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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19화)
Chapter 7 삼라조화신령진(3)


퉁!
“어어?”
위천희의 몸이 뒤에서 밀어붙이는 힘에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양발을 수십 차례 꼬며 가소혼진의 어지러운 기운들을 헤쳐 나간 위천희.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세 소녀는 비록 어리지만 초일류의 고수들이었고 그들은 위천희의 기척을 읽고는 크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꺄아아악.”
“꺄아아아악.”
계곡을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 소리.
위천희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급히 변명의 말을 했다.
“에에……. 이거 정말 미안하다. 내가 그만 발이 꼬여서 말이야.”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이었다.
“비켜! 빨리 뒤돌아 서!”
“어떻게, 어떻게! 천희 오빠가 나의 알몸을 보고 말았어!”
“꺄아아악!”
비명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

이른 저녁 시간이었다.
할아버지를 제외한 세 식구는 간만에 모두 모여서는 식사를 하게 되었다.
멸마대주인 위극혼과 그의 아내인 화운영, 그리고 그들의 하나뿐인 자식인 위천휘.
그들은 식탁에 앉아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위극혼과 화운영은 아들의 얼굴을 보고는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결국 위천희가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헤헤, 왜들 그러세요?”
“뭐니? 눈이 왜 그런 거야?”
화운영이 손을 내밀며 아들의 오른쪽 눈 부위를 만지려 하자 위천희가 다급히 말했다.
“아아, 안 돼요! 만지면 아프다고요.”
분칠을 한 듯, 오른쪽 눈 주위가 하얗다.
부모님의 눈을 속이려 하얀 분말 가루를 발라 보았지만 그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위극혼과 화운영은 아들의 눈이 퍼렇게 멍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니? 누가 우리 아들을 건드린 거야.”
“아니에요, 엄마.”
위천희가 손을 급히 좌우로 흔들었다.
“사고였어요. 의원 아저씨들 아이들하고 토끼처럼 생긴 동물을 사냥하다가 사고가 난 거예요. 호인이 녀석이 돌을 잘못 던져 제 눈에 맞은 거라고요.”
“그래? 아닌 것 같은데. 이 엄마가 보기에는 누구한테 맞은 것 같은데?”
화운영이 미심쩍어 하는 그런 눈을 해 보였다.
“아니에요. 호인이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그럼 제 말이 틀린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말은 이미 맞춰 놓았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만약당주의 아들인 호인이를 만나 충분히 설명을 했고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화운영은 아들이 자신 있게 말을 하자 곧 수긍하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위극혼은 아니었다.
“칠칠치 못한 놈. 어서 식사나 하거라.”
“예에, 아버지.”
그는 아들의 눈에 난 퍼런 멍 자국이 돌에 맞은 게 아닌 작은 주먹에 맞았음을 알아보았다. 무슨 사연으로 어떻게 맞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돌멩이가 아니라 사람에게 맞은 것이었다.
‘어휴, 다행이다.’
위천희는 속으로 안도했다.
‘다행히 두 분 다 속아 넘어가셨어. 더 파고들었다면 여러모로 난처해졌을 거야.’
“뭐 하니, 천희야. 어서 식사해.”
화운영이 식사는 안 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아들을 깨웠다.
“아! 예에, 지금 먹고 있어요.”
위천희는 먼저 계혈탕포(鷄血湯包)라고 하는 탕 요리에 젓가락을 들이대 그 안에 있는 닭고기 살을 건져 내 입으로 가져갔다.
“우물우물. 와아, 역시 맛있다.”
풍성한 식탁. 어딘지 모를 괴이한 섬으로 이동되어진 의선곡이지만 먹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땅이 있으니 벼농사를 비롯한 밭농사를 충분히 지을 수 있었고, 또한 축사에는 소, 돼지, 닭, 오리들이 있어 전과 다름없는 식사가 가능했다.
“우물우물, 헌데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거죠?”
“삼존각으로 가셨다. 오늘 저녁은 거기서 함께 들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하시면서 해 떨어지기 전에 일찍부터 걸음을 옮기셨단다.”
삼존각(三尊閣).
전에 없던 그 건물은 이 년 전에 새로 지어진 것이었다.
