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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22화)
Chapter 8 신령들의 보금자리(3)


좁은 곳에 갇혀 있던 일곱 신령.
녀석들은 마침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으음, 어떻게 할까?’
위천희는 끝없이 넓어진 삼라조화신령진을 보며 어찌할지 생각해 보았다.
‘신령들이 지금 있는 장소는 하나의 세계라 할 수 있어. 그곳에 뭔가를 만들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을까? 하늘과 땅, 바다, 그런 것들을 내가 만들어 줄 수도 있겠지만 녀석들이 알아서 만들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지금 삼라조화신령진은 무(無)의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넓은 공간만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변화가 없지 않은가.
변화가 있으려면 그 아무것도 없는 곳에 여러 가지 자연물들이 있어 신령들이 놀 수 있게 하면 된다.
잠시 더 어찌할지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흐르자 곧 하나의 결론이 내려졌다.
‘좋아, 그렇게 하자. 내가 해도 되겠지만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놔둬 보자. 녀석들이 알아서 조금씩, 조금씩 삼라조화신령진을 채우게 하는 거야. 흙, 물, 불, 쇠, 나무, 바람, 벽력! 이렇게 각기 다른 힘을 가진 녀석들이니까, 충분히 알아서 잘 할 수 있을 거야.’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그러하기에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곱 신령은 자연의 근원들이다.
녀석들이 치고받고 싸우면서 각자 힘을 쓰면 머지않아 삼라조화신령진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세계처럼 완벽을 이룰 것이다. 그러면 어쩜 자신의 진법 경지에도 영향이 끼칠지 모르는 일이다.
‘얘들아! 너희들 이제부터는 그곳에다가 각자가 살 집을 만들어! 모양이 이상해도 좋으니까 일단 집을 만들고 그 다음부터는 그곳에다가 다양한 것들을 한번 만들어 봐. 처음엔 힘들 거야. 그리고 혼자의 힘으로 안 될 때도 있을 테고, 또…….’
짧지 않은 이야기.
그 이야기의 핵심은 일단 집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 일곱 신령은 대주의 말대로 각자가 살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서 하다가 그게 많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중엔 서로 힘을 모아 집들을 짓기 시작했다.
삼라조화신령진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지만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기에 서로 도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들어가 살 집을 엉성하게나마 지을 수 있게 되었다.



Chapter 9 초고수들의 연무를 보여 주다(1)


뾰로롱, 뾰로롱.
새들의 지저귐이 귓가를 간질이는 숲이다.
여기는 의선곡에서 북서쪽으로 이십 리 정도 떨어진 곳으로 대환영미로진의 영향이 미치는 장소인데 숲의 외곽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사십 장 크기의 공지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 공지에는 현재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들은 바로 삼존의 하나인 도존과 그의 손녀인 심연화였다.
“후으읍, 휴우우우.”
깊은 심호흡을 통해 몸속의 탁기를 배출했다.
심연화는 운기행공을 끝마치자 감은 두 눈을 뜨고는 정면에 있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떻게 효과를 좀 보았느냐, 연화야?”
“호호호. 예에, 할아버지. 확실히 의선 할아버지는 대단하신 것 같아요. 몸의 내력이 한 번의 운기행공으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이 쌓였어요.”
심연화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숲의 분위기가 대번에 달라졌다.
도발적인 미(美)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뇌쇄적인 미라고 해야 할까? 이제 두 달 후면 열다섯 살이 되는 아직은 어린 여자 아이인데 벌써부터 남정네들을 홀릴 그런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단한 미모.
이삼 년만 지나면 모르긴 몰라도 다른 이존의 손녀들과 같이 무림의 삼봉(三鳳)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으음, 그렇다면 이번에 의선 그 친구가 만든 게 매우 괜찮은 그런 영단인 것 같구나. 이곳 섬에서 새로운 약초들을 발견했다며 일 년 전부터 의선단(醫仙丹)이라고 하는 것을 연구해 만들더니 기어코 성공을 한 모양이야.”
