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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21화)
Chapter 8 신령들의 보금자리(2)


하지만 위극혼은 자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거의 9할 이상 틀림이 없다 생각했다.
끼이익.
진료관의 문이 열렸다.
잠시 후, 삼존과 의선은 의사청으로 가게 되었고 위극혼은 그곳에서 안식림과 절벽이 사라진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들 모두는 멸마대주의 생각처럼 그 일이 진법 실험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짐작을 하게 되었다.

***

꿈틀.
고요한 수면에 돌멩이가 하나 떨어지기라도 한 듯 작게 파문이 일었다.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것이다.
깨어난 것은 정신, 그 정신의 주인은 바로 위천희였다.
‘으윽! 머리가, 머리가 좀 어지럽구나.’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나면 일단은 몽롱하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상쾌한 기분으로 바뀌는데 위천희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신이 몽롱하고 또한 두통이 일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어지러웠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몽롱한 정신 속으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로서 삼 일째인데 왜 깨어나지 않는 거지?”
“그러게, 언니.”
“곧 깨어날 거예요. 의선 할아버지가 오늘쯤에는 깨어날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에요.”
제1진료실에 모여 있는 세 소녀.
그들은 삼존의 손녀들이었다.
위천희가 걱정이 된 그들은 오늘 단체로 병문안을 온 것이었는데 아직까지 그가 깨어나지 않고 있자 많이 걱정스러워하고 있었다.
“조금 미안하네.”
황보운미가 야윈 얼굴을 하고 있는 위천희를 보며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을 걸 그랬나 봐. 괜히 주먹을 날려 가지고 천희의 눈을 이렇게 멍들게 하고 말았으니…….”
멍 자국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그냥 보면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때린 당사자인 황보운미는 위천희의 오른쪽 눈에 아직도 멍 자국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맞아. 그건 언니가 크게 잘못한 거야.”
심연화가 그녀의 말을 받아서 얘기했다.
“천희 오빠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우리를 봤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언니는 그런 오빠의 말을 믿지 않고 그냥 냅다 주먹을 휘둘렀어. 그건 정말로 잘못한 거야.”
“그게 말이 안 돼서 그랬지.”
황보운미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천희는 상승 무공을 익히지 못했어. 내공이 없단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이목을 뚫고 그곳 계곡의 근처로 올 수가 있겠어, 안 그래?”
“그거야 그럴 수도 있지. 그때 우리는 한창 물놀이에 빠져 있었잖아. 그러니 천희 오빠가 다가온 것을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언니는 천희 오빠가 깨어나면 나중에 사과해.”
“뭐, 사과를? 아니, 내가 사과를 왜 해?”
“그럼 사람을 쳐 놓고 가만히 있겠다는 거야?”
심연화가 그건 정말 아니라는 그런 표정을 짓자 황보운미는 즉시 반박의 말을 했다.
“연화야! 너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당했다고. 천희 쟤가 우리들의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봤단 말이야. 언제부터 보고 또 어디까지 봤을지 모를 정도로.”
“그, 그건…….”
지금 한 황보운미의 말에 심연화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대신 예쁜 얼굴에 갑자기 발그레한 빛이 떠올랐는데 그건 다른 두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14세에서 16세의 나이라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그런 때라 할 수 있었다. 감추고 싶은 것도 많고 또 부끄러움도 많이 타는 나이인 것이다. 고지식한 학자 집안의 여식이 만일 목욕하는 장면을 어떤 사내에게 보였다면 그건 혼인으로 연결될 확률이 높았다.
무림의 세계는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사내에게 몸을 보였다면 그건 상당히 부끄럽고 또 흠이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 세 아이는 나이가 어린지라 그날 위천희에게 알몸을 보였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특히나 황보운미의 경우는 알몸을 보였다는 수치심에 냅다 주먹을 날린 것이었다.
“그만 해요, 그 얘기는 이미 끝난 거잖아요.”
아무 말 없이 얌전히 있던 남궁소연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여기는 환자가 있는 병상이에요. 너무 떠들면 천희 오라버니에게 좋지 않다고요.”
스윽.
