈무악이 침음을 흘리며 도를 고쳐 잡았다.
비록 덜떨어진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광풍사의 네 조장 중 한 명이다. 그가 마음먹고 덤빈다면 자신 또한 팔 하나쯤은 각오해야 했다.
‘현상금 사냥꾼들 중에 그런 고수가 있었던가?’
혈무악의 얼굴 위로 슬쩍 흥분이 번졌다.
“그래서, 혈갈을 밀어붙인 놈은 어디에 있냐.”
“저희를 따라왔으니 곧…….”
부스럭.
적돈의 말과 함께 수풀이 들썩이며 또 다른 인영을 뱉어 냈다.
“…….”
새롭게 나타난 인영은 평범한 검을 든 사내였다.
혈무악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검은 무복을 입고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을 질끈 묶고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했는데 굳은 것이 아니라 본래 표정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