삼존과 그들의 손녀들을 계속 귀빈관에 모실 수가 없어 공방에 있는 기술자들을 시켜 새로 짓게 한 것이었다.
위천희가 바로 또 물었다.
“그럼 걔네들과도 같이 있겠네요.”
“누구 말이니?”
“누구긴요? 그 애들 있잖아요, 그 애들. 운미하고 소연, 그리고 연화 말이에요.”
“아아, 그 애들. 당연하지. 거기가 그 애들 집인데 당연히 지금쯤은 할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를 들고 있겠지.”
화운영은 아들이 당연한 얘기를 물어본다고 생각했다.
삼존각은 삼존이 머무는 거처이지만 그들 손녀들의 거처이기도 한 것이었다.
‘으음, 괜찮겠지?’
위천희는 엄마의 말에 느릿하게 식사를 하며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들 목욕하는 것을 훔쳐봤다는 것을 할아버지들에게 말하지는 않을 거야. 그건 실수라고 내가 수십 번을 얘기했고, 또 나는 운미 고것에게 당했잖아.’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아니,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자존심이 상했다.
‘황보운미……!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걔는 너무 거칠어. 여자애면 여자애답게 굴어야지, 어떻게 남자를 그렇게 깔아뭉갤 수가 있어. 지가 힘이 세면 다야? 고수랍시고 힘없는 나를 그렇게 때리다니.’
오른쪽 눈에 난 시퍼런 멍.
이제 보니 그것의 범인은 황보운미였던 모양이다.
위천희와 동갑내기인 그녀는 남궁소연과 심연화가 말렸지만 기어코 녀석의 얼굴에 한 방 먹인 것이었다.
다른 애들이 위천희의 살갗을 살짝 꼬집을 때 그녀는 주먹에 내력을 실었고 그 모습을 본 위천희는 기겁을 해서는 두 애들에게 자신이 저 주먹에 맞으면 죽는다고 엄살을 부렸었다. 그리고 결국 내력이 실리지 않은 주먹이 그의 얼굴에 들어와 박힌 것이었다.
‘나도 강해져야 해. 고것이 그렇게 사내를 우습게보는 것도 내가 약해서야. 생각 같아서는 진법으로 크게 혼내 주고 싶지만 참겠어. 이제 나는 곧 다른 힘을 얻게 될 테니까 말이야. 진법처럼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닌,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힘.’
“우물우물, 으음, 맛있다.”
식사를 하는 위천희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은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법이라고 하는 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힘.
그 힘을 생각하니 오른쪽 눈의 아픔이 많이 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헤헤헤. 기다려라, 황보운미.’
히죽히죽 웃으며 식사를 하는 위천희의 모습.
위극혼과 화운영은 그런 아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

휘류류류류류.
양의 기운을 모두 몰아내고 음한 느낌의 검은 기류만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곳, 소혼진의 안이다.
목령, 화령, 토령, 금령, 수령의 오행에 속하는 신령들과 뒤늦게 소환되어진 풍령과 뇌령.
녀석들은 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는 대주를 조용히 지켜보며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뇌령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용했다.
“……그러니 나의 몸에 손을 대면 안 돼. 뭐,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희들은 신령들인지라 내 몸을 건드려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그러면 내가 신경이 쓰이니까 좋지는 않아. 그러니 지금부터는 얌전히 있어야 해. 알았지?”
―예, 알았어요, 대주. 얌전히 있을게요.
―크르릉. 걱정 마십시오, 저 화령이 얌전히 있습니다.
―키케케케케. 나도, 나도!
―에구구, 허리야. 대주님,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저 토령이 이 아이들을 얌전히 있도록 시키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잘 알아들었다는 말들을 했다.
그러나 그게 또 시끄러웠다.
다시 몇 마디의 말을 해 주었다.
“조용, 조용. 너희들은 일곱이나 되니까, 하나씩만 말해도 매우 시끄러워. 그러니 지금부터는 아무 말도 마. 그냥 고개만 끄덕이면 되는 거야. 알았지?”
이번엔 다들 고개만 끄덕였다.
말 안 듣기로 유명한 뇌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지금부터는 그들 일곱 신령에게 매우 중요했다. 소혼진과 가소혼진 안에서만 생활할 수 있는 그들은 매우 답답했다. 좀 더 넓은 곳으로 나가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데 여기는 너무 좁아 그들의 기운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제약을 풀려 하고 있었다.
