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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전 1권(6화)
第三章 재회(2)


눈을 뜨니 사부가 보였다. 악몽임이 분명하기에 눈을 감았다가 이마를 얻어맞았다.
“말로 해요!”
“싫다.”
“그럼 마음으로 말씀하시든가.”
“그랬는데 네놈이 무시하지 않았느냐?”
억울하나 반박할 말이 없다. 어찌하여 나는 대꾸 할 말도 생각하지 않고 내뱉었을까.
일어나 앉으니 온몸이 고통을 호소한다. 잠시 이리저리 몸을 틀며 용트림을 하자 문득 사부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이 의아했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거리를 놓치기 싫어서지.”
“참으로 훌륭한 취미이십니다.”
“알면 됐다.”
그러면서 사부는 어쩐지 다리가 저리다, 맞은 건 제잔데 왜 자신이 아프냐며 궁시렁거렸다. 내가 그랬으나 난 모르는 척하고 몸을 일으켰다.
“으악, 허리야!”
다시 주저앉았다. 괜히 놀렸나. 기절할 정도로 맞은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리고 보니 기절하기 전에 류진룡이 다가오는 것 같기도 했는데…… 설마, 아니겠지.
“이 한심한 놈아. 한 번도 쓰지 않을 주먹질은 왜 배운 게냐. 그러려고 새벽부터 사부를 혹사시킨 게냐. 무엇보다 내 체면은 뭐가 된단 말이냐.”
난 진심으로 놀라 버렸다.
“있긴 한 겁니까, 그 체면이란 거.”
“분명 있으니 어디 한 번 찾아보거라.”
“뱃속에 있겠군요. 술안주 삼아 드셨을 테니까.”
사부는 껄껄 웃으며 술이 들어 있음이 확실한 호리병을 입에 가져갔다. 나는 그런 사부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사부는 정말 체신머리가 없다.
소림사의 스님 주제에 낮부터 술이나 마시고, 육식을 좋아하고 풀은 싫어한다. 아침 공양 같은 건 하지도 않고 경전은 읽지 않으며 불호를 외는 건 들어 본 적도 없다.
난 이런 사부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런 사부를 방치하고 있는 소림이 더 이상하다는 의문을 품었다. 아무리 방장 스님의 사제라도, 바위산도 격파하는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라도.
소림의 이름을 갉아 먹는 제자를 소림은 어째서 얌전히 받아 주고 있는 것일까.
문득 난 사부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깨달았다.
“왜요?”
“아무리 그래도 뱃속까지 확인은 못 시켜 준다.”
“안 할 겁니다.”
“알려 두는데 살인 미수다, 그거. 이 패륜아. 그런 이유로 사부를 죽이려 하다니 치밀하군.”
“음. 갑자기 뱃속을 확인하고 싶어지는데.”
“역시 살인자! 제자는 무서운 살인자였어.”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우리는 이제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 목소리만 들리지 않았다면 그리하였을 것이다.
[꺼내 달라!]
나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절벽을 등지고 있는 이 낭떠러지 언덕에는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사부가 뭐냐고 묻는 시선으로 보기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자 또 들렸다.
[날 꺼내라!]
“사부, 장난치지 마요.”
사부는 두어 번 눈을 끔뻑이고는 말했다.
“이런, 들켰느냐?”
“네. 재미없어요.”
“그럼 이제 그 재미없는 장난이 뭔지 설명해 봐라.”
그렇게 말했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비록 날 약 올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사부이지만, 지금 나는 본능적으로 사부가 한 악질적인 장난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다시금 한 발짝 움직였다.
[꺼내 줘!]
여지없이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은 음성이 내 귓가에 꽂혔다.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