“예, 맞아요. 성공하신 거예요. 그것도 크게요. 단전에 흡수가 되지 않은, 경맥 속으로 숨어들어 간 의선단의 약력을 모두 흡수하면 모르긴 몰라도 저도 두세 달 후쯤에는 운미 언니처럼 절정의 경지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잘됐구나. 네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든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게지.”
현재 심연화의 무공은 나이에 맞지 않게 초일류의 경지에 있었다. 이 초일류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무공에 있어 검사(劍絲)를 사용할 수 있는 자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이 검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검기가 수십 가닥이 모여 마치 검강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절정의 경지에 이르기 직전에 구사할 수 있는 최고의 절기가 바로 이 검사였다.
“하지만 너무 영단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절정의 경지는 의선단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을 바란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호호, 예에. 잘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
“그래. 너의 무공 재능은 뛰어난 편이니 무공에 심혈을 쏟는다면 머지않아 절정 이상의 경지에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너는 우리 가문에 전해지는 천룡무상신공(天龍無上神功)을 익히고 있으니 남들에 비해 성취 속도가 빠를 것이야.”
도존, 심현노.
그는 원래 말수가 적고 또한 말을 할 때에는 남들이 듣기에 딱딱한 그런 말투를 사용했다. 하지만 손녀에게만큼은 사람이 돌변해 매우 부드러워졌다.
“자아, 그럼 이제 일어나거라. 신공 수련을 끝냈으니 이제는 대련을 하자꾸나.”
심현노는 손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손녀와 함께 공지의 한가운데로 걸어가더니 곧바로 도를 빼 들었다.
스릉.
폭이 넓은 거무튀튀한 도였다.
도존은 초절정의 경지에 든 지 오래인 고수인지라 그냥 아무 나뭇가지를 사용해도 충분히 자신의 힘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손녀와 대련을 할 때는 언제나 자신의 애도인 천룡도(天龍刀)를 꺼내 들었다.
“할아버지! 그건 약속하신 거예요?”
대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심연화가 물었다.
“뭐 말이냐?”
“그거요. 제가 절정의 경지에 들면 천룡무상도법(天龍無上刀法)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아아, 그거 말이냐. 당연하지. 이 할아버지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그러니 너는 아무 걱정 말고 이제 준비를 하거라.”
“호호, 예에. 알겠어요.”
심연화는 할아버지의 확답에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짓고는 곧 왼쪽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도집에서 투박한 모양의 도를 빼 들었다.
그것은 수련용 도인지라 그다지 날카롭지가 않았다.
하지만 심연화가 곧바로 내력을 주입하니 충분히 병기로서 효용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좋다. 그럼 이제 시작하겠다.”
“예, 들어오세요.”
준비는 모두 끝이 났고 장내에는 곧 두 노소의 격렬한 대련이 진행되었다.
캉! 캉캉캉!

“다들 어때?”
위천희가 정면을 주시한 채 모두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서 있는 일곱 신령이 차례대로 한 명씩 대답을 했다.
―아아, 저 여자 아이는 꽤 강하네요.
―저번에 계곡에서 봤던 그 세 아이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이제 보니 저런 숨은 실력이 있었군요.
―크르르릉. 한번 붙어 보고 싶군.
―흐음. 나 금령과 싸우면 꽤 재미있는 승부가 되겠어.
모두가 노인이 아닌 여자 아이를 주시했다.
현재 위천희를 위시한 일곱 신령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심현노와 그의 손녀인 심연화가 대련을 펼치고 있는 공지의 서쪽 외곽이었다.
도존 심현노는 초절정의 고수다.
기감이 극도로 뛰어난 그이지만 자신이 있는 곳의 근처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현재 위천희가 있는 이곳은 진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절정 고수의 기감을 속이기 위해 특별히 만들게 된 기감각무위진. 덕분에 편안히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위천희와 신령들인 것이었다.
―키캬캬캬캬, 싸우면 내가 이기겠는데. 누가 나를 잡을 수 있겠어, 안 그래? 키캬캬캬캬!
―뇌령아, 방심은 금물이야. 대주님이 말씀하셨잖니, 밀림의 호랑이는 한 마리의 토끼를 사냥할 때도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고 말이야.
풍령이 마치 누나인 것처럼 뇌령에게 말을 했다.
