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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전 1권(7화)
第三章 재회(3)
그렇게 가슴 아프게 이별해야 했다. 다섯 세가 녀석들의 구타에 몸과 마음이 찢기는 것 같아도 미령이를 지키는 길이라 그 지옥 같은 고통도 참고 살았다. 내 동생 잘 지내나 걱정되어 당장에라도 확인하러 가고 싶으나, 단 한 번도 숭산을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게 약속을 지켜 왔다. 그렇게 인내하여 왔다.
그랬는데, 그러하였는데.
“……살려 주세요.”
모든 것이 헛되이 느껴졌다.
미령이는 이런 식이면 안 된다. 지금 내 눈앞에서 죽어 가는 아이가 미령이라니 말도 되지 않아.
이런 건, 회주와의 계약에 있지 않았잖아!
“미령이라면…… 네 동생 이름이 아니더냐?”
그래. 내 동생. 하나밖에 없는 내 귀여운 여동생. 괴롭힘을 당해도 꾹 참은 이유이며 몇 달이나 모은 돈으로 산 노리개를 받아 즐거워해야 할, 내 삶의 이유. 그런 아이가 죽어 가고 있단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폐승이라 할지라도 소림의 중이라면, 내 사부라면.
“살려달란 말입니다! 내 말이 안 들립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사부의 멱살을 잡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부는 눈을 감은 채다. 꾹 다문 그 입은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다급히 미령이에게 갔다. 여전히 죽은 것처럼 늘어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늘게 내쉬는 숨이 그리 슬퍼 보일 수가 없다.
미령아, 미령아. 이 오빠가 여기 있잖아. 눈을 떠 봐. 오빠 보고 인사해야지? 오빠가 너 주려고 노리개도…… 눈 좀 뜨란 말이야!
“십 년을 못 봤다. 그럼에도 네 동생이라 확신할 수 있는 게냐? 아닐 수도 있고,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지. 동생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착각……? 우스운 소리네. 잘못 본 거다, 내 동생이 아니다, 그렇게 남의 죽음으로 위안 삼잔 말입니까! 착각이든 뭐든 살려 낸 다음에 생각하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요!”
부끄럽지만 나에게 소리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 나는 처음 이 아이가 미령이인 줄 모르고, 이렇게 애절하진 않았다. 안타까워하고 슬퍼하였으나 지금과 같은 절박한 마음은 아니었다.
남의 죽음을 나는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나와 같을 사부에게 지금 역정을 내고 있다.
역겹다. 추악한 내 자신의 모습이.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고 대답하거라. 네 동생이 확실하더냐?”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이자 사부가 아리송한 말을 뱉었다.
“그렇다면 신원은 확실하겠군.”
“신원이라니 그게 무슨 말…….”
“비켜라!”
날 밀치고 미령이 앞에 앉은 사부가 손을 움직였다. 앙상한 가지 같은 손가락이 그 작은 체구 위를 신중하고 빠르게 누빈다. 난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중원상회에서 공양을 오던 길에 숭산 앞자락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다. 걱정할까 봐 말은 안 했지만, 거기에 이 아이가 끼어 있을 줄은 몰랐구나.”
불현듯 며칠 전 사부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조를 때, 사부가 했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 소림에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는 내 물음에 사부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었다. 그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는데, 실은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걸 왜 이제 말해요!”
“걱정할까 봐 그랬다고 하지 않았더냐. 더욱이 지금껏 그 행차에 네 녀석 동생이 끼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엔…… 예외였을 뿐.”
가슴이 또 한 번 무너지는 것 같다. 나를 보고 싶어서 그 먼 길을 따라오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이 어린아이가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
문득 미령이의 손에 꼭 쥐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조심스레 그것을 빼냈다. 자수를 뜬 손수건이었다. 아직 엉성한 솜씨지만 그래도 예쁘게 꽃과 나무가 수놓아져 있었다.
구석에 쓰여 있는 작은 이름, 일원.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마도 나를 주기 위해 만들었겠지. 직접 전해 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겠지. 그리고…… 이렇게 되었다.
화가 났다. 이런 어여쁜 아이를, 아직 어린아이를 사지에 내몬 회주에게. 사실 회주의 잘못은 아닐지도 몰라. 그것은 사고였으니까. 하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지금 내가 화를 낼 수 있는 대상은 회주와 더불어 미령이를 이렇게 만든 놈들뿐일 테니까.
그놈들은 누굴까. 무엇 때문에 미령이를 이렇게 만든 것이며 상행을 습격한 걸까. 사고 지역은 숭산 인근. 그곳은 소림의 영향권 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버젓이 이런 짓을 할 놈들이라면 필시 보통은 아닐 터이다. 사부는, 어쩌면 사부라면 알고 있으리라.
“말해 줘, 사부. 어떤 놈들인지.”
“모른다. 알아도 모르고 몰라도 모르느니.”
“사부!”
“……그게 내 위치다.”
그 낮은 목소리는 한없이 잠겨 있어 서글프게 들렸다. 미령이를 치료하는 사부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말을 하는 그 등이, 크게만 보이던 사부가 작아져 있었다.
나는 말을 삼켰고 사부는 말이 없었다. 꽃내음 가득한 봄 바람이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 주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사부의 말은 은근히 신경 쓰였다. 그는 미령이를 치유하고 있다. 조금 전까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만 안타까워하고 있다가, 확인이 되고 나니 실행에 옮기고 있다.
확인? 신원? 대체 왜?