절벽을 타고 부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렸다. 그리고 이제 씩씩거리며 절벽에서 나타난 사부의 음성도 들렸다. 사부는 등에 큰 봇짐 같은 걸 들쳐 메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옷으로 둘러싼 것 같아 보였다.
“꺼냈다. 그런데 제자야. 뱃속을 확인하는 방법 치고는 글러 먹었잖느냐.”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정말 들렸다고요. 그리고 봐요. 사부도 꺼내 왔잖아요.”
“뭐 그렇긴 하다만. 어딘가 이상해.”
“하긴 꺼내 달라는 말이 이상하긴 하죠.”
묘하게 의심이 간다는 시선으로 우리 둘은 심도 있게 서로를 바라보았으나 얼간이 같아 그만뒀다.
나는 사부에게 귓가로 환청 같은 게 들린다고 했고 방향도 짚어 줬다. 사부는 그쪽이 절벽임을 알아채고 나에게 삶에 희망을 갖으라는 둥의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었기에, 희망을 품고 밀쳐 주었다.
물론 사부 보고 죽으라고 한 짓은 아니었다. 내 사부는 절벽에서 떨어진다고 어찌 될 사람은 아니니까. 게다가 그리 높지도 않은 절벽이다.
아무튼 그렇게 절벽을 탐색하고 찾아내어 그걸 꺼내 온 것이었다.
“어쨌든, 아이로구나. 그것도 꽤 잘 사는 집안의 아이.”
그 조그마한 체구는 확실히 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더불어 더럽혀졌으나 옷의 원단이 고급임은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피가 굳어 엉킨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제대로 확인은 할 수 없지만, 나보다도 어린 것 같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피부가 창백한 것이, 이미 죽은 사람 같아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살아 있나요?”
바닥에 눕힌 아이에게 몸을 숙여 이곳저곳을 만져 보는 사부에게 대고 물으니, 그가 고개를 젓는다.
“살아도 산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맥은 가늘고 숨은 옅다. 혈색은 좋지 않고 전신이 차갑도다. 무엇보다 손 쓸 도리가 없구나.”
포기했다는 식으로 사부는 몸을 일으켰다. 굳이 상태를 진맥하지 않고 그냥 봐도 죽어 있어 보이니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말 안 해도 알겠다.
“그런데 이 아이가 말을 했다고?”
“이 아이인지는 모르겠는데 꺼내 달라는 말을 들었어요.”
“흐음. 이상하구나. 난 못 들었거늘. 거리도 거리이고 바람이 강하여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듣기가 어려울 텐데. 게다가 이 아이의 상태로는 도무지 말을 했다고는 믿기지가 않아.”
말끝을 흐린 취중망승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팔짱을 낀 자세로 한 손을 올려 턱을 쓰다듬는다. 그뿐이다. 더 이상 행동에 발전이 없었다.
“사부. 일단 살아 있다면 치료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지. 그런데 그리할 수가 없구나.”
“불가에 몸담은 소림의 중으로써 양심에 가책 정도는 느끼시죠.”
그 비아냥거림이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취중망승은 낄낄거린다.
“이놈아. 난 땡중이니라. 알게 뭐란 말이냐.”
“잘났군요.”
잘난 사부는 으레 그렇듯 짐짓 엄숙한 분위기를 잡았다.
“진기는 주입과 동시에 흩어지고, 혈은 잡히지 않는다. 피는 멎은 것 같으나 둔부에 상처가 제법 크다. 피도 꽤 많이 흘렸다. 무엇보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아. 이놈아, 희대의 영약이라는 소림의 대환단이라도 어쩌지 못해.”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를 했다 하여 안타까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지금 죽어 가고 있다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난 그 아이에게 다가가 앉았다. 안쓰럽기도 하지. 유복하게 살았을 아이인데, 미래의 밝은 빛도 보기 전에 끝이라니. 내가 다 눈물이 날 정도다.
언뜻 보이는 피부가 고왔기에 피가 굳어 조금 딱딱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가려진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보았던 걸까.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몸이 굳었다. 호흡이 멈췄다. 내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멈춰 버린 사고에 파동을 주며 떠오르는 건 하나의 의문.
어째서……?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사부가 뭐라고 하는 말이 흐릿하게 들렸다.
“아서라. 모르는 아이 아니더냐. 손 댈 이유도 없으며 그럴 수고도 필요 없느니. 그저 외워 둔 불호라도 있으면 극락이나 빌어 주어라.”
어째서.
“쯧쯧, 내가 한 말을 다 어디로 들은 게냐? 이 아이는 살리려고 애쓸 수고가 없느니라. 이미…….”
“……미령아.”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

“미령아, 백 밤만 자면 오빠는 다시 돌아올 거야. 그때까지 미령이는 양부모님과 오라버님들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알았지?”
“오빠 어디 가? 어디? 나도 갈래! 미령이도 따라갈래!”
말갛게 씻어 고운 얼굴을 잔뜩 구기며 미령이가 매달린다. 씻기고 나니까 정말 예쁘다. 아마 크면 미인으로 남자들 깨나 울릴 것이다.
“안 돼. 오빠밖에는 갈 수가 없어. 우리 미령인 여기 남아야지. 이 집에선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을 수 있거든?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리도 예쁘고 귀여운 동생을 두고 떠나려는 마음이 산산이 찢겨지는 것 같다. 그러나 뒤에서 보고 있는 양아버지. 그분의 말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미령이가 곱게 클 수 있을 것이다.
“오빠 이상해. 어디를 가는 건데? 머리는 또 왜 그렇고?”
“잘 어울리지? 굳은 결의를 한 남자의 각오라고! 아무튼 미령아. 잘 살고 있어. 어디 아프지 말고. 오빠가 반드시, 반드시 데리러 올게!”
“싫어! 싫어 오빠, 나도 갈 거야! 나도 갈 테야! 엉엉, 나 버리지마, 오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