“좋아. 다들 알아들은 것 같으니 그럼 나는 바로 시작하겠다. 모두들 기도해. 너희들이 천지신명께 내가 성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내가 하는 일이 보다 잘될 거야.”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일곱 신령.
위천희는 눈을 빛내고는 곧바로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작은 금갑이었는데 덮개를 여니 그 안에는 가느다란 금침이 백여 개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 하는 일에 있어 꼭 필요한 금침.
스윽.
위천희는 우선 그 백여 개의 금침 중 하나를 꺼내서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음에 드는지 그의 고개가 곧 천천히 끄덕여졌다.
“할아버지가 사용하시는 최상품의 금침. 이거라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내 몸에 삼라조화신령진을 설치할 수 있을 거야. 동물 실험을 다섯 차례밖에 하지 않았지만 모두 성공했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성공할 수 있어.”
삼라조화신령진(森羅調和神靈陣).
이것은 무려 삼 년 하고도 2개월을 연구해서 마침내 만들 수 있게 된 매우 특별한 진이었다.
그가 소환한 일곱 신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혼진의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상당한 힘을 지닌, 위천희 자신에게 크게 도움이 될 녀석들이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니 결국 그는 일곱 신령이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삼라조화신령진이었다.
이것은 매우 위험했다.
진법이라고 하는 것은 대지 위에 펼치는 것이다.
하늘의 기운과 대지의 기운을 읽어 그 대지 위에 설치하는 것이 바로 진법인데 이 삼라조화신령진은 특이하게도, 아니, 매우 위험스럽게도 사람의 몸에다가 설치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위천희 그가 아니라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그런 진법인 것이다.
두근두근.
오래간만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후으읍, 휴우우우…….”
위천희는 몇 차례의 심호흡을 통해 두근거리는 가슴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는 금침을 침착하게 몸에 꽂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침을 놓을 부위는 가슴의 옥당혈이야. 그다음에는 잔중, 중정, 구미, 거궐혈의 순서로 계속 놓으면 돼.’
지금 위천희가 금침을 꽂고 있는 부위는 대부분이 가슴과 윗배 부근이었다. 팔다리 쪽으로는 전혀 금침을 꽂지 않고 있었고, 또한 혈도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그런 곳도 그는 거침없이 침을 놓았다. 의선곡에서 오래전부터 파악한 인체의 주요 혈도 자리는 무려 1,847군데나 되었기 때문에 그는 일반의 의원들이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그런 부위에다가도 침을 놓을 수가 있는 것이었다.
스윽.
가느다란 금침이 부드럽게 꽂혔다.
금갑에 들어 있는 금침은 모두 123개.
처음 50개까지는 빠른 손놀림으로 꽂았는데 그 이후부터는 시간이 조금씩 지체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침착히, 침착히…….’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려 하자 위천희는 마음속으로 침착하라는 주문을 걸었다. 그러자 두근거리려는 가슴이 빠르게 다시 잠잠해졌다.
시간은 그렇게 조금씩 흘러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신령들이 작게 떠들기 시작했다.
―와아, 이제 90개째야.
―그래그래. 이제 금갑에는 금침이 얼마 남지 않았어.
―호호호, 이거 내 가슴이 다 두근거리는데. 이제 우리는 조금만 있으면 이 세상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을 거야.
―키케케케케. 기쁘다, 기뻐!
조그맣게 떠들고 있었지만 모두가 말을 하니 그게 또 시끄럽게 들렸다. 결국 노인네의 모습을 하고 있는 토령이 한마디 했다.
―에구구, 너희들 왜 그리 시끄럽냐? 아까 대주님이 한 말씀을 어디다가 흘려들었어.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니 다들 조용히 해.
토령의 말은 즉시 효과를 보였다.
한마디씩 더 하려고 했던 신령들은 모두 쥐 죽은 듯이 있었다. 지금은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친구들과 떠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떠들다가 일이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전적으로 자신들의 탓이 될 터이니 모두들 조용히 했다.
“후으읍, 후으읍.”
거친 숨소리.
얼굴에 땀방울들이 조금씩 맺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