작고 고운 하나의 손이 침상에 누워 있는 위천희의 머리 위로 다가갔다. 그리곤 살며시 내려앉았다.
열은 없다. 남궁소연은 의녀(醫女)처럼 위천희의 상태를 살폈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심연화가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서는 자신도 그의 손을 붙잡고는 진맥을 하는 그런 모습을 취했다.
괜히 그러고 싶은 것이었다.
위천희는 그의 부모의 모습을 반반씩 닮아 사내다운 기상과 함께 여인의 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묘한 매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지닌 매력은 나이가 어린 소녀들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편, 이미 정신을 차린 위천희는 기분이 좋았다.
자신을 걱정해서 병문안을 온 세 아이가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헤헤. 이거 정말 좋구나.’
만지작만지작.
머리의 이마와 왼손에 느껴지는 감촉.
사내의 느낌이 아닌 여자 아이들이 만져 주는 그 느낌은 결코 나쁜 게 아니었다. 아니, 나쁜 게 아니라 매우 좋은 것이었다.
“어쨌든 조금 미안하네. 사과는 비록 못하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천희에게 주먹 쓰는 일이 없도록 하면 되겠지. 뭐, 그 정도면 충분한 게 아닐까?”
“그래, 언니. 잘 생각했어. 무공을 익히지 못한 천희 오빤데 어떻게 주먹을 휘두를 수 있겠어. 그러다가 큰일 나지.”
“예에, 잘 생각했네요, 언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
세 소녀는 위천희가 깨어난 줄 모르고 계속해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고 녀석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아, 황보운미! 너를 용서하기로 하겠다. 사내의 자존심을 뭉갠 너를 크게 혼내려 했지만 나의 잘못도 있고 또 네가 이렇게 병문안을 와 미안해 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내 모든 걸 털어 버리겠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용서한 것이었다.
수치심과 자존심.
황보운미의 경우는 자신의 알몸을 본 위천희를 지금 이 순 간 완전히 용서한 것이었고, 위천희의 경우는 사내도 아닌 여자가 눈이 퍼렇게 멍들도록 때린 일을 용서하기로 한 것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잠시 후, 세 소녀는 실내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끼이익, 탁!
“갔구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위천희는 즉시 두 눈을 뜨고는 침상에서 일어나 보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잘 일어날 수가 없었다.
“으윽! 이거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그런가? 온몸이 결리지 않는 곳이 없네.”
억지로 자리에 앉은 위천희.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실내에 아무도 없다 생각하니 곧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는 그 생각들 중 하나를 붙잡아서는 집중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찌 된 것일까? 잘된 것인가?’
그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장면.
그것이 느릿하게 떠올랐다.
‘몸이 폭발하기 직전에 성공을 한 것 같은데……. 오운육기의 법문이 극도로 발휘가 되어서는 중단전에 있던 탁기를 깨끗이 씻어 냈었어. 그리고 그 자리에 원래 들어서기로 했던 삼라조화신령진이 안착이 되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이 나. 그렇다면 성공이라는 말인데…….’
아무래도 자신의 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성이 느껴졌다.
‘일단은 정신이 아직까지도 맑지가 않으니 오운육기의 법문으로 영력을 키워 주고 그 다음에 중단전을 살펴보자.’
위천희는 즉시 가부좌의 자세로 앉았다.
이제 막 깨어난 그였다. 그날의 충격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심신을 지금부터는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야 했고, 또한 자신이 실험한 일이 어떻게 잘됐는지 알아봐야 했다.
마음속으로 오운육기의 법문을 행하자 곧 변화가 일었다.
우우우우우웅.
기운이 일었다. 무림인들의 하단전에 자리한 진기가 아닌 상단전에 자리한 영기가 그의 몸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결리던 몸이 빠르게 회복되었고 조금 흐릿했던 정신이 또렷해졌으며 닫혀 있던 영안이 되살아나 그의 몸을 관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영안은 심안과 비슷한 개념의 것이지만 그보다는 상위의 능력인지라 위천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중단전을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보는 그 순간, 그의 정신 속으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주! 대주……!
―에구구, 대주님! 깨어나십시오. 저희를 밖으로 나가게 해 주십시오.
