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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1권 (2화)
그의 움직임에 그를 속박하고 있던 만년한철이 바닥에 끌리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자아냈다.
‘그렇겠지.’
쓸데없는 객기를 부려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었다.
그것은 죽음.
아니, 사공악은 자신이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십 년 만의 자유!
그것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하지만, 이 공자.’
약병을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구양운의 손이 핏기를 잃고 하얗게 변했다.
‘이대로 끝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오.’
구양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약병을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입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액체를 한 입에 삼켜 버렸다.
독 특유한 씁쓸한 끝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빨리 내공을 회복해라.”
사공악이 몸을 돌리자 뒤에 서 있던 덩치 큰 사내가 피풍의를 다시 사공악의 어깨 위에 조심스럽게 걸쳐 주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참을성이 많지 않으니.”
사공악의 말소리가 웅웅― 거리며 귓가에 울렸다.
제대로 된 음식조차 먹지 못했던 구양운의 뱃속은 갑자기 들어온 독으로 인해 타는 것만 같았다.
내공 한 줌 모으지 못하는 그의 몸을 마음대로 들쑤시는 통에 구양운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맺혔다.
뚜벅뚜벅.
사공악이 걷자 어느샌가 그림자처럼 덩치 큰 사내가 왼편에 서서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멀어진다고 느낄 때,
끼이익.
철커덩!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적막감이 찾아왔다.
그 순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던 구양운의 몸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눈빛은 심연처럼 어두웠다.
* * *
“이공자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사공악이 고개를 슬며시 왼편으로 꺾어 뒤따라 걷고 있는 덩치 큰 사내를 쳐다보았다.
“말하라.”
“왜 무저갱에서 저런 놈을 꺼내 가면서까지 구유수라마검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까?”
사공악은 덩치 큰 사내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육대방(陸大坊),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사공악의 말에 육대방이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어냐는 표정으로 사공악을 쳐다보았다.
“구유수라마검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육대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천마총이 아닙니까?”
천마총(天魔塚).
그곳은 초대 마교 교주의 무덤으로 후세에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구유수라마검의 검보가 있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죽은 자의 무덤을 훼손하는 건 도리가 아니나, 무림에 욕심 많은 이들이 그것을 놔둘 리가 없었다.
많은 무림인들이 목숨을 걸고 구유수라마검을 구하러 천마총에 들어갔으나 살아 돌아오는 이가 없어 이젠 성역이 되어 버린 곳이었다.
“방금 그놈이 천마총에서 살아나온 유일한 생존자다.”
“허!”
육대방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지옥의 아가리라는 그곳에서 살아 나왔다니…….
“저놈은 분명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테지. 후후, 조만간 구유수라마검까지 내 손으로 들어오겠구나.”
“예, 모든 것은 이 공자님의 뜻대로.”
육대방은 경의를 표했다.
기분이 좋은 듯 길을 재촉하는 사공악에 육대방 역시 부지런히 사공악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놀렸다.
“가자, 할 일이 많구나.”
* * *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불구하고 무저갱으로 향하는 길은 빛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저벅저벅.
계단을 내려가는 육대방의 발자국 소리만 적막한 이곳에 크게 울러 퍼졌다.
은밀히 추진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공자를 대신해 자신이 직접 다시 암동으로 걸어가곤 있지만, 육대방은 뭔가 꺼림칙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무저갱의 무거운 공기와 음습한 기운이 육대방의 감각을 묘하게 자극했다.
‘젠장. 여기는 언제와도 기분이 더럽군.’
빨리 일을 끝내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육대방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내 육대방은 어제의 그 녹슨 문 앞에 다다랐다.
철커덩.
문이 열리고 육대방은 횃불을 든 채로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밤처럼 새까만 방 안에서 육대방의 횃불은 불에 타는 것처럼 노란 빛으로 주변을 빛냈다.
그 불빛이 다다른 곳에 구양운이 있었다.
구양운 역시 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들어 육대방을 쳐다봤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구양운의 얼굴을 전체적으로 가리고 있기 때문에 횃불 바로 아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두 눈동자는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육대방은 이마를 찌푸렸다.
구양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것을 빼러 온 것이오?”
구양운은 헤질 대로 헤진 자신의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구양운의 상체가 훤히 드러났다. 그의 가슴과 배의 경계에 있는 우묵한 곳, 명치는 검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로 원앙혈고를 먹으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 그의 갈비뼈 아래 박혀져 있는 갈고리 모양의 쇠였다.
갈고리가 파고들어 간 곳 근처엔 피부가 시꺼멓게 죽어 있었다.
“그것 말고는 내가 네놈을 보러 올 일이 없겠지.”
육대방은 천천히 구양운 앞에 마주앉았다.
두 손으로 갈고리를 하나씩 손에 잡으니 차가운 쇠의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이것은 결코 힘만으로는 빼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육대방은 자신의 내기를 갈고리를 향해 은은히 분출시켰다.
이것을 사람의 인체에 박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지만, 다시 제거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공자가 구양운을 꺼내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다.
육대방의 점점 몰아치는 내기에 구양운의 온몸은 축축한 땀으로 젖어 갔다.
‘이 정도의 고수였단 말인가?’
이 갈고리는 내공이 심후한 고수의 순수한 내력으로만 제거할 수 있다.
이 무저갱 안에서 그런 고수를 만날 수도 없거니와 기적적으로 탈출한다고 해도 마교와 등을 지면서까지 이것을 제거해 줄 고수는 만무했다.
그러니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던 일이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육대방도 쉽지만은 않은지 볼을 타고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집중해라.”
