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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전 1권(11화)
第五章 그리고 깨어난 달마역근경(1)


미령이가 깨어났다는 건 어찌 된 영문인지 사부가 먼저 알아챘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마당에서 더 없이 신중하게 뱀술의 농도를 확인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미령이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말대로였다.
미령이는 눈을 떴다.
그 후 소식을 들은 방장 스님이 오셨고, 방장 스님은 도착하자마자 미령이가 있는 방으로 벌컥 들어갔다.
“정신을 차렸구나. 나아졌다니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급박하게 들어간 것과는 달리 차분한 언행에 나는 안심이 되었다. 사실은 다른 속가제자를 때린 사건으로 날 혼내지는 않을까 혹은 다짜고짜 이것저것 묻지 않을까, 걱정이었었는데.
방장 스님은 그러지 않았다. 다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생면부지인 내 여동생을 걱정했음이 역력히 드러나, 나는 참으로 방장 스님이 훌륭한 스님이라고 감격해 버렸다.
미령이는 조용했다. 그 크고 동그란 눈은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혹 깜빡거렸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죽어 있는 사람 같다. 더군다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옆에서 무어라고 말하든 들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혹은 보이지도 않든가.
나는 미령이의 그런 상태에 마음이 불안했다.
당장에라도 미령이에게 말을 붙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어른을 무시하고 내 볼일 보는 건 사부 앞에서만 해당된다. 내 여동생의 상태에 대해 마음 써 주신 방장 스님께 예의가 아니다. 무엇보다 미령이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잠시 미령이를 내려다보던 방장 스님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야. 이 할아버지는 네 오라비의 사백 되는 사람이란다.”
여전히 미령이는 들은 척도 안 했기에 사부가 나섰다.
“사형은 말하는 법을 잘 몰라. 애가 겁을 먹었잖아.”
언제고 방장 스님이 사부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무튼 사부는 미령이에게 말을 걸었다. 짐짓 거만하게.
“나는 이 녀석의 사부다. 세월을 유랑하는 고독한 은거기인이라고도 하지. 처음 보는 사람이겠지만 존경해도 좋아. 난 은거기인이거든. 그거 되게 멋진 거야.”
“됐네. 자네 말도 듣질 않아.”
“봤소, 사형? 분명 이 아이의 눈동자가 일 장이나 움직였다고.”
“헛소리.”
멀쩡한 남의 여동생 눈알을 말로서 뽑으려 하는 그 시도는 권위 가득한 방장 스님의 죽장 일격으로 실패했다.
이렇게 되니 나는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미령이는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작년에 모기와의 치열한 사투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천장은 참으로 볼품없었다.
지금 미령이의 상태는 어떤 것일까.

무언의 법이란 놀라운 협동심을 안겨 준다. 방장 스님과 사부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된 것이다. 이제 내 차례라는 뜻이었다.
나는 호흡을 고르며 누워 있는 미령이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한 달이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할 말은 이것뿐이다.
마른침을 삼키며, 여전히 가만히 누워 있는 미령이에게 나는 말했다.
“미안해…… 미령아.”
그렇게 버려 두듯 떠나와서. 한 번도 찾아가 보지 못해서. 네가 오게끔 만들어서, 그리고 이렇게…… 꽉 쥔 주먹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미령이는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은 없었다.
“충격이 컸을 게야. 아마 그 후유증이겠지.”
방장 스님의 탄식과도 같은 한숨과 사부의 뒤치락거리는 소란 속에서,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만나고 싶던 미령이었는데, 실제로 만남이 이루어 진 자리가 이렇게 슬플지는 몰랐다. 그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쓸데없는 자책감이 날 괴롭혔다.
방장 스님은 품속에서 고서, 달마역근경을 꺼내어 보더니 다시금 한숨을 깊이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불편하게도 방장이란 자리는 오래 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이만 가 봐야겠구나.”
미안하다는 얼굴로 방장 스님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나는 고마웠다. 한 달간, 방장 스님은 소림사의 약고를 털기라도 한 듯이 수많은 약재를 지원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의승들도 몇 차례나 왔다 갔다. 그 정성과 보살핌이 나는 너무도 고마웠다.
사부는 어딘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방장 스님을 배웅하기 위해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제 배웅 인사를 마치고 방장 스님이 문을 나서려 할 때였다.
목소리가 들렸다.
“꺼…… 내 줘.”
셋 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몸을 돌렸다.
천장만을 향하던 미령이의 시선이 우리에게, 정확히는 나에게 고정되어 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 그 안에 나를 담는다.
그런 채로 미령이는 말했다.
“나를, 꺼내 줘.”
그것은 미령이의 목소리임에도 몹시 낯설어, 기괴하게 들렸다.