어쩌면 사부의 ‘위치’란 말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부가 말한 ‘위치’가 대체 어떤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만뒀다.
지금은 미령이가 살아나는 걸 빌어야만 할 때였다. 우습게도 외워 둔 경전의 구절도 없어서 나는 계속해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살아 줘, 제발 살아 줘.
***
치료 행위를 마친 뒤 사부는 미령이를 번쩍 안아 들어 내게 주었다. 미령이의 몸은 무게가 없는 것처럼 가벼웠다.
“안정해야 한다. 알겠느냐? 절대 안정이다. 이 아이도 그리고 네 녀석도.”
뒷말에 마음이 쓰렸다. 조금 전에 이성을 잃은 날 질책하는 것이리라.
“죄송해요, 사부. 버릇없이 굴어서.”
“네놈은 좀 버릇이 없어도 돼. 이 고독한 은거기인의 하나뿐인 제자니까.”
싱긋 웃으며 짐짓 거만하게 하는 그 말이 고마웠다.
시선을 내렸다. 내 품에 안긴 미령이는 작지만 분명하게, 규칙적인 호흡을 하고 있었다. 살아 있다. 그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상해.”
사부가 불안한 말을 했기에 재빨리 물었다.
“뭐가 또 잘못 되었나요?”
혈색은 돌아와 있었다. 아직 낮지만 규칙적으로 새근거리며 세상의 모든 행복을 안고 있는 듯 입가에는 희미하지만 미소마저 띄고 있다. 문제는, 없어 보인다.
“내 힘이 아니로다. 아, 물론 이 사부의 의술은 하늘에 닿았으므로 충분히 고칠 능력은 있어. 있고 말고.”
“뭐가 문젠데요.”
매정한 놈, 이라고 중얼거린 사부는 재촉하는 내 눈길에 머뭇거리더니 짧게 신음했다.
“아이는 치유되고 있었다.”
나의 기도와 바람으로도 사부의 의술로도 치유된 것이 아니다. 미령이는 스스로 살아난 것이다. 사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게 가능해요?”
“가능했다, 이 아이는.”
사부는 의문스러운 내 얼굴과 똑같을, 그런 표정으로 품에 안겨 있는 미령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미령이를 내려다보던 사부가 탄식과도 같은 말을 뱉었다.
“설마 그런…… 아니다. 일단 아이를 옮겨야겠어. 가자마자 장작을 떼거라. 끓는 물에 잘 소독된 천도 준비해야 한다. 그전에 말끔하게 씻기고.”
“불 지피고, 씻기고, 소독된 천. 알겠어요.”
의문은 나중에도 충분하다. 지금은 미령이가 살았다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미령이를 업은 난 한걸음에라도 집에 달려갈 준비를 마쳤다. 그렇지만 당장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툭. 뭔가 미령이의 품에서 흘러내려 떨어진 것이다.
나는 얼른 가야 한다는 일념에 일단 그 낡은 책자를 들었다. 따라서 겉표지에 쓰인 글귀를 읽은 것은 무의식적으로 한 행위였다.
“달마…… 역근경?”
***
사부는 작전을 바꿨다.
미령이를 내게 맡기고 사형께(방장 스님을 말하는 것 같다) 다녀온다면서 날듯이 뛰어간 것이다. 물론 그전에 미령이의 몸에서 떨어진 책자를 소중히 챙겨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날 버리고 가 버린 사부에게 서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이지만 미령이가 먼저다. 나는 미령이를 업고 죽어라 달렸다.
미령이는 괜찮은 걸까. 그리고 달마역근경이라는 건 대체 뭘까.
사부가 소중히 다루는 것을 보면 중요한 것 같은데, 그것이 왜 미령이의 품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게 중요한 것은 미령이를 빠르고 안전하게 집에 데려가 따듯하게 돌보아 주는 것이기에 발을 재촉했다.
사부는 분명 나에게도 절대 안정이라 하였으나 안정할 만큼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숲길에서 또 만난 속가제자 녀석들에게 나는 관대해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
“뭐냐, 너. 눈이 새빨간데? 설마 계집애처럼 울었냐?”
“하긴 그런 스승에게 배웠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등에 그건 뭐야? 설마, 여자냐?”
“와아. 대단한데 저 자식? 소림에 여자를 데리고 오고. 그런데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인다?”
“혹시 그거 아냐? 취중망승의 사생아?”
뭐라고 떠들어대는 놈들 앞에서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저 녀석들을 마주하자 기분이 심히 불쾌해졌다. 나답지 못하다. 그렇다면 나다운 것은 무엇인가.
모르겠다. 나는 참 모르는 것도 많다. 저놈들이 나를 괴롭히는 이유도 나는 모른다. 다만 그 괴롭힘을 내가 참는 이유는 알고 있다.
내 등에 업혀 있는 미령이. 내 소중한 여동생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내 여동생은 중원상회가 아닌 내 등에 업혀 있다. 가까스로 회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저 녀석들은 날 가로막고 있는 건가?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상하다. 귀가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가느다랗게 뭐라고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저놈 좀 이상한데, 그리고 보니 업고 있는 아이도 이상해. 피잖아? 피가 묻어 있어.
뭐지, 그리고 누구지? 그런데 좀 건방지지 않아? 우리가 앞에 있는데 대꾸도 없네. 설마 무시하는 거야?
와 우리가 가끔씩만 어루만져 주니까 건방져졌네.
이보게들 안 되겠네. 원래 돈냄새 나는 더러운 자식은 좀 더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