―크아아앙! 답답하다, 답답해!
―키에엑! 키에에에엑! 대주!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이곳을 다 부숴 버릴 거야!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보았던 소리.
그랬다. 지금 그의 뇌리를 울리는 소리는 소혼진을 통해 새 생명을 얻게 된 일곱 신령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엉엉엉엉. 대주! 빨리 저희를 꺼내 줘요.
―목령아! 그만 울어. 대주님이 곧 우리가 있는 곳을 발견하실 거야.
풍령이 울고 있는 목령을 달랬다.
이곳은 어디인 것일까?
일곱 신령은 답답했다.
소혼진 안에 있을 때보다 더욱 답답했는데 그 이유는 지금 그들은 서로 거의 붙다시피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것은 한 평 남짓한 곳에 일곱 사람이 서 있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아아, 애들이 여기에 있었구나.’
위천희는 일곱 신령이 있는 곳을 파악했다.
‘헤헤. 성공이었구나, 성공이었어! 삼라조화신령진이 완벽히 중단전에 들어섰어. 그리고 지금 일곱 신령은 아직까지 제대로 활성화가 되지 않은 삼라조화신령진에 갇혀서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야.’
영안이 중단전을 관조하자 그곳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후후후.’
서로 엉켜 있는 일곱 신령을 보니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위천희는 녀석들이 답답해 하자 곧 심어를 보내 녀석들을 안심시켜 주었다.
‘얘들아! 나 대주다! 지금 너희들이 있는 곳을 넓혀 줄 테니까, 안심해.’
아아, 이 얼마나 기다렸던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주의 목소리.
곧 엉켜 있는 일곱 신령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와아, 대주다, 대주야! 드디어 이 답답한 곳을 벗어날 수 있겠다!
―아이구, 대주님. 살아 계셨군요.
―키케케케케! 대주! 빨리 나를 내보내 줘! 나 지금 돌아 버릴 것 같단 말이야!
파지지지직!
뇌령이 몸에서 전류를 발산하며 기쁨을 표했다. 그러자 다른 여섯 신령들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녀석에게 한 소리씩 했다.
―어머! 뭐야? 뇌령이 너 그렇게 기운을 마구 발산하면 어떻게 해!
―크아아앙! 이 미친놈아! 얌전히 있어라!
―가만히 있어라! 네가 그렇게 힘을 쓰겠다면 나 금령도 힘을 쓰겠다.
좁은 곳이었다. 서로 엉켜 있지 않은가.
이런 곳에서 누구 하나가 기운을 발산하면 다른 신령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었다.
―키캬캬캬캬캬! 몰라, 몰라!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다! 대주! 빨리 나를 내보내 줘!
파지지지직!
친구들이 얌전히 있으라 했지만 뇌령은 대주가 나타난 것에 너무 기뻐서는 계속해서 자신의 힘을 사용했다. 결국 화가 난 다른 신령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자신들도 같이 기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콰쾅! 콰콰콰콰콰콰쾅!
일곱 신령이 힘을 쓰니 아주 난리가 나고 있었다.
삼라조화신령진이 무너질 일은 없으니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신령들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에구, 저것들이 또 시작이구나. 하여간 뇌령이가 문제야. 아주 사고뭉치라니까.’
위천희는 안 되겠는지 바로 중단전에 안착이 된 삼라조화신령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영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우우웅.
기운이 일었다. 영력을 중단전에 보내니 그곳에서 크게 진동음이 흘러나왔다.
―어어? 뭐야?
―에구구. 이것들아 그만 해! 다들 주위를 둘러봐!
신령들이 토령의 말에 다툼을 멈추고는 자신들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지켜보더니 곧이어 감탄의 말들을 내뱉었다.
―아아아……!
―우와! 대단하다!
―커지고 있어! 좁은 공간이 늘어나고 있어!
기름진 밭에 뿌려진 하나의 씨앗.
그 씨앗은 삼라조화신령진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것은 곧 새싹을 틔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꽃을 피우더니 최종적으로는 열매를 맺게 되었다.
중단전은 심단전(心丹田)이라고도 한다.
마음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무한의 세계라 할 수 있으니 삼라조화신령진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