***

미령이가 무슨 일을 당했던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어떤 무리들이 대낮에 물품을 호송하는 중원상회의 마차를 덮쳤고, 모두 죽었다고 들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은 미령이 하나.
소림의 공식적 입장은 흉수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뿐이었다.
십 년. 미령이가 중원상회에서 생활했을 시간이다. 정이 많이 쌓였을, 친분이 두터웠을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미령이는 두 눈으로 보았을 터였다.
만약 내가 사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상상을 떠올리자마자 오한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문득 등에 실린 무게가 실감이 났다.
“아, 미안. 미령아.”
미령이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내 등에 얌전히 업힌 채로, 마치 그날 죽어 가던 그때처럼 미동이 없었다.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조금 전 미령이에게 들은 첫 말을 떠올렸다.
―꺼내 줘.
그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다만 그 말을 듣자마자 방장 스님과 사부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는 것만 기억한다. 사부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아이가 갑갑해 하는 것 같으니 산책이라도 다녀와라.” 라면서 얼버무렸다.
그 말대로 미령이를 등에 업고 산책을 나왔으나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날과는 달리 여유롭게.
그날과 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나는 미령이를 업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알 것은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알고 있고 추측하는 그것을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았다.

“사질은 음성을 들었다 하였지?”

나는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미령이의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과 똑같은 말을,
“꺼내 줘.”
미령이가 하고 있었다. 이것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응. 밖에 나왔잖아. 시원하지? 숭산의 봄은 정말 좋아. 저기 나비 날아가네? 미령이 나비 참 많이 좋아했지.”
자주 가는 공터에 도착해, 나무 그늘 아래 미령이를 내려 두고 나도 앉아, 인형처럼 늘어져 있는 미령이를 바라보았다.
십 년 만에 본 얼굴이지만, 옛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전히 귀엽고, 여전히 예쁘고, 여전히 변함없는.
내 동생이다.
“미령아.”
작게 미령이를 불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고, 어떻게 된 것인지 나는 모른다. 미령이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무얼 꺼내 달라는 말이니. 응? 어떻게 된 거야? 오빠에게 말해 봐.”
“꺼내 줘.”
한숨이 나왔다. 미령이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사람의 말을 따라한다는 그 새처럼, 같은 말을 똑같이 내뱉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꺼내 줘…….”
크고 예쁜 미령이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미처 그 눈물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해 보기도 전에,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또 진귀한 일이로군.”

***

그 남자는 상당히 마른 체구였다. 평범한 장포에 방립을 걸치 듯 쓰고 뒷짐을 진 자세로 여유자적 서 있다. 나이는 아무리 많이 봐줘 봐야 마흔이 넘지 않은 것 같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예로써 대해야 한다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경계함이 당연하다. 이 두 경우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확실한 선이 있는 것이다.
나는 미령이 앞을 막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신지요.”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나는 대호라고 하네. 금씨 성을 갖고 있다는 건 중요치 않겠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그 아이에게 흥미가 있어. 꽤 드문 현상이거든.”
나는 잠시 생각했다. 미령이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물론 나는 처음 접하는 일이지만 사부는 흔히 충격에 빠진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저 수상한 사람이 말하는 ‘현상’이란 무얼 뜻하는 걸까. 단순히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생각하는 사이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나저나 소림에 여자라. 여승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군가?”
제멋대로 제 할 말만 내뱉고 있다.
나는 그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수상하다는 느낌은 드는데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려 미령이를 보니 여전히 인형같이 감정 없는 얼굴로 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놀라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다소 정중하게 말했다.
“소림에 방문하신 객이라면 길을 잘못 드셨습니다. 본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쪽이 아닙니다.”
“괜찮아, 공식적으로 방문한 건 아니니까. 그보다 묻질 않았는가. 저 아이는 누구냐고.”
“제 동생입니다.”
머뭇거리다 대답하니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동생이었겠지.”
“무슨 말입니까?”
“아아, 그렇군. 미안하네. 내가 너무 앞서갔어. 이런 버릇은 좀 고쳐야 하는 건데.”
그러면서 그는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알기 쉽게 확인시켜 주겠네.”
그렇게 말하며 사내는 꺼내 들었다.
햇빛을 반사하는 그것은 차가운 쇠붙이. 기이하게 휘어져 소름끼치도록 푸른 빛을 띠는 단도.
“이, 이봐요!”
즉시 난 자세를 잡았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류진룡과 상대했었던 목검이 아니다. 베이면 피가 흐르고 찔리면 죽을지도 모르는 살인 병기.
살벌한 흉기, 단도를 쥔 사내는 마치 작은 실수를 했다는 듯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아아, 그런 뜻이 아니야. 정말 확인을 위한 거라구.”
의도가 어떻다 한들 방법이 지나치게 위험해 보인다. 나는 미령이의 앞을 막은 채로 서서히 진기를 끌어올렸다.
참 고약한 인생이다. 팔이 치유되자마자 더 심각하게 상처 입을 상황에 처하고 말다니. 그래도 미령이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