육대방의 진중한 목소리에 구양운은 두 눈을 감았다.
무인의 생명이나 다를 바 없는 무공을 잃어 버리고 다시 되찾는 순간인데 어찌 기쁘지 않을까.
쿵쾅. 쿵쿵.
구양운의 심장이 요동질 쳤다.
뜨거운 피가 벌써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넌 이제 자유야!’
기쁨과 환희가 묘하게 뒤섞여 구양운을 흥분시켰다.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만 같은 아픔은 지금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아압!”
챙그랑!
단말마의 기합 소리와 함께 십 년 동안 구양운을 속박하고 있었던 쇠갈고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육대방은 손등으로 가볍게 땀을 훔치며 구양운을 쳐다보았다.
두근두근.
구양운의 손끝이 이 순간만큼은 기쁨으로 가늘게 떨렸다.
‘왠지 모르게 불쾌하다.’
그런 구양운을 바라보는 육대방의 눈빛은 곱지 않았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육대방은 구양운과 마주할 때마다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마교인으로 자라서 마교에게 복종하지 않는 이단아 같은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육대방은 마음을 추스르며 구양운에게 주려고 가지고 왔던 목합과 금창약을 꺼내 놓았다.
“친절하게 발라주는 것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크큭.”
구양운은 말없이 금창약을 쇠갈고리가 있었던 자리에 바르며 응급처치를 해 나갔다.
능숙하게 입고 있던 옷으로 상처를 싸매는 것까지 마치고 목합을 보며 말했다.
“이것은 뭐요?”
“마교의 환단이다. 소림사의 대환단(大還丹)만하진 않겠지만, 너의 내공을 빠른 시간에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안에는 일곱 번을 복용할 환단이 있으니 정확히 칠 일 후에 다시 오지.”
구양운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천마보심환(天魔保心丸)인가?’
육대방이 생각하는 것보다 구양운은 마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육대방 그가 구양운을 마교인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천마보심환이라고 딱 잘라 설명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뭐, 상관없는 일이지. 후후.’
그리곤 목합을 열고 환단 하나를 입안으로 넣었다.
육대방 역시 용무를 마쳤으니 미련 없이 뒤를 돌아 무저갱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걸음을 향했다.
무저갱 안의 감옥은 쇠로 된 것이 아니라 동굴처럼 만들어진 곳이었다. 특이한 것은 돌덩어리가 아니라 진흙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문은 두꺼운 철문으로 되어 있었지만, 아무리 내가 고수라 할지라도 내공으로 벽을 부수고 탈출하지 못하게끔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이곳은 기분 나쁜 습기와 끈적거림이 느껴졌다.
그 불쾌함 때문이었을까?
육대방은 구양운의 방을 나서려는 철문을 앞에 두고 다시 뒤돌아섰다.
“구양운.”
동굴이 너무 어두침침했기 때문에 구양운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순 없었지만 그는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미리 경고하지만.”
어둠 속에서 육대방의 진득한 살기가 방안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눈빛은 살모사처럼 빛났다.
“딴 생각을 품을 시엔 내가 먼저 널 죽여 버리겠다.”
“크크큭.”
들려오는 그의 웃음소리,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대의 손을 빌리기 전에 원앙혈고가 날 가만히 두지 않겠지.”
끼이익!
육대방은 대꾸 없이 거대한 철문을 열어젖혔다.
철커덩.
그리곤 다시 철문을 잠그고 무저갱 바깥을 향해 걸어 나갔다.
구양운의 말처럼 꼭 자신의 손이 아니더라도 원앙혈고도 또 그를 감시하는 이공자의 눈들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좁은 통로에서 햇빛이 비추는 것이 보였다.
이제는 지하의 깊숙한 무저갱을 다 나온 것이나 진배없었다.
‘혹시라도 나의 주군께 해를 가한다면 가장 먼저 널 찢어 죽을 것이다!’
육대방은 스스로 불쾌한 마음을 위안 삼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법한 이공자님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구양운은 육대방이 나가자 바로 운기조식을 통해 몸 안을 관조했다.
미약하나 단전에서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러나 이내 그는 언제 웃었냐는 듯 표정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마교는 역시 인재가 많군.”
자신이 가졌던 예전의 내공이 모두 돌아온다고 하여도 지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때가 아니었다.
철옹성 같은 십만 대산에 위치한 마교의 저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저 넓은 중원과도 비등하게 견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마교는 강대할 것이다.
‘하지만……!’
구양운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곤 다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운기조식을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내공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철컹.
철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
이제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식사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 다르게 간수는 몇 가지 물건을 더 문 앞에 두고 다시 거대한 철문을 굳게 닫았다.
해가 비추지 않기 때문에 시간 관념이 없었지만, 식사는 하루에 한 끼를 주고 가는 것 같다고 느껴 왔다.
이 행동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것이라 크게 세어 본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구양운은 간수가 두고 간 밥그릇을 향해 걸어갔다.
“큭큭!”
구양운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공자가 다녀간 후로 부쩍 웃을 일들이 많아졌다.
십 년 동안이나 봐 왔던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그런 음식이 아니라 크고 기름진 닭다리가 그릇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동안 무저갱 안에서 받았던 음식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떤 내용물이 섞인 지도 모를 정도의 음식들만 보아 왔다.
살기 위해서 먹었지만 그런 거친 음식들과 달리 먹음직스러운 것을 보자 구양운은 군침이 돌았다.
구양운은 망설이지 않고 닭다리를 손으로 집고, 순식간에 해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