하긴 풍령이 뇌령보다도 먼저 소환이 되어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누나처럼 말을 하는 게 특별히 잘못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키캬캬캬캬! 무슨 소리! 내가 이겨! 저런 비리비리한 얘는 내가 번개를 한 방 날리면 끝이야, 끝!
파지지지지직.
순간, 뇌령이 미친놈처럼 몸에 전류를 잔뜩 흘리며 좁은 기감각무위진을 빗살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밖으로 나가 심연화와 붙어 보고 싶다는 것을 나름대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키캬캬캬캬캬! 누가 나를 막을 것이냐! 나와라!
“뇌령이 너, 가만히 못 있어! 자꾸 정신 사납게 굴면 독방에 며칠 가두어 둘 거다.”
위천희의 조용한 그 한마디.
독방이라는 단어에서 뇌령은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서는 방금 전까지 날뛰던 모습을 싹 지우고는 얌전히 자리에 서게 되었다. 위천희는 뇌령이 얌전해지자 모두에게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너희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나 본데, 내가 말하는 상대는 연화가 아니라 도존 할아버지야. 다시 잘 봐. 너희들이 보기에 도존 할아버지가 어떻게 보이지? 만일 싸우게 되면 어떨 것 같아?”
상대가 순식간에 여자 아이에서 노인으로 바뀌었다.
일곱 신령은 대주의 말에 얼굴에 칼자국이 두 개나 나 있는 심현노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캉! 캉캉캉!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상대가 적이라 판단될 때는 반드시 죽이겠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인정은 없다! 필살의 의지로 싸우지 않으면 당할 수가 있어. 무림은 결코 만만한 세계가 아니야!”
“아악! 이야앗!”
도존은 하나뿐인 손녀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손녀와 비슷한 정도의 내공으로 똑같은 도법을 펼치고 있었는데 심연화는 할아버지의 무지막지한 공세에 손발이 어지러움을 느끼고는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보법을 밟아 피해 보려 해도 천룡도는 계속해서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좀 더 힘내! 잠재된 능력을 끌어올리거라! 낙일도법은 정기신이 일체가 되어야지만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도신일체가 되어야지만 절정의 경지에 들어설 수가 있어!”
대련을 하며 손녀에게 무리(武理)를 전하는 도존.
콰앙! 콰쾅!
커다란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심연화는 단전에 있는 내공을 모두 짜내서는 도기(刀氣)가 아닌 도사(刀絲)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밀릴 뿐이었다.
콰쾅! 콰콰쾅!
도존은 대련에 임할 때는 그 상대가 제아무리 손녀라고 해도 무섭게 다그쳤다. 무림이란 곳은 알게 모르게 약육강식의 이치가 지배되는 그런 세상인지라 무공 실력을 비롯해 독한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했다.
―으음…….
―어려운데. 너무 어려워.
―크르르릉. 정말 매섭군. 너무 매서워서 내 가슴이 다 갈라지는 기분이야.
거친데다가 매우 폭급한 성격을 지닌 화령이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녀석은 심현노와 대련을 하는 그런 상상을 해 보았는데 곧 자신의 가슴이 그대로 갈라져 버리는 처참한 패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본능적으로 저 노인에게는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천희는 고개를 돌려 일곱 신령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헤헤. 다들 그게 뭐야? 그 자신만만하던 패기는 다 어디 갔어?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모두 도존 할아버지 하고 한 번씩은 싸워 봐야 한다고.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
―예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머, 대주님……!
―키에엑! 말도 안 돼! 대주가 우리를 죽이려는 속셈이다. 모두들 속지 마! 저런 괴물 같은 노인네를 우리가 무슨 수로 이겨!
뇌령이 모두에게 속지 말라며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모두들 녀석의 시선을 외면한 채 이건 아니지 않느냐 하는 그런 표정으로 대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키에엑! 뭐야? 다들 왜 그래? 우리 모두 단결해야 해! 저 노인과 싸웠다가는 모두 뒈진다고, 알아?
강력히 자신의 주장을 펴는 뇌령.
그러나 친구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위천희는 뇌령이가 떠들든 말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들에게 간단히 설명했다.